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비일상 (2)
직지직.
옷을 끌며 주차장 외벽에 몸을 기댄 남성.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지만 피에 젖어서인지, 손이 자꾸 화면에서 미끄러졌다.
남성을 발견한 호진은 들뜬 감정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아저씨. 기다리세요. 제가 119에…….”
그러자 남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그제야 호진의 눈에 남성의 상태가 들어왔다.
수십 차례 찔린 자상과 피웅덩이. 그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리라.
재빨리 남성에게 다가가 폰을 받아들자, 남성은 힘겹게 ‘딸’이라고 중얼거렸다.
주소록에 딸을 입력하니 나오는 번호 하나.
「하나뿐인 내 딸 예은이」
호진은 통화를 걸고 스피커폰으로 설정한 후 남성에게 폰을 가져다 댔다.
뚜르르르…… 뚜르르…… 틱.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어디야? 다 왔다며.]
남성이 그토록 원했던 목소리.
남성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쎄엑 쎄엑 그륵.
그러나 폐에 피가 들어찬 그의 입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아빠? 잘 안 들려. 바람 소리가 시끄러워. 밖이야?]
남성은 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같은 입 모양을 반복하며 연신 입을 뻥긋거렸다.
‘사. 랑. 한. 다. 내. 딸.’
보다 못한 호진이 입을 뗐다.
“아버지께서 사랑한다 하십니다.”
잠시간 흐르는 적막.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여성이었다.
[……누구세요?]
호진은 대답하지 않고 남성을 바라보았다.
남성은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살짝 웃으며 입을 움직였다.
‘감. 사. 합. 니. 다.’
호진은 대답 대신 쓰게 웃으며 남성을 바라보다 전화기를 향해 말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대답을 기다리십니다.”
[네? 무슨…… 아니…….]
호진은 한 번 더 단호하게 그녀를 불렀다.
“예은 씨. 대답이요.”
[…….]
“…….”
[……아빠, 나도 사랑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성의 눈에 광채가 깃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성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아빠?]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아빠를 찾는다.
호진은 망설이다가 결국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거기가 어디예요?]
말해줘야 할까?
밖의 상황은 전혀 모르지만, 뭔가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제발 말해주세요.]
‘나라면…… 내가 저 딸이었다면.’
“지금 밖은 위험합니다. 최대한 집에 머무세요. 하지만…… 나중이라도 안전해진다면 사과몰 주차관리실로 오시면…….”
뚝.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끊긴 전화.
아마 그녀는 이곳으로 곧장 올 것이다.
‘……나도 늦기 전에 움직이자.’
호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강화에 살고 있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연결이 되지 않아…….]
‘바쁜 걸까? 아니면 혹시…….’
잠시 안 좋은 생각이 호진의 머리를 스쳤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세상의 유일한 피붙이.
돈독하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사이.
잠시 고민해봤지만 그럼에도 가장 걱정되는 건 형이었다.
강화도는 꽤 멀다.
차로도 한 시간 반은 넘게 이동해야 할 거리.
지금이 퇴근 시간임을 감안하면 몇 시간은 걸릴 것이다.
우선 당장 필요한 건 무기와 음식, 그리고 이동 수단.
음식은 급할 게 없다.
가장 급한 건 무기.
두 블록만 가면 예전에 다녔던 검도장이 있다.
호진의 기억대로라면 그곳에는 두 자루의 진검이 있다.
물론 5년 전 기억이기는 하지만, 과시하기 좋아하는 관장님 성격에 치웠을 리는 없으니.
미안하지만 잠시 빌려야겠다.
호진은 구부러진 알루미늄 깃발을 바닥에 내던지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날붙이를 주웠다.
과도 정도 되는 쇳조각은 거칠어서 찌르기보다는 뭔가를 찢는 데 유용해 보였다.
절대 좋은 무기라고는 못 하겠지만 임시방편 정도는 되어줄 터.
호진은 날붙이를 움켜쥔 채 주차장 입구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아직 가을이라지만 어느새 어둑해진 밖은 쌀쌀했다.
코트를 여미며 밖을 살피는데 의외로 밖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수많은 인파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마치 방금 전에 호진이 겪은 일들이 모두 꿈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게 꿈이었을 리 없다.
‘아니, 살면서 그렇게까지 생생한 적은 없었지.’
호진은 손에 움켜쥔 날붙이의 촉감을 느끼며 그렇게 되뇌었다.
그때 한 여성이 옆을 빠르게 뛰어 지나갔다.
20살쯤 됐을까.
등에 멘 긴 가방이 호진을 살짝 스친다.
워낙 빨리 지나가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얼굴이 온통 눈물로 엉망이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주차장.
‘……설마?’
호진은 전화 속 여성이 내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아빠? 어디야? 다 왔다며.’
방금 전 지나간 여성이 죽은 남성의 딸일까?
‘말해주길 잘한 건가?’
잠시 멈칫했던 호진은 고개를 저으며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
사과몰에서 고작 두 블록 지나왔을 뿐인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허름한 골목.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건물의 지하 1층.
호진이 다녔던 검도장이다.
“오랜만이네.”
호진은 계단에서 잠시 멈춰 중얼거렸다.
한때 그는 검도장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 대회 이후, 오욕(汚辱) 그 자체가 되어 검도장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았다.
‘아, 그때도 한 명은 계속 말을 걸어왔었지.’
그때는 힘들어서 밀어내기만 했었는데.
분명 이름이…….
그때 누군가 호진의 어깨를 두드린다.
“호진이 형?”
동글동글한 얼굴에 커다란 눈.
특유의 까까머리까지.
“용재?”
방금까지 생각하던 인물이 눈앞에 나타나자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제 고 3쯤 됐으려나.
워낙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형, 형’ 하고 불렀기에 꽤나 귀여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형! 형이 왜?? 아니지. 일단 지금 들어가지 마. 사범님 계신단 말이야.”
아.
신 사범.
그 대회 이후 호진을 검도장에 발도 못 붙이게 한 장본인.
그를 볼 때마다 벌레 보듯 쳐다보고 면전에서 욕을 쏟아내곤 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검도장에 볼일은 하나뿐이었으니까.
호진은 피식 웃고는 용재에게 말했다.
“용재야, 집에 들어가라. 부모님 걱정하신다.”
“엥? 이런 덩치 큰 아들을 왜 걱정해. 그리고 엄마 아빠는 나 대학생 되고 제주로 이사하셨는데.”
‘벌써 그런 나이던가?’
약간 놀랐지만 일단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먼저다.
“용재야, 형이 다 이유가 있…….”
말을 잇는 와중에 용재 뒤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작은 키와 이상하리만치 큰 머리.
호진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날붙이를 꺼내 들었다.
흠칫.
용재는 갑자기 등장한 날붙이보다도 나른하던 호진의 얼굴이 일순 차갑게 변하는 모습에 더 놀랐다.
“혀…… 형, 왜, 왜 그래?”
호진은 대답하지 않고 순식간에 용재를 잡아당겼다.
정확히 그 순간.
고블린의 손도끼가 용재가 있던 허공을 갈랐다.
“키릭?”
타깃을 놓친 고블린은 염소처럼 길게 찢어진 동공을 뒤룩거렸다.
그리고 호진은 용재를 잡아당김과 동시에 고블린의 얼굴에 무릎을 내리꽂았다.
우직.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나는 녀석.
심지어 들고 있던 손도끼마저 놓쳤다.
“크에에에에엑!”
고블린은 고통스러운 듯 허우적대면서 뒤로 밀려났다.
호진은 그대로 달려가 왼손으로 고블린의 안면을 찍어 누르며 역수로 쥔 날붙이로 목을 수차례 내리찍었다.
고블린도 그냥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손톱으로 코트를 잡아 뜯으며 저항했다.
손톱에 찢긴 코트가 펄럭이고 살에서 옷 위로 피가 묻어났다.
하지만 힘이 빠졌는지 놈의 손톱은 깊게 박히지 않았다.
수차례 찍어 엉망이 된 놈의 목을 날붙이로 헤집던 어느 순간.
손끝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뼈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진짜 감각이라기보단 일종의 직감이었다.
호진은 홀린 듯 그 부위를 깊게 찔러 넣었다.
그 순간.
─띠링
[치명타 성공.]
알림과 함께 녀석이 젖은 빨래처럼 몸을 늘어뜨렸다.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 건물의 입구를 물들이는 놈의 피.
생선처럼 튀어 오른 고블린이 발버둥 치던 것도 잠시.
놈은 벌름거리던 코를 멈췄고 뒤룩거리던 눈에서 생기를 잃었다.
호진은 갑작스레 벌어진 전투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찰나의 순간 손끝에 느껴진 감각이 더 신경 쓰였다.
‘이게 ‘사냥꾼의 눈’이라는 건가? 설명에는 없었는데.’
호진은 끓어오르는 고양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형…… 이게…… 뭔? 아니, 그보다 괜찮아?”
용재가 비척이며 다가올 때쯤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어. 형은 괜찮아. 우선 들어가야겠다.”
사람 좋아 보이는 호진의 미소.
용재는 그 미소에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어? 어…… 그, 그러자.”
‘뭐지? 내가 잘못 본 건가?’
방금 전에 봤던 호진의 얼굴.
저 초록색 괴물을 죽일 때 호진의 얼굴은 마치…….
“안 가?”
“아, 아니, 들어가.”
호진이 앞서서 검도장으로 내려가자 용재는 홀린 듯 그의 등을 쫓았다.
***
검도장의 문을 여니 한 남성이 호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내 더러운 걸 봤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저 표정도 오랜만이네…….’
꽤 오랫동안 꿈에 나올 정도로 호진에게 트라우마를 준 검도장 사범.
신현호 사범.
그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긴 무슨 일이냐.”
“가져갈 게 있어서요.”
호진이 나른하게 대답하자, 사범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조소를 머금었다.
“하. 안 본 사이 많이 변했구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얌전하게 살아라. 죽도는 손도 대지 말고.”
호진은 딱히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그를 스쳐 지나가 관장실 문고리를 잡았다.
덜컥.
문은 잠겨 있었다.
“관장님에게 인사라도 할 생각이냐? 얼마나 염치가 없는 건지……. 오랜만에 봐도 네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구나. 관장님은 애들 하원시키러 가셨다. 빨리 일 보고 나가기나 해.”
“아, 그런가요?”
호진은 대충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보다 소화기를 발견하고 집어 들었다.
“그걸로 뭐 할…….”
사범은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입을 벌렸다.
쾅!
힘껏 내리찍은 소화기가 관장실 문고리를 박살 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사범이 손을 뻗자, 호진은 반대로 사범의 손을 쳐낸 뒤 날붙이를 들이밀었다.
움찔.
사범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뒤로 물러나시죠.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서.”
담담히 말하는 호진의 눈에 서늘한 예기가 깃들었다.
그제야 사범은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났다.
호진은 여유롭게 걸어서 관장실에 들어갔다.
문의 바로 맞은편에는 두 자루의 진검이 걸려있다.
곧바로 두 자루를 모두 챙겨 나오자 몇몇 아이들과 사범이 두려운 표정으로 호진을 쳐다보았다.
“바로 나갈 테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호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호진의 눈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굳이 더 불편을 줄 필요는 없겠지’
호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용재가 그를 붙잡았다.
“형. 밖에 그거, 그거 잡으려는 거지? 그게 뭔지는 몰라도 호구라도 챙겨가. 내 거 줄게.”
그러고 보니 호면은 몰라도 가슴 보호대는 꽤 유용할 것 같다.
“아니 괜찮아. 대련용 빌리지 뭐. 괜찮죠?”
호진이 사범을 향해 살짝 웃자 사범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나 잠깐 이것 좀 닦고 올게. 같이 가자. 형.”
용재는 옷에 튄 초록색 피를 찌푸리며 바라본다.
“따라오게?”
“응. 지금 보니 형이랑 같이 있는 게 그나마 안전하겠더라. 형은 안 씻어?”
호진이 자신의 상태를 둘러보지만 땀이 조금 난 걸 제외하면 딱히 불편한 점은 없다.
“난 됐으니 빨리 씻어. 5분 뒤에 출발하게.”
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재가 샤워실로 뛰어갔다.
용재가 샤워실로 간 사이, 호진은 갑상과 화려한 소나무 무늬가 그려진 무네(가슴보호대)를 꺼냈다.
‘역시 보호대는 검은색이지.’
착용을 마치고 잠시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니 아까보다 훨씬 그럴듯해 보였다.
그때 샤워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