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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배운 검술이 종말에 유용하다-1화 (1/241)

1화. 비일상 (1)

“잠시만요.”

주차장 알바 중인 호진은 정지신호를 무시한 차량의 앞으로 몸을 슥 들이밀었다.

그러자 창문이 내려가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이 구겨진 얼굴을 내밀었다.

“뭐야?”

“죄송합니다. 고객님. 주차 공간이 다 차서요.”

“뭐? 저기 비었잖아. 안 보여?”

“저기는 장애인 전용입니다. 고객님.”

잠시간의 침묵.

남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아니. 근데 이 어린놈의 새끼 말하는 거 봐라? 야, 알바야. 내가 뭐 잘못했냐?”

꾸욱.

호진은 가볍게 신호용 깃발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여전히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유지하며 남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말로만? 주차요금 할인이라도 해줘야지. 알바야.”

남성은 손을 뻗어 호진의 가슴팍을 툭툭 밀쳤다.

“죄송합니다. 그런 권한은 없어서요.”

남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호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실실 처 웃기만 하네. 쯧.”

하고 혀를 차며 창문을 올렸다.

끝까지 미소를 유지하던 호진의 표정은 남성이 떠나자 한층 나른하게 변했다.

무료하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짜증도 어느새 사라지고, 지루함만이 남았다.

손에 움켜쥔 깃발을 내려다본다.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

손에 알맞게 들어찬 깃발은 검의 그립감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휙휙 저어 그 감각을 지워낸다.

‘확실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호진은 문득 5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참가한 전국 일반인 검도 선수권 대회.

쟁쟁한 대학생들과 선수들을 제치며 결승에 올라갔고, 수많은 응원과 환호 속에 경기장에 올랐다.

그리고 그 열띤 환호들은 경기가 끝날 때쯤 비난과 욕설로 변했다.

국내 대회 6개월 참가 자격 박탈.

사유는 스포츠맨십 위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상대는 강했다.

제대로 싸운다면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그때 자신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부상이라도 당한 건지 상대가 의식적으로 보호하려 들던 왼손.

호진은 무아지경으로 그 손을 집요하게 노렸고, 그 결과 상대는 엄지와 검지가 부러진 채 실려 나갔다.

점수로 들어가지도 않는 손가락 부위를 수차례 타격.

심판진은 의도성이 짙다고 판단했고 경기는 호진의 몰수패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정작 경기 후 가장 패닉에 빠진 건 호진 자신이었다.

‘왜?’

왜 그랬지.

처음이었다.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한 상대를 만났던 건.

한참을 고민한 끝에 호진은 애써 외면했던 사실을 자각했다.

자신에게 숨겨진 감각을.

산불처럼 들끓던 감정을.

일정 수준 이상의 상대를 만나자, 대회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머리에서 지워지고 오직 상대만이 눈에 들어왔다.

칼끝이 상대를 향하자 온몸의 신경이 올올이 날이 섰다.

상대의 약점, 다친 손을 노린 건 본능이었다.

그날 이후 호진은 검도선수의 꿈을 포기했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본능을 숨겨야 했다.

본능을 애써 지운 자리엔 나른함과 권태로움이 들어앉았다.

하지만 검에 대한 관심만은 끊어낼 수 없었기에 그는 계속해서 검술들을 찾아보고 연습했다.

칼끝이 사람에게 향하지 않게, 오롯이 취미의 영역에서 호진은 홀로 검을 휘둘렀다.

검을 쥐지 않으면 밀려오는 공허함.

그렇기에 더더욱 평소에는 검에 대해서 떠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종종 이렇게 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찰 때가 있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더더욱 떠오르는 법.

한번 잡념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검을 수련할 때조차도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럴 때 불쑥 고개를 내미는 그날의 감정과 희열.

호진은 그럴 때마다 죄지은 사람처럼 죄책감에 휩싸여 그 감정을 지워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요즘 자꾸 왜 이러지.’

길게 한숨을 내쉰 호진은 멍하니 주차장의 불빛을 바라봤다.

그때…….

탁탁탁탁.

주차장 입구 쪽에서 누군가 달려 내려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차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에서 뛰어 내려오다니.

어떤 몰상식한 인간일까.

곧 그 소리의 주인이 호진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의외로 평범하게 생긴 샐러리맨.

다만, 어디서부터 뛰어온 건지 재킷 안에 입은 와이셔츠가 땀으로 축축해 보인다.

남성은 호진을 보자 눈을 크게 떴다.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뻐끔거렸지만, 호흡이 가쁜지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고객님. 거기 계시면 안 됩니다.”

호진이 남성에게 다가서려는 순간.

털썩.

남성의 신형이 실 끊긴 인형처럼 허물어졌다.

“어?”

놀란 호진이 남성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쓰러진 남성의 뒤로 다른 인형(人形)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운 통로의 불빛 아래임에도 그 모습이 기이했다.

아이 같은 신장에 커다란 머리.

뒤룩거리며 툭 튀어나온 눈동자.

벌름거리는 큰 매부리코.

마치 만화에서 본 고블린 같은…….

놈은 남성에게 천천히 다가가 남성의 등에 꽂힌 날붙이를 뽑아 들었다.

그러곤…….

푹. 푹. 푹.

아이가 먹기 싫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찌르듯.

기다란 팔을 휘적거리며 남성의 엎어진 등을 찔렀다.

‘무슨…….’

호진의 뇌는 순식간에 펼쳐진 비일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식을 뛰어넘은 비일상이라 그런지 긴장감조차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으으으으…….”

쓰러진 남성의 신음소리가 호진의 정신을 일깨웠다.

호진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죽이며 놈을 향해 달려 나갔다.

어느 정도 고블린과 가까워지자 놈이 호진을 발견했지만, 이미 멈추기는 늦었다.

“키릭?”

오히려 달리던 두 다리를 힘껏 박찼다.

쩌억.

빙판에 금이 가는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호진이 휘두른 신호 깃발이 정확하게 놈의 코를 뭉갠 것이다.

그 충격에 놈은 뒤로 발랑 나자빠졌다.

잠시 후.

놈은 코에서 흐르는 초록색 피를 손등으로 문대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른 손에 쥔 날붙이를 들어 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호진의 발 옆에는 쓰러진 남성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고, 그리 만든 녀석이 눈앞에 있다.

그럼에도 호진은 끔찍하게 두려워야 할 이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심장은 방금 전에 달렸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여유롭게 뛰고 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선은 천천히 놈의 모습을 훑었다.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와 그것을 받치고 있는 가늘디가는 목.

적당한 충격만으로도 비틀 수 있을 것 같다.

놈의 팔은 신체에 비해 길쭉하지만, 그래봤자 그의 팔 길이보다 두 뼘은 짧아 보인다.

순간 한 가지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실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내가 질 리가 없다.’

뚜벅.

한 걸음.

뚜벅뚜벅.

두 걸음

호진이 걸음을 내딛자.

놈은 점점 뒷걸음질 쳤다.

‘저놈도 나와 같은 걸 느낀 걸까.’

그렇다면 더 쉽다.

겁에 질린 상대는 유린할 뿐.

호진은 왼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밟았다.

응축된 힘이 왼발 앞꿈치에 쏠리고,

그 힘을 이용해 오른발을 길게 뻗으며 몸을 퉁겼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출수한 깃발은 빛살같이 목표를 향해 뻗어나갔다.

찌르기.

검으로 할 수 있는 최단 최속의 기술.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올곧게 뻗어나간 깃발에 놈의 목이 걸리고 손끝에 묵직한 중량이 느껴졌다.

호진은 깃발 끝에 자신의 무게를 실어 흔들림 없이 팔을 뻗었다.

“크엑!”

잠시 공중에 떠오른 놈은 목을 부여잡으며 바닥에서 뒹굴었다.

비틀비틀.

받은 충격이 컸는지 놈은 균형을 못 잡고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뒤룩거렸다.

곧이어 놈은 휘적휘적 머리를 휘젓더니 호진을 노려보았다.

케에에에에에에엑.

질질 흐르는 침.

놈의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호진은 그 모습을 보자 ‘두렵다’라기보단 오히려 뭔가 뜨거운 고양감이 머리를 덥히는 것을 느꼈다.

“케에에에엑!”

이번에는 놈이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놈은 손에 든 날붙이를 내밀며 달려들었다.

호진이 깃발을 휘두르자 놈은 한 손을 들어 막아낸 후, 힘껏 몸을 날려 날붙이를 휘둘렀다.

‘훌륭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리석다.

호진은 당황하지 않고 퇴격으로 놈의 팔을 치며 몸을 뒤로 물렸다.

상대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은 모든 검술의 기본.

남은 건 부러져 덜렁거리는 놈의 팔과 원상 복귀된 놈과 나의 거리.

유유히 거리를 벌린 호진을 보고 고블린은 망연자실해 있다가 돌연 꽥꽥 비명을 질러댔다.

억울하겠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리치를 이용한 철저한 농락.

호진은 고블린의 실력으로는 자신의 털끝 하나 스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퍽.

이윽고 그가 휘두른 깃발이 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머리를 박살 냈다.

호진은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놈은 아직 죽지 않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깃발 자체가 워낙 가벼워 힘이 잘 전달이 안 된 탓이리라.

호진은 한쪽 발을 높이 들어 놈의 목을 강하게 짓밟았다.

우득.

마른 장작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몸이 바닥에 축 퍼졌다.

“허억허억.”

그제야 호진은 비틀거리며 건물의 외벽을 짚으며 폐 속 깊은숨을 토해냈다.

살아남았다.

놈을 죽이고 내가 여기 서 있다.

그 순간 호진은 아까부터 느꼈던 기시감을 깨달았다.

손끝이 쩌릿할 정도의 쾌감.

대회 때 느꼈던 그 희열.

호진은 순수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해방감과 성취감에 젖어 당혹스러움을 느끼던 그때.

띠링.

‘핸드폰 소리?’

낯선 전자음에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플레이어 자격을 얻었습니다.」

「던전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차원문 입장이 가능해집니다.」

「상태창 확인이 가능합니다.」

「고유스킬이 개화합니다.」

「대비하십시오.」

‘……이게 뭐야.’

푸르스름한 창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플레이어? 던전?

이건 마치 게임에서 아니, 핸드폰으로 보던 소설 속 이야기 같은…….

호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수많은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입에 담았을 단어를 읊조려 보았다.

“상태창.”

띠링.

「상태창」

「이호진」

「나이: 24」

「레벨:1」

「근력:8 민첩:8 지구력:5」

「스킬: NEW!사냥꾼의 눈 LV.1 검술 LV.1」

「직업: 없음」

「칭호: 없음」

「잔여 포인트: 3」

된다.

마치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모습에 호진은 눈을 크게 떴다.

검술이란 항목이 눈에 띄었다.

「스킬: 검술 LV1(일반) : 일반인은 검을 배운 이를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검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이 증가합니다.」

‘다음 스킬은…… 사냥꾼의 눈?’

창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대자 새로운 창이 생성됐다.

「스킬: 사냥꾼의 눈 LV1(고유) : 숙달된 사냥꾼은 먹잇감의 약점을 본능적으로 파악합니다.」

「급소 가격 시 2배 대미지.」

「시야가 밝아지고 넓어짐.」

「잠김.」

호진은 스킬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눈앞의 창들을 전부 껐다.

그러자 주변이 아까보다 훨씬 선명해졌다.

‘이게 스킬…….’

한참 새롭게 일어난 현상들에 뭔가 설레기 시작한 그때.

지지직.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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