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실존과 부조리 (3)
수백 정의 화기가 불을 뿜었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고 천지가 진동하는 소음이 대기를 가득 채웠다.
대교를 가득 채운 감염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화망(火網)을 뚫진 못했다.
꼬꾸라지고 그 위로 달려와 다시 꼬꾸라지고.
쌓이고 쌓인 시체는 대교를 가득 메우다 못해 난간을 타고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수백정의 자동소총이 감염자들을 말 그대로 분쇄했다.
감염자들의 사지와 신체의 일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대교 위로 붉은 피안개가 피어올랐다.
“어마어마하군요.”
호진은 그 모습에 전율을 느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주 대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지르듯 대답했다.
“아무리 괴물들이라 할지라도 잘 구축된 화망을 뚫을 순 없습니다!”
호진은 여태껏 싸웠던 괴물들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중 몇몇은 화기가 잘 통하지 않았었기에 주 대위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눈앞에서 펼쳐지는 위력을 보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잠시 쓸려나가는 감염자들을 지켜보던 호진은 의아한 듯 주 대위에게 물었다.
“박격포는 안 쓰는 겁니까?”
자세히 보니 K─2, K─6 같은 총으로 된 소형 화기들만 사용할 뿐, 박격포병들은 대기만 하고 있었다.
“대교이지 않습니까. 자칫하면 대교가 끊어질 수 있습니다. 여차할 경우 끊을 수는 있겠지만…….”
주 대위가 말끝을 흐렸다.
괴물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그것도 방법이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강화도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
강화대교가 있기는 하지만, 단 두 개뿐인 육로를 함부로 폭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이 정도면 충분히 막아내겠습니다.”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땅이 살짝 진동하며 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무전기가 깜빡이며 대대장, 백기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놈들이 올라온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
“웜들이 올라온다! 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
여기저기서 명령을 하달하는 고함들이 총성을 비집고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덧 지척까지 밀려들어온 검게 물든 땅 아래에서 거대한 무엇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둥근 모래주머니 같은 머리에 달린 꿈틀거리는 수십 개의 촉수.
하나, 하나가 사람의 수 배는 되는 거대한 촉수 사이로 날카롭게 번쩍이는 이가 엿보였다.
호진은 미끈하고 기다란 거체에서 그들이 웜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사격 개시!””
대교위에 구축되었던 화망은 코앞에 나타난 괴물을 향했다.
총구들이 다시 한번 일제히 불을 토해내자 웜이라 불리는 괴물의 누런 몸체 이곳저곳에서 초록색 피가 터져 나왔다.
“키이이이이이익!”
효과가 있는 건지 웜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허나,
“허!”
녀석을 지켜보던 호진은 낮게 감탄을 터트렸다.
웜의 몸에 난 구멍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수복된 것이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익!”
그때 녀석의 옆에서 두 마리가 추가로 쏟아 올라왔다.
순간 화력이 분산되자 녀석들은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조금씩 전진해왔다.
[전 사수 견제 사격하며 뒤로 후퇴.]
무전기가 반짝이며 대대장의 명령이 하달되자 사수들은 차례로 물러나며 다가오는 녀석들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뒤쪽으로!”
옆에 서 있던 주 대위는 호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호진은 여차하면 싸울 생각으로 검을 쥐었다가 당황하여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캠프를 버리는 겁니까?”
화력을 집중해도 모자랄 때 후퇴라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주 대위는 고개를 저으며 뒤를 가리켰다.
진지의 후방에 배치되었던 4문의 81mm 박격포.
마침 무전기에서 재차 명령이 흘러나왔다.
[타깃 목표지점 도착 10초 전.]
[화력지원 장교가 명령을 하달한다.]
[바람개비 하달된 좌표로 고폭탄 3발 발사.]
‘아.’
박격포를 쏘지 않던 이유는 대교가 무너질 것을 걱정해서였다.
그렇다면 적들을 충분히 끌어들인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진이 박격포들을 바라보자 명령을 전달받은 분대장이 좌표를 외치고, 포수가 목이 터져라 복명복창하고 있었다.
이어 폭탄을 들고 있던 부포수들이 차례로 외쳤다.
“하나 포 발사 둘 삼!”
“둘 포 발사 둘 삼!”
“삼 포 발사 둘 삼!”
─텅
포가 공이를 때리는 소리가 울리고 고각으로 맞춰진 포신을 따라 폭탄들이 연달아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윽고 바람을 가르며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낸 폭탄들이 대교를 빠져나온 괴물들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그리고.
호진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천지를 울리는 듯한 폭음.
총성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폭파의 여파는 공기를 타고 50m가 넘게 떨어진 호진의 몸을 흔들었다.
사방에는 초록색 피가 흩뿌려졌다.
이윽고 아예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초록색 피.
호진은 그것을 맞으며 윔들을 바라봤다.
세 마리에 포가 모두 직격했는지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몸이 엉망이었다.
개중에 두 마리는 그 자리에 쓰러져 절명한 듯 보였고, 한 마리만이 고통스러운 듯 터져버린 몸을 비틀며 꿈틀거렸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연신 앓는 소리를 내는 괴물.
그 벌어진 입으로 둥근 물체 하나가 날아들었다.
“키익?”
녀석은 그 와중에 뭔가가 입으로 들어간 걸 눈치챘는지 이빨이 빼곡히 난 입을 꿈틀거렸다.
녀석의 머리통이 쾅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그와 떨어진 곳에 익숙한 사람이 손가락에 걸려있던 안전핀을 빼서 바닥에 던졌다.
웜의 입안으로 수류탄을 던져 넣은 것은 바로 주 대위였다.
‘저긴 또 언제…….’
호진은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군대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어느새 소총 사수들도 제자리로 돌아가, 대교를 향해 재차 화망을 구축했다.
감염자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더 이상 바닥을 검게 물들이는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차례 또 습격을 막아낸 것이다.
호진이 잠시 넋을 놓고 군대를 보고 있자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멋지지 않나?”
어둠 속에서도 구릿빛 피부가 눈에 띄는 중년이 웃고 있었다.
“어떤가? 지금이라도 입대하겠는가?”
백기환.
자신을 군인으로 만들려 했던 대대장.
그는 유능한 대대장이 분명했다.
수차례 이런 공격을 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런 평가를 받기 충분했다.
호진은 다소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대대장님.”
“그리 오랜만은 아니지. 한 3일쯤 지났나?”
“그랬던가요. 몇 주는 된 것 같습니다만.”
“그쪽도 꽤나 고생이었나 보구만, 하긴 자네들이나 우리나 죽을 맛인 건 같겠지.”
‘자네들이라.’
헌터와 군인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
‘뭐, 적대적이진 않으니 다행인가?’
어깨를 으쓱한 호진은 약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저와는 달리 대대장님이 고생이 많으시죠. 저는 저를 위해 움직일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백기환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런가? 나도 나를 위해 움직일 뿐이네.”
“대대장님이요?”
호진이 의아해하며 반문하자 백기환은 검게 일렁이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입대를 거부한 이유를 들었네. 가족 때문이라지?”
“…….”
호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백기환이 쓰게 웃었다.
“자넨 국가의 부름이라는 의무를 포기했어.”
“그건…….”
호진이 입을 열어 반박하려 하자 백기환은 고개를 저었다.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자넨 선택을 한 것뿐이지. 더 소중히 여기는 쪽을 말이야.”
백기환은 잠시 말을 멈췄다.
한동안 입을 꾹 닫고 있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그의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도 가족이 있었네.”
“…….”
호진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족이 소중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하지만 난 내 자리를 지켰네. 명예를 더 중시했었기 때문이지.”
“……후회하십니까?”
백기환의 말은 모두 과거형이다.
가족이 있‘었’고, 명예를 더 중시했‘었’다.
호진의 물음에 백기환은 그저 다시 쓰게 웃을 뿐이었다.
“……잘 모르겠네. 이제 내게 남은 건 군인으로서의 의무뿐이야. 그러니 지금 내 행동들은 전부 나를 위한 것이지.”
호진은 그런 백기환의 말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호진을 지긋이 바라보던 백기환은 호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니 돌아가게.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자네 같은 원시인은 도움이 안 되니.”
백기환의 얼굴에는 다소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려있었다.
호진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는 대대장님이야말로 저랑 수다나 떨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지금은 내가 딱히 필요 없어 보이는걸.”
그러고 보니 이제 총소리조차 산발적으로 울려 퍼질 뿐이다.
고개를 돌려 대교를 바라보니 대부분 시체로 돌아가 바닥에 나자빠져 있을 뿐, 움직이는 감염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끝난 거군요.”
“한 차례 막아낸 거지. 물론 앞으로도 막아낼 걸세.”
그렇게 떠들고 있던 와중 잠시 어딘가로 사라졌던 주 대위가 모습을 나타냈다.
호진과 백기환을 번갈아 보던 주 대위는 식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 대장님? 대표님에게는 무슨 일로?”
“대표? 아 호진 씨 말인가?”
“예, 예에.”
대표라는 말에 호진은 괜히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대장의 성격이라면 분명 비웃을 거다.
‘젠장. 용재 녀석이고 주 대위님이고.’
호진이 이를 갈고 있자 대대장은 예상 그대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기분 좋게 웃은 대대장은 주대위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별건 아니네. 이제 와서 입대를 권유할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 짓지 말게.”
“네? 아뇨, 그런 사실 없습니다.”
지난번 자신을 포함한 피난민들을 헌터로 만든 것에 대해 제법 혼쭐이 났는지 잔뜩 긴장한 주 대위.
“헌터 대표인 그에게는 중요한 임무를 하달했네. 그러니 앞으로도 이호진 대표의 부탁은 웬만하면 들어주게.”
“예, 알겠습니다. 충성!”
“충성.”
인사를 받은 백기환은 몸을 돌려 다시 지휘 막사로 향했다.
주 대위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호진을 바라보자, 호진은 그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나도 얼떨떨하긴 하네.’
경계하고 있던 대대장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도울 줄은 몰랐다.
물론 대대장이 돕든 말든 마음대로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명분이라는 건 언제나 있어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니.
“저 인간이 뭐랍니까?”
“들으셨잖아요. 특별한 임무를 부탁받았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주 대위가 눈치 좋게 고개를 끄덕이자 호진은 마주 끄덕인 후 말했다.
“우선 저는 제 일행들부터 봐야겠습니다. 9번 게이트로 가면 되나요?”
“제가 안내해드리죠.”
“감사합니다.”
호진은 대교를 한번 힐긋 보고 돌아섰다.
상황을 보아하니 탄약도 충분한 듯하고, 주 대위의 말처럼 여차하면 군은 다리를 끊을 것이다.
자신이 이곳에서 뭔가를 돕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일행들을 만나 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하다면 군을 돕는다.
‘그리고도 여전히 내가 도울 상황이 아니라면 사람을 추려 형에게 돌아가야지.’
계산을 마친 호진은 기쁜 마음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덧 대교 앞을 지키는 병사들이 새끼손가락만 하게 보일 때쯤.
갑자기 호진의 발 주변 바닥이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주 대위님, 바닥이…….”
호진은 소리치다 말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검은색 형체가 길바닥과 건물들마저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캠프 안의 빛이 사라지고, 지독한 어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