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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2화 (12/241)

12화. 여정의 시작 (4)

“30m 앞. 파란색 차량 트렁크에 한 마리.”

“오케이. 내가 할게.”

─쾅! 우지직

대답과 함께 튀어나간 용재는 차의 트렁크를 도끼째로 찢어발겼다.

그러자 우그러진 트렁크 틈새로 흐르는 푸른색 피.

아마 곤충계열의 괴물이었던 듯하다.

“으…….”

그 장면을 지켜보던 박 순경이 얼굴을 찌푸리는 사이, 호진은 그새 또 다른 기척을 발견했다.

“또 옵니다. 차량 아래로 후방에서 접근 중.”

“이번엔 제가 할게요.”

예은이 침착하게 시위를 당기자 박 순경이 그 옆을 지켰다.

다음 순간.

─쉬이익

“크에에에엑.”

벌거숭이 두더지를 닮은 사람만 한 괴물 하나가 차량 바닥에서 위로 기어 올라오다가 그대로 미간에 화살이 꽂혔다.

시끄러운 비명을 토한 놈은 잠시 몸부림치다 축 몸을 늘어트렸다.

“잡았습니다.”

박 순경의 상황설명에 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갈무리하시고 다시 이동하시죠.”

어느덧 다리의 절반이 넘는 지점을 통과한 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습격해오는 괴물의 수가 적진 않지만, 상대하기 어려운 종류의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안심하기에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호진이 마음을 다잡으며 주변을 탐색하는 사이 화살을 회수한 예은이 다가와 말했다.

“레벨이 또 올랐어요. 이제 레벨 5예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걸로 다리를 건너는 사이 일행들의 레벨이 모두 하나씩 올랐다.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일행들은 착실히 강해지고 있었기에 호진은 지금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구조를 해도 구조한 일행들이 강하지 않다면 그건 합류지 구조가 아니다.

호진은 이번 일로 무조건 빠른 이동보다 안정적인 성장도 고려하게 됐다.

‘용재가 4렙, 박 순경님이 3렙.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예은 씨의 성장은 고무적이네.’

어쩌다 동행하게 된 그녀의 원거리 지원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일행들의 전투에 안정감을 불어넣어 줬다.

저들이 이대로만 계속 성장한다면 호진도 등을 맡길 수 있을 터.

아직은 호진과 차이가 많이 나지만, 이미 일반인의 범주는 넘어선 이들이기에 기대가 됐다.

“자, 그럼 계속 이동…….”

─핑 피 피 피 핑

호진은 멀리서 들려온 예리한 파공음에 말을 멈추고는 머리보다 먼저 반응한 입으로 소리쳤다.

“숙여!”

─텅 터더더 텅

호진이 머리를 숙임과 동시에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뒤쪽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재빨리 안대를 벗어젖힌 호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차에 꽂히거나 튕겨 나온 수십 개의 화살이었다.

“다들 무사하십니까?”

“무사합니다.”

“멀쩡해!”

호진의 물음에 일행들은 재빨리 대답했다.

그의 말을 듣고 몸을 낮춘 일행들은 늦지 않게 쏟아진 화살들을 피해낼 수 있었다.

차량 사이로 몸을 숙인 호진은 고개를 들어 전방을 살폈지만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은신한 원거리 적들의 공격.

다리에 올라와 처음 만난, 아니 이런 일이 발생하고 처음 상대하는 유형의 적이었다.

‘우선 사거리는 50m 이상이네.’

안대로도 적의 위치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녀석들과의 거리는 멀었다.

‘가까이만 가면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텐데.’

이곳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화살을 쏴대는 적을 상대로 가만히 있는 건 좋은 과녁이 되어주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재빨리 주변을 살피던 호진은 한 차량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따라오세요!”

차량 사이로 몸을 낮춰 이동한 호진은 한 버스의 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하지만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대신 일반적인 버스에서는 볼 수 없는 물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중이었다.

“형, 왜 이쪽으로……. 우와, 이게 뭐야?”

“……이건?”

호진의 뒤를 쫓아 들어온 박 순경이 기괴한 표정을 짓자 호진은 설핏 웃으며 대답했다.

“네, 경찰 전용 버스입니다.”

내부에는 급하게 꺼낸 건지 아니면 차량끼리 부딪히며 쏟아진 건지 알 수 없는 경찰 용품들이 가득했다.

“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것은 진압복과 방패입니다.”

호진의 말에 모두가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숨긴 채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동에 시간이 많이 걸릴뿐더러 적들이 우리와 거리를 벌릴 기회 또한 제공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적들의 공격을 무력화하며 전진하는 것, 즉 방패를 활용하는 것이다.

호진이 떨어진 가방에서 상체 보호구와 팔 보호구를 꺼내 착용하는 사이, 어느새 진압복을 완벽하게 착용한 박 순경이 다가와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진씨. 그……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방패가 이곳에 없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외부 트렁크에 있겠죠.”

“아, 아시는군요. 그런데 옆에 차량이…….”

박 순경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도 그럴만한 게 외부 트렁크가 있는 쪽을 다른 차량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호진은 그런 박 순경에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역시 방법이 있으셨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들어내야죠.”

“……예?”

“옆의 차량을 들어서 옮기면 됩니다. 저랑 용재랑 박 순경님이랑.”

“……?”

이번엔 낑낑거리며 진압복을 착용하던 용재도 괴상한 표정으로 호진을 쳐다봤다.

농담을 하는 건가 싶어 들여다본 호진의 얼굴에는 장난기 하나 없었다.

순간 머리를 굴린 용재가 힘겹게 입을 열어 의문을 표했다.

“……예은 씨는요?”

“한 명은 경계 서야지. 우리 중에 근력이 제일 부족하잖아.”

민첩에 집중 투자한 예은의 근력은 일반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용재는 말할 필요도 없고, 박 순경조차 근력 하나만큼은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아이고, 갑자기 어깨가 뻐근…….”

“용재야?”

어깨를 부여잡으며 좌석에 기대던 용재는 자신을 부르는 호진을 슬쩍 바라봤다.

미소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호진.

쇼핑센터에서의 미소를 떠올린 용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고쳤다.

“……뻐근하지가 않네. 어우, 아까까진 묵직했는데 헤헤.”

“그렇지? 아프다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

호진은 피식 웃으며 용재들을 어깨를 꾸욱 눌렀다.

그 묵직한 힘에 용재는 침을 삼켰다.

호진은 이내, 아까 깨고 들어온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뻣뻣하게 굳은 용재가 살짝 고개를 돌려 박 순경에게 물었다.

“박 순경님, 방금 호진이 형이 제 어깨를 왜 누르고 간 걸까요?”

“글쎄요. 화가 나신 것 같으시던데요. 한 번만 더 게으름 피우면 어깨를 진짜 뽑아버리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설마요.”

용재가 굳은 표정으로 되묻고 있는데, 먼저 나갔던 호진이 다시 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뭔가 문제 있습니까? 박 순경님도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앗, 무슨 말씀을. 저는 용재 씨와 다르게 몸 관리를 잘해서 멀쩡합니다.”

박 순경이 재빨리 대답하자 용재는 배신당했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예은은 그런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용재 녀석. 근력이 높다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도끼가 많이 무겁나?’

용재가 괜찮다고 했지만, 호진은 괜히 걱정이 들었다.

혹시나 폐를 끼치기 싫어서 안 아픈 척하는 걸까 봐 어깨를 살짝 눌러봤는데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지만.

“용재야, 진짜 아프면 쉬어도 돼. 둘이 들 수 있을 것 같아.”

“아냐, 형. 나 진짜 괜찮아. 나 혼자서도 들 수 있을걸?”

호진이 용재에게 웃으며 다가가자, 용재는 황급히 경찰버스 옆에 붙은 승용차에 철썩 붙어 힘을 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 순경도 어느새 용재 옆으로 가서 차량을 붙잡았다.

“아닙니다. 용재 씨가 쉬시죠. 제가 들겠습니다.”

그 서로 돕고 돕는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진 호진은 기쁘게 웃으며 그들과 나란히 차량을 붙잡았다.

“그럼 서둘러 치우죠. 하나, 둘.”

셋 하는 순간 승용차의 뒤가 덜컹 소리를 내며 들렸다.

승용차는 너무나도 가볍게 옆으로 세워졌다.

용재와 박 순경은 서로를 마주 보며 눈만 껌뻑였다.

그들을 내버려둔 채, 호진은 버스의 외부 트렁크를 열었다.

─덜컹

트렁크 안에는 방패가 가득 들어있었다.

몸 전체를 가릴 만큼 큰 직사각형의 방패는 고대에 로마에서 썼다는 스쿠툼(Scutum)을 닮아 있었다.

수십 개가 넘지만 챙길 수 있는 수량에는 제한이 있기에, 호진은 인벤토리에 여분 2개만 챙긴 후 일행들에게 하나씩 방패를 나눠줬다.

“그럼 바로 출발하시죠.”

““넵.””

묘하게 군기가 바짝 든 일행들을 이끌고 선두에 선 호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까 날아왔던 화살은 빠를 뿐만 아니라 차량의 창문과 보닛에 박힐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아까는 정면에서 날아왔지만, 이젠 어디서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20보 정도 나아갔을 무렵.

─핑 피 피 핑

팽팽히 당겨졌던 시위들이 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면 방패!”

그러나 호진의 재빠른 외침과 동시에 빠르게 완성된 방패 벽.

일행들이 그 안으로 몸을 숨긴 순간 여러 발의 화살이 방패와 충돌했다.

─탁 타닥 탁 탁

“…….”

슬며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확인한 호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동.”

이번에도 적이 공격하는 것은 못 봤지만 방향의 특정은 가능했다.

이번에도 화살은 정면에서 날아왔다.

화살의 수를 보니 많아도 15~20명 정도.

호진의 말에 방패를 들어 올린 일행은 손에 들어찬 땀을 닦으며 재차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방패가 있다 해도 잘못 맞으면 죽을 수 있는 화살비 속을 걸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다시 10보 정도 걸었을까.

─핑 피 피 핑

재차 쏘아지는 화살들에 호진과 일행들은 차분하게 그 공격을 막아냈다.

문제는 여전히 적들의 자세한 위치를 모르겠다는 것.

그럼에도 호진과 일행은 다시 방패를 들어 올리고 걸음을 옮겼다.

일행들도 긴장한 탓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것은 상대다.

점점 줄어드는 화살과 다가오는 적.

놈들도 지금 점차 속이 타고 있을 시점이었다.

그리고 호진의 예상이 적중했는지, 일행들의 전진에도 더 이상의 화살 세례는 없었다.

일행들이 공격을 안 받고 걷기 시작한 게 50m가 넘었지만 여전히 적들은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도망간 걸까요?”

“글쎄요.”

박 순경의 물음에 호진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적들이 지나가는 동안 기다린 후 충분히 거리가 벌어진다면 다시 화살을 쏘며 뒤쫓지 않았을까.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놈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은 일행들을 믿을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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