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실존과 부조리 (4)
이질적인 어둠은 순식간에 진지 안의 모든 빛을 집어삼켰다.
하늘에 떠오른 달빛만이 희미하게 지상을 비출 뿐이었다.
호진은 섬뜩한 감각에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일종의 오감.
초감각의 영역이었다.
사냥꾼은 눈은 짙은 어둠 속을 관통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평범한 빌딩.
그러나 호진은 금방 괴리감을 느꼈다.
‘어째서 진지가 있던 자리에 저런 게 있는 거지?’
그 순간 우뚝 솟은 빌딩이 기우뚱하더니 서서히 기울어졌다.
마침 구름에 가리었던 달이 고개를 내밀며 주변을 밝혔다.
400명이 서 있던 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그 부분만 도려낸 듯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검고 평평한 땅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순간
─꿈 뻑
빌딩에 달린 거대한 동공이 뒤룩거렸다.
도저히 사고가 따라가지 못한다.
거대한 무언가가 사람들을, 진지를 통째로 집어삼키더니 눈알을 뒤룩거리고 있었다.
그 비상식이 호진의 발과 머리를 굳게 만들었다.
「정신 내성이 정신 오염에 저항합니다.」
그때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과 함께 호진은 멈춰있던 숨을 토해냈다.
“커헉.”
숨통이 트이자 멈춰있던 머리가 돌아갔다.
눈앞에 있는 것은 물체나 건축물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생물이었다.
인간을 쓸어 담는 탐욕스럽고 거대한 입.
검은색 광택이 흐르는 피부와 굴곡진 거체.
길쭉한 주둥이와 뒤룩거리는 두 눈까지.
그 모습은 흡사 혹등고래를 연상케 했다.
게다가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그래, 그때.’
올림픽대로 근처 공원을 가로지를 때 한강 아래에서 봤던 거대한 그림자.
수면 아래로 얼핏 윤곽을 보인 녀석은 마치 고래를 연상케 했다.
녀석이 분명했다.
그 순간.
─펄럭
지휘 막사에서 백기환 대대장이 나왔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가 있던 지휘 막사를 포함한 박격포병과 같은 일부 병력은 무사한 듯 보였다.
백기환은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젠장.”
호진은 재빨리 하야를 불러냈다.
“주 대위님, 저는 대대장님을 구하러 가겠습니다. 주 대위님은 병사들을…….”
주 대위를 돌아본 호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공포에 질린 한 사내가 있었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동공과 줄줄 흐르는 눈물.
벌어진 입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침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쯧.’
속으로 혀를 한 번 찬 호진은 재빨리 하야 위에 올라탔다.
우선 백기환이라도 구해야 한다.
그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지휘관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어라?’
백기환이 움직였다.
백기환은 눈앞의 괴물을 보고도 몸이 굳지 않았다.
‘저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찌 됐든 그렇다면 그를 구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대대장님!”
호진이 소리쳤지만 백기환은 호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어딘가로 향했다.
뚜벅뚜벅 걸어가던 그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러곤 얼어있는 박격포병을 옆으로 밀어냈다.
‘설마…….’
아니길 빌었지만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상자에 쌓인 고폭탄을 집어 든 백기환.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괴물을 향해 박격포를 쏘았다.
그리고 쏘아진 폭탄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놈을 타격했다.
─쾅!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공기를 타고 저릿한 충격파가 밀려든다.
그러나.
뒤룩.
녀석은 눈을 끔뻑이며 움직이더니 백기환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이내 귀찮다는 듯 눈을 돌리고 솟아올랐을 때처럼 천천히 바닥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괴물이 폭탄을 맞고 쓰러지기라도 했으면 최선이었겠지만.
지금으로 보아선 몇백 발을 맞춘다 해도 그건 불가능할 듯했다.
죽이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게 낫다.
괜히 녀석의 시선을 끌었다가는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백기환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호진이 잠시 하야의 고삐를 당기려던 찰나.
괴물의 시선에 한 차례 몸을 떤 백기환은 재차 폭탄을 양손에 집어 들었다.
‘저 미친 인간이. 진짜 죽고 싶은 건가?’
호진은 아연하여 고삐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지금 백기환에게 다가섰다가는 자칫 괴물의 분노를 함께 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쾅 쾅!
그사이 다시 한번 놈을 타격하는 폭탄들.
하지만 이번에 괴물은 백기환을 쳐다보지조차 않았다.
녀석은 서서히 바닥에 깔린 어둠 속으로 스르륵 사라지다 끝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깜빡
그 순간 주벽을 잠식했던 검은색 땅이 사라졌다.
그러자 주위의 건물들과 가로등에 불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인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무언가.
호진이 괴물이 사라진 자리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백기환,
그가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감염자들을 향해 연신 총을 쏘았다.
‘어째서 감염자가 여기까지?’
호진이 급히 고개를 돌리자 무너져버린 철문이 눈에 들어온다.
대교와 강화도를 나누던 거대한 철문과 벽으로 이루어진 1번 게이트.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모양으로 파손이 되어버렸다.
“대대장님, 이쪽으로!”
재빨리 하야를 몰아 대대장에게 향하던 호진이 외쳤다.
그제야 백기환이 고개를 돌려 호진을 바라봤다.
붉게 핏발이 선 두 눈동자.
옷의 앞섶을 한 움큼 적신 핏물과 입가의 토혈 자국.
호진을 마주 보자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에 언 듯 희미한 웃음이 지나간다.
천천히 고개를 저은 그는 참새를 쫓는 농부마냥 호진을 향해 손을 휘적휘적 저었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돌려 한 손에는 권총을, 다른 한 손에는 박스 같은 것을 들고 대교를 향했다.
‘COMP C─4? 설마 저 아저씨 지금…….’
박스의 겉면에 있는 영어를 읽은 호진은 기겁하며 하야를 몰았다.
백기환은 혼자 대교를 폭파할 셈이었다.
터무니없다.
이미 대교를 넘어온 감염자만 백이 넘어 보였다.
혼자서는 불가능할 터.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 한다.
호진이 고삐를 잡아당기려던 그 순간 누군가 호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살아남은 십여 명의 군인들.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떨리는 손으로 소총을 집어 들고 백기환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타다당
총이 불을 뿜자 감염자들은 백기환에게 다가서지 못한 채 꼬꾸라졌다.
백기환의 뒤를 따르는 군인들.
그들은 방금 동료들을 모두 잃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죽음이 뻔히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일까.
호진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대교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그들은 끝내 대교로 진입했다.
하지만 점점 많은 감염자들이 대교로 몰려오고 있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몰려드는 녀석들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폭탄을 설치하고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대교 언저리에 폭탄을 설치해봤자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그들은 대교의 중심부를 향해 걸어 나갔다.
총알이 떨어지면 기꺼이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감염자와 싸웠다.
백기환의 주변에 선 군인들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그 옆에 두 명의 군인만이 남았을 무렵.
백기환은 드디어 멈춰 섰다.
그는 조용히 박스를 내려놓고 뭔가를 만지작거린 후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그와 남은 군인들은 순식간에 감염자들에 의해 덮쳐졌다.
다음 순간.
시야가 점멸한다.
눈을 태울 것 같은 빛이 터져 나오고 거센 바람이 호진의 뺨을 스친다.
뒤이어 귀가 먹먹할 정도의 굉음이 호진의 고막을 강타했다.
순간 중심을 잃은 호진의 몸이 하야 위에서 비틀거렸다.
“끄윽.”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한 호진은 고개를 흔들며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그 시선 끝에는 불타고 무너져 내린 대교가 있었다.
그들은 끝내 원하던 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호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를 제외하곤 백기환과 병사들의 죽음을 기억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만이 그들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듯했다.
***
수습할 시체들조차 남지 않았다.
군인들 대부분이 잡아먹혔고, 남은 이들은 폭파하는 과정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호진은 불타는 다리를 잠시 망연하게 바라봤다.
잠깐이었다.
그사이에 호진은 세계가 지닌 부조리의 일면을 목격했다.
합리와 이성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에 싸여있던 세상의 민낯은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수많은 생명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어쩌면 인간이 쌓아 올린 노력이란, 치열하게 고민 끝에 내놓은 선택들이란.
모두 무의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호진의 심상에 절망이 차오르던 그 순간.
백기환의 얼굴이, 그의 뒤를 따르던 군인들의 뒷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아드득
호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거칠게 머리를 흔들어 절망을 털어냈다.
그는 부조리를 직면한 인간들의 마지막을 보았다.
부조리한 세계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눈에 새겼다.
그들의 마지막은 분명 무의미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과 신념을 가지고 나아갔고, 그 결과 원하던 것을 이루어냈다.
“가자. 하야.”
호진은 고삐를 당겨 하야의 몸을 돌렸다.
세상이 부조리를 직면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바뀐 세상에서 호진은 몇 번이고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들을 통해 점점 더 강해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분명 이 바뀐 세상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터.
불타는 대교를 등진 호진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