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감시단 (3)
거대한 철문을 지나, 긴 정원을 가로질렀다.
호진과 용재에겐 익숙한 길을 도훈만이 어색한 듯 두리번거렸다.
가꿔진 정원을 둘러보던 도훈이 천천히 입을 뗐다.
“형의 집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어제 머물던 캠프도 형의 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도훈이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자 호진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집이 두 개는 더 있답니다.”
“……대단한 사람이군.”
도훈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를 지켜보던 호진이 고개를 돌리고 살짝 웃었다.
반응이 재밌는 사람이다.
평소 무뚝뚝하기 때문인지 조금만 놀라도 겉으로 잘 드러났다.
그사이 현관에 다다른 호진은 지체 없이 문고리를 잡고 당겼다.
그러자 두꺼운 문은 저항 없이 스르륵 열렸다.
이것을 지켜보던 도훈은 다시금 인상을 찡그렸다.
“왜 문을 안 잠그는 거지?”
“평소엔 잠겨있습니다. 우리를 보고 열어준 거겠죠.”
그 말을 들은 도훈은 움찔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방범 카메라인가.”
“드론, 초소형 카메라, TOD…… 뭐로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곳에 사각은 없습니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다.”
도훈이 고개를 저으며 뒤따르자 용재와 호진은 동시에 피식 웃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아늑한 공간이 나왔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만나고 올 테니까.”
“천천히 갔다 와.”
용재가 익숙하게 벽난로 근처 소파에 몸을 눕히자, 눈치를 보던 도훈도 조심스럽게 소파 위에 앉았다.
이를 지켜보던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호연을 만나기 위해 2층을 향했다.
이젠 조금 익숙한 방문을 노크하자, 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 들어와.”
간만에 본 호연은 이전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별일 없었어?”
“나야 여기만 있는데 뭐, 뭘.”
잠시 끊긴 대화.
하지만 이전만큼 어색하진 않았다.
호진과 호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슬쩍 웃었다.
그러다 호진이 문득 입을 열었다.
“아, 저번에 보내준 골렘들 고마워. 한층 더 좋아졌더라고.”
공방에서 제작된 골렘들은 계속해서 캠프로 보급되고 있었다.
그 숫자만 벌써 30기에 이를 정도다.
대부분이 전투용인데 그중 최근에 만들어진 것은 확연히 성능이 좋았다.
“그, 그렇다면 다행이고.”
호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 네가 데려온 이방인들이 도움이 많이 돼. 구해다 주는 물품들도 그렇고.”
“당연히 구해다 줘야지. 필요한 거 있으면 평소처럼 스미스에게 말해둬.”
“으응.”
솔직히 아직까지 캠프 수비의 핵심은 사람이 아닌 골렘들이다.
24시간 잠들지도 지치지도 않는 무쇠로 된 군사들.
심지어 꽤 강해져서 캠프 내의 플레이어들조차 상대하기 버거워했다.
시간과 재료만 있다면 골렘 군단은 이론상 무적이었다.
“아, 있다가 고, 골렘 공방 가봐. 선물이 있으니까. 꽤 마음에 들 거야.”
“음? 그래, 알았어.”
어지간하면 이런 자랑은 하지 않는 호연이기에, 호진은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리고 골렘 공방 아래층이 무기 공방이야. 거, 거기도 온 김에 들러봐.”
“응, 저번에 완공됐다고 들었어. 무기는 언제쯤 만들어져?”
“이, 이미 몇 개 만들어진 게 있긴 해.”
“벌써?”
호진이 놀라 묻자, 호연은 조금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근데 아마 별로일 거야. 부, 부탁받은 느낌은 아니야.”
호진의 의뢰는 간단했다.
가능하면 몬스터와의 전투에 도움이 되는 걸 제작해달라는 것.
총이라는 무기는 인간을 상대로 굉장히 효율적이지만, 몬스터 상대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니까.
몬스터들은 기이할 정도로 총이 들지 않았다.
산만 한 거인이든 불을 뿜는 용이든 현대식 무기들이 제 위력만 발휘했다면, 인류가 밀리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학살이 벌어졌겠지.’
인간이 자신들에게 이를 드러낸 짐승들을 두고 볼 리가 없었으니까.
보나마나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들의 전철을 밟았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동물원 신세, 아니라면 멸종당해 후대에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됐을 터.
하나, 몬스터들은 총에 맞아도 죽지 않았다.
현대식 무기들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기에, 인간들은 그들과 종의 존폐를 두고 싸우게 된 것이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모든 것을 얻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다.
패자는 자신들의 목숨은 물론 종족의 운명마저 승자의 손에 맡기게 될 테니까.
호진이 잠시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호연이 말을 이었다.
“그, 그냥 구경하는 겸사겸사 봐.”
호진이 생각에 잠겼었기 때문일까, 호연의 말투는 처음 말을 꺼낼 때보다 한층 더 의기소침해진 모양새였다.
“알았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 진짜 기대는 하지 마.”
“가볍게 보고 올게.”
호진은 불안해하는 호연을 달래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건강해 보이니까 좋다. 다음에 또 들를게.”
“조,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응.”
형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게 얼마 만일까.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어색할 뿐 가슴이 뭉클한 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도 호진은 간신히 잊고 있던 질문을 떠올리고 몸을 돌렸다.
“아, 형 근데 혹시 무기 수리도 가능할까?”
“그, 그 할버드 말이지?”
“……그건 어떻게 알았대.”
호연은 대답 대신 그저 웃음 지을 뿐이었다.
골렘들을 통해 본 걸까?
어쩌면 드론이었을지도 모른다.
강화 곳곳에 호연의 눈들이 퍼져있으니 의문을 가져봤자 손해였다.
“그, 그건 무기 공방 가서 의뢰해봐. 아마 가능할 거야.”
“알았어, 고마워. 그럼 진짜 안녕.”
“응.”
호진은 호연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곤 방문을 나섰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 응접실로 도착하자 용재와 도훈이 김이 나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뭐야, 차 마셔?”
“어, 형. 저번에 그 꼬마가 끓여주고 갔어.”
“그럼 그렇지.”
용재 녀석이 직접 끓여 먹었을 리는 없었다.
훈련할 때를 제외하면 늘 늘어져있는 녀석이었으니까.
도훈도 워낙 인상이 강하다 보니 차를 끓이는 모습이 쉬이 떠오르진 않았다.
차보다는 보드카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음, 내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는군. 난 술이 더 좋다.”
도훈이 찡그리며 말하자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양반은 못되겠네.’
속으로 중얼거린 호진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일어나.”
“벌써 돌아가는 건가?”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용재가 차를 입에 털어 넣고는 말했다.
“아뜨, 아직 뜨겁네. 아무튼 뭘 봤다고 돌아가요. 따라오세요.”
“……?”
도훈은 의아해하면서도 묵묵히 용재의 뒤를 따라왔다.
의기양양하며 뻗대던 용재는 도훈에게 놀라지나 말라며 으스댔다.
‘고작 두 번 왔으면서, 누가 보면 지가 공방 주인인 줄 알겠네.’
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행들은 부지런히 발을 놀려 건물 안에 있는 한 철문 앞에 섰다.
“여긴?”
“…….”
이렇게 된 이상 눈으로 보여주는 편이 빠를 것이다.
천천히 문을 열자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스위치를 올리자 계단의 가스등에 불들이 들어왔다.
일자로 쭉 뻗은 계단을 내려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운동장만 한 거대한 공간.
그곳엔.
“이건…… 무슨.”
도훈이 아연해서 말을 잃자 용재가 신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골렘 공방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굉장하군.”
도훈의 넋 나간 반응이 재밌다는 듯 용재가 옆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지도 처음 왔을 때 똑같았던 주제에…….’
호진은 그런 용재를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시설을 확인했다.
어느덧 모양새가 제법 잡혔다.
처음에는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골렘을 제작하던 곳인데, 이젠 꽤 그럴듯했다.
복잡한 기구들과 그사이를 오가는 이방인들.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수십, 혹은 수백 개의 골렘들의 모습이 제법 웅장했다.
호진을 알아본 이방인 몇몇이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방인들이 이곳에서 하는 일은 다름 아닌 골렘 제작.
골렘 제작 능력을 지닌 것은 호연뿐이지만 이방인들도 골렘 제작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호연이 골렘의 코어를 만들어낸다면, 이들은 코어가 구동될 골렘의 신체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다가와 노트를 불쑥 내밀었다.
덥수룩한 머릿결.
더벅머리 소년이었다.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밝아진 소년이 내민 노트에는 삐뚤빼뚤한 글자가 적혀있었다.
「배웠습니다. 한글.」
“잘 썼네.”
칭찬을 받은 더벅머리는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있습니다. 선물.」
호연이 말한 선물을 떠올린 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감동인데.”
더벅머리는 붉게 물든 얼굴을 숙이고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띠링
「플레이어의 격이 미약하게 오릅니다.」
이번에도 의도치 않게 얻어버린 격.
아무래도 더벅머리 소년은 호진을 진심으로 따르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에게 경외는커녕 평범한 관심조차 못 받아봤던 호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격(格)은 정말 의외의 곳에서 계속 모여들었다.
그렇게 더벅머리 소년을 따라가자 그곳엔 허름해 보이는 골렘 하나가 서 있었다.
“이건?”
호진이 소년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소년은 머뭇거리며 노트를 내밀었다.
「선물.」
뭔가 숨겨진 힘이 있는 걸까.
잠시 지켜봤지만 그런 건 아는 듯했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호진은 기뻐하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굉장한데?”
전투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모자랐지만, 어쨌든 골렘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러자 더벅머리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다가 다시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다음에. 또. 더 좋은.」
“그래, 기대할게.”
호진은 소년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선물도 받았겠다, 무기 공방에 들를 일만 남았다.
호진이 몸을 일으키는 그 순간.
저 멀리 길게 도열한 골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딘가 눈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 독특한 외형이 더 도드라졌다.
다른 골렘들에 비해 작고 말랐으며,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심지어…….
“목재라고?”
호진이 중얼거리자 골렘들 사이에서 한 아이가 얼굴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안녕. 오랜만이네.”
이 앞마을의 유일한 생존자 아이다.
‘드론의 안내를 받아 이곳까지 도착했다던가.’
소심한 목소리로 인사한 소년은 슬쩍 뒤로 몸을 뺐다.
호진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며 친근하게 웃어 보였다.
“너도 골렘 만드는 거 돕는 중이니?”
“…….”
그러고 보니 이 아이도 골렘에게 구해졌다고 들었다.
캠프의 리자드맨들을 쓸어버린 그날, 호진이 세운 계획에 우연치 않게 구해진 아이.
그날부터 아이는 캠프가 아닌 이곳 공방에서 생활을 이어왔다.
호진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소년이 이내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제가 만드는 건 인형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