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한가을 밤의 악몽 (1)
─철퍽
“우읍…….”
예은의 헛구역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녀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하고 덜한 차이일 뿐, 모두가 예은과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도.
호진 일행은 도심의 배수로 안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진짜 냄새 너무하네. 형, 다 온 것 같은데 슬슬 올라가자.”
“조금만 더 참아.”
용재의 투덜거림에 호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호진의 생각보다 김포 시내의 상태는 훨씬 더 안 좋았다.
시체, 시체, 시체.
도심 어디에나 시체가 가득했다.
드러누운 시체와 그걸 물어뜯는 시체, 멍하니 하늘을 보며 비척거리는 시체까지.
감염된 시체들이 점령한 도시.
이미 김포는 죽은 자들의 땅이었다.
그렇기에 호진의 일행은 지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아간 지도 1시간.
축축함과 어두움은 견딜 만했지만, 이 부패물들이 풍기는 냄새는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았다.
호진이라고 어지럽지 않거나 메스껍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상은…… 너무 위험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감염자들의 눈을 피해 가며 도로로 이동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날이 저물어갈수록 놈들은 빠르고 기민해졌다.
지금 위로 올라갔다가 놈들에게 둘러싸인다면, 일행들이라 해도 한 끼 식사가 될 게 뻔했다.
호진 역시 악취에 미간을 좁히고 걷는 와중 뒤따라온 박 순경이 속삭였다.
“호진 씨, 예은 씨 상태가 별로 안 좋은데. 우웁, 도대체 뭔 냄새입니까. 이거…….”
“……조금만 참으라고 전해주십시오.”
호진은 박 순경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냄새의 근원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입을 다물었다.
옅은 불빛에 의존하며 걷는 일행들과 달리, ‘사냥꾼의 눈’을 지닌 그는 배수관을 지나는 동안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을 너무 많이 봤다.
두피째 뜯어진 머리카락.
응고된 핏덩이와 살점들.
빗물이나 오수들을 흘려 내리는 역할을 하던 배수로 안에는 지금 온갖 것이 떠내려가는 중이었다.
알고 싶지도, 알리고 싶지도 않은 사실에 호진은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찰박
그때 불현듯 물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그 소리의 근원지가 일행들 쪽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찰박 찰박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뭔가가 다가오는 중이라는 뜻이다.
잠시 손을 들어 일행들에게 정지신호를 보낸 호진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하필 갈림길이었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
소리가 메아리쳐서 귀로는 구분이 불가능한 상황.
뒤로 물러나서 상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시도 이곳에서 지체하고 싶진 않았다.
‘……아깝긴 하지만.’
─뚜둑
호진은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꺼낸 야광봉을 꺾은 후 양쪽 길로 하나씩 던져 넣었다.
─툭 텅 첨벙
벽면에 튕기면 날아간 야광봉은 물에 잠기고도 번쩍이며 빛을 냈다.
그 순간.
“캬륵?”
호진은 왼쪽 길에 그림자 하나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놈이 달려오며 점점 작아지는 그림자.
오는 방향만 안다면 쉽다.
‘하나, 둘, 셋 …… 지금.’
─서걱
뽑혀 나온 검은 막 모습을 드러낸 놈의 목을 갈랐다.
놈은 자신의 목이 베인 것도 모른 채, 몇 발자국 더 뛰어가다 그대로 꼬꾸라졌다.
‘이건?’
호진이 쓰러진 녀석에게 다가가 그 모습을 살폈다.
툭 튀어나온 배.
불어터지다 못해 푸르팅팅한 피부.
텅 빈 눈구멍에는 웬 게 한 마리가 쪼르륵 그 모습을 숨겼다.
“젠장…… 역겹군.”
호진조차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끔찍한 모습.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이건 분명.
“익사체……로 보이는데요.”
그때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박 순경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이런 곳에 왜?”
지금은 몇 주째 비가 오지 않은 초겨울.
아무리 밖에 시체들이 뛰노는 상황이라지만, 지금 배수구는 얕은 물밖에 흐르지 않는다.
익사체가, 하물며 눈구멍에 게가 기어 다니는 녀석이 배수구를 활보한다는 건, 단 한 가지로밖에 설명이 불가능했다.
“게이트.”
언제 또 이런 놈들이 몰려올지 모르는 상황에 더 이상 지하로 나아가는 건 좋지 못하다.
다행이라면, 이곳이 목표지점 근처라는 것이다.
호진은 서둘러 근처에 있던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덜그럭 드르륵
맨홀을 옆으로 밀어낸 호진이 그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습기를 머금은 차가운 새벽 공기.
높게 솟은 아파트 건물과 그 사이로 쏟아질 듯 빛을 내는 별들.
아무래도 목적지에 도착한 듯했다.
***
“흐흑. 히끅. 오빠아 무서워.”
“괜찮아 주연아. 오빠 믿지? 잠시만 들어가 있으면 돼.”
오주호는 동생 주연을 안심시키면서도 떨리는 다리를 숨기기 위해 옷장을 짚고 섰다.
‘진정하자.’
“오빠아. 가지 마아아.”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주연.
─쿵
그 소리에 반응한 걸까.
놈이 한동안 잠잠했던 문을 다시 두들기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심호흡 후.
주호는 땀에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야구방망이를 움켜쥐었다.
“주연아. 울지 마. 10분만 조용히 있으면 오빠가 라면 끓여 줄게.”
“후읍, 킁…… 라면?”
울다가도 라면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주연.
평소에도 라면이라면 콧노래를 부르는 녀석이라 그런지 눈에 띄게 진정하는 모습이다.
‘배고파서 더 그러겠지. 하루 종일 물밖에 못 먹었으니까.’
왜 이렇게 된 걸까.
분명 평범한 하루였다.
엄마도 아빠가 집을 비운 저녁.
‘주연이랑 먹으려고 치킨 배달을 시켰을 뿐인데.’
노크 소리에 연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느껴지는 이물감.
뭔가가 문틈에 끼었다는 걸 깨닫고 내려다봤더니, 사람의 머리가 들이밀어져 있었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놈은 피가 섞인 침을 질질 흘려대며 손을 뻗었다.
시선 끝에 있던 건…… 거실에 앉아 있던 주연.
그 눈에 깃든 건 분명한 식탐이었다.
순간 놀란 주호는 뒷걸음질을 쳐버렸고, 결국…… 놈을 집 안으로 들이고 말았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다리는 어디다 두고 온 건지 상반신만 질질 끌며 다가오는 녀석은 굉장히 느렸고, 주호는 그 틈에 주연을 데리고 방 안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다시 지금.
─그르르르륵
놈은 끈질기게 문 앞을 서성였다.
그렇게 이 방에 갇혀 음식 없이 버틴 지 하루가 넘게 지났다.
자신도 힘들었지만 울다 탈진하기를 반복한 주연은 통통했던 얼굴이 반쪽이 됐다.
더 시간이 지난다고 구조대가 올 거라는 보장도 없고, 부모님도 이젠…….
‘지킨다.’
그렇기에 동생 주연이만큼은 자신이 지켜야 했다.
주호는 방망이를 쥐어짜듯 쥔 채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
─쿵 쿵 쿵
그때 놈이 다시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쾅!
주호는 순간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큰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구르는 놈.
헬멧을 쓴 탓인지 멀쩡해 보이지만 그래도 녀석은 뒤집힌 몸을 뒤집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사이 놈의 뒤로 다가간 오주호는 재빨리 방망이를 휘둘렀다.
─우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녀석.
주호가 양쪽 팔을 모두 부러트리자 놈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크에에에엑!”
방망이로 조심스레 놈의 헬멧을 벗겨낸 주호는 재차 방망이를 휘둘렀다.
─퍼걱
뭔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에서 검은색 피와 노란 물이 줄줄 흘렀다.
“으윽.”
그 모습에 잠시 뒷걸음질 쳤지만 주호는 이내 현관을 향해 달렸다.
열린 현관을 닫는 것.
그것만 해도 최소한의 안전구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띠링
뭔가 귀에 전자음 같은 게 들려왔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제 문만 닫으면……!’
─덜컥
막 문고리에 손이 닿으려던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건.
또 다른 감염자였다.
“캬아아악!”
“으아아악!”
오주호는 놀라 뒷걸음질을 쳤으나, 순간 뭔가를 밟고 미끄러져 바닥을 굴렀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끈적거리는 느낌.
─미끌
아까 전 바닥에 흘러내린 피가 손에 흥건했다.
‘이런.’
끝이다.
오주호가 눈을 질끈 감고 끝을 기다렸다.
─저벅 저벅
방 안에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코앞에서 멈춘 그 소리는 한참이 지나도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주호가 조심스레 눈을 뜨려는 순간.
─딱
청아한 소리와 함께 이마에 저릿하고 후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악!”
“악! 같은 소리 하네. 후딱 안 일어나, 인마.”
찔끔 나오는 눈물을 닦아내며 앞을 보자 거대한 도끼를 들고 방패를 멘 한 남자가 보였다.
“감염자는……?”
주호가 급히 현관에서 본 감염자를 찾자 남자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완전히 터져버린 머리.
폭탄이 머리에서 터지면 저렇게 될까 싶은 모습의 시신이 현관 앞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주호가 어안이 벙벙해 시체를 바라보고 있자 남자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난 살고 싶다, 꼬마야.”
“……?”
“넌 그렇지 않냐?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주저앉는 거냐?”
그의 물음에 주호는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포기…… 했었구나. 나.’
주연이도 있는데 포기를 하다니, 주호는 자신이 한심한 나머지 다시 한번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때 들려오는 다른 목소리들.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활을 들고 있는 여자가 들어오며 말하자,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아, 누나! 이거 호진이 형이 했던 말을 따라 한 거예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이번에는 허리에 두 자루 검을 찬 남자가 현관에서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완전히는 아니고. 비슷하게. 히히.”
“왠지 호진 씨 같은 느낌이더라.”
“……제가 저런 느낌입니까?”
검을 든 남자가 충격에 빠진 듯 머리를 짚자, 도끼를 든 남자와 활을 든 여자는 뭐가 웃긴지 서로 마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만 웃으시고, 박 순경님 여기 맞습니까?”
검을 든 남자가 고개를 돌려 현관 밖을 향하자, 그곳에는 익숙한 한 사람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호야.”
자신의 이름을 낮게 부르는 남자.
“……삼촌?”
여기 있을 리가 없는 삼촌이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꼬옥
“수고했어.”
자신을 힘껏 껴안았다.
뭔가 지독한 냄새가 났지만 그의 품 안은 그 어떤 문이나 벽보다 안심이 됐다.
─끼이익
그때 옆의 방문이 조심스레 열리더니 꽁지머리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아?”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에 문을 연 주연.
“주연이……? 다행이다. 다행이야.”
주연을 발견한 박 순경이 둘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자, 주호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마치 막힌 둑이 터지듯 터져 나온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목에서는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삼…… 삼촌. 엄마가…… 아빠가…….”
“오빠아아…… 울지 마아아…….”
“그래. 그래. 고생했다. 고생했어. 주호야. 주연아.”
그렇게 부둥켜안은 세 사람은 진정이 되기까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