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안개 낀 해안가 (3)
방금 들어온 여자는 뭔가 잘못된 걸 깨달은 듯했지만,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그 끔찍한 정적 속에서 장로가, 아니 마을 사람 전부가 호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모습에서, 호진은 아까부터 이들에게서 느껴지던 기묘한 이질감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하노버와 장로, 그리고 다른 모든 마을 사람들.
그들의 외모가 놀랍게도 유사했다.
넓은 이마.
길쭉한 턱,
그리고 깜빡이지 않고 빤히 자신을 응시하는 툭 튀어나온 눈동자들까지.
그들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바라봐도 자꾸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잠시 동안의 정적을 먼저 깨트린 것은 호진 쪽이었다.
“……변명은 더 안 하나?”
호진의 말에 장로는 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이내 정색하더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갸웃거리며 호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답했다.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저희에겐 저것들이 돼지일 뿐.”
장로가 여성의 손에 들린 남자의 머리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고, 그 모습에 호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인간인데도?”
“인간이라고 특별할 이유가 있습니까. 말을 한다는 거를 제외하면 가축과 다를 게 없지요.”
장로는 공허한 눈으로 호진을 쳐다봤다.
이제 보니 그 텅 빈 동공이 마치 죽은 생선 눈깔 같다.
잠시 말을 쉰 장로는 재차 말을 이었다.
“혹시 돼지를 잡아보셨습니까? 꿀꿀거리는 녀석들 말입니다.”
“…….”
“안 잡아 보셨겠죠. 그거 아십니까? 돼지들도 죽기 전에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래서, 지금 돼지와 인간이 같다는 건가?”
“다를 게 없지요. 돼지보다 강하고 우월하다는 것을 제외하면요. 그렇다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 앞에선 인간이나 돼지나 큰 차이가 없지 않겠습니까?”
어이없는 논법이었다.
지독하게 편협하고 염세적인 사고방식.
호진은 인간을 찬미하진 않았지만, 저런 사고방식에 동조할 순 없었다.
죽기 싫어한다는 공통점만으로 돼지와 인간이 같다는 논리는 나무도 돌도 움직이지 않으니 같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즉, 흑백논리에 기댄 일반화의 오류다.
하지만 호진은 이들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호진에게 필요한 건 정보였다.
“우월한 존재라는 건?”
“아까부터 질문뿐이시군요. 대답을 다 해드리면 돌아가 주시기라도 하시렵니까?”
장로는 무표정하게 호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젠 저 눈이 장식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호진이 그런 장로를 마주 보며 되물었다.
“글쎄. 가겠다고 하면 보내주긴 하고?”
“……그건 생각을 안 해보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렵겠군요.”
곤란하다는 듯이 답하는 장로와 호진은 눈을 마주쳤다.
둘은 이내 서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흐.”
“하하하하.”
─뚝
동시에 끊긴 웃음소리.
그리고 그 둘이 동시에 외쳤다.
“죽여라!”
“쓸어버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용재였다.
─서걱
용재가 손에 들린 도끼를 휘두르자, 붙잡혀 있던 하노버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예은이 쏜 화살은 남자의 머리를 들고 있던 여자의 눈알을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풀썩
두 시체가 바닥을 구름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됐다.
입구가 가까웠던 용재와 예은은 그쪽으로 물러나 수비적인 싸움을 했다.
근접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 예은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난…….’
그저 달려드는 모두를 베어버릴 뿐이다.
─서거걱
호진은 대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러 장로와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는 녀석들의 몸을 두 토막 냈다.
만약 이들이 먼저 덤벼들지 않았다면, 주저했을지도 모르겠다.
감염자들과 달리 이들은 대화가 통했으니까.
하지만 사람을 돼지처럼 잡아서, 도축하는 이들에게 손속을 봐줄 여유는 없었다.
또한 놈들은 빠르고 힘이 좋았으며 몸도 단단했다.
방심이라도 했다간 당하는 것은 일행들일 터였다.
호진은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장로를 향해 다가갔다.
전투에서 사기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수장의 목이다.
호진이 장로의 지척까지 이른 순간 놈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휘릭
그 순간 호진의 양옆에서 거대한 투망 두 개가 날아들었다.
급히 검을 휘둘러 하나를 잘라냈지만 다른 투망이 그의 몸을 덮쳤다.
호진은 그물이 몸에 얽히기 전 재빨리 바닥을 굴러 투망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급히 빠져나오며 놓친 검은 투망에 얽힌 채 상대에게 빼앗겨버렸다.
놈들은 호진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놓치지 않고 작살과 쇠스랑을 내리꽂았다.
가까스로 그것들을 피해내자 바위로 된 동굴 바닥에 돌가루와 불꽃이 튀었다.
‘한 대만 잘못 맞아도 골로 가겠네.’
호진이 마른 침을 삼키며 자세를 잡자, 장로가 비릿한 미소를 띤 채 다가오며 말했다.
“무기를 잃어버리셨군요, 성기사님. 어떠십니까?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면 조금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축의 삶도 그리 나쁘진 않아요.”
장로의 말을 들은 호진은 어이가 없어서 눈을 껌뻑였다.
소설 속 빌런들이나 할 법한 사망 플래그 발언이라니.
‘실제로 듣게 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물론 지금 상황은 게임이나 소설이 아니기에, 방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호진은 질 거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이 상황을 위험이라고 여기기엔, 지금까지 헤쳐온 난관들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이다.
어이없어하는 호진의 침묵을 오해한 것인지 장로는 신나서 떠들었다.
“일행분도 같이 가축으로 만들어 드리죠. 저 여성분은 제물로 적절하겠군요.”
“하, 미친놈이.”
호진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욕지거리가 올라왔다.
짐작은 했지만 정말 인신공양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목이나 내밀어라. 덜 아프게 죽여주마.”
“허세가 대단하시군요. 이젠 됐습니다.”
말을 멈춘 장로가 뒤돌아서며 명령했다.
“죽여라.”
장로의 명령에 호진을 둘러싼 녀석들이 작살과 쇠스랑을 내질렀다.
‘인벤토리.’
준비하고 있던 호진의 왼손에 순식간에 검집이 잡히고, 거의 동시에 오른손에 쥐어진 검이 비스듬하게 뽑혀 나왔다.
레벨이 4에 이른 스킬 ‘거합’.
─투두두둑
마치 성냥개비처럼 부러진 작살과 쇠스랑들이 공중에 흩날렸다.
그것을 멍하니 보는 녀석들의 표정이 한층 더 멍청해 보였다.
어떤 녀석은 믿기지가 않는지, 거의 끔벅이지 않던 두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잠시 후, 상황을 깨달은 녀석들은 흠칫 놀라며 물러나려다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몸이 스르륵 무너져 뒤로 넘어졌다.
곧 그 눈에 들어온 건 상체가 잘려나간 자신의 하체였다.
“……으아아아악.”
녀석들의 고통에 찬 비명이 공동을 가득 메웠다.
“……무슨?”
그 소리에 뒤돌아본 장로의 두 눈은 터질 듯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툭 튀어나온 눈이 아예 빠져나올 듯했다.
“그러게 목 내밀라니까.”
호진은 미안한 듯 중얼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녀석들의 목에 일일이 검을 박아 줬다.
그러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장로와 마주 섰다.
“……그 검은 대체? 그런 기적은 들어본 적이…….”
아까도 느꼈지만 이 장로라는 녀석은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꼭 잡아서 이 세계에 대해, 던전에 대해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묻는다고 다 대답해주는 머저리는 너 하나면 충분한 것 같은데.”
─빠드득
호진의 비아냥에 장로는 그 소란 속에서도 선명히 들릴 정도로 이를 갈았다.
그러곤 숨을 크게 들이쉬곤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죽여 달라고 빌게 해 드리겠습니다.”
“기다려주겠냐.”
호진이 뭔가 하려는 장로에게 달려드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마을 녀석들이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젠장.”
호진이 달려드는 놈들을 도륙하며 다가갔지만 제때 도착하진 못했다.
“쉐엑 쉬이익.”
더 이상 사람의 말소리가 아닌 쇳소리만 내뱉은 장로.
아니 이젠 장로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어렵다.
이미 외형 자체는 사람보다는 어류에 가깝다.
수시로 뒤룩거리는 튀어나온 눈.
손에 달린 작살 같은 발톱과 넓은 물갈퀴.
등에는 지느러미가 나 있고, 온몸에는 군청색의 생선 비늘 같은 것이 덮여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호진은 허탈하게 웃음 지었다.
“하, 네가 말한 우월한 존재라는 게 기껏해야 생선이었냐?”
호진의 중얼거림에 장로의 몸이 경직된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그 끝에는 포유류. 초등학교 때 배우지 않나? 진화의 순서. 인간성을 버리고 기껏 한다는 게 어류로 퇴화라니.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니까.”
호진이 어깨를 으쓱하자 놈이 격분해서 달려들었다.
“키이이이익.”
호진은 날아드는 놈의 손톱을 피했다.
흥분을 주체 못 한 녀석은 팔을 연신 휘둘러댔고, 이내 자신과 호진의 사이에 있던 마을 사람의 머리를 터트렸다.
“자 장로님, 진정…….”
─퍼걱
이번엔 그런 장로를 말리려던 마을 사람의 뇌수가 터져 사방에 흩뿌려졌다.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된 마을 사람들은 그 둘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지금의 장로는 호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제 둘 사이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호진은 지체 없이 장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장로가 반응한 틈도 없이 순식간에 놈의 지척에 다가선 호진은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깡!
‘깡?’
쇠와 살이 부딪쳐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호진은 아릿하게 손이 저려 오는 느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약간의 흠집이 난 장로의 팔뚝.
호진은 목을 노렸으나 마지막에 몸을 비틀어 피해낸 까닭에 검이 놈의 팔뚝과 부딪쳤다.
‘이건 좀 놀라운데.’
호진이 작게 감탄하고 있자 장로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비늘은 팔뚝뿐이 아닌 장로의 온몸을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비늘은 철 따위에 뚫리지 않을 것이기에 장로는 기세가 등등해졌다.
거리를 벌렸다가 다시 다가오는 호진의 모습에 장로는 재빨리 팔을 들어 올렸다.
몇 번 맞아주며 버티면 놈도 느려질 터.
그때를 놈의 약하디약한 살덩이를 찢어발겨버릴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장로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호진이 들고 있는 무기가 어느새 바뀐 것이다.
외날의 도 대신 양손에 들린 투핸디드 소드(Two─handed sword)는 무식하게 커 보였다.
‘그래 봤자 쇠로 만들어진 검.’
단단한 자신의 비늘을 뚫을 수가…….
─퍼걱
검과 장로의 팔이 부딪친 순간 들려오는 파육음.
뼈가 부러지고 살이 튀는 소리가 장로의 귀에 울리더니 이내 시야가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