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농장 탈환 (5)
─콰직
머리가 으깨진 리자드맨이 꼬꾸라졌다.
신전 입구를 틀어막은 3마리의 골렘은 팔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며 리자드맨들을 분쇄했다.
리자드맨들이 거세게 밀어붙였지만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적들이 리자드맨들뿐이었다면 골렘들만으로도 승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케르르르르륵!”
뭔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신전 앞을 가득 메운 리자드맨들이 일순 길을 텄다.
그 와 동시에 빠르게 접근하는 무언가.
“또 온다! 누나!”
“맡겨둬.”
랩터를 탄 리자드맨 기수 셋이 추형진(錐形陣)을 유지한 채 달려왔다.
스미스 위에 올라탄 예은은 골렘들 머리 위에 난 공간을 향해 활을 겨눴다.
‘퀵 노킹(Quick Nocking).’
화살 두 개를 손가락 마디에 낀 채, 화살 하나를 시위에 걸은 예은은 연속으로 활을 당겼다.
─핑 핑 핑
손에 들린 화살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초 단위로 쏘아진 화살 세 발.
달려오던 리자드맨 기수들 중 뒤쪽의 두 명이 바닥을 굴렀다.
반면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녀석은 고개를 비틀어 자신의 투구로 화살을 비껴 받아냈다.
─캉!
작은 불꽃을 튀긴 화살은 힘을 잃고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칫. 아까워 죽겠네.”
예은은 혀를 차며 활통의 활을 찾아 손을 휘저었다.
손끝에 거리는 짧은 화살 하나.
애기살이다.
통아(桶兒)가 없으면 당길 수 없는 화살이기에 예은은 급히 다른 화살을 찾았지만, 다른 화살은 잡히지 않았다.
‘설마.’
예은이 급히 화살통으로 눈을 돌리자 화살통에는 애기살 하나만이 달랑 들어있었다.
100발이 넘던 화살을 모두 사용한 것이다.
“막아!”
“어? 어!”
예은이 급하게 외치자 용재와 스미스가 급하게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충분히 접근한 선두의 기수.
녀석은 한순간에 신전의 계단을 뛰어올라 입구의 골렘을 향해 날아들었다.
목표는 중앙에 위치한 골렘이었다.
발톱을 세운 랩터가 두발을 힘껏 그러모았다가 먹이를 낚아채듯 골렘을 덮쳤다.
─쾅
강렬한 충돌음이 울려 퍼지고, 골렘이 기우뚱 뒤로 넘어졌다.
사방으로 골렘의 돌조각이 비산했다.
리자드맨 기수는 잠시 통로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다 용재에 이르러 고개를 멈췄다.
“키륵”
나지막하게 울부짖은 녀석은 곧장 타고 있던 랩터를 몰아 용재를 향해 내달렸다.
짧은 거리임에도 순식간에 가속도가 붙었다.
“케르르르르륵!”
리자드맨 기수는 회심의 미소를 띠며 창을 뻗었다.
그 순간.
“으아아아아아!”
용재의 고함소리가 통로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리자드맨의 창끝이 약간 흔들리고, 그 틈에 어깨에 견갑으로 창을 받아낸 용재가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참마격(斬馬擊)!”
─콰짓
뭔가가 찢기고 부서지는 파열음과 함께 랩터의 몸이 폭발하듯 양분된다.
그 충격에 위에 타고 있던 기수가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케, 케륵?”
바닥에 쓰러진 녀석은 철갑을 두른 랩터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간 게 믿기지 않는 듯 연신 눈을 뒤룩거렸다.
“인간이 강하니까 이상해?”
용재는 아직도 수레에서 봤던 시체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 이를 뿌득 갈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일반인들 상대로 강한 척들은 실컷 했겠지.”
용재가 자신의 도끼를 치켜들었다.
랩터를 갈라버렸던 용재의 도끼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이를 본 리자드맨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서걱
급히 위협하듯 소리를 내뱉던 녀석의 머리는 바닥을 구르며 그 소리를 멈췄다.
성대를 잃은 잘린 목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날 뿐이었다.
“…….”
용재는 잠시 쓰러진 녀석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는 적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넘어졌던 골렘은 이미 리자드맨들에게 끌려가 조각난 지 오래.
골렘의 약점은 관절과 목 뒤에 있는 코어다.
진형을 짜고 정면을 지킬 때는 무적에 가깝지만, 적들에게 둘러싸인다면 의외로 손쉽게 무너졌다.
양옆에 서 있던 골렘들도 옆과 뒤를 내주자 빠르게 관절 부위들이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이젠 남은 골렘도 없다.
적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골렘의 수를 줄여나갔다.
남은 건 눈앞에서 무너져가는 골렘 두 기와 스미스뿐.
“남은 골렘들은 지켜야 해. 밀어 올리자.”
어느새 용재 옆으로 다가온 예은이 대거 두 자루를 뽑아 들며 말했다.
“그래야지. 내가 쓰러진 골렘을 대신할게. 스미스는 전열을 끌어올려서 시간 끌어줘.”
끄덕.
고개를 끄덕인 스미스가 통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입구로 진입했던 리자드맨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그들이 피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득 우지직 퍼걱
스미스는 순식간에 놈들의 피로 몸을 적시며 입구까지 내달렸다.
그러고는 골렘들에게 들러붙은 리자드맨들의 머리통을 으깨버리곤 밖으로 몸을 날렸다.
일기당천(一騎當千).
지금의 스미스는 그렇게밖에 설명이 불가능했다.
“오오오오오!”
그 모습에 용재가 전율하더니, 스미스가 마무리 못 한 리자드맨들을 베며 나아갔다.
“질 수 없다!”
“……스미스한테는 져도 돼, 멍청아.”
예은이 한숨을 쉬며 뒤를 쫒고 용재는 도끼를 휘두르며 입구까지 나아갔다.
“전부 덤벼라!”
야만전사(Barbarian) 특유의 광분 스킬을 사용한 용재의 도끼질은 휘두를수록, 상처 입을수록 점점 더 예리해지고 빨라졌다.
스미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거친 도끼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적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스미스와 용재의 활약은 예상보다 뛰어나, 침착하게 전장을 분석하던 예은조차 마음이 놓일 정도였다.
적들도 처음에 비하면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이제 남은 건 멀찌감치 서서 간 보듯 이쪽을 지켜보는 리자드맨 기수들뿐.
일반 리자드맨들의 경우 거의 전멸에 가까웠다.
그나마 얼마 안 남은 녀석들도 실시간으로 스미스와 용재의 손에 줄어드는 중이다.
이제 승기를 다 잡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호진 씨는 대장을 잡아온다더니. 그전에 끝나겠네.”
예은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다 문득 표정을 굳혔다.
“……설마 지신 거는 아니겠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섰는데 질 리가…….”
그 순간 예은의 머릿속에는 최근 호진의 허당 같은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요즘 용재랑 붙어 다니시더니…….’
문득 불안해진 예은은 통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펄럭
입구로 들어오던 빛이 사라지더니, 뭔가 천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고개를 돌리던 예은은 말을 마저 잇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용재도 도끼질을 멈추고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너무나 무방비한 태도.
그러나 리자드맨들이 그런 용재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리자드맨들이 전투를 멈추고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기 때문이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개를 펄럭이는 칠흑색의 괴물.
용과 닮은 그 괴물을 호진은 이렇게 불렀었다.
“와이번…….”
예은이 덜덜 떨리는 입을 열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어디선가 날아든 와이번의 발 아래에는 하체가 사라진 스미스의 상반신이 깔려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사이에 일행 중 최고 전력이었던 스미스가 당했다.
“텟─킬라카!”
그때 와이번 위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예은은 그제야 와이번의 몸통 위에 얹어진 안장이 보였다.
안장 위에는 황금색 갑옷과 무구를 든 리자드맨이 앉아 있었다.
황금색 리자드맨이 들고 있던 창을 높게 들어 올리자, 어디선가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
그와 동시에 땅이 흔들리며 저 멀리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멀리서 신전의 입구를 바라보던 리자드맨 기수들.
그 뒤로 적들이 새카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죽인 녀석들과 비슷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적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 가장 선두에는 스테고사우르스를 닮은 괴물이 있었다.
다만, 수레를 끌던 녀석들과 다르게 온몸이 철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꼬리에는 사람보다 큰 철추가 달려있었다.
─쿵 쿵 쿵 쿵 쿵
녀석이 입구로 향할 때마다 미세하게 땅이 떨려왔다.
괴물이 점점 속도를 높이자, 입구에 엎드렸던 리자드맨들이 슬그머니 몸을 피했다.
“용재야, 뒤로 물러나!”
“누나, 스미스는……!”
예은이 급히 스미스의 상태를 살폈지만, 스미스는 와이번 발아래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나중에 수습하자. 일단 물러나.”
“……시발!”
분한 듯 욕을 내뱉은 용재가 뒤로 물러났지만, 문제는 골렘들이었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던 골렘 두 기는 스미스의 마지막 명령에 따라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간신히 지켜낸 골렘들이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곧 저 괴물이 저들을 향해 거대한 철추를 휘두를 테니까.
이제 입구에서 떨어져 통로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버티다 보면 뭐가 되는 거지?’
예은은 꺾여버릴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다잡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와이번이 내려앉은 곳을 지나친 거대한 괴물은 이제 신전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녀석의 뒤로 리자드맨 대군이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이제와 호진이 돌아온다고 한들 이 전력 차를 뒤엎을 수는 없다.
명백한 패배다.
아슬아슬하게 가져온 승기는 예상치 못했던 적들의 등장으로 인해 무참하게 짓밟혔다.
‘이렇게 끝인가?’
예은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한 줄기의 바람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
용재 특유의 황당함이 묻어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기시감이 드는 상황.
서둘러 예은이 눈을 뜨자.
─쿵!
목을 잃어 비틀거리는 거대한 괴물이 바닥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위에 검을 괴물의 목 위에 박아 넣은 채 미동도 않고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예은와 용재를 내려다보며 쓰게 웃음 지었다.
늘 위기의 순간에 판을 뒤집어 버리는, 예은이 지닌 상식을 늘 뛰어넘는 사람.
이호진.
그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던 일행을 향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조금 늦었네.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