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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6화 (16/241)

16화. 한가을 밤의 악몽 (3)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호진이 뒤를 돌아보자, 아까 봤던 건달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건…… 화재경보기였다.

‘설마…….’

“흐흐흐힉, 히히히히.”

호진의 절실한 바람이 무색하게, 흐느끼며 웃던 건달은 지체 없이 경보기를 눌렀다.

─따르르르르르릉

귀를 찢는 듯한 경보기 소리.

“젠장.”

낮게 뇌까린 호진은 순식간에 건달과의 거리를 좁혀 놈의 명치를 후려쳤다.

“케엑, 컥.”

놈이 가슴팍을 부여잡고 옆으로 꼬꾸라짐과 동시에 호진은 경비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끕니까.”

사색이 된 경비가 눈만 끔뻑거리자, 호진은 경비를 거칠게 흔들며 재차 물었다.

“정신 차리십시오! 아직 살 수 있습니다.”

살 수 있다는 말에 흔들리던 눈동자 되돌아온 경비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그게. 관리실에서 꺼야 하는디. 다른 방법은…….”

“말하세요.”

“……없지라.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저절로 꺼지긴 하는디…….”

한 시간. 한 시간이라.

근처에 있는 감염자들을 전부 긁어모으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차라리 관리실로 가서 끄는 게…… 젠장,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네.’

하루 새 수십 번의 사선을 넘은 호진조차 작금의 상황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드르륵

그렇기에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경보음 속 미세하게 들린 창문 열리는 소리.

호진이 고개를 들자, 건달이 어느새 창문에 몸을 걸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호진과 눈이 마주친 건달은 호진을 향해 뭔가를 말했다.

“난 최선을…… 영겁 속…… 죽음…… 구원했다.”

경보기 소리에 묻힌 그 말을 끝으로, 건달은 미련 없이 창문 너머로 몸을 던졌다.

호진은 뒤늦게 건달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봤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점점 멀어지는 건달의 신형.

그리고 그 아래에 무수한 시체들의 격류가 이곳을 향해 쇄도했다.

그때 불현듯 들려오는 감염자들의 울부짖음.

─오오오오오오!

가깝다.

두 층? 어쩌면 한 층 아래일지도 모른다.

놈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지척에 다다랐다.

“용재, 시간 끌어! 최대한 길게!”

“오케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도끼를 양손에 움켜쥔 용재는 계단을 틀어막고 섰다.

“전부 다시 옥상으로! 이 악물고 뛰어!!”

호진의 외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생존자들과 일행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옥상까지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캬아아악!

─콰직!

밑에서 용재가 놈들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소리가 선명하다.

용재한테는 미안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호진은 생존자와 일행들을 둘러봤다.

이미 방패와 빠루를 꺼내든 박 순경과 화살을 시위에 올려놓은 예은.

“으헉. 헉헉헉.”

다른 생존자들은 전력질주를 한 탓인지 아니면 겁에 질린 탓인지, 호흡이 들뜨고 얼굴이 새하얗다.

“당신, 당신 당신, 그리고 주호.”

“……?”

호진이 몇 명을 지명하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에게 호진은 가지고 있던 방패를 전부 쥐여줬다.

“네 사람은 방패조입니다. 박 순경과 함께 제가 명령할 때마다 놈들을 막아서세요.”

그 말에 한층 더 하얘지는 얼굴들.

이제는 거의 하얗다 못해 파랗게 보일 정도다.

“저……저는 이런 거 해본 적 없습니다.”

그들 중 애기 아빠가 울먹이며 말하자, 호진은 방패를 들고 서있는 오주호를 가리켰다.

“저 애는 해봤을 것 같습니까?”

“그……그건.”

“여기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은 없습니다. 살고 싶으면 입은 그만 다물고 손을 움직이세요. 당신의 아이랑 아내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으니까.”

“…….”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던 남성은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대신 이를 악물고 방패를 단단히 다잡았다.

그의 변화 덕분일까. 방패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다른 이들도 하나둘 방패를 들고 나란히 섰다.

“박 순경님. 방패로 스크럼 짜는 법 좀 가르쳐주시고, 제가 신호 드리면 이분들이랑 같이 막아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예은 씨는 늘 하던 대로.”

“알았어요.”

“그리고 당신, 당신, 당신은 방패들이 막는 동안 놈들이 달라붙지 못하게 이걸로 후려치세요.”

호진은 그들에게 손도끼를 분배했다.

나이가 있는 경비와, 팔이 다친 부상자 그리고 여고생에게까지.

아이들과 노인을 빼면 전부가 방패와 손도끼를 들고 섰다.

그리고 곧장 몸을 돌린 호진은 다시 계단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됐어! 이제 올라와!!”

“……오케이!”

용재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오오오오오오!

울부짖고 살과 살이, 뼈와 뼈가 부딪히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죽은 자들의 행렬.

“으아아아악…….”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듯 용재가 빠른 속도로 호진을 뛰어 지나친 순간.

호진은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꺼낸 식용유 한 통을 옥상 계단에 흩뿌렸다.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녀석들은 용재의 뒤를 쫓아 맹렬하게 계단을 뛰어올랐고, 다음 순간.

녀석들은 기름을 밟고 미끄러지며, 뒤에서 달려오는 놈들과 얽히며 넘어졌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바리케이드.

녀석들은 순식간에 정체에 빠지고, 간신히 그것을 빠져나온 녀석들도 그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남은 건, 일행들의 성장과 자신의 실력을 믿는 것뿐.

호진은 가장 앞에 달려오던 녀석을 향해 검집에 검을 뽑아 휘둘렀다.

‘거합’

아파트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휘둘러진 검은 여전히 예리하고 빠르다.

반면 놈들은 여태 만난 괴물들과 비교했을 때, 힘도 속도도 유별나지 않다.

그저 미쳐 날뛰는 인간.

딱 그 정도다.

그렇기에 미친 듯 달려오던 놈은 호진의 검을 보지도 못한 채, 머리를 잃고 바닥을 굴렀다.

─툭 투두둑 퍼걱.

계단에 튕겨 오르던 머리는 뒤따라오던 녀석에게 밟혀 으스러지고, 그 머리를 밟고 뛰어오른 녀석은 마찬가지로 호진의 검에 머리가 쪼개졌다.

하지만.

그 시체를 밟고 뛰어오르는 다른 녀석.

그놈을 베자 다시 다른 한 놈. 그다음은 두 놈. 그다음은…….

끝이 나질 않았다.

이미 예상했었던 문제.

‘많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물량.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30마리도 넘게 베었다.

그나마도 죽어 쓰러진 녀석들이 새로 올라오는 녀석들을 막아줬기 덕분이다.

쓰러진 시체들은 금세 찢기고 씹어 먹혀 사라지지만,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미끌

들고 있는 검이 피와 지방으로 미끄러졌다.

놈들을 너무 많이 벤 탓이다.

호진은 재빨리 화단에 검을 던진 후, 허리에 찬 새로운 검을 뽑아들었다.

─툭 투둑

순식간에 두 놈의 머리가 떨어졌다.

그 틈에 호진은 바로 뒤에 오던 녀석을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그 방향은 생존자들 쪽.

“죽여!”

놈을 넘어트림과 동시에 호진이 외치자, 생존자들이 달려들어 무기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일명 플레이어 만들기 작전이다.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선, 생존자들을 플레이어로 각성시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생존자들 입장에선 괴물을 죽이면 플레이어로 각성한다는 말은 솔직히 믿기 어려웠을 터다.

아무리 이런 재난 상황이라도 상태창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포인트나 스킬 같은 말은 허황되게 들릴 테니까.

호진조차 각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면, 그 사람을 피했을 것이다.

‘게임중독자나 망상증 환자쯤으로 여기면서 말이지.’

하지만 호진은 그런 생존자들을 설득시킬 여력도 방법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빠르게 사실들을 알려주고 계획을 설명할 뿐이었다.

생존자들은 다들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호진의 명령에 따라 눈을 질끈 감고 괴물들을 쓰러트렸다.

머지않아 뒤에서 기쁘다는 듯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됐다!”

애기 아빠다.

뭔가 각오를 다진 모양이더니 누구보다 적극적인 듯했다.

지금 한참 상태창이 눈에 어른거릴 터.

“무조건 근력입니다!”

“네, 넵! 알겠습니다!”

호진은 다시 정면을 베며 외쳤고, 애기 아빠는 바짝 긴장하여 대답했다.

방패조는 일단 근력이다.

뒤에 손도끼 조도 우선은 근력이지만, 방패를 잡아 뜯는 손을 쳐내야 하니 민첩도 필요할 거다.

‘각성은 한 명뿐인가.’

동시에 플레이어로 각성하는 편법은 안 되는 듯했다.

아마 공헌도로 판정하는 모양.

“앞으로 더 흘려보낼 겁니다. 안 잡아본 사람이 잡으세요!”

““넵!!””

생존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대답했다.

호진은 의도를 알아챈 일행들은 생존자들이 안전하게 놈들을 잡도록 도왔다.

그렇게 싸우기를 다시 10분.

“전부 됐습니다!”

박 순경이 소리쳤다.

슬슬 바꿔 든 대검마저 미끄러지던 참이었다.

“바로 바꾸겠습니다! 방패조 앞으로!”

호진의 명령과 함께 순식간에 방패조가 대열을 맞췄다.

“캬아아아악!”

한 놈이 괴성을 지르며 방패에 달려들었지만…….

─퉁

오히려 달려오던 자기 힘을 못 이겨 뒤로 나자빠졌다.

쓰러진 놈은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일어서기도 전에 그 뒤에 달려오는 놈들에게 짓밟혔다.

그 뒤의 놈들도 재차 방패에 몸을 던졌지만 방패는 견고했다.

“삼 보 전진! 하나둘!”

““하나!””

“하나둘!”

““둘!””

박 순경의 구령에 맞춰 방패조가 전지하고, 뒤에선 도끼조가 따라붙으며 방패 너머로 뻗어오는 손들을 쳐냈다.

순식간에 입구까지 밀어붙인 방패조는 호진에게 잠시간의 시간을 벌어줬다.

호진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어느새 오른 레벨을 확인했다.

‘집중하느라 오른지도 몰랐네.’

저번에 남겨뒀던 포인트는 3과 이번에 얻은 포인트 3.

호진은 그것들을 각각 지구력과 근력 스탯에 투자했다.

이걸로 근력과 지구력이 20…….

─띠링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체력 회복 LV.1」

「체력회복 LV.1(일반) : 과도하게 지친 몸이 회복하는 법을 익힙니다.」

「지친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뭐지?’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뜬금없이 스킬을 얻었다.

반복적인 탈진과 회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근력과 지구력이 20이라서?

알 수 없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기분 탓인지, 왠지 몸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 같은…….

‘음?’

천천히 상태를 체크하는 호진.

“…….”

……진짜 기분 탓이었던 것 같다.

아니 기분 탓이 확실하다.

조금도 컨디션이 좋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게 뭔…….’

괜히 좋다만 호진은 씁쓸한 입맛만 다셨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스킬을 알아보고 있을 순 없다.

방패조가 길어봐야 버틸 수 있는 시간은 5분 미만.

“으아악!”

“쳐내! 쳐내라고!”

……아니 상태를 보니 2분도 못 버티겠다.

그러고 보니 용재가 보이질 않는다.

‘지금 놈이라면 혼자서도 5분 정돈 시간을 벌어줄 텐데.’

호진은 화단에 던져놓은 검을 천으로 거칠게 닦아내며 용재를 찾았다.

난간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인 녀석.

“야, 다들 개고생하는데 혼자 자빠져 있어? 빨리 가서 안 도와?”

호진이 다가가자 용재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어……. 형 왔어?”

“뭐야. 너 왜 그래?”

대답하는 녀석의 상태가 이상하다.

식은땀에 젖은 앞머리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한 손으로 움켜쥔 팔뚝.

그 팔뚝 사이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져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

“속이려 한 건 아니고, 다들 바빠 보여서. 히히.”

실없게 웃는 녀석.

떨리는 손으로 용재의 손을 치우자 이빨 자국을 따라 피가 송송 솟구치는 팔뚝이 드러났다.

“형……. 나, 저놈들처럼 되는 걸까?”

살짝 떨리는 용재의 목소리.

모르겠다.

감염자들이 정말 영화처럼 물리면 감염이 되는 구조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조건들이 있는 건지.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안일하게 놈들과 싸우고 있었다.

“상태는 어때?”

“그냥 조금 어지럽네.”

용재가 힘겹게 말하는 동안, 호진은 환부에 소독약을 부어 피를 닦아내고 천으로 압박해 지혈했다.

“……네가 저 사람들 책임진다 했잖아. 이 악물고 버텨.”

“그게…… 말처럼 되는 건가?”

“돼. 닥치고 하라면 해.”

“……좀 억울하네. 형이 시키는 대로 버티다가 물린 건데.”

“…….”

안 그래도 찔리던 곳을 정확하게 지적당한 호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본 용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됐어, 내가 사람들 구하자고만 안 했어도 이 고생 안 했…… 엉?”

“왜?”

“아니…… 엉?”

뭔가 이상한지 눈만 껌뻑거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용재.

플레이어가 허공을 보는 경우는 한 가지뿐이다.

“형……. 나 살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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