64화. 반격 (1)
“이젠 서리늑대나 푸른 늑대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겠네요.”
호진은 숨을 고르느라 헐떡이는 감시단을 보며 웃었다.
피 안개를 뚫고 지나온 감시단은 늑대나 사람이나 온통 푸른색이었다.
그러자 비교적 숨이 고른 도훈이 피에 젖은 옷을 짜며 대답했다.
“청랑은 원래 푸른색이다.”
“그건 얘가 이상한 거예요. 얘 혼자 다른 종인가?”
“크르르르르.”
청랑이 낮게 그르렁거리자, 도훈이 토닥이며 말했다.
“청랑은 내 파트너다. 말을 조심해주길 바란다.”
“……말이 지나쳤네요. 미안하다.”
호진이 빠르게 사과하자 청랑이 휙 고개를 돌렸다.
‘서로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다고…….’
까칠한 사람과 까칠한 늑대가 만나서 두 배로 까칠해졌다.
호진이 뺨을 슬쩍 긁은 후, 시선을 돌려 대학교 정문 쪽을 바라봤다.
─탕! 타다당!
─두두두두두두
요란한 총소리와 폭발음을 뚫고 수만의 군세가 내달리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정문 쪽도 시작됐네요.”
“우릴 눈치챘어. 우리가 합류하기 전에 군대를 먼저 없앨 생각이겠지.”
포위를 위해 흩어진 녀석들 정도는 내주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하긴, 이대로 포위한 적들을 다 잡아도 정작 구해야 할 군대가 전멸하면 우리가 온 의미가 없어진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건데…….”
그렇게는 안 되지.
─휘익
맑은 휘파람 소리.
호진은 공중을 활공하던 이카루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카루스가 부드럽게 돌아서 남동쪽으로 날아갔다.
“모두 예상한 대로군……. 어떻게 안 거지?”
도훈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말이 조금 빨라졌다.
나름대로의 감탄사인 모양이다.
“상대가 똑똑하니까요. 저라도 놈들처럼 움직였을 겁니다.”
말을 마친 호진은 다시 하야의 고삐를 움켜쥐었다.
“저쪽은 맡기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죠.”
“……쉴 틈도 없군.”
“쉬는 건 죽어서 쉬어야죠.”
“……난 안 쉬어도 될 것 같다.”
도훈의 대답에 피식 웃은 호진은 재차 흩어진 리자드맨 무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호오 호오
익숙한 부엉이 한 마리가 상공을 떠돌며 울어댔다.
신호다.
“출발한다!”
박 순경이 크게 외치며 차량을 탕탕 두드리자, 차량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량은 버스에 외피를 두르고 무한궤도를 장착해 흡사 장갑차를 연상시켰다.
“이 고물을 믿고 싸워도 될까요?”
느리지는 않지만 빠르지도 않은 차량.
그 속도가 불만인 듯 주호가 투덜댔다.
그러자 다들 비슷한 느낌인지, 차량에 탄 헌터들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지켜보던 1팀의 리더 기서는 웃으며 말했다.
“대신에 엄청 튼튼하다는 건 증명됐잖아요. 믿고 싸워보죠.”
““넵!””
평소 인망이 있는 기서의 말에 헌터들은 쩌렁쩌렁 대답했다.
“뒤에 차량들은 잘 따라오죠?”
박 순경의 질문에 기서는 슬쩍 고개를 내민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넵,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슬슬 보이네요. 꽉 잡으세요!”
박 순경이 대학의 정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큰소리로 외쳤다.
─쾅! 타당, 탕
요란한 총성과 폭발음이 들렸다.
박격포를 맞은 리자드맨들의 진형은 다소 흐트러졌으나, 진영의 앞에 선 템플 가드(Temple Guards)들이 들어 올린 방패에 총알들이 막히며 적들은 침착하게 대학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굳게 잠긴 철문과 군인들이 쌓아 놓은 바리케이드들을 향해 달려드는 리자드맨들.
그들을 향해 돌연 거대한 차량 3대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리자드맨들도 이쪽을 눈치챘는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라 소리쳤다.
갑자기 튀어나온 거대한 차량에 리자드맨들은 주춤거렸지만 금방 태세를 갖추고 차량을 공격해왔다.
녀석들이 차량 앞에 달린 스파이크를 피해 측면을 향해 달려들던 그 순간.
“찔러!”
박 순경의 외침과 동시에 수십 개의 장창이 창밖의 리자드맨들을 꿰뚫었다.
박 순경이 이어 외쳤다.
“2열!”
준비 중이던 2열이 재빨리 장창을 내질러 후열의 적들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수십의 리자드맨들이 쓰러지고, 공격을 저지한 차량은 지체 없이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쿵! 콰직!
리자드맨의 일부는 전쟁의 열기로 흥분한 탓에 차량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차량 전면에 부착한 거대한 스파이크에 꿰뚫리거나 무한궤도에 끼어 곤죽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숙련된 전사들이라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차량의 앞을 가로막는 리자드맨들은 없었다.
순식간에 정문에 도달한 차량은 그대로 정문을 부수고 있던 리자드맨들을 향해 돌진했다.
─쿵! 쿠궁.
입구에 선 녀석들을 그대로 들이받은 첫 번째 차량의 뒤로 두 번째, 세 번째 차량이 차례로 바짝 붙어 섰다.
길게 늘어선 5선 대의 차량들.
그러자 정문에는 순식간에 높이 4미터짜리 철벽이 생겨났다.
갑자기 생겨난 거대한 벽에 리자드맨들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고 있던 와중, 창문 너머로 화살과 단창들이 날아들었다.
무방비하게 서 있던 녀석들은 제대로 막아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꼬꾸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살이 날아오자 리자드맨들도 재빨리 물러나 있던 템플 가드들과 위치를 교환했다.
“장전 후 대기!”
이예은의 명령에 사수들은 차분하게 화살을 시위에 건 채 대기했다.
화살이 제한적인 만큼 필요할 때만 쏘기 위함이다.
잠깐 생겨난 교착상태.
반쯤 허물어져 가는 정문을 사수하던 군인들이 긴장한 채 차량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 순간.
─덜컹, 쾅!
3번째 차량의 문이 열리고 거대한 석상이 나타났다.
그러곤 반쯤 허물어진 정문을 두 손으로 잡고 가볍게 뜯어냈다.
그 모습에 군인들이 급히 총을 들어 올리자, 석상 뒤에서 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사, 사격 중지!”
아이를 발견한 중대장이 한 손을 들어 올리자, 병사들은 천천히 총을 내렸다.
“안녕하세요.”
허리를 숙여 배꼽 인사를 한 아이는 눈만 끔뻑이는 군인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수현입니다. 여기는 스미스고요. 여러분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정문은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
아이의 말에 뇌 정지가 온 중대장이 입만 벙긋거리던 그 순간, 무전기가 울렸다.
[치직…… 전군에게 명령한다. 지금 지원군이 도착했으니 최대한 협조하길 바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중대장은 간신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주 고개를 끄덕인 수현은 중대장에게 물었다.
“그리고 저는 정문 빼고 방위가 허술한 곳으로 안내해주세요. 돕겠습니다.”
수현의 말에 중대장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중대장.
“아, 아니. 너 같은 아이를 데려갈 순 없다. 너는 빨리 저기 학교 본관으로 몸을 피하…….”
하지만 중대장은 말을 마저 끝마치지 못했다.
차량의 뒷문이 열리며 수십의 골렘들과, 목제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어깨에 올라탄 수현은 티 없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괴물들을 쳐죽일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아요.”
“……아.”
중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아이의 웃음을 본 순간 깨달은 것이다.
눈앞의 아이는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을 겪었다는 걸.
그 결과 어딘가 고장 났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아이의 눈짓만으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석상과 군대.
솟아오르는 죄책감과 함께 마른침을 삼킨 중대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자, 스미스.”
중대장은 앞장서서 미완성된 참호와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곳으로 수현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
─쉬익! 콰직.
“끅!”
비명과 함께 헌터 2조의 전열 한 명이 뒤로 나자빠졌다.
날아든 돌덩이에 방패를 들고 있던 팔꿈치가 부러진 까닭이다.
살을 찢고 허연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쓰러진 사람이 신음하기도 잠시, 녀석이 비운 공간으로 투창이 날아들었다.
이를 본 박 순경이 급히 소리쳤다.
“전열 방패 올려! 밀착진형으로 방패밀착!”
““방패밀착!””
─척
복명복창과 함께 창을 회수한 전열의 헌터들이 방패를 양손으로 잡고 다닥다닥 붙어 섰다.
진형이 완성됨과 동시에 아까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돌덩어리와 창들이 날아들었다.
─텅! 터덩! 터더덩! 텅!
“흡!”
충격이 있는 듯 몇 명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쓰러지는 이는 없었다.
방패와 방패를 포개듯 겹친 진형이 충격을 분산시켰기 때문이었다.
“대응 사격한다. 사수들 앞으로.”
예은의 명령에 대기 중이던 사수들이 창을 열심히 휘두르는 후열의 옆으로 다가갔다.
“사격 개시.”
명령이 떨어지자 수십 발의 화살과 창이 방패 위로 난 틈 사이로 날아갔다.
목표는 투석을 하던 리자드맨들이다.
그들 중 몇몇이 화살에 맞고 돌들을 떨어트리며 그대로 꼬꾸라졌고, 동시에 투석이 주춤했다.
그 사이 뒤에선 재빨리 전열을 가다듬었다.
“2조 예비 방패조 앞으로!”
“악!”
박 순경의 명령에 2조의 후열 중 하나가 공포를 이겨내려는 듯 악을 쓰며 답했다.
장창을 회수한 그는 쓰러진 사람의 방패를 챙겨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로써 10번째 교체다.
전열에서 10명, 후열에서 4명이 당했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전투가 불가능한 부상자가 14명.
아직 전열이 흐트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겨우 60명밖에 안 되는 헌터들로서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박 순경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전투 후 20분 정도가 흘렀다.
호진이 버텨달라고 한 시간은 40분.
‘1번, 2번 차량은 우리들로만 버텨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3, 4, 5번 차량은 골렘들이 지키고 있기에 웬만하면 뚫리지 않을 것이다.
개조된 차량은 좌석을 없애고 대신 높은 발판이 설치됐다.
전방에서 창문을 넘어오려는 적들만 저지하면 되는 상황.
등이 약점인 골렘들에게 이곳은 최적화된 전투 환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 사람들은 다르다.
각자의 강함이 균일하지 않고,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치고 피곤해한다.
‘이대로라면 아슬아슬하겠네.’
박 순경이 고민에 빠져있는데, 밖을 살피던 예은이 피식 웃었다.
“……뭐 재밌는 거라도 있습니까?”
“온 것 같아요.”
“?”
누가 왔다는 걸까.
박 순경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방패들 틈으로 밖을 살폈다.
처음엔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리자드맨 군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잠시 후.
뭔가 적 진영의 후열이 뭔가를 발견하고 소란스러워지는 게 보였다.
그들이 몸을 돌린 쪽은 다름 아닌 북쪽.
그곳엔 눈에 익은 단기필마, 아니.
‘단기필용’이라 불러야 할 존재가 산 둔덕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 대표님은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시는군요.”
박 순경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하자 예은이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서 싫은가요?”
“이런 오차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박 순경이 웃으며 방패 휘둘러 창문을 넘어오던 리자드맨을 후려쳤다.
그가 왔다면 이제 더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이제 버티는 쪽은 우리가 아닌, 놈들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