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비일상 (3)
‘입구는 하나일 텐데?’
호진은 당황하면서도 즉시 검을 뽑았다.
“꺄악!”
그 모습에 놀라 도장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대부분 처음 보는 애들이지만 조언 정도는 해줄까.’
곧바로 샤워실로 뛰어가려던 호진은 잠시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사범님은 아이들 데리고 관장실로 가시죠. 무기로 쓸 만한 것 좀 챙기시고요.”
호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끼이이익
샤워실 문이 녹슨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딱 따다닥 딱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개미 한 마리였다.
하지만 이를 본 모든 이들이 아연실색했다.
─차칵 차칵
개미의 크기가 그들이 알던 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중형견을 붙여놔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덩치의 녀석.
아가리에 달린 턱은 날카로운 낫을 연상케 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 호진만이 침착함을 유지할 뿐이었다.
잠시 더듬이를 까딱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녀석은 돌연, 샤워실 입구에 가장 가까이 있던 호진을 향해 내달렸다.
‘빠르다.’
놈의 3쌍의 다리는 도장의 마룻바닥을 거침없이 두드리며 전진했다.
순식간에 좁혀드는 거리.
호진은 살짝 무릎을 구부리며 우측 하단 뒤로 검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곧장 앞으로 튀어 나가며 왼손의 팔꿈치를 쭈욱 당겨 폈다.
칼끝이 화려하게 호를 그렸다.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그리며 호진의 손에서 완벽한 올려베기가 펼쳐졌다.
─쩌억
검은 정확하게 놈의 벌어진 턱 사이를 지나며 머리를 세로로 쪼개버렸다.
그럼에도 관성 때문인지 개미는 곧장 쓰러지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얼마쯤 앞으로 나아가던 녀석은 기우뚱하더니 배를 뒤집고 쓰러졌고, 갈라진 머리에서는 검은색 체액이 울컥 쏟아졌다.
호진은 검을 휘둘러 묻은 체액을 털어내고는 곧장 샤워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겁에 질린 채로 쓰러진 개미와 호진을 번갈아 응시할 뿐이었다.
‘저게…… 무슨?’
반면 신현호 사범은 개미의 존재보다도 호진이 선보인 올려베기에 경악했다.
‘저 녀석이 배운 건 격검(擊劍)뿐일 텐데.’
이호진이 배운 건 진검술이 아닌 스포츠용 검도.
사범인 본인조차 진검으로 짚단을 베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내려베기가 아닌 올려베기는 격검에서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신 사범은 홀린 듯 쓰러진 개미에게 다가가 놈의 머리를 만졌다.
‘딱딱해.’
단단한 외피는 마치 거대한 갑각류의 그것과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놈에게 남은 검흔이 깔끔하다는 것.
자신조차 이 단단한 외피를 부수거나 뭉개지 않고 벨 자신이 없었다.
신 사범은 급히 고개를 들어 호진을 찾았지만 어느새 호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
─드르륵
호진이 샤워실 문을 툭 하고 밀치자 가볍게 문이 밀렸다.
유리창이 칸칸이 선 샤워장.
그 안쪽에서 기묘한 빛이 새어 나왔다.
─저벅 저벅
경계하며 다가간 그곳에는 사람 한 명 정도는 지나갈 만한 칠흑의 통로가 가장자리에 푸른색 빛을 일렁이며 떠 있었다.
처음 보는 현상이었지만, 호진은 아까 전에 봤던 푸른 창 속의 내용을 떠올렸다.
“게이트.”
미지의 공간.
아무리 무기가 생겼다 하더라도 이런 수상한 곳에 들어가고 싶을 리가 없다.
호진 혼자였다면 미련 없이 뒤돌아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용재가 남긴 흔적이 너무나 선명했다.
머리가 깨진 검붉은 개미 한 마리와 피 묻은 목검이 샤워장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격한 몸싸움이라도 한 듯 사방에 튀어있는 검고 붉은 피들.
그중 붉은 피만이 게이트 안으로 이어졌다.
선택은 둘 중 하나.
외면하거나 도와주거나.
호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좀만 버텨라.”
다들 외면할 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녀석.
‘모른 척하고 싶진 않아.’
호진은 검을 다잡고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
─띠링
「E급 던전 ‘노예개미 굴’에 입장합니다.」
「난이도 : 매우 어려움」
게이트의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적어도 아까 봤던 개미들이 이용할 만한 통로는 아니었다.
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방이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벽을 덮은 이끼들이 은은한 빛을 내는 덕분에 아주 어둡지는 않았다.
“그래도 너무 어두운 것 같은…… 어?”
갑자기 시야가 밝아졌다.
정확히는 여전히 어두웠지만 사물들이 멀리까지 정확하게 보였다.
‘사냥꾼의 눈 효과인가.’
아마 상시 작동하는 게 아닌 모양.
우선 다시 어두워질 낌새가 보이진 않았다.
호진이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와중, 멀지 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아악! 끄으읍, 놔와아아 이 벌레새끼야!”
소리가 가까웠다.
호진은 소리를 향해 달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재의 발목을 물고 끌고 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용재는 바닥을 흙을 움켜쥐고 버텼지만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용재야!”
“호진이 혀엉!”
사냥꾼의 눈 효과로 용재에게 난 상처가 한눈에 들어왔다.
톱날 같은 모양의 턱은 발목 깊숙이 박혀 있었고, 그 주변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심지어 용재가 몸부림을 치고 있기에 상처는 더욱 벌어질 터.
다급해진 호진은 용재를 물고 있는 놈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 순간.
─화끈
목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려 코트의 앞섶을 적셨다.
‘어라?’
호진은 주춤하고 걸음을 멈췄다.
왼쪽 목 주변이 불에 댄 듯 화끈거렸다.
급하게 목에 손을 갖다 대자 더운 피가 손을 적셨다.
─차카닥 차칵
눈앞에 방금까지 없었던 개미 한 마리가 턱을 부딪치며 호진을 위협하고 있었다.
턱에 묻은 붉은 핏자국을 보니 녀석이 범인인 모양이다.
‘……시야가 좁아졌었네.’
조급해한 나머지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서두른 탓이다.
호진은 뒤로 두 발 물러서며 개미와 거리를 벌렸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천장의 개미들.
─차칵 차칵 차칵 차칵
놈들은 마치 호진의 시선을 눈치챈 듯, 핑킹가위 같은 턱을 딱딱 부딪치며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생각보다 많은 수에 호진은 잠시 숨을 골랐다.
한 번 당한 이상 기습에 또 당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용재였다.
‘빠르게 정리한다.’
호진이 검을 뻗어 중단세를 취하자, 놈들이 벽을 타거나 바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호진은 발초심사(發艸尋蛇)를 운용해 가장 앞에 있는 녀석에게 검을 비틀어 꽂았다.
곧바로 빗자루를 쓸듯 가로로 그어진 검은 옆에 있는 녀석의 더듬이를 자르고 돌아오더니, 대각으로 긋고 올라가며 벽에 붙은 녀석의 머리를 떨어트렸다.
이어서 맹호은림세(猛虎隱林勢) 후 진전살적세(進前殺賊勢).
떨어지며 달려드는 한 마리를 검으로 쳐내고, 검을 휘감듯 들어 올린 후 정면으로 그어내려 공중에서 놈을 반 토막 냈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려 있는 본국검법(本國劍法)이 변용되어 호진의 손끝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33개의 동작으로 이루어진 형 중 찌르고, 베고, 치는 동작 21개.
왠지 지금 그 기술 하나하나가 자신을 어떻게 써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두근
귓가를 울리는 심장의 고동은 긴장이 아닌 흥분 때문.
‘이게 된다고?’
평소 목검을 휘두르며 늘 한 가지 의문이 머리에 맴돌곤 했다.
‘이게 실전성이 있기는 할까?’
그 질문에 답변을 해주기라도 하듯.
호진의 동작 하나하나가 놈들의 몸을 가르고 으깼다.
수백 년도 지난 검술을 재현해 내고 있다는 짜릿함.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발, 두 발.
그렇게 20m쯤을 나아갔을 때.
“스물둘.”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호진의 입에서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더 이상 자신을 가로막는 개미는 없었다.
그때 귀에 울리는 전자음.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잊혀진 검술을 재현해냈습니다. 스킬 경험치가 크게 오릅니다.」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검술 LV1 → 검술 LV2」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검술 LV2 → 검술 LV3」
눈앞에 창들이 어른거렸지만, 호진은 그것들을 옆으로 치우고서 고개를 돌려 용재를 찾았다.
그러자 용재를 끌고 가던 개미가 용재를 놓고 저 멀리 도망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겁을 먹은 건가? 아니면 설마…….’
불안한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달리 타개할 방법도 없었다.
지금은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괜찮냐?”
호진이 다가가자 용재는 씨익 웃어 보이더니 벌렁 드러누웠다.
“으아아. 죽는 줄 알았다. 형, 왜 이렇게 늦었어.”
“구해주러 왔더니 적반하장이냐. 이제부턴 네가 알아서 해라.”
“으잉? 아니, 아니. 내 말은 형이 구해주러 올 거라고 믿었다는 거지.”
용재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호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뼈가 보이진 않았지만 깊고 거칠게 찢어진 용재의 발목 근처에서는 피가 쉼 없이 흘렀다.
당장은 아니지만 출혈이 계속되면 쇼크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도 보통 아픈 게 아닐 텐데.’
“가만히 있어.”
호진은 용재의 상의를 검으로 살짝 찢어 발목에 감아주었다.
그냥 감는다고 멈출 출혈이 아니었기에, 코트 주머니에 있던 볼펜을 이용해 응급 지혈대를 만들었다.
볼펜을 천에 끼우고 돌려 상처를 압박하자 용재가 비명을 질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지혈이 우선이었다.
“엄살은. 소리 지르지 말고 빨리 업혀.”
“으어어. 형 이건 엄살이 아니라 찐이야. 진짜 물릴 때보다 더 아픔.”
호진은 낑낑대는 용재를 업은 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차칵차칵 차칵
뒤에서 듣기 싫은 소음이 울려 퍼졌다.
단 한 마리가 내는 소리일 뿐인데, 몸이 전율했다.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결말.
호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개미 한 마리가 보였다.
아까 전 도망친 녀석.
녀석은 아까와 달리 당당하게 턱을 부딪치며 자신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조랑말만 한 칠흑색의 개미가 카타나처럼 길고 날카롭게 벼려진 두 턱을 위협적으로 까딱였다.
그 뒤에 도열한 수십 마리의 개미 떼는 일말의 희망조차 지워버리는 듯했다.
“허. 용재야. 쟤도 형 데려왔나 본대.”
“……정글 차이.”
“…….”
호진은 애써 그 말을 무시하고 용재를 내려준 후 물었다.
“뛸 수 있겠어?”
“그럼. 너무 멀쩡해서 마라톤도 할 수 있지.”
“진짜?”
“진짜겠어, 형?”
“…….”
호진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용재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기어서라도 입구로 나가. 금방 따라갈 테니까.”
호진의 말에 용재는 순간 멈칫했고, 곧이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그냥, 형이라도 나가.”
“싫어.”
“……어?”
“난 살고 싶다. 용재야.”
“그럼……!!”
“근데 하고 싶은 걸 참으면서 살면 뭐 하냐. 난 그날 이후로 시체처럼 살았어.”
“…….”
“이제야 알았어. 그건 사는 게 아니야. 지금 난 너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해. 이 감정을 무시하고 여기서 혼자서 도망친다면 난 또 시체처럼 살겠지.”
호진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용재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섰다.
“……나중에 갚아줄 테니까. 꼭 나와.”
용재가 씨근거리며 말하자 호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칠흑색 개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진은 다가오는 놈을 바라보다 발로 바닥에 선을 하나 긋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멋진 척, 있는 척은 다 했으니 이제 그것을 책임질 때다.
호진은 손에 배어나는 땀을 옷에 닦아내며, 턱을 까딱거리는 칠흑색 개미를 향해 조심스레 거리를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