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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58화 (58/241)

58화. 감시단 (4)

“……제가 만드는 건 인형들이에요.”

“어?”

아이의 대답에 잠시 당황한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대답 대신 돌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척

나무 골렘, 아니.

소년이 조종하는 인형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거창(擧槍).”

아이의 부름에 나무 골렘들은 일순 창을 기울여 정면을 향했다.

20기도 안 되지만 그 기세가 형형했다.

단순히 골렘 제작을 돕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조종이 가능한 것을 보면…….

“너, 각성자구나.”

호진의 물음에 소년은 순순히 대답했다.

“……네. 인형술이라는 스킬이에요.”

“등급은?”

“유니크요.”

호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뭔 놈의 유니크가 이렇게 많나. 이놈도 저놈도 다 유니크다.

그럼 이 아이도 호연과 동급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까?

그때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내왔다.

“얘들도 데려가 주세요.”

“어딜?”

“어디든요. 괴물들과 싸우는 곳이라면.”

“……”

아이의 눈에서 짐승과도 같은 분노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거절할게, 힘든 일이 될 거야.”

“괜찮아요. 각오했으니까요.”

사실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아이는 이미 캠프의 웬만한 플레이어들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저 나무 인형들은 꼭두각시다.

소년이라는 지휘자가 조종하는 하나의 오케스트라라고 할까.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골렘들보다도 뛰어난 전투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인형술이라…… 딱 맞는 이름이군.’

실력은 충분하지만, 이런 아이에게 전장을 보여줘도 되는 걸까.

호진이 그런 고민에 빠져 있던 그때 소년이 재차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책임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어요. 거절하신다면 혼자라도 나갈 거라서.”

소년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는 듯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작금의 소년을 움직이는 동력은 오직 분노뿐일 것이다.

호진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알아서 해. 대신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네.”

고작 10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꼬마의 대답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너 이름은?”

“수현이에요. 김수현.”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수현의 아이 같지 않은 모습에 호진은 안심과 동시에 연민을 느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아이였을 텐데.’

호진은 씁쓸하게 웃으며 수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현은 움찔하며 물러났다.

마치 불에 덴 듯이.

“…….”

“미안. 습관이라.”

호진이 사과하자 수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혹시 무기 공방으로 안내해줄 수 있니?”

“이쪽이에요.”

수현이 몸을 돌려 앞장서자, 조용히 서 있던 용재와 도훈도 천천히 뒤따랐다.

그러던 중 도훈이 호진의 옆으로 다가와 스치듯 말했다.

“정말 손이 부족하긴 했나 보군.”

언제나 그렇듯 어조 없이 말했지만, 말에 가시가 있었다.

아이를 싸움터로 내모는 것이 불편한 거다.

호진은 오히려 그런 도훈의 말이 기꺼웠다.

도훈이 정상적인 윤리관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였으니까.

자신도 도훈과 같은 입장이었으면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호진은 캠프의 책임자다.

“필요하다면 여든 먹은 노인에게도 싸워달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자네랑은 여든까지 함께하면 안 되겠군.”

도훈도 그런 호진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으로 이야기를 받았다.

호진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자, 도훈도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때 뒤따라오던 용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니, 근데 호연이 형님이 말한 선물은 언제 나오는 거야?”

“…….”

“…….”

호진과 도훈이 동시에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용재를 바라봤다.

먼저 입을 연 건 도훈이었다.

“저 친구는 머리가…… 나쁜 건가?”

“조금요.”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가끔은 똑똑해요.”

“믿을 수 없군.”

도훈이 고개를 젓자, 용재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왜? 우리가 선물을 받았어? 그게 뭔데?”

도훈과 호진은 서로 눈을 마주친 후, 동시에 수현을 가리켰다.

그러자 용재는 탁, 하고 손뼉을 쳤다.

“아, 쟤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왜 난 몰랐지?”

잠시 정적이 흐르고, 도훈이 천천히 호진에게 되물었다.

“정말 가끔은 똑똑한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호진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언제나 그렇듯 부끄러움은 호진의 몫이었다.

***

“여기가 무기 공방입니다.”

수현을 따라 내려온 곳에는 아직 횅한 공간이 나타났다.

골렘 공방에 절반쯤 되는 크기의 무기 공방은 그마저도 일부분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호진은 수현에게 물었다.

“제작자나 관리자는 어디 있지?”

“……딱히 없어요.”

“……?”

호진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수현은 말을 이었다.

“무기는 이방인들에게 정보를 받아 호연 님이 만드시는 게 대부분이라…….”

“방치 상태라는 거네.”

‘이래서 기대하지 말라고 한 건가.’

그냥 걸어가던 호진은 무기가 진열된 벽으로 다가갔다.

거대한 낫.

추가 달린 쇠사슬.

전기톱 모양의 무언가.

무기라기보단 기괴한 농사 도구 같은 느낌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무기들을 훑어보며 눈을 끔벅이던 호진은 한 물건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건 바로 검은 광택이 흐르는 포.

“이건?”

호진의 물음에 수현이 대답했다.

“핸드 캐논이에요.”

“핸드 캐논?”

“전장은 675mm, 중량은 8kg, 포신은 30cm. 구경이 크고 길이가 짧아서 총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구조예요.”

호진이 슬쩍 무기를 들어 올렸다.

무게는 제법 묵직했다.

물론 호진이 사용하는 투 핸드 소드와 비교하면 가벼웠지만, 그럼에도 왜 대포라고 부르는지는 알 것 같은 묵직함이었다.

“성능은?”

“화력은 말도 안 되죠. 특히 괴물들에게 효과가 아주 좋아요.”

“괴물들에게도?”

호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

총과 대포가 괴물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건 다른 총기류와는 달라요. 이방인들이 알려준 기술들을 짜넣은 무기라 괴물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돼요. 하지만…….”

괴물에게 잘 통하는 화기라니, 말만 들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데 뭐가 문제인 걸까?

수현은 머뭇거리다 마저 말을 이었다.

“유효사거리가 끔찍하게 짧아요. 정확성도 그렇고요. 대포라고 부르기도 민망해요.”

“어느 정도 길래?”

“바로 코앞에서 쏴야 해요. 사실상 근접 무기죠.”

“……대포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긴 하네.”

“맞아요. 심지어 무겁고 장전에도 시간이 한세월. 총을 쓰는 플레이어는 없으니까 아무도 안 쓰겠죠.”

호진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화력이 대단하다고 했지. 어느 정도야?”

“장갑을 두른 콜드 블러드조차 고깃덩어리로 만들어요.”

“…….”

시체들로 실험해 본 결과, 장갑을 두른 콜드 블러드한테는 총도, 박격포도 먹히지 않는다.

유효타를 입힐 수 있는 건 호진뿐이었다.

‘그런 녀석을 곤죽으로 만들 수 있다면, 화력 하나는 확실하다는 건데…….’

잠시 고민하던 호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호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어쩌면 써먹어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도훈 씨. 이쪽으로.”

“뭐지.”

도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오자 호진은 들고 있던 핸드캐논을 넘겼다.

“이건?”

“한번 쏴 보시죠.”

“내가 말인가?”

호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도훈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공방의 한쪽에 놓인 실험실로 걸음을 옮겼다.

과녁이 10m 남짓 남았을 때 호진이 말했다.

“여기서 쏴보죠.”

“그러지.”

도훈이 자세를 잡으려던 그때 수현이 다급하게 말렸다.

“너무 멀어요. 아까 말한 코앞은 진짜 바로 앞이에요. 5m까지는 다가가야 해요.”

그런 수현의 만류에 호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지금이 좋아. 쏘는 방법이나 알려줘.”

“……못 맞추실 텐데, 일단은 알려드릴게요.”

수현은 마지못해 조작법을 알려줬다.

스미스가 잡고 쏴도 반동을 이기지 못해 5m가 넘어가면 과녁을 맞추지 못했다.

탄도 화약도 부족한데 이렇게 탄을 낭비하다니, 수현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작법을 들은 도훈은 자세를 잡고 준비를 시작했다.

화약 삽입, 삽탄, 캡슐 장착, 기압계 체크, 힌지 고정, 노리쇠 후퇴고정. 연동식 작동.

도훈은 장전에 적지 않은 시간을 사용했지만, 직접 장전을 해봤던 수현은 조금 놀랐다.

‘빠르네, 뭐 하는 사람이지.’

재작을 도우며 무기가 손에 익은 수현조차 1분 남짓 걸리는 장전을 도훈은 1분 안에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도훈은 핸드 캐논을 들어 올려 과녁을 겨냥했다.

─틱 틱 틱 틱

기압계가 차올라 초침이 끝까지 차오른 그 순간.

도훈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핸드 캐논의 입구에서 불과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방에 휘날리는 분진.

수현은 익숙한 듯 눈을 찡그린 채 손을 휘휘 저어 분진을 치웠다.

그리고 잠시 뒤 먼지들이 가라앉자 수현은 거보라는 듯 과녁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세요. 5m까지는 가야 한다고 했잖…….”

수현은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과녁이었던 모래포대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터져버린 탓이었다.

“아니, 저게 왜……?”

호진은 수현의 그런 반응을 즐기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사냥꾼의 무기 보정은 현대화기만 아니면 전부 적용이 가능했다.

호진은 핸드 캐논이 현대화기로 분류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10m라는 유효사거리는 짧아.’

호진이 지켜본 바로는 방금도 과녁을 겨우 비껴 맞은 정도라 더 거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심지어 장전 시간도 오래 걸리다 보니, 장전된 걸 한 번 쏘는 용도로밖에 쓸 수 없을 듯했다.

‘소총 같은 느낌으로 사용하기는 무리겠네.’

그렇기에 호진이 떠올린 방법은 간단했다.

근접해 쏘고 빠르게 물러난 뒤, 재차 접근해서 쏘는. 이른바 히트 앤 런 작전.

물론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필수적 요건이 필요했다.

***

캠프 근처의 산등성이.

회색의 늑대 스무 마리가 햇볕을 쬐며 나른한 몸을 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동떨어진 곳에 청랑이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다.

청랑은 욱신거리는 통증에 무심코 어제 입은 상처를 바라봤다.

처음 보는 인간이 남긴 상처.

이를 본 청랑은 낮게 그르렁거렸다.

자신의 눈을 앗아간 놈에 이어 이번 녀석까지, 인간이라면 치가 떨렸다.

언젠가는 모두 잘근잘근 씹어 먹을 것이다.

청랑이 이를 갈던 그때, 멀찍이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쫑긋하자 소리가 더 명확하게 들려왔다.

철그럭거리는 쇳소리와 요란한 엔진 소리.

인간들이다.

청랑이 몸을 경계하며 몸을 일으키자 다른 늑대들도 그의 뒤로 와 섰다.

잠시 후, 방금까지 청랑의 치를 떨게 만든 두 인물이 얼굴을 드러냈다.

사과라도 하려고 온 걸까.

아니면 비열한 인간들답게 이제 와 자신을 처리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청랑이 온몸에 긴장시킨 채 선두에 검을 찬 인간에게 집중하자, 인간이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하자. 이 사람 좀 태워주라.”

그 뜬금없는 부탁에 청랑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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