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감시자의 숲 (2)
─호오 호오
높은 나무 위에 자리 잡은 수백여 마리의 부엉이들.
그것들을 본 주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형……. 우리 주연이…… 설마.”
그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확실히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무장한 날짐승 수백 마리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만으로도 위압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니, 오히려 살아있을 가능성이 커.”
호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
주호가 눈을 끔벅이자 호진은 바닥의 흔적을 가리켰다.
“주연이는 멀쩡하게 걸어서 이 숲을 지나갔어. 일정한 보폭으로 보아 놀라거나 무서워한 것 같지도 않고.”
방법은 알 수 없으나 주연이는 공격을 받지 않고 이 숲을 무사히 건넌 것이다.
‘아니, 알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부엉이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
한참을 그렇게 응시하던 부엉이들은 흥미가 사라진 듯, 하나둘 날아 사라졌다.
오직 한 마리.
주호의 어깨에 내려앉았던 녀석만이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어서 가요, 형.”
“그래.”
다시 흔적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데, 이쪽을 바라보던 부엉이가 재차 날아와 주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호진이 다시 녀석을 쫓기 위해 다가가자 주호가 고개를 저었다.
“해치지 않는 녀석들이라면서요. 내버려 두죠.”
이어서 주호는 부엉이의 머리를 톡 치며 고맙다고 했다.
부엉이는 ‘호오 호오’하고 울 뿐이었다.
***
다시 흔적을 따라 걷기도 잠시.
어느 순간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고목 하나가 있었다.
여기서 흔적이 끊겼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때, 주호 어깨에 앉아있던 부엉이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머리 위를 빙글 돌더니 고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재차 날아온 녀석이 답답하다는 듯 주호의 머리를 쪼았다.
“아야! 갑자기 왜 이래?”
“……따라오라는 건가?”
호진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부엉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부엉이는 호진에게 눈을 깜박인 후, 몸을 돌려 다시 고목을 향해 날아갔다.
“따라가자.”
호진이 부엉이를 뒤쫓자 주호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날아간 곳은 고목의 뒤편.
그리고 그 고목 밑동 움푹 파인 곳에 홀로 잠든 주연이가 있었다.
“형…….”
주호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자 호진은 픽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단 다행이네. 빨리 업어. 돌아가자.”
F급이라지만 일단은 여기도 던전이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뒤돌아서는 호진은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음, 혹시.’
어쩌면 이 부엉이들이 몬스터일지도 모르겠다.
아까 전 부엉이의 행동으로 봐선 평범한 동물은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몬스터와의 공존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인간들이 아직 이쪽 세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인간에게 호의적인 녀석들 한 둘쯤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방인들이 있었으면 물어봤을 텐데.’
돌아간다면 녀석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게이트를 향하는데, 익숙한 알림창이 나타났다.
─띠링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조건: 부엉이를 모두 죽이기.」
‘뭐지? 퀘스트?’
오주호에게도 같은 퀘스트가 떴는지 녀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호진을 돌아봤다.
“형 이게 뭐예요? 전 하기 싫어요.”
“나도 싫어. 그냥 무시해.”
그렇게 퀘스트를 무시하고 몇 걸음을 옮기자 다시 울리는 알림음.
─띠링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조건: 부엉이를 모두 죽이기.」
「보상: 경험치 1000」
진짜 뭘까.
마치 시스템이 호진에게 부엉이들을 죽이길 강제하는 것 같았다.
시스템은 퀘스트를 거절당하자, 흥정이라도 하듯 보상을 내걸었다.
시스템에는 감사한다.
그 힘을 빌려 여태까지 살아남았으니까.
하지만 행동을 강제하려는 그 태도가 문득 불쾌하게 느껴졌다.
호진이 다시 시스템을 무시하자 한층 더 격렬한 반응이 나타났다.
─띠링
─띠링
─띠링
.
.
.
귀에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음.
─띠링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조건: 부엉이를 모두 죽이기.」
「보상: 경험치 10000」
“미친…….”
기분 탓이 아니다.
시스템은 지금 분명한 의지를 띄고 부엉이들을 죽일 것을 명령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 보상이 10배가 올랐다.
명백한 적의에 호진은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아까 전에 길을 안내해준 부엉이가 머리 위를 맴돌았다.
‘뭐지?’
혹시나 한 호진이 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그 위로 내려앉는 녀석.
“호오 호오.”
호진을 바라보는 부엉이의 표정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호기심이 많은 녀석인가?’
아까 전 주호에게도 그렇고 붙임성이 좋다.
호진은 갸웃거리는 부엉이의 머리를 자신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부엉이는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눈을 졸린 것처럼 천천히 끔뻑거렸다.
“사람이 신기한가? 그보다 무섭지도 않나.”
“그러게요. 야생동물치고는 조심성이 없네요.”
‘야생동물은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픽 하고 웃은 호진은 부엉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했다.
“알아들을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조심하는 게 좋아.”
호진은 아니었지만 보상을 위해서 부엉이를 죽일 사람은 수없이 많을 터였다.
호진의 말을 들은 녀석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퍼드득 날아올랐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은 후 고목의 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고목에서 잎사귀들이 피어난다.
마치 빨리 감기를 하는 다큐멘터리처럼.
작게 돋아난 새싹들은 순식간에 피어나 늙은 고목은 푸르른 빛을 띠었다.
“저건 또 무슨…….”
그 모습을 본 호진이 기막혀하고 있던 그때 다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던전이 개변합니다.」
「S급 던전 ‘감시자의 숲’에 입장합니다.」
「난이도 : 불가능」
호진은 재빨리 뒤돌아 주호를 바라봤다.
사색이 된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이 방해될 때다. 저쪽으로 뛰어.”
“네!”
말을 들은 순간 주호는 동생을 업은 채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호진이 걱정되는 듯 흘깃거렸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잘하고 있다.
사실 도망은 무의미하지만.
그럼에도 약속을 잘 지키는 주호의 모습이 기특했다.
‘S급? 어이가 없네.’
개미굴이 E급이었고, 하픈덤이 D급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호진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녀석은 고목에 걸터앉은 채 호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오. 아이야. 너는 도망가지 않는 게냐?”
갈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인형(人形)이 나뭇잎 그림자에 흐릿하게 흔들렸다.
깊게 눌러쓴 로브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후드 아래로 흘러내린 은발의 머리가 달빛에 은은하게 빛났다.
“흐음, 이번에는 침묵이라? 말이 안 통할 때는 잘만 얘기하더니 섭섭하구나.”
약간 나이가 있는 여인의 목소리.
하지만 그 음색은 온화하며 곱다.
호진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입을 열었다.
“도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비를 바랄 뿐입니다.”
“아하하하하. 말투가 재미있구나. 아이야 혹시 방금 날 따라 한 게냐?”
“…….”
호진은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상대의 말투가 워낙 희극에 나올 법했기에 맞춘 것인데, 오히려 눈길을 끌어버린 듯했다.
“죄송합니다. 예의를 갖추고 싶었을 뿐입니다.”
“후후후. 괜찮다.”
한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리고 웃어 보인 여성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 우선 내가 사과를 해야겠구나. 여자아이를 데려오는 바람에 걱정을 끼친 듯하니.”
“주연이를 데려온 것이 어르신입니까?”
호진의 질문에 여성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곤 침음성을 내며 입을 열었다.
“흐음, ‘어르신’이라니. 이상하구나, 아 목소리 때문인가?”
잠시 목을 가다듬은 여인이 입을 열었다.
“아아. 음. 그래. 이제는 어떠냐.”
순식간에 목소리가 변한 여인.
청아하고 티 없이 맑은 목소리는 앳된 묘령의 여인과 같았다.
어찌 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 호진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인 여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응이 재미없구나. 그럼 설명을 해줘야지. 그 아이는 내가 치료를 위해 불러들였다.”
“치료? 아니, 그보다 플레이어가 아니면 게이트에 못 들어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내 초대가 있다면 가능하단다. 난 이곳의 주인이니.”
아무래도 게이트에 들어가는 방법은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듯했다.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여인은 이어 말했다.
“아이가 정신적인 충격이라고 할까, 정신오염이 심하더구나.”
말을 멈춘 여인은 호진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여인이 말이 없자 호진은 뭔가 불안해져 입을 열었다.
“아니……. 이건 놀랍구나. 어떻게 그 정도의 정신오염에도 멀쩡한 것이냐?”
“네?”
“음, 아아. 그런가. 격을 지녔구나. 그렇다면 가능하겠지.”
뭔가 혼자 중얼거리던 여인은 갑작스레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호진이 움찔하고 물러났으나 문득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겸사겸사 치료해줬단다. 쌓은 격을 감안해도 지독하더구나. 아이야, 뭘 본 게냐?”
정신오염이라 하면 떠오르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이어붙인 왕’과의 조우.
그리고…….
“거대한 고래.”
호진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검은 안개를 몰고 다니며 그 속에서 유영하는 고래였습니다.”
“…….”
호진의 말을 들은 여인의 입매가 싸늘하게 굳었다.
“벌써 그런 것까지 나도는 게냐.”
“……뭔지 아십니까?”
여인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답했다.
“라멜의 사도, ‘심연을 유영하는 자 샴’. 그것이 녀석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