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빌런의 무한 흡수 권능-62화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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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엔 대가가 따른다.

수혁이 가볍게 손짓하자 어둠 속에서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한 가시가 튀어나와 레이먼의 팔다리를 전부 꿰뚫었다.

이어서 뱀처럼 몸을 휘감은 어둠의 가시들 덕에 레이먼은 십자 형태로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제 대화를 시작해보자.”

“넌 누구냐?!”

혼란과 공포, 경악이 가득한 레이먼의 질문에 수혁이 쯧쯧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답만 하면 돼.”

“으아아아악!”

몸을 감은 가시들이 더욱 몸을 옥죄자 레이먼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이 자는 격이 다르다. 어떻게든 알려야 돼. 남은 수단은...’

자신의 생각이 들킬까 두려운 그는 눈을 감고 입을 꾹 닫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다시 벌릴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악!”

“첫 번째다. 선지자의 은혜는 누가 만들지?”

자신이 생각한 탈출 수단을 사용하기 전 시간을 벌기 위해 최대한 수혁에 협조하는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

“크흐흐. 당연히 선지자께서 만들지 누가 만들어?”

“흠... 좋아. 그럼 왜 만들지?”

그의 질문에 레이먼이 도끼눈을 뜨며 거칠게 말을 토해냈다.

“멍청한 것! 그건 너 같은 헌터들을 위해 비셔스에서 직접 나서서 행하는 위대한 대업이다! 너와 같은 능력자가 고작 힘도 없는 인간들의 지배를 받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나? 더 우월한 존재들이 지배하는 게 합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냐? 이미 우리의 사상에 동조하는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도 잘 아는 거지. 이 세상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헌터야 그렇다 쳐도 너는 인간을 먹이로만 볼 뿐 아닌가?”

“... 무작정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지성이 있는 존재로서 개체 수 조절을 적당히... 크아아악!”

“헛소리는 그만하고.”

틈만 나면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하네.

애초에 힘만 세다고 누군가를 지배했다면 이 세상은 결코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원시시대에 머물러 있겠지.

사람의 재능은 힘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레이먼에게 계속해서 고통을 내린 수혁은 턱을 손으로 집고 골똘히 다음 질문을 생각해봤다.

“한국에 남아있는 비셔스의 일원은 네가 마지막인가?”

“...글쎄? 크아아악. 커헉. 허억. 그래. 그래. 말 한다. 말해. 내가 마지막이다.”

“태백 길드장 역시 너의 일원인가?”

“그 자? 그럼 이 넓은 부지에 이만한 인력을 준 사람이 과연 우리 일원이 아닐까? 알았어. 알았다고. 그렇게 죽일 듯이 쳐다보지 말라고~ 그 자는 일원이라기보다는 협력자에 가깝지. 우리가 그만한 아이템과 자금을 지원해주니 이곳을 할당해준 것뿐이야. 그 자는 돈만 된다면 오케이하거든. 부길드장들은 나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서로 간섭하지는 않지. 길드장의 명령에 토를 안 달거든. 군인 출신들이 이래서 좋아. 시키는 대로만 하는 애들이지. 끌끌끌.”

“결국 길드장만 연관되어있다?”

“...그래.”

이 자의 말을 전부 믿을 순 없지만 그 다음 목표가 태백 길드장이 되는 건 확실했다.

그 자만 끊는다면 국회의원 조상필이 가질 수 있는 무력수단은 실질적으로 제로가 될 것이었다.

그 다음은?

식은 죽, 아니 식은 피 먹기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수혁을 향해 레이먼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끌끌끌. 네 놈은 인간이 아니구나.”

“?”

“어째서 인간의 편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둠을 다루는 능력은 오직 우리 흡혈귀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같은 동족을 공격한 너를 율법에 따라 넘겨야하는데 그럴 힘이 없는 것이 억울하구나.”

“아직도 너와 같은 동족이 많이 있다는 얘긴가? 흠... 너희들은 대체 이 세상에 어떻게 나왔지?”

“모든 것은 선지자의 은혜로...”

다시금 눈을 감은 레이먼이 혼자서 속닥거렸다.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 수혁이 손을 쓰기 직전 충혈된 눈을 크게 뜬 레이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율법에 따라 배신자인 널 처단하겠다-!”

수혁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마력을 끌어 모은 레이먼이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흡혈귀라면 이 순수한 태양빛에 견디지 못 할 터! 같이 죽자아-!”

그의 몸이 쩌저적 갈라지더니 세상 무엇보다 순수하고도 뜨거운 빛이 뿜어졌다.

어찌나 강렬한지 수혁이 만든 어둠의 공간 일부가 날아갈 정도의 위력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한 마법이라 그 빛의 세기는 너무나 강렬했다.

고도의 흑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마지막 마법은 눈부시도록 찬란한 빛의 마법이었다.

실질적인 자폭용으로 흡혈귀들 사이에서 금기시하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자신의 몸이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수혁의 최후를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너무나 밝은 빛에 앞을 보기 힘든 수혁이 팔로 눈만 가리고 몸이 굳어진 상태였다.

그는 비록 죽지만 비셔스의 대업을 가로막는 저 배신자를 처단할 생각에 희열이 차올랐다.

환한 빛이 곧 수혁을 감싸고 자신 역시 시야가 가려졌다.

‘지옥에서 보자.’

화르르르륵.

강렬한 빛이 사라지고 레이먼의 몸은 잿더미조차 남지 못했다.

수혁이 만든 어둠의 공간에 금이 갈 정도의 빛의 세기였다.

그러나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린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력 소모가 심한 어둠의 장막마저도 다시 거뒀다.

“난 흡혈귀가 아니라니까. 동족이 아닌데 혼자 저러네.”

아직 다 캐묻지도 못했는데 혼자 자폭해버렸다.

비셔스는 자폭이 유행인가.

다들 인내심이 짧아. 쯧.

주변을 둘러보니 부서진 건물의 잔해에서 피어오른 불길에 연기가 가득했다.

어느새 폐허로 변해버린 태백 길드의 군사훈련장이었다.

살아있는 인기척도 없는 이곳에서 흘러나온 피를 모두 흡수한 수혁은 곧 자리를 떴다.

그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청과 군, 경찰에 다른 태백 길드의 지원병력까지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맙소사. 이게 무슨 난리야?”

영문을 모르는 소방관들은 일단 불부터 끄기 시작했고, 군과 경찰의 통제에 태백 길드원들이 항의했다.

“여기는 우리 구역이에요!”

“그건 모르겠고, 일단 지시에 따르세요. 안 그래도 혼란한데. 조사만 끝나면 들여보내줄게요.”

연기에 얼굴이 그을린 경찰이 흥분한 태백 길드원들을 자제시켰다.

***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한 수혁이 편안한 소파에 누워 TV를 켜자 온통 긴급 속보로 뉴스가 뒤덮였다.

그러나 뉴스의 내용은 그가 생각한 것과 다른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금일 오전 태백 길드의 평택 기지에 폭발 사고가 일어나 당국이 수습에 나서고 있습니다......]

[소방당국과 헌터협회의 우려에 태백 길드의 강영철 길드장이 기자회견에 나섰습니다.]

[저희 태백 길드는 유족들에게 충분한 위로금을 보상할 것이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화약 및 마법 분야에 철저한 관리를 통해......]

태백 길드의 사고로 인해 미발견 게이트 폭주 사태에 관한 기사는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헌터협회가 조상필이 꾸민 게이트들을 죄다 공략해버린 건 짤막한 한 줄짜리 인터넷 기사로 끝이 났다.

“강영철...”

수혁이 아는 얼굴이었다.

과거 게이트를 깨는 독점권을 얻을 당시 정부측의 협상 대상자로 나왔던 자였다.

군대를 나와 만든 태백 길드가 자신과 이렇게 충돌하게 될 줄은 그 역시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앞에서 계약서에 싸인 좀 해달라고 쩔쩔매던 표정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거물이 된 자였다.

“죄를 지었으면 검 앞에선 누구든 평등한 법이지.”

빌런을 양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비셔스와 내통한 죄는 너무나 컸다.

특히 커럽티드를 길러 그들을 상대하는 헌터들이 헛되이 죽을 뻔 했다.

게이트에서 지지고 볶으며 레벨을 올려도 훗날 어찌될지 모르는데 허무한 결말을 맞을 뻔 했다.

말 그대로 인류의 적이다.

TV를 쳐다보는 수혁의 눈빛에서 싸늘한 냉기가 풀풀 흘렀다.

“이만하면 확실한 경고는 되었겠지.”

목을 잘 닦아놓고 죽음의 사신을 맞이할 준비는 되어있나.

***

- 지금 사냥개를 보관하던 장소까지 폭발하고 난리가 났단 말이야. 어서 경호원들을 보내야지 이렇게 날 죽게 내버려 둘 건가?

“...”

- 무슨 말이라도 해 봐!

스마트폰으로 들려오는 조상필의 초조한 목소리만큼이나 비셔스 아시아 지부장인 카부토 역시 고심이 깊었다.

‘레이먼은 선지자님의 직속인데 막지 못했나.’

선지자의 직속 부하들은 그로서도 우습게 볼 수 없는 강자들이었다.

조상필의 말만 듣고 지원병력을 보내려던 걸 다급히 취소했다.

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파악한 그는 적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좋다. 내가 직접 나서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도록.”

- 오오오. 그렇다면야 내게 희망이 생기는군. 좋아. 조금 더 버텨볼 테니 빨리 와주게.

희망에 찬 조상필과 통화를 마친 카부토는 입꼬리를 올리며 스마트폰을 탁자에 슬쩍 내던졌다.

그는 한국으로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쯤에서 꼬리를 잘라야겠군. 마쯔다!”

“하잇.”

그가 앉아있던 소파의 뒤에서 튀어나온 남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전부 끊도록.”

“하잇.”

조직에서 문책이 들어올 테지만 이렇게 끝낼 수 있는 것 역시 점조직의 장점이었다.

이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오다가 대업이 더 뒤로 미뤄진다면 오히려 큰 손해였다.

“한국 말고도 아시아는 넓으니.”

그가 앉아있는 방 정면에 놓인 커다란 모니터에서 아시아의 대부분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오직 한국만 색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어차피 다른 곳이 바뀐다면 한국도 바뀔 수밖에 없다.

한국은 다른 나라 눈치 보는데 환장하는 민족이니.

“잠시 뒤로 미뤄진 것뿐이지. 대업은 완성된다.”

***

세월이 흘러 머리에 흰머리가 대부분을 차지한 강영철이 깊어진 주름만큼이나 스트레스의 증가로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넓은 사무실에는 화려한 장식만큼이나 귀중품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그가 얼마나 애정을 쏟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최근 평택에서 생긴 일로 골머리를 앓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족들의 보상금 관련해서 이상으로 회의 마치겠습니다.”

부길드장과 길드의 실무를 맡고 있는 길드원들이 자리를 떠나가자 사무실에 정적만 남게 되었다.

평택 기지와 관련된 조직인 비셔스도 그 날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는 걸 보아하니 자신과의 흔적을 지운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하아... 어떻게든 증거를 지워야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지가 몽땅 불에 타버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증거가 남지 않은 점이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살아남은 길드원들 몇몇이 딴소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증인을 없애야하는데...”

무섭도록 냉정한 그의 말에도 직접 나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비셔스는 연락이 되지 않고, 그가 비밀리에 부리던 무력단체 대부분이 평택 기지의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고민이 많았다.

직접 나서기에 사실 그의 무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한다는 흐름을 재빨리 읽은 그가 곧장 전역하고 만든 길드였다.

탄탄대로로 성장한 만큼 자신감이 넘쳤었는데 처음으로 위기를 겪은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공격에 음지의 일로 써먹던 중소 길드마저도 죄다 날아갔다.

“대체 어떤 자식이지...”

깜빡. 깜빡.

사무실의 조명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응?”

“날 찾는다고?”

자신의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놀랍게도 그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수혁 길드장!”

“오랜만이야.”

경계심을 잠시 누그러트린 그가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이 누추한 곳에 어쩐 일인지... 요즘 제일 바쁜 블러드 길드 아닙니까?”

“왜긴. 비셔스하고 붙어먹느라 재미 좀 봤나?”

그의 어색한 웃음에 수혁이 싸늘한 미소로 응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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