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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56화 (56/241)

56화. 감시단 (2)

‘탈영병이라.’

호진이 턱을 쓸어내리면서 남자를 응시하자 남자는 추가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우린 정부에서 양성한 군 소속 헌터들이다.”

백기환 중령이 말해줬던 정부의 헌터 집단.

이들이 바로 그들인 모양이었다.

다시 보니 남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뿐이다.

“탈영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호진의 질문에 남자는 천천히 주억거렸다.

“별것도 아니다. 임무가 주어졌지만 그것을 포기했을 뿐이다.”

“어떤 임무죠?”

“김포에 자리 잡은 게이트의 봉쇄였다. 게이트는 클리어해봤나?”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자조적으로 웃음 지었다.

씁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그렇다면 알겠군. 그곳이 어떤지. 게이트의 등급은 B 랭크. 그 사실조차 2차 토벌조가 전멸하며 겨우 알린 소식이지.”

“……그럼 3차 토벌조가?”

“우리였다.”

“…….”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버리는 패다.

군부대가 원한 것은 새로운 정보의 수집이었을 것이다.

호진은 남자의 얼굴 구석구석을 살폈다.

우선 남자의 말은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원래 상대를 잘 간파하던 호진은 ‘감시자의 눈’을 얻은 이후로 더더욱 예리해졌다.

상대의 호흡, 목소리의 떨림, 시선, 눈의 찡그림까지.

그 모든 정보를 숨길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은 이상 호진을 속일 순 없었다.

“믿겠습니다. 그럼 확실히 군부대는 무리겠군요.”

“……믿어주니 감사하군. 우리는 이대로 조용히 떠날 테니. 서로 갈 길을 가면…….”

“저희랑 같이 가시죠.”

남자의 말을 끊은 호진.

“……왜지?”

남자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호진을 보자 호진이 웃으면 대답했다.

“캠프에 손이 많이 부족합니다. 강요하진 않겠지만 와주셨으면 좋겠군요.”

“강요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물론입니다.”

호진은 두 손을 모두 들어 보이며 대답했지만,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남자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입안에 칼이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와 호진의 실력 차는 명백했다.

그때 호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호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후우, 나는 김도훈이다. 잘 부탁하지.”

도훈은 숨을 짧게 내쉬며 호진의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호진의 행렬에는 새로운 19명의 헌터가 새롭게 합류했다.

***

캠프로 향하던 호진은 도훈과 헌터들의 무기를 살폈다.

창, 칼, 활, 도끼, 크로스보우.

규격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래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독특하네요. 다들 총을 들고 계시군요.”

호진은 웃으며 물었지만,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신경 쓰였던 점이었다.

몬스터 중에는 총이 효과가 없는 종류가 꽤 있다.

아예 통하지 않는 녀석들도 있고, 소화기 수준으로는 저지할 수 없는 녀석들도 있다.

탄수에 제한이 있다는 것도, 소리가 크다는 것도 총의 단점이었다.

그래서 캠프에도 총이 몇 정 있지만, 쓸 일이 없어 보관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총은 원래 용도로 사용될 때 가장 빛을 발하는데, 바로 인간을 상대할 때다.

호진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눈치챈 도훈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오해다. 군인인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무기였을 뿐이다.”

“그렇군요.”

호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잠시 호진을 가만히 지켜보던 도훈이 추가적으로 말을 덧붙였다.

“다른 직업으로 전직했다면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사냥꾼으로 전직했다.”

‘사냥꾼?’

호진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도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무 무기나 쓰는 3류 직업이지. 어떤 무기를 쓰던 보정을 받지만 그만큼 효과가 미약하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린 도훈은 뒤에 따라오던 남성 몇몇을 눈짓하며 말했다.

“공격 관련 스킬도 적은 편이다. 저 친구의 주력 스킬은 ‘은밀’, 그 뒤에 녀석은 ‘추적’, 지금 하품한 녀석은 ‘비스트 테이밍’. 쓸모가 없진 않지만 글쎄, 확실한 건 전투직은 아니라는 거다.”

도훈의 설명을 들은 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필요한 스킬들이긴 하지만 전투 능력이 높은 직업은 아니었다.

“그럼 총도 무기 보정을 받아서 사용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다. 다만 몬스터를 상대할 때 보정을 받는 무기보다 총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을 정도로 공격력이 부족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버려진 거겠지.”

“……그건 유감이군요.”

호진이 말을 고르자 도훈은 픽 웃었다.

조금 자조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호진에겐 처음 보인 미소였다.

“그렇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 직업도 직업대로 쓸 만하니. 레이더망도 드론도 열감지장치도 있는 군대에서 필요성이 떨어졌을 뿐이다.”

“저희들에겐 꼭 필요한 인재들이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보다 의심된다면 총들을 거둬가도 좋다.”

“의심을 하진 않지만, 캠프에 도착하는 대로 총은 회수하겠습니다. 저희 캠프 규정인지라. 필요할 때 반출해서 쓰시죠.”

호진의 말을 듣고 잠시 묵묵히 걷던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규정이다. 언제 만들었지?”

“지금요.”

“……?”

도훈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호진이 피식 웃어 보였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만들어야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즉석에서 규칙을 만들고 적용할 정도의 힘은 있습니다.”

“위험한 사람이었군.”

“맞습니다.”

“알았다. 앞으로 더 예의를 갖추도록 하지.”

도훈의 말을 들은 호진은 잠시 눈을 깜빡이다 웃음을 터트렸다.

“예의는 됐습니다. 그리고 이미 반말 중이신데요.”

“외국에 오래 있어서 존댓말이 서툴다. 미안하군.”

“됐습니다. 신경 안 씁니다.”

그렇게 도훈과 얼마나 떠들었을까, 저 멀리 목책이 보였다.

잠시 후 목책에서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길게 한 번 울리는 나팔 소리.

그들의 귀환을 알리는 소리였다.

***

“상태창.”

침대에서 눈은 뜬 호진은 눈을 비비며 상태창을 켰다.

어느새 아침에 눈을 떠서 상태창을 살피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띠링

「상태창」

「이호진」

「나이: 24」

「레벨:30」

「근력:40 민첩:45 지구력:20」

「스킬: 감시자의 눈 LV.1 거합 LV.8 투구 가르기 LV.6 체력 회복 LV.7 확신 LV.1 검술의 묘리 LV.1 검의 정수 LV.1 정신 내성 LV.3 파마의 검식 초감각 LV.1 출혈내성 LV.5 초급 기(氣) 검술 LV.2 투검 LV2 」

「직업: 검의 교단 광신도(Fanatic)」

「가호: 감시하는 자 울타의 가호, 여신 릴리의 가호」

「칭호: 없음」

「잔여 포인트: 6」

“많이도 올랐네.”

2주간 주변의 몬스터들을 잡으며 고작 3레벨밖에 못 올렸었는데.

전쟁 한 번 하고 나니 무려 5레벨이 더 올랐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상대가 너무 약해서였는지 스킬 숙련도가 많이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많이 오른 것은 반복적인 사용에도 꾸준히 숙련도가 오른 ‘거합’과 ‘투구’ 가르기.

그리고 자해를 통해서 올린 ‘체력 회복’과 ‘출혈’이다.

처음에는 눈물 나게 아팠으나…….

‘지금은 더 아프다, 시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했던가.

아픔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떻게 아플지 예상이 갔다.

그렇기 때문인지 고통을 더 세밀하고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해를 떠올렸더니 잠기운이 싹 가셨다.

지난 2주간 어떤 게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단연 자해였다.

너무 아파서 몇 번 까무러친 덕에 ‘정신 내성’ 스킬만 더 올랐다.

‘이런 식으로도 오를 줄 몰랐기에 약간 이득 본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자해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죽을 만큼 체력을 소비하고 몽둥이로 몸을 두드리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체력 회복’ 레벨이 오르자 상처가 생각보다 쉽게 아문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칼로 생살을 후비기 시작했다.

효과는 극적이었다.

뭔 짓을 해도 5레벨에서 멈춰있던 체력 회복은 칼로 후빈지 3일 만에 7레벨이 됐다.

이 속도면 조만간 ‘거합’ 조차도 따라잡을 기세였다.

다른 내성도 생긴다면 비슷한 식으로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내성이라……. 제발 안 생겼으면 좋겠다.’

머리로는 다른 내성이 생기는 편이 생존 가능성을 올려준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숙련도작을 할 생각을 하니 차라리 영원히 없는 편이 나을 듯했다.

‘이렇게 궁시렁거려도 스킬이 생긴다면 분명 이를 악물고 숙련도를 올리겠지.’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자신이었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호진은 인벤토리를 열어 지난날 얻은 보상을 확인했다.

「고요한 용의 결계」

「종류: 부적」

「정보: 리자드맨 주술사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부적. 건축물에 부착 시, 건축물을 인지할 수 없다. 단, 건축물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에겐 효과가 발동하지 않는다. (사용횟수: 1)」

‘흠, 애매하네.’

소모성 아이템치고는 효과가 애매하다.

은신처, 혹은 보물창고에 쓰기에는 적합하겠지만, 그게 전부였다.

애초에 보물창고는 인벤토리가 있는 이상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쓸 거라면 은신처인데.’

잠시 고민하던 호진은 어렵게 생각하길 포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신처 말고는 더 좋은 사용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 생존자들을 위해서라도 보험이 하나 있다면 좋을 거다.

‘신전이나 집은 이미 리자드맨들이 알고 있으니까 아이템 효과가 발동하지 않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호진은 밖으로 나와 새롭게 신설한 식량 창고에 부적을 붙였다.

튼튼한 식량 창고라면 은신처로 쓰기에 나쁘지 않다.

먹을 것도 많고 무엇보다 공간이 꽤 넓다.

나중에 식량들을 채워 넣을 것을 고려해 크게 지어 100명까지는 수용 가능할 터였다.

‘혹시 모를 약탈에도 대비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네.’

이제 이걸 사람들에게 알리기만 하면 됐다.

때마침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남성이 지나가는 것을 본 호진은 그를 불러 세웠다.

“아, 춘필 씨. 잠깐 괜찮으신가요.”

“뭐, 뭐요…….”

이름이 불린 중년 김춘필은 쭈뼛쭈뼛 호진에게 다가왔다.

불만 많던 생존자 대표 춘필은 이제 없었다.

호진과의 대화 이후 춘필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농사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헌터가 하기 싫었나.’

속으로 중얼거린 호진은 춘필을 향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요즘 열심히 하신다면서요. 조금 쉬엄쉬엄하세요.”

“……고, 고맙군.”

고작 가벼운 칭찬이었음에도 춘필은 당황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한참 어른이 고개 숙이는 모습이 보기 좋진 않았기에 호진은 재빨리 만류했다.

“됐습니다. 그보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만 하게. 자네 말이라면 들어야지.”

2주 전에 불만을 토하던 사람이 이러는 게 어색했지만, 그래도 이젠 조금 익숙해졌다.

“다른 건 아니고. 이 식량 창고는 대피소도 겸할 예정입니다.”

“이곳을?”

춘필이 이상하다는 듯 되묻자, 호진은 끄덕이며 답했다.

“제가 안전장치를 해두었습니다.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이쪽으로 대피하라고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세요.”

“흠. 그러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춘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가볍게 숙인 호진은 몸을 돌려 캠프 내의 공터로 향했다.

그곳엔 어김없이 한 사람이 도끼를 들고 휘두르고 있었다.

─후웅!

가장 먼저 들리는 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이었다.

그리고 더 가까이 가자 중얼거리는 숫자가 들려왔다.

“3871, 3872…….”

중얼거리는 용재의 턱을 따라 땀이 방울방울 흘러 떨어졌다.

“열심히 하네.”

호진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자 용재가 도끼를 멈추고 돌아봤다.

“3873…… 어? 형. 잘 잤어?”

“나야 잘 잤지. 그보다 어떻게 들었냐. 나 일부러 작게 말했는데.”

“어라,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어떻게 알았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용재가 말을 이었다.

“그냥 왠지 형이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좋은 일이야. 다음에 그 감각이 느껴지면 그냥 흘리지 말고 집중해 봐.”

어쩌면 초감각일지도 모른다.

초감각은 전투 능력을 진일보시키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아마 기(氣)까지 연결되는 건 무리겠지만, 그 뿌리가 되는 능력이니 익힐 수 있을 때 익히는 게 좋을 것이다.

“응, 알았어. 근데 무슨 일이야?”

“아, 맞다. 별건 아니고 이거.”

호진은 인벤토리에서 어제 챙겨왔던 치프의 할버드를 꺼내 들었다.

“형, 이건…….”

용재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할버드에 시선을 뺏겼다.

그 모습을 본 호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리자드맨 치프가 쓰던 무기야.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챙겼어.”

“와. 이건 진짜. 형, 사랑해.”

“……어, 그래.”

좋아할 줄은 알았는데 그게 예상보다 조금 과했다.

용재가 팔을 벌리고 안기려 하자 재빨리 피해낸 호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보다시피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수리가 필요할 것 같아.”

“어, 그렇긴 하네. 이가 나갔잖아?”

백랑과의 싸움 때문인지 할버드는 상태가 영 별로였다.

“그래서 지금부터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그럼, 이건 바로 가야지.”

호진의 물음에 용재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때, 용재 어깨 너머로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 도훈 씨. 지난밤엔 잘 주무셨나요?”

“잠자리가 편하더군, 그쪽은 잘 잤나?”

방금 일어났는지, 머리 정리가 덜 된 도훈이 날카로운 눈을 힘들게 뜨며 인사해왔다.

“저야 잘 잤죠. 마침 잘됐네요. 도훈 씨도 따라오시죠.”

“어딜 말이지?”

도훈이 의아한 듯 묻자 호진이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공방(工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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