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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59화 (59/241)

59화. 감시단 (5)

청랑은 똥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그뿐.

더 이상의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자신의 눈을 빼앗기고도 전황을 파악해 후퇴했던 녀석다웠다.

감정 컨트롤과 상황 판단은 인간보다도 뛰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자존심이 상한 걸까.

표정을 구긴 녀석은 반응이 없었다.

호진이 슬쩍 검 자루를 쥐자 그제야 녀석은 황급히 표정을 펴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끼잉.”

‘허, 참.’

어떻게 백랑 같이 고고한 녀석 밑에 이렇게 여우 같은 녀석이 있었을까.

호진은 피식 웃으며 손에 힘을 뺐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부탁 들어줘서 고맙다. 그냥 들어달라는 건 아니야.”

호진이 뒤를 돌아보며 눈짓하자, 따라왔던 사냥꾼들이 트럭에 싣고 왔던 소들을 끌고 나왔다.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먹으면서 이야기해 보지.”

호진의 말에 청랑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늑대들도 와서 먹으라고 해.”

오는 길에 이미 숨통을 끊어놓은 소들을 늑대들 앞에 두고, 호진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곤 버너와 철판을 꺼내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청랑은 경계하듯 가만히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호진과 사냥꾼들은 고기를 익히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잠시 후 고기가 모두 익자 호진이 한 점을 집어 소금에 톡톡 찍은 후, 후후 불어 입에 넣었다.

적당한 기름기와 육향이 입안을 가득 퍼졌다.

호진을 시작으로 사냥꾼들이 너도나도 고기를 집어 들고 각자 원하는 양념을 찍어 입에 고기를 집어넣었다.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청랑은 가득 고인 침을 목울대로 꿀꺽 삼켰다.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와 뚝뚝 떨어지는 고기 기름을 보고 있자니 침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청랑은 눈앞에 놓인 고기를 한가득 베어 물었다.

순간 청랑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부드러운 육질이 마치 마법처럼 입에서 녹아내렸다.

청랑은 재차 고기를 물어뜯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맛이다.

쫄깃한 식감의 고기는 씹을수록 강렬한 육향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그러면서도 비리거나 쿰쿰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청랑은 이제 고개를 처박고 고기를 뜯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다른 늑대들도 다가와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맛본 녀석들의 눈은 동그래지더니 이내 청랑과 같이 고개도 들지 않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사냥꾼과 호진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고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은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고, 늑대도 사냥꾼들도 식사를 이어갔다.

식구(食口)라는 단어는 ‘가족’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것이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경계를 허물고 관계를 진전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정신을 차린 청랑이 호진에게 다가왔다.

“맛있게 먹었어?”

호진의 물음에 청랑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진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입에 묻은 피나 좀 닦고 그런 표정을 짓지 그래.”

“…….”

그 말을 들은 청랑은 급히 머리를 좌우로 부르르 털었다.

“맛있게 먹은 듯해서 다행이네. 우리 인간들에게도 귀한 거야.”

“컹.”

정말 맛있었던 걸까.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지, 청랑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이제 다시 일 얘기를 해봐야지.”

잠시 말을 멈춘 호진은 청랑과 눈을 마주쳤다.

청랑은 철저한 손익을 따지는 계산가다.

지금은 살기 위해서 호진의 옆에 붙어 있지만, 언제까지고 그러진 않을 거다.

숨기려 해도 호진의 눈에는 녀석의 눈에 담긴 적의가 오롯이 보였으니까.

애초에 한쪽 눈과 부하 수백의 목숨을 앗아간 자신에게 적의가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렇다고 청랑은 굳이 피를 보며 호진과 적대하지도 않을 거다.

녀석은 복수에 목을 매는 스타일도 아니니, 적당히 활로만 있다면 바람처럼 떠날 것이다.

“너도 우리와 함께 죽을 때까지 싸우고 싶진 않겠지.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까 해.”

이야기를 듣던 청랑의 눈이 흥미를 띄었다.

“크르릉.”

계속해보라는 듯 낮게 그르렁거리는 청랑.

이제껏 보여줬던 가식적인 모습과는 다른 차갑고 냉정한 계산가의 모습이다.

“제안은 간단해. 우리와 함께 10번만 함께 싸워줘. 그러면 자유롭게 놓아줄게. 원래 너를 따르던 늑대들도 함께.”

‘백랑도 나의 부탁이라면 아마 들어줄 테니까.’

잠시 고민하던 청랑도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 건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녀석에게는 전혀 나쁠 것이 없는 조건이기에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래도 너무 순순히 받아들이니 조건을 너무 낮게 불렀나, 후회가 됐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야.’

호진은 싱그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할게.”

청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는 그대로였지만, 이번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계약을 잘 맺어진 듯했다.

“그럼 바로 올려볼까.”

호진이 싱긋 웃으며 트럭에서 뭔가를 실어 내렸다.

청랑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을 태우려면 안장이랑 등자가 있어야지.”

청랑의 인상이 재차 잔뜩 구겨졌다.

***

“격발.”

청랑을 탄 도훈의 구령에 맞춰 19명의 사냥꾼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다음 순간.

─쾅!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사냥꾼들이 들고 선 핸드 캐논에서 불이 뿜어져 나가고, 사방에 분진이 휘몰아쳤다.

핸드 캐논을 격발한 사냥꾼들의 상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타고 있는 늑대들의 몸도 반동에 따라 옆으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그뿐, 넘어지거나 중심을 잃는 사냥꾼이나 늑대는 없었다.

“퇴각 후 재장전.”

““퇴각 후 재장전!””

격발 후 도훈의 구령에 사냥꾼들은 복창하며 재빨리 타고 있는 늑대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말과는 달리 입이 아닌 가슴께에 달린 고삐가 당겨지자 늑대들도 순순히 몸을 돌려 뒤로 뛰었다.

그와 동시에 사냥꾼들이 재장전을 했다.

“으악.”

“젠장.”

하지만 아직 흔들리는 늑대 위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듯했다.

화약을 넣고 삽탄을 하는 것은 일부.

대부분은 화약을 흘리거나 탄을 놓쳐 바닥에 떨어트렸다.

“아직은 갈 길이 머네.”

호진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입매는 길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분명 지금은 조준 실력도 엉망이고, 재장전도 느리며 실수가 잦다.

이래서는 실전에선 사용이 불가능할 터다.

그러나 그건 모두 숙련도를 높이면 모두 해결될 부분이다.

만약 그게 전부 해결된다면…….

최고의 화력과 기동성을 가진 유격대가 완성되는 거다.

“준비된 사수들 정렬.”

도훈의 낮은 목소리는 희한하게 귀에 쏙쏙 박혀 들었다.

이런 것도 군대 경험에서 우러나는 걸까.

아직 10명 정도는 장전을 헤매고 있을 때 도훈을 포함한 9명이 장전을 마치고 정렬했다.

만약 이들이 사냥꾼이나 군인, 둘 중 하나만 아니었어도 이렇게까지 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훈련을 반복한 사냥꾼들은 비틀거리며 늑대에서 내려왔다.

늑대들은 지쳤는지 혀를 빼 내밀며 열을 식혔고, 사냥꾼들도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땀을 훔쳤다.

도훈만이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친 뒤 호진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뭔가를 타는 경험은 처음이라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몇몇은 멀미를 하기도 하고.”

“그 몇 명은 적응이 어려울까요?”

호진의 질문에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익숙해지면 되는 문제다.”

“그건 다행이네요.”

호진이 안심한 듯 대답하자, 도훈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한동안 늑대들이랑 함께 생활하고자 한다.”

“여기서요?”

“늑대들만 괜찮다면.”

도훈이 끄덕이자 호진은 고개를 돌려 청랑을 찾아 물었다.

처음에는 와락 표정을 일그러트린 청랑은 합숙의 필요성과 숙련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마지못해 동의했다.

청랑도 아는 것이다.

훈련이 실전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무엇보다 인간들과 함께 싸우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아닌척했지만, 처음 도훈과 합을 맞춘 청랑은 몹시 흥분한 티가 났다.

핸드 캐논의 파괴력과 늑대들의 기동성이 합쳐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청랑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냥꾼들도 함께 훈련한 늑대들과 감정의 교류가 생겼는지, 대부분 늑대와 나란히 주저앉아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음, 늑대들 털이 기분 좋긴 하지.’

백랑의 털을 떠올린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던 중, 도훈이 다가와 섰다.

“고맙다.”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호진은 눈을 끔뻑였다.

“뭐가요?”

“덕분에 더 강해질 길이 보였다.”

“뭘요, 그보다 이거 리스크 엄청 큰 거는 알죠?”

만약 늑대가 죽거나 다치거나, 혹은 모종의 이유로 캠프를 떠난다면.

사냥꾼들은 기동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기동성이 사라진 핸드 캐논은 그냥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스탯도 이 전술에 맞춰서 찍은 후일 터.

돌이키기는 어려울 거다.

“알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뭐, 늑대들이 아니더라도 말이나 콜드 블러드 같은 대체 방안도 있긴 하죠.”

호진의 대답에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줬다는 거다.”

“별거 아닌데요. 뭘.”

“우리에겐 별거다.”

도훈이 고개를 숙이자 호진은 당황해 손사래를 쳤다.

“됐습니다. 고개 드세요.”

“손이 부족하다고 했지. 우리가 손이 되어주겠다.”

그 말에 잠시 멈칫하던 호진은 도훈에게 되물었다.

“……진심인가요?”

“진심이다.”

“그렇다면 거래를 할까요.”

호진이 싱긋 웃으며 도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훈이 날카롭게 뜬 눈을 반쯤 감으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여러분들의 탈영병이라는 오명을 지워드리겠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에게 말도 안 되는 임무를 맡겼던 녀석을 힘껏 걷어차게 해드리죠.”

호진이 마주 쥔 도훈의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군인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상사에게 불만이 없었을 리가 없었다.

“대신 여러분은 저를 진심으로 돕는 겁니다.”

협박으로 맺은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리가 없다.

물론 사냥꾼들에게 거주지도, 식량도 제공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할지는 알 수 없었다.

가장 확실한 관계를 맺는 방법은 공통의 목표를 지니고, 바라보는 것.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것이다.

도훈은 고개를 돌려 다른 사냥꾼들을 둘러봤다.

휴식을 취하던 사냥꾼들도 귀는 이쪽을 향해 열어놓고 있었기에, 그들은 모두 도훈과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 받아들이겠다.”

“좋습니다.”

호진은 싱그럽게 웃으며 마주 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은 제 명령으로만 움직이는 단체입니다. 이름은…….”

감시하는 자.

신의 이명을 떠올린 호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시단’이 좋겠군요.”

바야흐로, 최고의 화력과 기동성을 지닌 유격대, 감시단의 창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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