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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3화 (13/241)

13화. 여정의 시작 (5)

호진은 방패를 내밀며 일행들에게 물었다.

“다들 잠시만 저 좀 지켜주실 수 있을까요?”

호진이 안대를 꺼내며 묻자, 일행들은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짓다 서로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뭘 당연한 걸 묻는 거야.”

“예, 맡겨주십시오!”

대답과 동시에 당연하다는 듯 그의 주위를 방패로 둘러싸는 일행들.

“……감사합니다.”

그 모습에 호진은 뭔가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안대를 사용했다.

─파앗

순식간에 머릿속에 그려지듯 퍼져 나가는 생명체들의 위치.

놈들은 쥐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안대의 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혹시나 놈들이 도망갈까 호진은 재빨리 안대를 벗으며 일행들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속삭였다.

그러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호진을 두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10m, 20m, 30m.

그렇게 호진과 다른 일행들이 꽤 벌어진 순간.

“지금!”

크게 소리친 호진은 재빨리 검을 휘둘러 차량들의 타이어에 구멍을 냈다.

─펑! 푸쉬익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차체는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며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호진은 멈추지 않고 내달리며 연이어 차량들의 타이어에 구멍을 냈고, 순식간에 한 줄로 서 있던 차량들이 폭삭 주저앉았다.

일을 마친 호진이 일행들을 바라보자 그쪽도 차량들을 주저앉게 만든 후였다.

이걸로 놈들이 도망갈 퇴로는 차단됐다.

“슬슬 나오는 건 어때?”

호진이 조용히 뇌까리는 순간.

─핑 핑 피 피피 핑!

호진을 향해 화살들이 쏟아졌다.

호진은 이미 예상했기에 방패를 들어 그것들을 여유롭게 막아냈다.

그리고 호진이 화살들을 막아내는 사이, 차 아래쪽으로 뭔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탁 타닥 타닥

그렇게 다가오던 놈들은 가라앉은 차량들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차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륵!”

“컹컹!”

뾰족한 주둥이와 축 늘어진 귀.

그리고 여우 같은 눈동자.

평범하게 개를 닮은 녀석들은 등에 쇠뇌를 매고 한 손에는 단도를 뽑아들고 있었다.

‘무기를 다루는 개과의 몬스터라면, 코볼트쯤 되려나.’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개를 닮은 건 예상 밖이었지만,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겠지.

낮은 몸체를 이용해 차량 아래를 네발로 빠르게 이동하며 엄폐물을 이용해 쇠뇌로 공격한다는 녀석들의 전략은 눈치채기도, 상대하기도 까다로운 것이었다.

만약 이대로 이들을 지나쳤다면 다리를 벗어나서도 한참을 시달렸을 터.

허나, 차들의 타이어를 터트려 양쪽으로 놈들의 퇴로를 가로막자 그 안에 갇힌 놈들이 초조해하다 못해 튀어나온 것이다.

호진 앞에 나타난 녀석들은 모두 17마리.

아까 전, 안대로 체크한 놈들 전부다.

반대편에 3명이 있는 반면 이쪽엔 호진 혼자 지키고 서 있었기에, 이쪽을 뚫고 도망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와라.”

놈들의 투지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호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크르르륵…….”

막상 호진의 앞에선 녀석들은 뭔가 잘못된 걸 느꼈는지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그 겁먹은 반응에 호진은 약간 김이 샜지만, 그렇다고 녀석들을 놓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 오면 내가 가지.”

방패를 내던진 호진은 검을 뽑아든 채로 놈들의 무리 사이로 난입했다.

─서걱

“켁켁…… 크르륵.”

“컹컹.”

호진이 가장 앞에 있던 코볼트의 목을 날리고 그 왼쪽에 있던 녀석을 발로 걷어차자, 놈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평범한 발차기조차 치명적일 정도로, 코볼트들의 체력은 낮은 편인 듯했다.

그러나 단체전투가 제법 익숙한 듯, 놈들은 동료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침착하게 사방에서 단검을 휘둘러왔다.

‘이거지.’

호진은 그런 놈들을 보며 다시금 웃음 지었다.

놈들이 겁을 집어먹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려 했다면,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는 호진은 별다른 수가 없었다.

몇 마리는 죽일 수 있어도 대부분은 놓칠 터.

하지만 놈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제공해주면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호진은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단검들을 보며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얹었다.

‘거합.’

눈 깜박할 순간, 놈들이 내지른 단검들과 그걸 잡고 있던 손이 허공에 어지럽게 흩어졌다.

순식간에 손을 잃은 놈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관성에 떠밀려 호진의 앞으로 다가왔고, 다시금 내려쳐진 검에 머리를 잃었다.

이건 후발선제라는 묘리가 아니다.

단순히 압도적인 스탯과 스킬이 만들어낸 부조리다.

일 합 만으로 좌중을 압도한 호진은 경직되듯 얼어붙은 놈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 싸움은 호진이 눈가리개를 사용해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퇴로를 막은 시점에서 이미 승부가 난 것이었다.

“그만 끝내자.”

호진은 조용히 뇌까리며 놈들을 향해 내달렸다.

***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붉은 바위산의 코볼트 정찰조장을 처리했습니다.」

「보상이 가산됩니다.」

「보상이 인벤토리에 수납되었습니다.」

‘정찰조장? 그런 게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뭔가 혼자만 투구를 뒤집어쓴 놈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형, 여기 물.”

“어. 고마워 용재야.”

호진은 용재가 내민 작은 생수 통을 받아들며 인벤토리를 살폈다.

「레인저의 은신용 망토」

「종류: 망토」

「정보: 비와 바람을 막고, 체온을 보존하는 망토. 뒤집어쓰면 적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꺼내서 살펴본 망토는 제법 그럴듯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보호색 기능이 있는 듯, 어두운 곳에서는 어두운색으로, 밝은 곳에서는 밝은색으로 변했다.

레벨이 하나밖에 오르지 않은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그렇게 강한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다 됐습니다. 다시 이동하시죠.”

망토를 어깨에 두른 호진의 말에 일행들은 지친 몸을 일으켰다.

코볼트와의 조우 이후에도 다리를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긴장을 유지한 탓이었다.

그러나 군소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느덧 박 순경의 목적지인 김포에 도착한 탓이다.

내색은 안 했지만 박 순경의 표정에서 감출 수 없는 흥분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일행이 다시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하고 호진은 박 순경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이쯤에서 박 순경과의 약속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치가 어디라고 했죠?”

“네?”

“박 순경님 누나가 계신다는 곳이요.”

“아. 왕길역 근처 아파트입니다.”

그리 멀지는 않다.

심지어 강화로 가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가시죠. 도울 수 있는 데까진 돕겠습니다.”

“네? 아 아뇨. 아닙니다. 그러려고 따라온 게 아니에요.”

박 순경이 손사래를 치자 호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제가 뭔가 요구할까 봐 그런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일행들 중에서 별 도움도 안 되는데 왜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 말을 들은 호진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도움이 안 된다라…….’

호진은 그 말을 곱씹다가 문득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박 순경님은 쓰러진 저를 왜 구했었습니까? 그때 저는 순경님과 면식도 없었는데요.”

“그건…….”

박 순경이 아니었다면 호진은 용재와 함께 길바닥에서 죽었을 터다.

무엇보다 이곳까지 오며 꽤 긴 생사를 함께했는데 다른 이유가 뭐가 필요할까.

호진에게 박 순경은 이미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돕겠다는 말이 정말 의외였는지, 아니면 보기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건지 박 순경은 어느새 잠긴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요.”

호진은 설핏 웃으며 대답한 후 한동안 그의 옆에서 조용히 함께 걸었다.

***

“……저기 뭔가 있습니다.”

선두에서 걸어 나가던 박 순경이 손을 들어 일행들을 멈춰 세웠다.

박 순경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간 그 끝에는 뭔가가 분명 움직이는 중이었다.

다리를 건너고 한참이 지나도록 사람도 괴물도 만나지 못했기에, 일행들은 바짝 긴장을 했다.

그렇게 그 대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중 문득 용재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사람이다.”

용재의 말대로 가까워진 대상은 코트를 멀끔하게 챙겨 입은 한 여성이었다.

여성은 일행들이 다가오는 걸 눈치 못 챈 듯, 차량에 몸을 반쯤 집어넣은 채 뭔가를 뒤적거리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간만에 사람이 반가웠는지 먼저 뛰어간 용재가 인사를 걸자 여성이 움찔했다.

그리고 차량 밖으로 몸을 뺀 여성.

그 입에서는…… 빨간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용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 잠깐 혼란스러워했고, 그것이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타닥

그리 짧은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여성은 눈 깜박할 사이에 용재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입을 쩍 벌리며 용재의 목을 물어 채려는 순간.

─퍼걱

화살이 여성의 골통을 부수며 머리를 획 하니 젖혀버렸다.

목이 젖혀진 여성이 비척거리는 찰나, 어느새 다가온 호진의 검이 여성의 목을 양분했다.

그러자 살아있는 사람을 베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검붉은 색의 피가 튀었다.

“……무슨?”

그 피에 젖은 용재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박 순경 역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사람이었을까요?”

사람을 쏜 탓인지, 떨리는 손을 억누른 예은이 호진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러자 어딘가를 응시하던 호진이 잠시 침묵하다 입을 뗐다.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왜 그렇게 단정!…… 아.”

예은은 호진의 대답을 부정하는 듯이 말했다.

사실 누구보다 그 말을 믿고 싶은 건 예은이었지만, 지금 그녀에겐 단순한 위로보다 자신이 죽인 게 사람이 아니었다는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진이 그 답을 말할 필요는 없어졌다.

호진의 시선을 따라간 예은은 그 답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우웁.”

예은은 급히 고개를 틀어 입을 틀어막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차 안을 살핀 호진과 다르게, 예은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역겹군.’

호진은 미약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차 안에 널브러진 다른 여성의 시체.

그 시체는 간신히 상체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그조차도 헤집어질 대로 헤집어져 있었다.

‘친구였던 걸까. 아니면 자매?’

알 수 없지만 둘이 사이좋게 찍은 사진 한 장이 차 안에 붙어 있었다.

그것은 일행들이 죽인 여성이 사람이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으득

그 사실에 호진은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내장 깊은 곳에서 치미는 분노를 느꼈다.

도대체 이곳의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일까.

그러나 호진은 그 끓어오르는 분노를 차분히 식혀야만 했다.

방금 본 장면이 저 도심 속에 만연한 상황이라 한다면 구조를 서둘러야 할 터.

지금은 연민하고 분노하는 시간조차 아껴야 했다.

그리고 그전에 확실히 할 게 있다.

도심에선 괴물과 사람을 천천히 분간할 시간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괴물이든 사람이든 가까이 오면 전부 베겠습니다.”

패닉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호진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일행들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호진과 눈을 마주쳤다.

흔들리고 떨리는 동공들.

“…….”

“못하겠다면 여기서 되돌아가시거나, 도심을 피해 강화로 먼저 가십시오.”

들어간 후에는 늦는다.

지금 이대로라면 방금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주저하다가 자신이든 일행이든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호진은 더더욱 단호하게 말했다.

고요한 적막.

그 적막을 가장 먼저 깬 것은 박 순경이었다.

“갑니다. 할 수 있습니다.”

박 순경이 단호한 시선으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용재와 예은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갈게. 나 강화 가는 길도 잘 몰라.”

“저도요. 아직 빚도 못 갚았는걸요.”

각자 이유는 다르더라도 그 각오만큼은 모두 진짜로 보였다.

호진은 그 일행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힘을 주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 보죠. 김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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