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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62화 (62/241)

62화. 지원 (3)

무전이 들리고 30분 후.

호진은 캠프 내외에 있는 모든 인원을 집합시키고 회의를 열었다.

대부분의 인원은 공터에서 대기하고 특정 세력의 대표나 호진의 측근들만이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를 주최한 호진과 예은은 물론, 헌터들의 대표로 박 순경, 시민 대표로 춘필, 공방 대표로 수현과 스미스까지.

밤새 훈련하던 용재도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꾸벅 졸고 있었다.

다만 호연만은 언제나처럼 참석하지 않았다.

모인 이들은 무슨 상황인지 궁금한 듯 서로 눈빛을 교환했지만 성과가 없었기에, 다들 호진에게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정작 호진은 지도만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고, 막사 안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그때.

누군가 적막을 깨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스륵

“미안하군. 늦었다.”

감시단 대표 도훈을 마지막으로 참석 인원 전부가 모였다.

도훈은 평소같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들어와 빈자리에 앉았다.

빈자리가 채워진 것을 확인한 호진은 이내 꾹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모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지만 급하게 전달할 사안이 있습니다.”

“네.”

박 순경이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이들도 잇따라 대답했다.

“방금 무전이 하나 들어왔고, 이에 따라 드론과 정찰대를 운용해 알아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호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곤 이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걸 먼저 들으시겠습니까?”

호진의 질문에 사람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하지만 이내 춘필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 나쁜 소식이라 하면?”

“음, 그럼 나쁜 소식 먼저 말하겠습니다.”

“어? 아니, 그게.”

춘필은 나쁜 소식을 먼저 말해달라는 게 아니었는지 말을 더듬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호진은 계속 말했다.

“나쁜 소식은 강화대교 캠프의 군부대가 리자드맨 세력에게 포위당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적진 한복판에 고립이 됐죠.”

“……미친.”

박 순경이 흔치 않게 욕설을 내뱉고, 다른 이들도 침음을 흘리며 머리를 짚었다.

“그럼 좋은 소식은 뭔가요?”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듯, 박 순경이 되묻자 호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군부대가 고립됐다는 것입니다.”

“……잘못 말하신 것 같은데요?”

호진이 대답을 이어나가려던 그 순간, 눈을 감고 있던 용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맞아.”

용재는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들을 받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리자드맨들이 군부대를 ‘포위’했잖아. 여태 놈들은 포위 같은 걸 한 적이 없어. 그만큼 그대로 맞붙었다간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긴 거지. 그 말은 지금 그곳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일 거고. 그러면 지금 놈들의 본진은 어떨까?”

“…….”

순간 좌중에 침묵이 맴돌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임에도 호진은 참지 못하고 용재에게 물었다.

“너, 어디 아파?”

“사람 물로 보지, 하암, 말라…… 니까.”

대답한 용재가 하품을 하곤 다시 꾸벅거리며 졸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훈이 놀랐다는 표정으로 용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가끔 똑똑하긴 하군.”

“……말했잖아요. 가끔은 괜찮다니까요.”

정작 호진도 용재를 아리송하게 바라보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이내 헛기침을 하곤 말을 이었다.

“잠시 말이 다른 길로 샜지만, 용재 말이 맞습니다. 리자드맨들의 요새는 지금 텅 빈 상태죠. 본진을 칠 거라면 지금만 한 기회가 없습니다.”

호진의 말을 듣고 눈치를 살피던 춘필이 손을 들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건 어떤가?”

“그건 안 됩니다. 놔뒀다가는 걷잡을 수 없이 격차가 벌어질 거예요. 지금도 아슬아슬하고.”

즉, 이번이 놈들을 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거다.

호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선택지는 두 개뿐입니다. 군을 포위에서 구출하고 함께 싸울 것인가, 아니면 본진을 쳐서 적을 와해시킬 것인가.”

“군을 구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박 순경의 질문에 호진은 뜸을 들이다 답했다.

“리자드맨들의 주병력을 뚫고 군을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먼저죠.”

예은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호진은 한 번 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거 하나는 명확하게 해야겠군요. 만약 이번 계획이 실패한다면…… 우리에게 다음은 없습니다.”

“……설마.”

박 순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호진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마지막 기회입니다.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우리와 리자드맨. 둘 중 한 세력은 지도에서 사라질 겁니다.”

“…….”

아까와 달리 입을 다무는 일행들.

지원 없이 군대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거다.

하지만 군도 감당하지 못하는 적을 상대로, 이 정도 인원이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실패 시 결과가 너무 끔찍했다.

회의실에는 깊은 적막만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졸기만 하던 용재가 의자를 빼며 몸을 일으킨 것이다.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다고. 구하러 갑시다.”

“너무 성급하게는 하지 말고…….”

춘필이 만류하려던 그때.

─쿵

용재가 들고 있던 도끼 자루를 바닥에 찍었다.

춘필은 꺼내려던 말도 잊은 채 그래도 굳어버렸다.

“구출도 포위가 더 굳어지기 전에 해야 하고, 적진을 털어도 방비가 없는 지금 해야지. 망설일 시간 없어요.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좌중과 눈을 맞추며 입을 여는 용재.

“다들 처음에는 구하러 가자면서요. 이것저것 조건 듣기 전에 가슴이 시키는 쪽으로 정합시다.”

용재는 도끼를 쥐지 않은 손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내 서로 바라보다가 씨익 웃음을 지었다.

“찬성입니다.”

“괜찮군.”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을 짓던 용재가 호진에게 말을 건넸다.

“형도 짓궂기는. 이미 구하는 쪽으로 결정했으면서.”

“……아닌데.”

호진은 찔끔하며 대답했다.

‘예리한 놈.’

그는 다른 이들의 구하러 가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속내는 반대였다.

호진은 그저 그들에게 이번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고 싶었을 뿐, 누구보다 군인들을 구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만약 캠프의 인원들이 본진을 치자고 했으면 호진은 그것 또한 동의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름 모를 군인들보다는 캠프의 인원들이 더 소중했으니까.

“또, 또 거짓말.”

용재는 막사를 나서며 말했다.

“계획은 짜서 알려줘. 난 형이 시킨다면 적진 한복판에라도 뛰어들 테니.”

호진은 멋지게 도끼를 등에 걸치는 용재를 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확인. 바로 적진 한복판에 돌격시켜줄게.”

“……에이, 농담이지?”

“한다며.”

“아! 또 내가 멋진 척하는 꼴을 못 봐!”

“그러게 누가 멋진 척을 하래. 그래서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살려주십쇼.”

“넌 멋있긴 글렀다. 빨리 들어와 인마.”

“넵.”

둘을 지켜보던 일행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리고 진짜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호진이 운을 띄우자 다들 기대 반, 불안 반의 표정으로 쳐다봤다.

“또 이래 놓고 안 좋은 얘기기만 해봐.”

“이번에는 진짜 좋은 소식이야. 공방에서 예전부터 준비 중이던 그게 완성됐답니다.”

“그거라면 설마…… 장갑차?”

공방 이야기에 용재를 포함한 성인 남성들의 눈이 반짝였다.

“맞아. 별것도 아닌데 재료 수급 때문에 지금 완료됐대.”

“……언제부터 장갑차 만드는 게 별것도 아니었지.”

다들 어이없어하던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침 왔나 보네요. 보러 가시죠.”

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움직이는 사람들.

막사의 천막을 들춘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멈춰 섰다.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며 피식 웃은 호진이 말했다.

“이번 출진은 이 녀석들과 함께합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

─투두둑

소나기가 김정연 대령의 머리를 적셨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분명 처음에는 압도적이었다.

전차 3대와 공격헬기 1대.

1천이 넘는 보병까지.

북쪽에서부터 시작한 소탕은 아주 수월하게 진행됐다.

상대는 기껏해야 구시대적 무기를 들고 있는 도마뱀들.

강력한 현대군에게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분명 그랬어야 할 터인데.’

언제부터인가 분위기가 변했다.

시작은 은신 능력을 지닌 도마뱀들이었다.

카멜레온을 닮은 녀석들은 벽, 나무, 논바닥을 가리지 않고 정말 감쪽같이 몸을 숨기고는 보병들을 향해 독침을 쏘아댔다.

소리도 없이 날아온 독침에 맞은 병사들은 그대로 쓰러져 거품을 물었다.

더 끔찍한 것은 독침에 맞은 병사들이 죽지 않고, 그대로 전신마비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들을 차량에 싣고 후방으로 이송했지만, 그 수가 늘어나고 기지까지의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병사들이 들것으로 같이 이동해야 했다.

순식간에 진군 속도는 줄어들었고, 사기 또한 떨어졌다.

적외선 장치를 사용해도 체온이 낮은 건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독침이 날아든 곳을 향해 총을 퍼부어도 죽는 녀석들은 극히 소수.

병들의 신경이 곤두서고 두려움이 팽배해진 그때, 놈들의 유격대가 게릴라전에 합류했다.

공룡 같은 것을 탄 리자드맨들이 숲이나 가파른 길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분명 경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론 나타날 수 없는 산이나 벼랑 위에서 덮쳐오니 대비를 하기 어려웠다.

한번 접근을 허용하면 녀석들은 마치 산화하듯 죽을 때까지 무기를 휘둘렀다.

가까이에서 동료의 내장과 피를 뒤집어쓴 병사들은 쉽게 패닉에 빠졌다.

곧장 대응 사격을 해도, 몇 번 맞추는 것으로는 죽지도 않았고, 오히려 흥분하고 패닉에 빠진 아군끼리 쏜 총에 맞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게릴라전이 몇 번이나 반복되고, 마침내 그 사건이 벌어졌다.

길이 좁아 겨우 전차 한 대가 지나갈 법한 가도.

전차들이 그곳으로 진입했을 때, 대대적인 습격이 일어났다.

찔금찔금 찔러오던 기습과는 달리, 많은 수의 인원이 사방에서 공격해왔다.

전차들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던 그 순간.

철갑을 둘러싼 거대한 공룡 다섯 마리가 전차를 향해 돌진했다.

전차와 보병들이 화력을 집중한 덕에 선두에 선 세 마리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끝내 두 마리는 전차까지 도달해 전차를 들이받았다.

허무하게 뒤집어진 전차는 비탈길로 굴러떨어졌다.

이후 습격해온 적들은 모두 전멸시켰으나, 전차를 소실한 군대는 그대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물러난 곳이 이곳.

안양대학교 강화 캠퍼스였다.

“충성.”

“아, 잘 잤나?”

한숨을 쉬던 김 대령 옆으로 주 대위가 경례하고는 다가와 섰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주 대위의 말에 김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기엔 우습겠어.”

그 많던 전력은 어느새 반 토막이 났다.

믿을 건 이제 전투용 헬기뿐이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도마뱀 따위가 아닌, 제대로 된 군대였다.

오히려 오합지졸이었던 것은 적이 아닌 자신들이었다.

“후우.”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온 한숨에 김이 서렸다.

날씨가 제법 추웠다.

아침이 되었음에도 해가 뜨지 않으니, 기온이 오르지 않았다.

비에 젖은 병사들 역시 추위에 떨고 있을 터였다.

“죽게 생겼는데 웃기나 하는 미친놈은 아닙니다.”

주 대위의 담담한 대답에 김 대령은 피식 웃음을 흘리곤 재차 질문했다.

“자네라면 이제 어떡하겠나?”

방금까지 다른 간부들과 실컷 방법을 의논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김 대령은 이제 자신과 다른 간부들의 판단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질문을 들은 주 대위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망설이던 태도와 달리, 그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호했다.

“……저라면 시간을 끌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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