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감시단 (1)
강화대교 캠프에 연합작전 요청을 전해주기로 한 주 대위와 군인들은 따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럼 저희는 바로 출발하면 됩니까?”
주 대위의 질문에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제 곧 해가 저물 겁니다. 전투로 지치셨을 텐데. 우선은 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근처에 쉴 만한 데가 있을까요?”
“지도에는 이 앞에 전등사라는 곳이 있더군요.”
“호진 씨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저희는 캠프로 돌아갑니다. 익숙한 길이기도 하고 2시간 정도면 도착할 테니까요.”
“그런가요. 그럼…… 한동안 못 보겠네요.”
주 대위가 아쉽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자 호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금방 볼 수 있을 겁니다. 백랑!”
“그르륵.”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백랑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 앞에 절…… 아니다. 큰 건물이 하나 있을 텐데, 주 대위를 거기까지 안내 좀 해줄 수 있을까?”
백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진은 가볍게 녀석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 그리고 하나만 더 부탁할게. 백랑 네 친구들 20명 정도만 빌려도 될까?”
“…….”
호진의 손길을 벗어난 녀석이 다소 불안과 의아함이 섞인 눈으로 호진을 바라봤다.
‘이런, 볼모 같은 개념으로 이해한 건가? 아니, 그런 게 아니더라도 갑작스럽긴 했겠네.’
호진은 급히 말을 덧붙였다.
“미안, 단어 선택이 신중하지 못했어. 다른 의미가 아니라 네 친구들을 우리 캠프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려고 한 말이야. 나아가 우리들이 공생할 방법도 고민해보고.”
“그르륵.”
그제야 백랑은 굳은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20명 중 저 친구도 데려가도 될까?”
호진이 청랑을 가리키자 백랑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치켜떴고 청랑은 움찔 몸을 떨었다.
청랑 저놈은 내버려두면 잔머리를 굴릴 타입이다.
오히려 옆에 두고 관리하는 편이 마음이 편할 터.
잠시 고민하던 백랑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청랑의 표정이 급속하게 썩어갔다.
늑대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나?
새삼 신기했다.
“청랑, 표정이 왜 그래? 같이 가기 싫어?”
호진이 웃으면서 다가가자 멀찍이 앉아있던 청랑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컹.”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청랑.
“오, 다행이다. 싫다고 하면 안 데려가려 했는데.”
“…….”
청랑이 그럴 리가 있냐는 듯 짜게 식은 눈으로 호진을 바라봤다.
‘진짜 똑똑하다니까.’
청랑은 자신이 뭐라 대답하든 호진이 자신을 끌고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청랑, 불만 있어? 눈빛이 왜 그래.”
“……컹.”
청랑은 서러운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앞으로도 계속 자존심을 꺾어놔야겠어.’
호진은 몸을 돌리며 다시 주 대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주 대위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돌아오셔도 좋습니다.”
그 말에 감동을 받은 듯 입술을 들썩이던 주 대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안 가도 되나요?”
“……그건 안 되죠. 빨리 가세요.”
“……넵.”
시무룩해진 주 대위가 백랑과 함께 몸을 돌렸다.
‘왜 저렇게까지 날 따르는 건지.’
호진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채비를 마친 일행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도 바로 이동합니다. 곧 해가 질 테니 빠르게 가죠.”
““넵!!””
우렁찬 대답 소리가 울려 퍼졌다.
꽤 긴 전투로 지쳤지만 캠프로 돌아간다는 소식에 다들 기뻐 보였다.
그렇게 군인들이 이탈하고 20명의 늑대가 추가된 행렬이 캠프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
‘생각보다 해가 빨리 졌네.’
어둠이 내려앉은 가도를 앞장서 걸어가던 호진이 침음을 내뱉었다.
겨울이 다가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해 지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졌다.
구름이 낀 탓에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걷고 있자니 일행들의 속도가 한층 더 느려졌다.
원래 1시간 거리지만 이런 속도라면 2시간은 걸릴 터였다.
‘곤란하게 됐어.’
차라리 하루 쉬고 이동할 걸 그랬다.
이런 상황에 야습이라도 당한다면 피해가 상당할 것이다.
지금도 예은을 비롯한 몇몇이 정찰을 하고 있었지만, 가시거리가 나쁜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이건 지휘관으로서의 불찰이었다.
“청랑.”
“컹.”
호진의 부름에 뒷줄에서 터벅터벅 따라오던 청랑이 후다닥 뛰어왔다.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할게. 인간들은 밤눈이 어두워서 그런데, 네가 다른 늑대 친구들을 이끌고 정찰을 맡아 줄 수 있을까?”
“…….”
청랑이 불만인지 대답하지 않자, 호진이 이번엔 달래듯 입을 열었다.
“부탁이야. 이것만 들어주면 한동안 다른 부탁은 안 할게.”
“……컹.”
마지못해 끄덕인 청랑이 다른 늑대들을 이끌고 산개했다.
청랑은 아니지만 다른 늑대들은 백랑과 함께 오늘 하루 전투를 치러서 지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려먹으려고 데려온 건 아니었기에,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호진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늑대들의 불만을 사겠지만 적어도 야습은 예방할 수 있다.
불만은 나중에 풀어주면 그만이지만 야습으로 받은 피해는 복구할 수 없다.
‘애초에 급하게 출발한 게 문제긴 하지만…….’
호진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뺨을 긁었다.
그 순간, 청랑이 사라진 방향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크르르르륵, 아우우우우!
─으아악!
“이, 소린?”
소리가 가까운 탓에 용재도 소리를 들었는지 호진을 쳐다봤다.
“……뭔가 있네. 박 순경님, 일시 정지하겠습니다. 수비대열로 유지해주세요. 용재 넌 따라와.”
“넵, 알겠습니다!”
“응.”
박 순경과 용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호진은 재빨리 용재를 하야에 태우고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 금세 청랑과 늑대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사람이 하야를 탄 호진과 용재를 보고 소리쳤다.
“또 다른 괴물이다!”
시야가 어두운 탓이었다.
호진과 달리 일반인들은 이 어둠 속에서 형체 이외의 것을 구별할 수 없을 터였다.
“괴물? 어디지?”
용재가 두리번거리자 호진이 머리를 짚었다.
“우리 말하는 거잖아. 가만히 있어.”
“괴…… 괴물이 말을 한다!”
재차 놀란 그들을 향해 호진이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괴물이 아닙니다. 생존자입니다.”
“거짓말!”
“아니,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봐요! 우리 호진이 형이 괴물들보다 더 괴물처럼 싸우긴 하지만 사람…… 음, 형, 사람 맞지?”
“…….”
“…….”
호진과 상대 쪽 사람들 둘 다 어이없다는 반응으로 용재를 바라봤다.
‘이건 일부로 멕이는 거 아닌가?’
진심으로 고민이 들었지만 우선은 오해를 풀어야 했다.
하야에서 내려온 호진이 랜턴 빛이 닿는 곳으로 나아가 섰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움찔했다.
안심하는 것 같기도 했고, 정말 사람이라는 것에 놀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쪽의 대표가 있습니까?”
“……나다.”
호진의 물음에 장발을 뒤로 묶은 한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30대 중반쯤 됐을까.
날카로워 보이는 두 눈동자는 침착하게 주위 상황을 눈에 담으며 호진을 바라봤다.
키는 180을 웃돌았고 무엇보다 체격이 있어 거대한 늑대가 연상되는 남자였다.
양손에는 도끼와 검을 한 자루씩 쥐고 있었는데, 도끼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저희들에게 용무가 있습니까?”
“……저 늑대들도 그쪽과 같은 일행인가?”
“맞습니다.”
호진이 힐끔 눈을 돌리자 옆구리에서 피가 묻어나는 청랑이 눈에 들어왔다.
‘청랑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호진은 놀란 눈으로 청랑의 상처를 살폈다.
청랑을 상대할 만한 사람은 캠프 내에서도 손에 꼽는다.
사실 용재 말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청랑은 분하다는 듯 잔뜩 화가 나 그르렁거리고 있었지만, 호진의 눈치를 보느라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함께 흘깃 바라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인 것 같군. 왠지 사람을 보고도 공격해오지 않아 의아했는데, 미안하게 됐다.”
“전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 녀석에게 사과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안하다.”
“크르르르르르륵.”
청랑이 사납게 이를 갈았지만, 이내 팩 하니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달래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우선은 눈앞에 있는 무리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시급했다.
“그쪽도 서울에서 피난해 오셨습니까?”
“……비슷하지. 강화도라면 괜찮을까 싶어 배를 타고 건너왔는데. 여기도 똑같더군.”
남자가 살짝 경계하며 대답하자, 호진은 빠르게 뒤쪽에 위치한 사람들의 행색을 살폈다.
숫자는 20명 안팎, 무기는 제각각이었지만 하나같이 제법 강해 보였다.
단순한 피난민은 아니었다.
“모두 전직을 했나 보군요.”
호진이 떠보듯이 물어보자 남자가 미간을 모아 침음을 흘리며 답했다.
“……알아보는군. 어떻게 알았지?”
“저도 전직했으니까요.”
“……그런가.”
실은 감시자의 눈으로 파악한 사실이지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남자도 호진의 대답을 그리 납득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경계하는 남자에게 호진이 물었다.
“앞으로 계획 같은 건 있으십니까?”
“글쎄, 이 근처는 잘 몰라서. 추천해줄 만한 계획이 있나?”
“몇 개 있기는 합니다. 하나는 저희와 캠프로 가시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이대로 북동쪽에 있는 군부대 캠프로 가시는 거죠.”
스무 명 안팎의 전직한 플레이어들.
저들이 캠프에 합류한다면 꽤나 큰 전력이 될 것이다.
잠시 지켜보며 캠프에 녹아내릴 수 있는 분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라며 아쉽지만 그냥 보내야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캠프에 위험이 된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싸워야겠지.’
그렇게 호진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뭔가 고민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군부대는 안 된다.”
남자가 곤란하다는 듯 입을 열자 호진이 얼굴을 굳혔다.
“혹시 범죄자입니까?”
그렇다면 캠프에 들일 수 없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선 이 자리에서 베어야 한다.
호진의 기세를 느꼈는지 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유를 말할 의무도 없다.”
남자는 최대한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호진은 그런 남자를 지긋이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의무는 아니죠. 다만…….”
말을 흐린 호진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저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이다.
검 자루에는 손가락이 닿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남자를 비롯한 호진의 검이 닿는 거리에 있는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전직을 한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감각.
죽음의 직감이었다.
그 상태에서 호진이 마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는 대답을 듣고 싶네요.”
“…….”
눈앞의 남자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가볍게 숨을 통하며 입을 열었다.
“대답하겠다. 그러니 힘을 거둬줬으면 한다.”
“제가 뭔가를 했던가요?”
호진이 능청을 떨며 팔의 힘을 풀자 남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한가득 흘러내렸다.
남자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호진과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괴물이군.”
“인간이라니까요. 그보다 대답은요?”
마른침을 삼킨 남자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우리는…… 탈영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