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21화 (21/241)

21화. 안개 낀 해안가 (4)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음, 좋네.”

‘투구 가르기’와 새로 얻은 투핸디드 소드의 조합.

둘의 시너지가 상당했다.

「단단한 투핸디드 소드(Schwer Two─handed sword)」

「종류: 투핸디드 소드」

「정보: 단단하고 무거운 제국 북부식 대검입니다.」

외형은 평범하지만 10킬로는 너끈하게 나가는 이 투핸디드 소드는 ‘투구 가르기’와 분명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단단하던 장로의 팔을 자른 것에 그치지 않고 몸을 마른 장작처럼 세로로 쪼개 버렸다.

호진이 지닌 기술 중엔 분명 손꼽히는 일격이 분명했다.

‘투핸디드 소드(Two─handed sword)는 사람을 찢어.’

호진은 고개를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놈, 보스는 아닌 것 같은데?’

‘코볼트 정찰조장’ 같이 네임드 급은 될지도 모르겠지만, 보스라 보기엔 많이 애매했다.

당장 쇼핑몰에서 싸운 고블린 챔피언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안 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D급 던전의 보스가 이 정도일 리는 없었다.

“호진이 형, 이쪽은 끝났어.”

마침 뒷정리를 하던 용재가 다가왔다.

“이상한 건 없었어?”

“응, 특별한 뭔가는 없던데?”

“……설마하니 전부 죽을 줄은 몰랐네.”

호진은 피에 젖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장로를 죽이고 몇 명을 붙잡아 심문하려던 호진은 장로가 죽는 순간, 그 계획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장로가 죽자 마을 주민들은 단체로 멈춰 섰다.

그리고 돌연.

─푸욱

몇몇이 자신들의 목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그것을 신호로 시작된 광기의 현장.

몇몇은 각진 동굴 벽면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또 일부는 작살을 복부 깊숙이 쑤셔 넣었다.

죽어가는 그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멍하게,

누군가는 울부짖으며,

또 누군가는 서럽게 울어가며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그 다양한 표정 아래 모두들 희미한 공포가 어려 있었다.

호진이나 그 일행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주민들의 기행에 놀란 것은 오히려 일행들이었다.

삽시간에 벌어진 집단 자해와 자살.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한 것일까.

자신의 목숨을 직접 끊을 정도의 공포.

호진은 그 공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들의 행동에 기괴함과 공포감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까지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던전 클리어 알림도, 퀘스트 클리어 알림도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이곳에는 보스도, A─3지역을 초토화할 ‘무언가’도 없었다.

어느새 남은 시간은 2시간 40분.

호진과 일행은 동굴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곳에 뭔가 없다면 나가서 바닷속이나 해안가를 찾아봐야 할지도 몰랐다.

‘던전이라는 특성상, 공간적인 제약이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었다.

이전에 들어갔던 ‘개미굴’만 해도 끝까지 가 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쪽도 없어요.”

그때 용재와 반대쪽을 찾던 예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호진에게 다가왔다.

‘나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은데……?’

호진은 사용한 검들을 갈무리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문뜩 동굴 한 벽면을 가리고 있는 붉은 천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봤던 영화에선 이런 가림막 뒤에 땅굴을 팠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재단에 정신이 팔려 그 뒤에 있는 벽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호진은 정비된 검을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수납한 후 붉은 천을 향해 손을 뻗었다.

─틱 스르륵

약간 힘을 주자 실밥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천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천 뒤의 벽면.

그곳에는.

양각된 벽화 조각이 있었다.

거대한 개구리? 아니 물고기인가.

다시 보니 죽은 장로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물 위로 우뚝 서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이게 놈들이 믿던 신인 건가?’

호진이 양각된 조각을 손을 뻗어 쓰다듬자,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욱신거렸다.

“으윽.”

호진은 비틀거리면서도 본능적으로 벽화에서 고개를 돌리고 거리를 벌렸다.

속이 매스껍고 울렁거렸다.

갑자기 심한 멀미와 두통이 몰려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웁.”

참지 못하고 토를 쏟아낸 호진은 바닥을 한 바퀴 뒹굴었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옅은 숨만이 목구멍 아래로 헐떡였다.

벌겋게 충혈된 눈에서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덜덜 떨면서 호진은 양 귀를 틀어막고 몸을 웅크렸다.

아무런 전조 없이 찾아온 고통에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점점 떨림이 가라앉았다.

조금 더 지나자 매스꺼움도 차차 나아졌다.

‘……뭐에 당한 거지. 독?’

호진은 아직도 미세하게 경련하는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호진은 바닥에 쓰러진 용재와 예은을 발견했다.

“젠장.”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진 둘을 보고, 호진은 급히 달려가 그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맥박은…… 있다.’

호흡도 일정했다.

눈을 까뒤집긴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며 다치지도 않은 듯 보였다.

발열이나, 반점, 호흡곤란 같은 중독 증상도 없었다.

고통스러워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둘은 순식간에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호진은 우선 둘의 자세를 편하게 눕힌 후, 호흡하기 편하게 목 뒤쪽에 옷가지를 받쳐줬다.

천천히 일어난 호진은 주변을 살폈다.

자신과 일행이 갑자기 쓰러진 것은 벽면에 걸린 천을 치운 후였다.

‘천에, 혹은 조각에 뭔가 함정이 있었던 걸까?’

호진은 조심스레 벽면으로 다가가 다시 한번 조각을 살폈다.

그 순간.

─띠링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정신 내성 LV.1」

「정신 내성 LV.1(레어) : 강인한 정신력으로 정신 오염에서 회복하였습니다.」

「정신력을 높여 정신 오염에 저항합니다.」

‘이건?’

갑작스럽게 생겨난 스킬.

그제야 호진은 자신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 오염이라니……. 당황스럽네.’

아무리 괴물들과 싸워온 호진이라도 이런 일은 상정하지 못했기에 사뭇 당황했다.

중독이 문제라면 예방책을 세울 수 있다.

호흡기라면 물젖은 수건을, 피부라면 장갑과 의류를 착용하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 오염이라니.

어떻게 피해를 받는 건지, 예방할 수 있기는 한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성 스킬이 생겨났다는 것.

그리고 그 덕분인지 조각에 다가가도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까는 조각을 만졌을 때 이상이 생겼으니, 확실한 건 만져보는 건데…….’

호진은 꺼림칙했지만, 확인이 필요했기에 벽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스륵

방금까지 단단한 촉감이 있던 벽화가 스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지랑이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이게 무슨……?’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기다랗고 어두운 터널 하나.

얼마나 긴 건지 일직선의 통로는 사냥꾼의 눈으로 봐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길이었기에 호진은 길게 망설이지 않았다.

적이 더 올 것 같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 쓰러진 두 사람을 공동의 응달진 곳까지 옮긴 호진은 곧바로 숨겨진 터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호진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지만 마음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D급 던전의 보스를 잡으면 퀘스트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까 엿들은 놈들의 대화.

놈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듯 이야기를 나눴다.

뭔가가 자리를 비웠는데, 그게 매우 이상하다는 대화였다.

‘아마도 자리를 비웠다는 그것이 이 던전의 보스겠지.’

그렇다면 그것은 왜. 이런 동굴의 끝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끝에 있을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터널의 반대편에 희미한 빛이 어렸다.

눈부신 아침을 연상시키는 빛은 아니었다.

푸르다 못해 어둑하다는 느낌의 코발트색의 빛은 해가 뜨기 전의 새벽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나아가 도착한 곳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호진은 잔뜩 긴장한 채 모래사장 위로 걸음을 옮겼다.

─첨벙

푸른빛이 짙게 깔린 물가.

해안가 같지만 어디에도 바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이라곤 발목을 적실 정도의 옅은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호진은 잠시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물을 찍고는 냄새를 맡았다.

‘냄새도 색도 없어. 그냥 물인가?’

아니.

잠시 손끝에 비비다 보니 약간 비릿한 소금 냄새가 났다.

모래사장에 고인 바닷물이라니, 현실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잠시 광경에 정신이 팔렸던 호진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곧장 적과 조우할 줄 알고 잔뜩 긴장 중이었는데, 이곳은 너무 넓었다.

이래서는 언제 적과 조우할지 알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절벽이 깎아지르는 단층 해안을 걸어가려 하는 순간.

뭔가 기이한 감각이 호진의 신경을 잡아끌었다.

그 기분 나쁜 이질감에 호진은 홀린 듯 고개를 돌렸다.

끔벅─.

순간 호진은 수십, 혹은 수백의 눈동자와 맞닥뜨렸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그림자 진 절벽의 일부분.

그 어둠속에서 노란색으로 빛나는 동공들이 제각각 멋대로 끔벅이며 호진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철퍽

절벽에서 몸을 떼어낸 ‘그것’이 어둠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의 끈적거리는 몸체.

액체고 고체도 아닌 녹인 유리 같은 부정형의 물질에는 오직 눈들만이 표표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몸체 사이로 언뜻 보이기 시작한 것은…….

“…….”

호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저 존재를 인지한 순간부터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았다.

눈 달린 검은 물질이 사이사이를 잇고 있는 축 늘어진 덩어리들.

흘러내리는 장기를 그러쥐며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웅크린 남성.

편안한 듯 눈을 감고 있는 창백한 아이.

그런 아이를 걱정스러운 듯 껴안은 여인까지.

이미 죽은 자들의 시체가 눈알이 뒤룩거리는 검은 물질에 매달려 꿈틀거린다.

그것은 시체들로 쌓아 올린 불그스름한 육벽(肉壁).

시체가 벽돌이라면 눈 달린 검은 물질은 시멘트다.

─띠링

「이름 없는 책(Namenloses Buch)으로 만들어진 존재, ‘미완성된 이어붙인 왕(Verkettet König)’을 조우했습니다.」

「정신 내성이 정신 오염에 저항합니다.」

알림창과 함께 호진의 어지럽던 시야의 초점이 돌아왔다.

“커헉.”

숨통이 트인 호진은 산소의 달콤함과 함께 역겨운 악취를 느꼈다.

─쿵

발을 구르듯 내려놓는 ‘이어붙인 왕(Verkettet König)’.

크고 두꺼운 성문에 팔다리가 솟아난다면 이런 모양일까.

네발로 딛고 선 녀석은 눈도 코도 없이 오직 커다란 입만을 벌리고 있었다.

“그어어어어어어!”

놈은 시커먼 주둥이에서 괴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호진의 근육이 경직되고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솟아났다.

하지만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었기에,

호진은 다시 한번, 이젠 다소 익숙한 발걸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생과 사의 갈림길을 향해 담담히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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