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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40화 (40/241)

40화. 실존과 부조리 (2)

“저도 갈게요.”

예은이 화살통을 고쳐 메며 호진에게 말했다.

그러자 서둘러 망루를 내려갈 채비를 하던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혼자 갑니다.”

“하지만…….”

“지금은 빨리 가는 게 중요할 듯합니다. 이거.”

호진이 무전기를 예은에게 던지며 말을 이었다.

“상황에 따라 연락하겠습니다. 예은 씨는 용재랑 이곳을 사수해주세요.”

힘들게 얻은 농장이다.

자리를 비운다면 리자드맨이 아니더라도 또 다른 몬스터들이 터를 잡을지 모르는 일.

가능한 한 지키고 싶었다.

예은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네. 다녀와서 봐요.”

호진은 망루를 뛰어내리다시피 내려와 곧장 뼈 피리를 불었다.

─삐이이이익

어둠 속에서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는 하야.

“바로 불러내서 미안하다. 부탁 좀 하자.”

호진이 하야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두드리자, 하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더니 스르륵 몸을 낮췄다.

호진은 곧장 하야 위로 올라타 고삐를 당겼다.

“전속력으로 가보자.”

“그르르르릉.”

하야는 대답이라도 하듯 가볍게 몸을 떨며 숨을 들이켜더니 질주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고 귀가 웅웅거렸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속도감.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속도에 가속 구간 없이 돌입했다는 것이다.

호진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길을 살폈다.

“오른쪽!”

호진은 상황에 맞춰 말로 명령을 내렸고, 하야는 지체없이 길을 찾아 달렸다.

하야가 가지 못하는 길은 없었다.

필요하다면 산을, 내천을, 주택가를, 도로를 질주했다.

십 수 미터 폭의 거리도 가볍게 뛰어넘으며 내달리는 하야.

심지어 괴물들도 하야의 등장에 대부분 꽁무니를 빼기 바빴다.

종종 이를 드러내는 괴물들도 있었으나, 무시하고 달려버리면 녀석들이 쫓을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달린 지 30분.

저 멀리 낮처럼 환하게 빛나는 캠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나절이 넘게 걸어 마니산까지 왔던 지난 일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

호진은 허탈한 웃음을 살짝 뱉어낸 뒤 캠프로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때.

─웅성웅성

한 무리의 사람들이 캠프의 밖으로 줄지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긴 분명…….’

10번 게이트.

호진이 호연을 찾아 마니산으로 향할 때 나왔었던 게이트였다.

무리 중간중간에는 군인들이 섞여 빨간 야광봉을 흔들며 사람들을 인도 중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가려던 호진은 문득 하야를 내려다보며 멈칫했다.

이대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괜한 경계를 살지도 모른다.

“수고했다. 하야.”

호진이 잠시 멈춰선 하야의 목을 쓰다듬자 하야는 기분 좋게 그르렁거렸다.

그리고 등장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일렁이는 푸른 불꽃과 함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호진은 검 한 자루만 허리에 찬 채 군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입고 있는 코트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니 쓸데없는 오해는 사지 않을 터다.

“떠들지 않습니다. 조용히 이동합니다.”

“줄 똑바로 서십시오.”

차갑고 날이 선 듯한 군인들의 목소리.

군인들은 사람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외치며 대열을 유지시켰다.

‘그렇군.’

이들은 피난민이다.

캠프가 위험하기에 다른 곳으로 대피하려는 모양.

‘확실히 강화대교 쪽에 다른 캠프가 하나 더 있다고 했던가?’

지금의 캠프가 위치한 곳은 강화도 남쪽에 위치한 강화 초지대교다.

그리고 강화도 북쪽에 군청과 가까이 위치한 강화 대교에는 이곳보다 더 큰 규모의 캠프가 존재한다고 들었다.

호진이 고개를 끄덕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군인 하나가 인상을 잔뜩 구기며 호진을 향해 걸어왔다.

“대열 이탈하지 말라는 말 못 들었습니까?”

아무래도 군인이 자신을 피난민으로 착각한 듯했다.

“아, 그게 아니고 저는…….”

호진은 차분히 군인에게 상황을 설명하려 했으나 군인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금은 전시입니다. 명령에 따라주지 않으신다면 체포하겠습니다.”

군인은 협박과 동시에 호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호진은 그런 군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손속이 거칠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군인의 대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호진이 군인을 멀뚱히 쳐다보자 군인은 당황한 듯 스륵 손을 내렸다.

“……알아들으셨으면 빨리 대열로 돌아가십시오.”

“주세현 대위.”

“?”

“주 대위와 연락시켜주시죠. 캠프 안쪽에 볼일이 있습니다.”

“……혹시 군인이십니까?”

주 대위의 이름을 대는 순간 군인의 눈이 가파르게 떨렸다.

캠프 내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신의 이름을 대라더니, 과연 현장을 직접 뛰어서 그런지 나름 이름값이 먹혔다.

“비슷합니다.”

호진은 군인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자 군인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속이나 뭐 그런 건 없습니까?”

“그런 건 없고, 여기 무전기가…….”

무전기를 꺼내려던 호진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무전기는 예은에게 던져주고 왔다.

“미안한데, 무전기 좀 빌리겠습니다. 주 대위와 연결해 주시죠.”

“…….”

군인은 한층 더 미심쩍은 표정이 되어 무전기를 꺼내 채널을 바꾼 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여기는 하사 김민수입니다. 주세현 대위님 계십니까.”

[무슨 일인가?]

“여기 대위님이 신분을 증명해주길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장난하나? 바빠 죽겠는데 무슨 소리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군인은 호진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군인 사칭죄는 가볍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양손이 보이게 들어 올리세요.”

‘이런.’

호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이런 실랑이를 버릴 시간이 없다.

호진이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무전기가 다시 한번 울렸다.

[……혹시 검은색 코트에 검을 차고 있는 남성인가?]

군인은 고개를 돌려 호진을 훑어보더니 순간 몸을 굳혔다.

주 대위의 인상착의와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군인은 떨리는 호진을 향해 물어왔다.

“혹시 성함이?”

‘빨리도 물어본다.’

호진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이호진입니다.”

군인은 식은땀을 훔치며 무전기를 눌렀다.

“인상착의 일치합니다. 이호진이라 하는 남성입니다.”

[이 멍청이가! 이름을 먼저 말했어야지! 빨리 안쪽으로 정중하게 모셔!]

순간 군인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곤 구십도로 허리를 꺾어 호진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 대위가 한껏 강하게 말한 탓인지, 군인은 한껏 고개를 숙였다.

호진을 군 관계자인 높은 사람으로 인식한 듯하다.

“괜찮습니다.”

“정말 죄송합…… 읍.”

심지어 그는 사과를 하다 혀까지 씹었다.

‘그냥 처음부터 이름을 말할걸. 좀 미안하네.’

호진은 군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보다 빨리 가시죠.”

“네, 넵!”

그렇게 호진은 줄지어 캠프를 떠나가는 피난민들을 뒤로한 채, 캠프의 안을 향했다.

***

캠프 내부는 저번에 들렀을 때보다 썰렁했다.

생존자들은 게이트 쪽에 모여 있고 캠프 안에는 군인들만이 바삐 뛰어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리번거리던 남자는 호진을 발견하더니 빠르게 다가왔다.

“대표님!”

“주 대위님.”

군복과 총기로 무장한 주 대위는 항구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복장이었다.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최대한 빨리 와봤습니다. 저희 헌터들은 어디에?”

박 순경을 포함한 김포 생존자 그룹, 즉 헌터들의 안부를 묻자 주 대위는 설핏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무사하십니다. 9번 게이트에서 강화군청 캠프까지 피난민들을 보호하며 이동할 준비 중입니다.”

“그렇군요.”

현 상태는 예상대로였다.

피난민들을 대피시키고 군인들이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내는 중인 것이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요?”

“……그게. 그렇습니다.”

주 대위는 안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조용한데요.”

“가서 보시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주 대위를 따라 이동한 것도 잠시.

초지대교의 입구인 캠프의 1번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대급이 조금 안 되는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피난민들을 보호하는 인원들을 고려하면 대대 전원이 모인 거나 마찬가지다.

“이곳이군요.”

“맞습니다. 다리를 한번 보시죠.”

다리 위에는 김포에서 봤던 감염자들이 셀 수 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거대한 생물체 또한 군데군데 모습을 비췄다.

“저건 뭡니까?”

“모릅니다.”

호진의 질문에 주 대위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가 아는 건 저 괴물들이 감염자들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이상한 능력을 쓴다는 겁니다.”

“이상한 능력이라 하시면?”

“그게…… 순간이동을 합니다.”

“……?”

호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주 대위는 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저 괴물들은 다리뿐이 아니라 캠프 안에서도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호진은 그제야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을 깨달았다.

진지는 대교 쪽을 향해 구축되어 있었지만 군인들은 뒤나 옆, 심지어 진지 안쪽을 배회하며 습격을 대비 중이었다.

“다행히 징후는 있습니다.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그 일대의 바닥이 검게 물듭니다.”

“……저런 식으로 말입니까?”

호진이 다리를 보며 떨떠름하게 묻자 주 대위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새까맣게 물든 다리와 그 위를 뒤덮은 감염자 무리.

“……맞습니다. 또 시작됐군요.”

다음 순간 무전음들과 고성이 시끄럽게 오가고 군인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한 거 아닙니까?”

다리 넘어 포구까지 살필 수 있는 호진이 걱정스레 물었다.

수천, 어쩌면 만이 넘을지도 모르는 감염자들과 정체 모를 괴물들까지.

고작 400명도 안 되는 인원들로 저들을 막아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물음에 주 대위는 슬쩍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제가 호진 씨를 모셔온 건 어디까지나 대비책 중 하나일 뿐입니다.”

때마침 주 대위의 무전기에서 불이 켜지고, 귀에 익은 대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 부대 사격 준비.]

─철컥

차가운 금속음이 울려 퍼지고, 다음 순간.

[사격 개시.]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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