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지원 (2)
‘이게 되네.’
하야를 탄 호진은 머리 위의 헬리콥터를 놓치지 않고 뒤따랐다.
헬리콥터가 캠프에 도착함과 동시에 캠프에 도착한 호진.
늦지 않았다.
캠프에는 나팔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졌다.
적을 의미하는 경고음이다.
캠프의 문을 열어달라고 할 시간도 없었기에, 호진은 재빨리 벽을 뛰어넘었다.
하야를 딛고 뛰어오르자 아슬아슬하게 철조망을 넘어 벽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훌륭하네.’
캠프의 사람들을 지켜보던 호진은 옅게 웃었다.
평범한 피난민들이었다면 군용 헬기를 본 순간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었겠지만, 이들은 달랐다.
호진이 평소에 괴물뿐만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경고도 꾸준히 해온 덕에, 사람들은 통일된 움직임으로 빠르게 대응했다.
일반인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골렘을 비롯한 방비 전력만이 남아 헬기를 주시했다.
캠프를 훑듯이 이동한 헬기는 이윽고 줄에 매달고 온 거대한 상자를 천천히 내렸다.
캠프 내 공터에 거대한 나무상자 하나가 내려앉았다.
상자에는 ‘구호 물품’이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물건을 내려놓은 헬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곧바로 뒤돌아 날아가기 시작했다.
헬기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판단한 호진은 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이미 용재를 포함한 캠프를 지키던 몇몇 사람들이 모여 들어있었다.
“갑자기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자를 바라보는 용재.
“그러게. 뭐지?”
“으악, 깜짝이야.”
뒤에서 스윽 등장한 호진 탓에 용재가 펄쩍 뛰어올랐다.
“뭐야, 어, 언제 왔어?”
“방금 왔지.”
“문 안 열렸는데?”
“뛰어넘었어.”
“……그게 돼?”
“되니까 여기 있지. 아무튼 비켜봐.”
휘휘 손을 저어 용재를 치운 호진은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상자에 붙어있는 서류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호진은 봉투를 뜯고, 나온 종이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그러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래?”
용재가 다가와 묻자 호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강화대교 캠프야. 작전은 받아들일 수 없다네.”
종이에 쓰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첫째, 제안해준 연합작전은 비현실적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
둘째, 구호 물품을 보내줄 테니, 기다려라. 그러면 조만간 구출해주겠다.
셋째, 대한민국의 법을 최대한 준수하고, 군의 통제에 따라 달라.
넷째. 자기방어 이상의 자력구제는 삼가 달라. 경중에 따라서는 구조 후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미친놈들이, 돕겠다고 해도 지랄이네.”
이야기를 전해들은 용재가 인상을 찡그렸다.
호진은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아쉽게 됐네.”
사실 말 자체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틀린 것이 없었다.
게이트가 생기기 전의 세상이었다면.
군이 이렇게 나오면 호진도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다못해 협상 자리를 열어주거나, 사람이라도 보내줬다면 모를까.
군대는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게다가 종이에 적힌 글은 묘하게 캠프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캠프의 리더인 호진을 경계하는 것이리라.
허튼짓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겠지.
“어떻게 할 거야?”
용재가 짜증스럽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묻자, 호진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응?”
“애초에 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작전이었어. 도움을 거절한다면 우리가 해줄 건 없지.”
호진의 모습을 지켜보던 용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형, 설마 삐졌어?”
“아닌데?”
“……근데 그건 왜?”
용재의 손끝을 따라 가보니, 자신의 손에 쥐어진 종이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우지직
잠시 종이를 내려다보던 호진은 종이를 바닥에 휙 하니 던졌다.
글에 담긴 고압적인 태도와, 명령조의 통보.
그리고 묘한 적의까지.
작전에 대한 거절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솔직히 열 받았다.
‘일부러 작전도 우리가 더 위험을 감수하게 짜 놨는데.’
혹시 군이 협력을 거절할까 봐, 피해는 대부분 캠프가 감수하는 방향으로 제시했다.
호진은 피해를 입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들의 아예 마니산 캠프의 무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군과의 연합작전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때 나팔이 길게 한 번 울리며 캠프의 문이 열리고, 감시단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보며 호진이 말했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다시 훈련하러 가시죠.”
“……감시단은 상관없다만, 헌터들은 힘들지 않겠나?”
도훈이 으쓱하며 열린 문 너머를 가리키자,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먼지를 일으켜가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차피 훈련 강도를 높일 생각이었습니다. 아직도 저희가 멀었다는 걸 방금 느꼈거든요.”
“……알았다.”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훈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캠프를 나서는 호진의 눈에는 묘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재만이 허허 웃었다.
“오늘부터 쉬기는 글렀구만.”
고개를 저은 용재는 도끼를 다시 어깨에 짊어지며 고개를 저었다.
호진은 말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다.
……말이 통한다면 말이다.
‘필요하다면 실력으로 증명해야겠지.’
말이 안 통하는 이에겐 직접 느끼게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알지 못했기에.
조만간 군은 호진과 마니산 캠프의 실력을 두 눈으로 목격할 것이다.
‘물론 그걸 위해선 오늘부터 헌터들과 감시단이 굴러야 하겠지만.’
용재는 자신에게 불똥이 안 튀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용히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
“그래, 어떻든가?”
김 대령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1중대 중대장에게 물었다.
질문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던 중대장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음? 어떤 걸 모르겠다는 거지?”
김 대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대장은 객관안이 뛰어난 인물이다.
해서 일부러 정찰을 시킬 겸, 마니산 캠프에 구호물자와 연락을 전하고 오게 한 것이었다.
한데 그런 인물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고민하던 중대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대장님은 호수에서 헤엄치는 잉어를 보신 적 있습니까?”
“있지. 제법 많이 봤네만.”
“그럼 그 잉어가 연대장님을 공격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있으십니까?”
“……없네.”
김 대령은 두서없는 중대장의 이야기에 미간을 모았다.
그 모습을 본 중대장은 흠칫 놀라며 빠르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죄송합니다. 그…… 우선 캠프의 규모는 전해 들었던 것보다는 컸습니다. 어림잡아도 250명 정도입니다.”
“괜찮네, 천천히 말하게.”
김 대령이 금세 다시 미소 지으며 대답하자, 한결 마음을 놓은 중대장.
“감사합니다. 대부분은 무장을 하지 않았고, 창이나 칼로 무장한 것은 몇몇뿐이었습니다.”
“전해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르군. 그 골렘이라는 것은 있던가?”
주 대위의 말에 따르면 골렘이라는 것을 포함해 50명이 넘는다고 했다.
김 대령이 질문에 중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닮은 석상 같은 것들이 꽤 보이긴 했습니다. 움직이진 않았지만요.”
“그런가? 흠, 자네가 보기에 전력은 어떻던가?”
“한 개 소대, 아니 분대만 움직여도 제압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렇군, 수고했네.”
대답을 들은 김 대령은 편안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골렘이라는 것도 그저 주 대위의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걱정이 과했군.’
김 대령은 마니산 캠프라는 곳을 이끄는 호진이라는 인물이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캠프의 전력을 낮게 분석한 중대장의 보고를 듣자 마음이 놓인 것이었다.
중대장이 경례를 하고 나가려는 그때.
김 대령은 처음 중대장의 대답이 문뜩 궁금해졌다.
“아, 아까 전의 잉어 얘기는 대체 뭐였나?”
“아. 그건…….”
잠시 머뭇거리던 중대장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한 남자를 봤습니다. 분명 처음엔 없었는데 캠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쯤 보니 저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음, 그래서?”
“……그게 전부였습니다.”
김 대령은 중대장이 말장난을 하는 건가 싶어 미간을 찡그렸다.
한마디 하려는 순간, 중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데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남자가 저를 공격할 것처럼.”
“상대가 RPG라도 들고 있었나?”
“아뇨, 그가 든 건 검 한 자루뿐이었습니다.”
“…….”
“저도 터무니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감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수고했네. 그만 돌아가 보게.”
김 대령의 말에 중대장은 경례 후 집무실을 나갔다.
잠시 고민하던 김 대령은 머리를 내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과민반응이다.
김 대령은 마지막에 들은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는 이내 도마뱀들 소탕 작전을 마저 계획하기 시작했다.
***
숨을 깊게 들이켰다 천천히 뱉어낸 호진은 검을 위에서 아래로 그어 내렸다.
하지만 그 속도는 느릿하기 짝이 없었다.
머리 위에서 허리까지 사선으로 베는 동작에 수 분이 소요됐다.
멈춘 검 끝을 다시 천천히 돌려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머릿속에 정립된 기술들을 천천히 따라 하는 것.
이를 통해 호진은 동작의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미숙한 부분은 없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상태창에서는 안 보이지만, 분명 강해지고 있어.’
호진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한번 검을 사선으로 베었다.
─서걱
부드럽게 그어 내린 검에 두툼한 나무가 스륵 베여 넘어갔다.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호진이 레벨 30에 정체한 지도 이 주가 넘었다.
이 근처에 몬스터의 씨가 마른 탓이었다.
그렇다고 군의 명령을 거부하고 리자드맨과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군의 명령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가만히 있는 리자드맨 세력을 적으로 돌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진의 초조함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게이트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성장을 반복해온 호진에게 기약 없는 정체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때 무전기와 주변 감시 카메라를 관리하는 막사에서 이예은이 튀어나와 두리번거리다 호진과 눈을 마주쳤다.
“아!”
놀란 듯 안심한 예은은 호진에게 손짓하며 소리쳤다.
“긴급 상황이에요.”
주변의 감시와 정찰을 책임지고 있는 예은이 이 정도까지 급하게 호진을 찾은 적은 없었다.
호진은 순식간에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뒤이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온 예은은 지지직거리는 무전기 앞으로 다가가 소리를 키웠다.
그러자 무전기에서 끊기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지지직…… 는…… 됐다. 구…… 한다.]
‘뭐라는 거지.’
호진이 재차 소리에 귀 기울이자 아까보단 선명한 무전음이 들려왔다.
[지직…… 리는 30연대…… 강화대교 캠프. ……지지직 ……립됐다. 구조를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