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지원 (1)
“이와 같은 방법이면 분명 힘을 들이지 않고 적군을 박멸할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주 대위는 책상에 놓인 생수를 들어 목을 적셨다.
시원했다.
방금 냉장고에서 꺼내 온 듯한 기분 좋은 청량감이 몸에 퍼졌다.
그러고 보니 도착해서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시간 전.
주 대위는 군인들과 함께 강화도 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
캠프를 담당 중인 연대장은 우선 휴식을 권유했으나, 주 대위는 그것을 거절하고 간부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보고를 핑계로 대긴 했지만, 진짜 목표는 마니산 캠프와의 연합작전에 대한 설명이었다.
호진과 함께 짠 계획은 빠르게 하면 빠르게 할수록 성공확률이 높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리자드맨들은 세를 불리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간부들이 모이고, 30분이 넘도록 열변을 토한 주 대위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
대위부터 대령인 연대장까지.
10명이 넘게 모인 지휘 막사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때, 연대장이 인자하게 웃음 지으며 입을 뗐다.
“그래, 우리 주 대위가 고생이 많았구만.”
“아닙니다.”
“아냐, 아냐. 피곤할 텐데 이렇게 바로 보고까지 하고. 이게 진짜 군인이지. 안 그런가?”
연대장이 좌중을 훑어보며 묻자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주 대위가 또 성실하기로 부대에서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정말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반응을 묵묵히 듣던 주 대위는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연대장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제 들어가서 좀 쉬게.”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계획에 대한 답변을 못 들었습니다.”
잠시 멈칫한 주 대위가 대답하자 좌중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언제 칭찬했냐는 듯 표정을 굳히는 간부들.
오로지 연대장만이 인자한 표정을 유지한 채 주 대위의 물음에 답했다.
“음, 마니산 캠프라. 그곳에 군인이 몇 명이라 했지?”
“……정규군은 없습니다.”
“그랬군. 내가 잘못 기억한 게 아니었어. 그런데 그들과 뭘 하자고?”
“연합작전입니다.”
주 대위는 답변은 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탱이.’
30연대 연대장 김정연 대령.
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늘 이런 화법을 즐겨 썼다.
김정연 대령은 고개를 희끗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정규군이 아니라면 민간인인데, 민간인들은 구출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닌가?”
“민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헌터입니다.”
“아, 헌터. 잘 알지. 우리 부대에도 정부에서 보내준 헌터 부대가 있네.”
“그렇습니까?”
대화가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김 대령을 바라봤으나, 보는 순간 깨달았다.
여전히 미소는 짓고 있었으나, 헌터를 떠올린 그의 표정에는 하찮음이 깃들어있었다.
“도끼 따위를 들고 다니더군. 지금은 진지 보수를 열심히 돕는 중이지.”
“…….”
“주 대위. 헌터라는 작자들은 전력이 아니네. 그들은 시한폭탄들이야. 멋대로 자력구제를 일삼는, 법치에서 벗어난 이들이지. 그런 그들을 법으로 묶기 위해 만든 게 헌터라는 제도고.”
고개를 저은 김 대령은 말을 이었다.
“백 중령의 일은 안타깝게 됐네.”
“아닙니다.”
“아냐, 그도 좋은 군인이었지. 한데. 지금 들은 대로라면 고작 괴물들에게 캠프가 뚫리고 수천의 인명피해를 냈단 말이지.”
“……그건!”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주 대위는 백 중령을 모욕하는 언사에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다른 간부들이 탁자를 쾅 치며 일어섰다.
“자리에 앉아, 이 새끼야!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그만, 그만.”
그런 그들은 제지한 김 대령은 여전히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그린 채 말했다.
“그 일은 묻어둘 걸세. 소식이 퍼진다면 캠프 내에 분위기도 안 좋아질 테니. 그리고 자네 말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네.”
“……?”
주 대위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김 대령이 말을 이었다.
“놈들은 ‘적군’이 아니네. 고작해야 몬스터야. 날붙이나 들고 다니는 원시적인 도마뱀들이지.”
“그렇게 보실 수도 있지만…….”
반박하려던 순간, 김 대령의 눈이 살짝 반개했다.
동시에 그에게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일변했다.
그 단단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친 주 대위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삼켰다.
“몬스터들에게 패배를 겪은 자네의 입장에서야 그들이 대단해야 할 이유는 너무 많겠지.”
김 대령의 바뀐 분위기에는 다른 간부들조차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의 변명은 충분히 들었네만, 더 할 말이 있나?”
“……없습니다.”
“그래, 그들도 우리가 구해야 할 시민들임은 틀림없지. 조만간 그쪽으로 연락을 보내 놓을 테니, 정확한 위치나 지도에 표시해놓고 나가게.”
─척
경례를 한 주 대위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갔다.
“저놈이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다른 간부가 몸을 일으키자 김 대령이 그를 제지했다.
“아아, 됐네.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대령님도 정말 너무 정이 많으셔서 탈입니다.”
“허허.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군.”
김 대령은 예의 인자한 표정으로 돌아와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주 대위의 말은 허황된 부분투성이었다.
‘사람이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고 바위와 철을 가른다, 라.’
꼭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 설명 같아서, 평소에 짓는 거짓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을 구출해준 시민에게 감명이 깊었던 듯했다.
그래도 하나 주 대위의 보고 중 공감되는 것은 동쪽에 위치한 도마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그 규모나 세가 점점 커지는 게 거슬리던 참이었기에, 한번 정리할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조만간 기갑여단에서 지원을 받기로 한 상황.
서둘러 놈들을 정리하고 주 대위가 말한 민간인들을 구출하면 끝이었다.
그렇지만 회의를 끝마친 김 대령은 자꾸 주 대위가 열변하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건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는 이의 눈빛도, 겁먹은 자의 눈빛도 아니었다.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하던 대령은 무릎을 탁 쳤다.
“그래, 거기서 봤지.”
교주를 신으로 모시는 사이비 종교.
예전에 그 종교를 포교하던 한 사이비 신도의 눈빛이 딱 그랬다.
‘군인이라는 작자가, 사이비 종교에 단단히 홀렸군. 마니산 캠프의 호진……이라고 했던가?’
대령은 캠프 대표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러곤 왠지 불안한 마음에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지도에 표시된 캠프를 바라봤다.
최대한 빠르게 캠프의 생존자들을 구출해야겠다고 다짐하며.
***
“격발.”
“격발!”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표적을 산산이 부숴버린 감시단.
그러곤 곧장 몸을 돌려 물러나며 빠르게 재장전하며 대열을 갖춘다.
감시단이 창설되고 일주가 흘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제법 그럭저럭 쓸 만해진 듯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헌터 1팀의 팀장 기서가 감탄을 흘렸다.
“와아. 굉장한데요.”
그러자 옆에서 같이 훈련을 하던 주호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저게 뭐가 굉장해요. 다 무기빨이지.”
“맞아요, 저건 본인이 강한 게 아니잖아요.”
옆에서 다른 1팀 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예상대로네.’
그들을 바라보던 호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감시단의 존재를 알린 이후, 헌터들 사이에서는 경쟁의식이 피어올랐다.
캠프 내 최강의 무력 집단이 누구냐는 주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주호 같이 어린 친구들의 경우, 이런 화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했다.
“흠, 어쨌든 강하다는 게 중요하죠. 저들도 우리와 같은 편이니 든든하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만…….”
기서가 팀원들을 달래듯 말하자, 주호가 어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 방패를 다잡으며 소리쳤다.
“저희도 빨리 훈련하죠.”
“네, 그럴까요?”
주호 옆으로 기서가 다가오자, 다른 헌터들도 쉬던 몸을 일으켜 위치를 잡았다.
“앞에 방패, 앞으로 3보 이동!”
“3보 이동! 하나, 둘, 셋. 하나!”
─척 척 척
헌터들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찔러!”
그러곤 한 손으로 기다란 단창을 휘둘러 목표를 타격했다.
이전과는 달리 전열도 단창을 다루며 전술을 폭을 높인 헌터들.
후열에서는 전열보다 긴 장창을 양손으로 잡고 마찬가지로 목표를 타격한다.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와 유사한 형태다.
‘아니지, 직업이나 스쿠툼(Scutum) 같은 방패도 그렇고. 투창도 하니 로마의 레기온에 가까운가?’
어찌됐든 헌터들의 인원이 더 늘어나면 정말 군대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동쪽의 백랑의 세력을 흡수한 지도 일주일째.
서쪽과 남쪽의 몬스터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캠프는 구조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캠프는 거의 3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거주 중으로, 사실상 이 일대의 생존자는 모두 모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헌터들도 50명을 넘겼다.
물론 아직 1차 전직도 하지 못한 이들이 40명이 넘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캠프는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었으니.
호진은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며 검 자루를 세게 틀어쥐었다.
‘성장이 멈췄어.’
일주일 전 전투에서 레벨 30을 찍은 이후, 성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레벨은 아예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다행히 내성 스킬들은 계속 성장했지만, 그 외의 추가적인 스킬을 얻지도 못했다.
‘아니, 요즘 너무 초조해하는 것 같아.’
호진은 고개를 젓고는 입술을 지그시 짓씹었다.
어제는 자연치유조차 레벨 9에서 더 오르지 않자,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살을 도려내 볼까, 하는.
초조함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인간의 육체를 벗어난 몸뚱어리 때문인지.
점점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 어려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살을 도려내 볼 생각을 한 건 명백히 접근이 잘못됐다.
너무 극단적이고 위험한 생각이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분명, 돌파구는 멀리 있지 않을 터.
호진이 호흡을 편하게 하던 그때, 저 멀리서 이질적인 소음이 들렸다.
점점 다가오는 소음에 훈련을 진행하던 다른 이들도 하나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투투투투투투투
공중 저 멀리 하나의 점이 점점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헬리콥터?”
누군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헬리콥터는 그들을 못 봤는지 빠르게 지나쳐 지나갔다.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방향은 명백히 캠프.
호진이 하야를 불러내 올라타며 소리쳤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들 따라오세요.”
““넵!””
모두가 우렁차게 대답했지만, 하야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감시단 전속력으로.”
도훈의 명령에 감시단도 재빨리 늑대들에 올라타더니 바람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기서도 한숨을 내쉰 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는 부럽네……. 우리도 뒤쫓아 갑니다. 뛰세요.”
그렇게 모두가 캠프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