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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26화 (26/241)

26화. 군대와 헌터 (3)

“안녕하세요. 이호진입니다.”

“아, 어서 오게. 나는 30여단 2대대 대대장, 중령 백기환이라고 하네.”

40대로 보이는 구릿빛의 남성이 서류를 뒤적거리다 몸을 일으켜 악수를 건네 왔다.

호진이 그 손을 마주잡자 단단하고 굳센 느낌이 그대로 느껴졌다.

‘군인의 손이네.’

관리가 잘 안 돼 굳은살이 박이고 메마른 손바닥.

아무래도 서류작업보다는 몸으로 뛰는 것을 선호하는 쪽의 사람인 듯하다.

“어젯밤에는 편히 쉬었나?”

“대대장님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편하게 쉬었습니다.”

“허허,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당연한 걸 했을 뿐인데.”

기분 좋게 웃은 대대장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질문을 이었다.

“김포를 가로질러 왔다고 들었네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그래? 총도 없이?”

“총이라면 한 자루 있었을 겁니다. 일행 중 경찰이 있었기에.”

“아, 그 권총 말인가? 허허, 그렇지. 그것도 총이긴 하지.”

대대장은 호진의 답변이 재밌다는 듯 연신 웃음을 짓더니 돌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헌터라는 게 진짜 있기는 한가 보군…….”

‘헌터가 뭐지?’

호진이 의아하게 대대장을 쳐다보자, 그 시선을 눈치챈 대대장이 의외라는 듯 호진에게 물었다.

“헌터에 대해 모르나?”

“처음 듣습니다.”

예은의 직업이 ‘헌터’이긴 한데, 그걸 말하는 건 아닌 듯했다.

대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뭔가 깨닫고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아. 그래. 헌터는 정부 쪽에서 붙인 말이었지. 그…… 뭐라더라. 플…… 뭐였는데?”

“플레이어 말이십니까?”

“그래, 그거. 역시 자네도 플레이어인가 보군.”

“맞습니다. 그럼 헌터라는 건?”

“정부 쪽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플레이어들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더군.”

“……정부가 기능하고 있습니까?”

호진은 사건 이후 한 번도 정부의 존재를 느껴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고 여기고 있었다.

“물론이네. 꽤 타격을 입은 듯하지만. 수도권의 군부대와 경찰들은 정부 지침에 따라 서울 북쪽을 기점으로 하루가 채 지나기 전에 수도권 탈환에 성공했지.”

‘놀라운걸.’

생각해 보니 호진은 사건이 터진 지 하루가 지난 시점에 이미 김포에 있었다.

서울 집에 얌전히 숨어있었다면 어렵지 않게 구출됐을 거라는 의미.

‘후회하진 않지만…….’

조금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서울에 남은 신 사범이나 다른 사람들이 안전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군부대를 중심으로 지역들을 탈환하는 중이네. 우리는 강화도를 안전구역으로 확보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고.”

“그렇군요. 그럼 강화도는 지금 안전구역이라는 말씀인가요?”

호진이 반색하자, 대대장은 살짝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작업 중이지. 우리는 김포 쪽에서 넘어오는 괴물들을 막는 게 역할이라.”

하긴, 한 개 대대로 강화도를 커버할 수는 없을 거다.

이들의 역할은 쉽게 말해 댐을 짓기 위해 설치한 뚝 같은 거다.

다리에서 괴물들의 유입을 막으며 강화도의 괴물들과 게이트를 소탕하면 안전구역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대대장이 이어 말했다.

“정부쪽에서는 헌터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관리하라고 당부하더군. 처음에는 칼이니 활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 코웃음을 쳤네만.”

대대장은 다시 생각해도 웃긴다는 듯 조소하다가 호진과 눈을 마주치고 큼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나 보군. 자네들이 김포를 무사히 통과한 걸 보면 말이야.”

“저는 괜찮습니다.”

호진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마주치자 대대장은 다시 씩 웃어 보였다.

“좋군. 계엄령이 내려진 지금 자네는 징집 대상이네만. 정부에서 플레이어들은 시험을 치르고 헌터로 징집하라는 지시가 있었네.”

“시험이라 하면?”

“나도 잘 모르네, 매뉴얼이 오긴 했는데 레벨이니 뭐니 뭔 소린지 모르겠더군. 그리고…….”

호진을 힐끗 바라 본 대대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리 칼을 잘 쓴다고 해도 총을 쥔 상대를 이길 수는 없는데 말이야.”

대대장의 눈빛에는 은연중에 무시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호진은 군필자로서 대대장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어제의 박격포도 그렇지만, 총을 비롯한 현대 화기의 위력은 검 같은 냉병기와 비교할 수 없다.

‘멀쩡한 총이 있는데 예비군에게 검이나 도끼를 쥐여주는 건 이상하긴 하지.’

“이해합니다.”

호진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대대장은 환히 웃어 보였다.

“그래, 아무리 헌터니 뭐니 해도 말이야. 응.”

잠시 말을 쉰 대대장은 호진을 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동원령이 발표된 지 3일이 지났네. 이틀 후엔 자네도 군에 배속될 텐데, 지금 자진입대하는 건 어떤가?”

“거절하겠습니다. 그전에 갈 곳이 있어서.”

호진은 대대장의 권유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이곳에 형이 없다면 강화도를 뒤져야 한다.

군에 입대하면 그럴 자유나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말과는 달리 꽤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대답한 대대장은 말을 이었다.

“다만, 이틀 후에는 입대를 유보할 수 없네.”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회수했던 무기들을 돌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가져가는 거야 자유지만, 무기를 소지한 채 캠프 내에 돌아다니는 건 허락할 수 없어.”

“알겠습니다. 무기를 받는 대로 캠프 밖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호진은 가볍게 목례 후, 몸을 돌려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대대장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지만 딱히 호진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제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군인이라니.’

집무실 밖으로 나온 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토했다.

아무래도 형을 찾는 대로 대대장이 말한 헌터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

***

─웅성 웅성

우선 캠프로 돌아온 호진은 묘하게 캠프가 소란스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경비고 불침번이고 당장들 그만둬!”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 소란의 중심지로 가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박 순경님.”

“아, 호진 씨!”

호진이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박 순경을 부르자 그 표정이 환해졌다.

“무슨 일입니까?”

호진이 다가서자 박 순경과 대립하던 중년 남성이 호진을 향해 대뜸 삿대질을 해댔다.

“어이, 당신이 저 사람들 대표야?”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면에 반말은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호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지긋이 쳐다봤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중년 남성은 호진의 눈을 피하며 다시 물었다.

“……큼, 그쪽이 대표냐고 물었네만.”

“말씀해 보시죠.”

호진이 대답하자 중년 남성은 재차 일행이 있는 모여 있는 쪽을 삿대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네 사람들이 이곳에 불안을 조장하고 있소! 경비니 불침번이니 하면서 돌아다니질 않나. 기껏 나눠준 음식들을 소분해서 모아 두질 않나.”

호진은 대답 대신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호진의 일행은 일행끼리, 기존의 피난민들은 피난민들끼리 나뉘어 모여 있다.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이질감이 결국 갈등을 만들고 만 듯했다.

초반에 캠프에 들어온 피난민들과 밖에서 몬스터들과 혈투를 벌이다 온 일행은 사고 구조 자체가 전혀 달랐다.

호진의 일행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생존에 최적화된 행동양식을 추구하는 반면, 기존의 피난민들은 평범한 삶을 추구했으니 괴리가 발생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수백이 넘는 괴물들과 싸웠다는 거짓말들이나 치고 말이야.”

그가 일행들을 바라보며 조소하자 순간 분위기가 갈렸다.

기존 피난민들은 남자의 말에 동의를 표하는 듯했고, 일행 쪽은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호진은 우선 그를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알겠으니 우선은 돌아가시죠.”

“뭐요?”

“제가 얘기를 해볼 테니 우선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저희도 적응할 시간을 주시죠.”

호진의 순순한 대답에 남자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있다가 또 올 테니까. 그때까진 잘 얘기해 두시라고!”

남자가 획 하니 몸을 돌리는데 그때 박 순경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전에. 한 가지 정정해 주시죠.”

“뭐야? 이거 안 놔?”

남성은 박 순경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중년의 남성은 순간 자신을 움켜쥔 손에서 항거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당신이 거짓말이라고 한 싸움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거짓말이라는 그 말은 정정해 주셔야겠습니다.”

12명의 아파트 생존자 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리던 박 순경으로선, 그들의 투쟁과 희생을 무시한 중년남성의 발언을 용서할 수 없었다.

─우득

박 순경이 쥔 어깨에서 뼈가 비틀리는 소리가 나고 중년 남성은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미…… 미안해. 아니 미안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존의 피난민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좋지 않네.’

호진은 재빨리 박 순경에게 다가가 손을 얹었다.

“사과도 받았는데 이쯤 하시죠.”

호진의 중재에 박 순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놨다.

“히익.”

풀려난 남성이 허겁지겁 뛰어 사라졌다.

피난민들도 어제와 달리 겁먹은 표정으로 일행들과 거리를 벌렸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한층 더 복잡해진 기분이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거 참, 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 온 모양입니다.”

아침에 인사했던 대위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주세현 대위입니다.”

“이호진입니다. 확실히 좋은 타이밍은 아니군요.”

호진이 쓰게 웃자 대위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문제입니다. 해결 방안을 논의하고자 하는데, 시간 괜찮겠습니까?”

“일행과 함께 이야기를 듣죠.”

“편하게 하십시오.”

호진의 대답에 대위는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잠시 후.

주연과 주호를 포함한 아파트 생존자 11명.

이방인 14명.

그리고 박 순경, 예은, 용재를 모두 모은 호진은 공터에 둘러앉아 대위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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