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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이마에 조그마한 땀이 주륵 흘렀으나 강영철은 태연한 기색을 유지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나저나 이봐. 나 역시 한국에서 손꼽히는 길드의 수장으로써 자네가 그렇게 막 대한다는 게 불쾌하군. 아직도 내가 예전처럼 설설 기면서 자네의 허락을 맡던 사람으로 보이나?”
“내 눈에는 인류를 팔아먹은 기생충만 보이는데? 조상필의 뒤를 봐주고, 비셔스와 협력했다면 빌런으로 불리기 충분하지. 내가 명색이 빌런헌터라.”
“허참! 증거 있어? 계속 그렇게 나온다면 내 수하들을 시켜 자네를 쫓아낼 거야. 함부로 허락 없이 들어온 것도 더 이상 못 참겠군.”
앞에 놓인 탁자의 전화기에 강영철이 손을 뻗었다.
콰직.
장미모양의 단검이 전화기에 꽂히며 그대로 탁자에 박혔다.
[None]
심미안으로 바라본 강영철은 비각성자였다.
자신의 힘으로 고블린조차 잡아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각성조차도 안한 자가 길드의 수장이라니.
그를 바라보는 수혁의 비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자네 제정신인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참을 수 없어!”
“못 참으면 어떻게 할 건데? 직접 덤벼볼 텐가? 평택에서 죽은 자네 길드원들의 복수를 길드장이 직접 나서준다면야.”
“?! 그게 전부...”
경악한 강영철이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렸다.
“레이먼이 안부 전해달라더군. 네가 주고받는 비셔스의 조직에 대해 정보를 좀 털어놔야겠어. 선택해봐. 전부 다 불면 고통 없이 보내주지.”
“이런 미친놈을 봤나! 내가 누군 지 알아-? 나는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무력이야-! 내 한 마디에 나라가 흔들린다고!”
“그래~ 그래~”
어차피 순순히 말할 거란 기대는 안 했다.
수혁이 양 팔을 벌리자 짙은 어둠이 구름처럼 장막을 펼치더니 수혁과 강영철을 감쌌다.
잠시 후,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난 뒤 남은 것은 수혁뿐이었다.
마치 짜증이 난 것처럼 입이 툭 튀어나온 그가 투덜거렸다.
“가시 한 방에 질질 짤 거면서 시간만 끌기는. 쯧.”
너무나도 나약했다.
그동안 싸워왔던 적과 비교했을 때에 비해 근성도, 끈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추한 권력자의 모습만 보였을 뿐.
혀를 찬 수혁이 사무실 뒤에 있던 서재에 다가섰다.
무수히 많은 서적들 사이에서 혼자 표지가 붉은 책 하나를 골라 꺼냈다.
책을 펼치자 그 안에는 스마트폰 하나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수혁이 폰의 전원을 누르자 곧바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폰이 녹아버렸다.
“이런. 마법이잖아?”
아무래도 비셔스 측에서 미리 손을 쓴 것 같았다.
“비셔스와 연락이 뚝 끊어졌다는 강영철의 말이 사실이었군. 흔적을 지우는 건가.”
NS 그룹의 이사에서 태백 길드까지 비셔스와의 연결된 자들을 전부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명.
똑똑똑.
사무실의 방문을 두드린 비서가 결제를 맡을 서류를 손에 들고 문을 열었다.
“음? 어디 가셨지?”
태백 길드장인 강영철이 나가는 모습은 못 봤는데 사무실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결제할 게 한두가지가 아닌데...”
퇴근이 늦어질까 울상을 지은 비서가 투덜거리며 방문을 다시 닫았다.
***
차가운 바닷바람이 계속해서 코끝을 스쳤다.
밤이 내려앉은 항구에는 파도와 맞닿은 정착된 배들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시뻘개진 볼따구와 귓불을 문지르던 조상필이 추위에 못 이겨 주차되어있던 자신의 차로 되돌아갔다.
인천의 한 부둣가에서 새벽까지 대기한 그는 지루한 듯 하품을 쩍쩍 날렸다.
“이 자식들은 언제 오는 거야? 경호받을 사람이 경호원을 기다리는 게 말이 돼?”
“제가 따끔하게 한 번 얘기하겠습니다.”
“허허허. 그래. 정 비서가 화끈하게 한 마디 해줘. 확 주디를 차뿐다고 말이야. 껄껄껄껄.”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의원님.”
태연한 척 농담 따먹기를 했지만 조상필의 속은 타들어갔다.
자신이 뒤를 봐주던 여러 길드뿐 아니라 사냥개가 묶여있던 태백 길드의 평택 기지까지 날아가버렸다.
누군지 모르는 적이 다가오고 있는데 남은 건 비셔스뿐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이 자신에게 경호원들을 보내준다 했으니 그나마 희망의 불씨가 존재했다.
“제대로 된 애들을 좀 보내야 할 텐데...”
이런 저런 잡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다른 차에서 대기하던 보좌관이 황급하게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지이잉.
창문을 내린 조상필이 사색을 방해한 보좌관에게 도끼눈을 떴다.
“뭐야?!”
“의... 의원님. 실시간 기사가 하나 떴습니다.”
“응?”
보좌관이 자신의 폰을 내밀자 보이는 화면에는 태백 길드장의 실종 기사가 크게 박혀있었다.
“이 새끼가 도망을 쳐?”
기사를 본 조상필은 화가 치솟았다.
같은 배를 타놓고 혼자 하선하다니.
누구는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사정을 모르는 그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일단 알았어. 가봐.”
“네. 의원님.”
괜히 더 복잡해진 마음에 조상필이 한숨을 크게 내뱉었다.
자신의 속한 당에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제적을 떠나 더는 한국에서 발을 붙이고 살 수 없을 것이었다.
“푸우... 나도 손을 떼야하나.”
정치인의 특기인 모르쇠, 잡아떼기 수법이라면 자신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휘젓고 다니는 적이 과연 자신의 말을 들어줄지가 의문이긴 했다.
불법적인 일을 한 탓에 헌터협회나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그랬다가는 괜히 본인이 잡혀갈 테니까.
생각이 깊어질수록 답은 나오지 않고 머리만 더 지끈거렸다.
수심이 깊어진 조상필의 모습에 옆에 앉은 보좌관은 눈치만 보느라 눈알만 굴렸다.
똑똑.
지이잉.
“또 왜!”
보좌관이 창문을 두드린 줄 알고 창문을 내리며 소리친 조상필은 낯선 이의 등장에 화들짝 놀랬다.
“누...누구?”
“나와.”
“어- 어- 어-”
열린 창문으로 조상필의 멱살을 잡은 수혁이 그대로 차에서 빼냈다.
“어이쿠.”
바닥에 나뒹구는 조상필의 모습에 다른 차에서 대기하던 보좌관들이 황급히 모여들었다.
“너 임마 누구야!”
“이 분이 어떤 분인데?!”
시끄럽게 조잘대는 그들은 전부 비각성자였다.
그림자에서 박쥐 몇 마리를 꺼낸 수혁이 곧장 보좌관들에게 내보냈다.
“으아악!”
“끄아악!”
“사람살려-!”
발톱과 이빨로 박쥐들에게 뜯기는 보좌관들이 마구 손을 휘저으며 난리부르스를 쳤다.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수혁이 고개를 다시 돌렸다.
“누... 누구야!”
“누구야 말고 다른 말은 없나? 누구세요라던지, 어디서 오셨어요라던지 이런 거 있잖아.”
“뭐...?”
얼이 빠진 조상필에게 다가간 수혁이 어깨동무를 하며 친근하게 굴었다.
“이제 너 하나 남았어.”
“...예?”
“비셔스. 아시아 지부장 관련 된 정보를 내놔.”
수혁의 얘기를 들은 조상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기 때문이었다.
어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항구로 환한 불을 킨 낚싯배 한 척이 다가왔다.
“와...왔다!”
“?”
“너 이 자식.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해?”
비셔스가 보낸 지원병력이 도달했다고 생각한 조상필이 자신감에 취해 마구 말을 내뱉었다.
“법치국가에서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을 공격해?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
그의 말이 통한 걸까.
입을 다문 수혁의 모습을 본 조상필의 기세가 더욱 등등해졌다.
“어깨에서 손 치워 이것아!”
어깨를 붙잡은 수혁의 손을 강제로 떼어내려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더 주려는 찰나 그의 머리통이 땅과 부딪쳤다.
퍼억.
수혁이 그의 뒷통수를 붙잡고 그대로 땅에 내리찍었다.
“아흐흑.”
“순간 미쳤나 했네. 또 자폭할까봐 식겁했다. 너도 비셔스에서 준 약물 들고 다녀?”
자신의 몸을 더듬는 손길을 느끼는 와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조상필이 낚싯배를 향해 소리 질렀다.
“이봐-! 여기라고! 날 도와야지!”
“?”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잠시 항구에 들릴 것 같던 낚싯배는 통통통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아... 안 돼.”
“오호. 비셔스의 일원이 너를 도우러 오기로 했나? 그렇다면 잠시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지.”
조상필의 반응을 확인한 수혁이 그를 차에 가두고는 옆에 앉았다.
그를 도우러오는 비셔스의 일원을 잡는다면 그것 역시 정보가 될 테니까.
고요한 항구의 다른 보좌관들은 박쥐에 뜯어먹혔고, 그들의 시체는 곧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왜... 왜 안 오는 거지...”
“제길. 시간만 낭비했네.”
혼자서 중얼거리는 조상필의 옆에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수혁이 인상을 팍 썼다.
보아하니 비셔스에서 손절을 친 것이 분명했다.
태백 길드의 강영철하고도 연락을 끊더니 자신들의 꼬리가 잡힐까 두려웠는지 조상필 또한 버렸다.
조상필은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수혁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점조직이라는 것이 이래서 흔적을 지우기가 편리했다.
특히나 한국만 무대로 하는 조직이 아닌 해외에서 활동하는 조직이라 더욱 잡기 어려웠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상필과 엮이니 다른 자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수혁이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보아하니 이 자는 자폭할 수단도 없다.
그럴 용기조차 없고.
“오붓하게 대화를 해볼까?”
해가 떠오른 항구에는 주인 잃은 차 몇 대만 덩그러니 남겨져버렸다.
빌런들을 잡고 올라가며 비셔스의 아시아 지부까지는 잡을 생각이 있었지만 이대로 흔적이 끊겨버렸다.
“남은 건 선데이와 먼데이인가.”
***
수혁이라는 나비가 일으킨 날개짓이 가져온 영향력은 거센 폭풍이 되어 한국을 강타했다.
빌런짓을 하던 중소길드 몇 개가 사라진 것은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길드장이 사라진 태백 길드는 부길드장끼리의 불화로 여러 조직으로 찢어져버렸다.
국회의원 한 명이 사라진 기사는 짧게 보도될 뿐 사람들의 관심 대부분은 헌터 길드가 대부분이었다.
NS 그룹 역시 이사진의 비리가 들통나며 신성 길드로 가는 지원이 줄어들었다.
그에 반발한 신성 길드원이 NS 그룹 회장에게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폭로와 함께 NS 그룹은 내홍에 빠져들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맞춰 나온 적나라한 동영상에는 회장의 얼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룹 회장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길드에서 잘라버리겠다는 협박을 시도때도없이 했어요.”
오튜브를 통해 폭로한 모자이크가 처리된 여자 헌터는 HD 그룹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백호 길드로 들어갔다.
밤에 그렇게 아양 떠는 모습을 봤는데, 약속한 듯이 곧바로 경쟁사에 있는 길드에 들어가는 모습이라니.
영락없는 스파이 같았지만 수혁은 침묵했다.
그 덕에 백호 길드와 맞설 신성 길드는 어수선한 분위기와 함께 조금씩 기세가 줄어들었다.
백호 길드에서 신성 길드를 향해 길드전을 붙자는 도발을 해도 침묵하며 회피할 뿐이었다.
수혁의 간접적인 지원 덕에 백호 길드가 우세를 확실히 가져갔다.
혼란해진 정국을 틈타 가장 큰 이득을 본 자는 헌터협회의 김상중이었다.
미발견 게이트 폭주사태의 책임을 진 이창 게이트 관리국장이 물러나며 게이트 관리국은 헌터협회의 산하로 들어갔다.
이어서 태백 길드의 내분을 중재하였으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사태를 진정시켰다.
명실상부한 헌터협회의 일인자로 김상중은 막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조용히 게이트를 깨며 일상을 보내던 수혁은 김상중의 힘이 커지는 것을 반겼다.
그는 누구보다 수혁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니까.
한국에 비셔스와 관련된 조직은 사라졌고 자잘한 빌런들이 활개를 치려했지만 그때마다 빌런헌터들에게 잡혀 힘을 쓰지 못했다.
빌런청정국으로 불릴 만큼 클린해진 한국에 수혁이 제법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정도면 당분간은 헌터들의 성장을 방해할 요소는 없겠어.”
다시금 블러드 길드를 채찍질하며 성장을 가속화시키려는 때였다.
띠리링.
훈련장에서 블러드 길드원들과 훈련 하던 중 문자가 왔다.
스마트폰을 본 수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올 것이 왔군.
[S.O.S]
선데이의 메시지였다.
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은 뒤, 즉시 훈련을 멈추고 길드원을 불러 모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한 그들에게 수혁이 입을 열었다.
“미국으로 출장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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