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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나의 것
총구의 화염과 연기가 걷히자 붉은 망토에 앞이 가려진 수혁이 그대로 서있었다.
망토를 뒤로 젖히자 박혀있던 총알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태백 길드원들 역시 헌터이기에 이런 상황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총을 쏴서 죽으면 땡큐고 아니면 말고였다.
애초에 그들은 정예군인출신으로 실전을 여러 번 겪은 베테랑들이었다.
멀쩡한 수혁을 본 고백호가 곧바로 입을 벌리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발검!”
총을 일제히 땅에 내려놓은 태백 길드원들이 허리춤의 검을 꺼냈다.
일반적인 검이라기보다는 마체테형식의 네팔의 외인부대가 주로 사용하는 쿠크리였다.
그들은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는 대인전에 더 특화된 헌터들이었다.
더욱 강한 존재를 사냥하는데 능숙한 그들은 약속된 대형으로 후다닥 움직였다.
순식간에 수혁을 에워싼 그들이 일제히 검을 겨누고는 자세를 잡았다.
“끼요오오옷!”
괴상한 고라니와 같은 외침을 한 태백 길드원이 앞에서 수혁에게 검을 휘둘렀다.
수혁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할 때 사방에서 접근한 자들이 일제히 검을 그었다.
이들의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지며 얼마나 훈련이 잘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면에서 떨어지는 검을 쳐낸 수혁이 곧바로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다가온 태백 길드원들의 몸이 상, 하체가 분리되었다.
당혹스러운 눈동자와 달리 뒤에서 붙는 나머지 길드원들은 훈련받은 대로 적을 베기 위해 손을 멈추지 않았다.
수혁이 서있던 공간에 검이 X자 형태로 교차하는 순간 그의 몸은 이미 허공을 날아오른 뒤였다.
“엇?!”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잘린 목이 팝콘처럼 위로 튀어 올랐다.
수혁의 검이 지나가자 태백 길드원들의 목이 계속해서 잘려나갔다.
허공을 밟아 나가며 태백 길드원의 목을 베어내는 순간 바람으로 만들어진 주먹이 수혁의 등을 강타했다.
퍼-엉.
그러나 망토가 먼저 부풀며 충격을 흡수한 탓에 수혁은 아무런 충격도 받지 못했다.
“저걸?! 어떻게?!”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 받은 고백호가 연달아 마법을 사용하려했다.
마력을 끌어 모은 그가 다시금 손을 뻗었다.
퍼-억.
두 눈을 뜬 상태로 이마에 단검이 박힌 고백호가 손을 뻗은 상태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어느새 손을 뻗은 수혁이 단검을 날린 뒤였다.
“음흉한 놈.”
짧은 감상평과 함께 수혁이 검을 역수로 잡아 뒤로 꽂아넣었다.
등 뒤에 다가온 태백 길드원이 위로 올린 검을 휘두르지 못한 채 그대로 몸이 꿰뚫렸다.
수혁을 막던 태백 4팀 전원이 전멸했다.
애애애애앵. 애애애애앵.
당연히 침입자를 처리할 줄 알고 안일하게 전투를 지켜보던 나머지 길드원들이 화들짝 놀라 이제야 침입 경보를 울렸다.
“비상-! 비상-! 출격준비!”
누가 이곳에 쳐들어온다고 생각했을까.
항상 평화에 찌들어있다보니 경각심을 갖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경보에 맞춰 길드원들이 무기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들 중에는 헌터로써 들어온 자들도 있었지만 항공자산을 운용하는 인력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와아아아아-!”
“저 놈을 죽여-!”
수혁이 몰려오는 태백 길드원들과 싸우는 사이, 다급한 움직임으로 전투용 헬기에 올라탄 그들이 급하게 이륙했다.
군사훈련장 중간에서 일 대 다수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주변에 쓰러지는 것은 태백 길드원들뿐이었다.
두두두두두두-
군사훈련장 중간에서 검기를 내뿜으며 적을 도륙하던 수혁을 향해 아파치 헬기 수 대가 공중에서 불을 내뿜었다.
헬기에 달린 M230 체인건에서 고속으로 기관포를 발사했다.
수혁은 몸을 망토로 가렸고, 망토와 바닥을 때리며 튀어 오른 파편에 흙먼지가 자욱해졌다.
쏟아지는 총알에 망토를 뒤집어쓴 수혁이 멈춰있자 대전차미사일까지 날아왔다.
피슈우우우웅- 콰과광-
불기둥이 솟아오르며 땅을 울리는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흙먼지를 비산시켰다.
“여기는 이글 원, 적이 기동성을 상실했다. 반복한다. 적이 기동성을 상실했다. 이상.”
“이글 투, 시야가 제한된다.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
대전차미사일이 터진 곳에서 시커먼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연기가 앞을 가렸다.
헬기들이 연기 주위에 머무르며 수혁의 움직임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배회했다.
남은 태백 길드원들 역시 주변에 머무르며 인기척을 찾고자 애썼다.
잠시 후, 시커먼 연기 사이를 뚫고 헬기만한 크기의 박쥐가 계속해서 튀어나와 헬기로 쏜살같이 다가왔다.
“이글 원, 박쥐가 날아온다!”
“이글 투,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글 쓰리! 회피해!”
헬기를 감싼 박쥐들은 전면 유리창을 뜯고 조종사를 발톱으로 찍어 하늘에서 떨어트렸다.
이어서 프로펠러를 공격하며 물어뜯는 박쥐들로 인해 부서진 헬기들이 하늘을 빙빙 맴돌며 추락했다.
“아아아아악-!”
땅으로 힘없이 떨어진 조종사들이 피떡이 되며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덜덜덜덜덜.
박쥐에 공격당해 연기가 치솟은 헬기들이 힘없이 훈련장의 시설들에 떨어졌다.
콰과광-
군사훈련장 곳곳에서 폭발하는 헬기로 인해 화염이 치솟으며 혼란이 가중되었다.
패배를 직감한 몇몇 길드원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으나 연기 속에서 걸어나온 수혁은 굳이 그들을 쫓지 않았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한 무리의 존재 때문이었다.
머리카락이 없는 푸른 눈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남성의 곁에 생김새가 비슷한 4명의 수하가 뒤따랐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들이 등장하자 수혁의 코로 역한 피냄새가 풍겼다.
“너는 누구냐? 나는 평택 기지 소장 레이먼이다. 감히 태백 길드를 적으로 돌리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언제부터 흡혈귀들이 대낮부터 대놓고 돌아다니지?”
수혁의 말에 레이먼의 눈썹이 꿈틀거렸으나 이내 조소를 지었다.
“끌끌끌. 제법 눈썰미가 좋구나. 네가 최근에 우리의 일을 방해한다는 녀석이구나.”
“나에 대해 알고 있나?”
“당연히 모르지~ 그러나 우리 조직원들이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죽어나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네 놈 생각보다 강하구나.”
“그런데 나에게 맞설 생각을 한다고?”
그의 질문에 레이먼이 오히려 환하게 웃었다.
“우리가 널 죽이면 그대로 끝이고 우리가 죽어도 너의 수준에 맞춰 조직에서 간부들을 보낼 것이다. 무엇이 되었던 결국 넌 죽는다.”
“너희들이 먼저 죽을 거야. 나에게 비셔스에 대해 털어놓은 뒤에 말이지.”
“끌끌끌. 쳐라!”
레이먼의 뒤에 있던 부하들이 손톱을 세우고는 수혁에게 쇄도했다.
제일 먼저 다가온 부하의 몸을 검으로 꿰뚫었지만 그대로 밀고 들어와 수혁을 할퀴려했다.
당황하지 않은 수혁이 검을 비틀며 위로 올려버리자 몸통에서 머리통까지 전부 갈라버렸다.
연달아 뒤에 있던 부하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손톱을 길게 뻗고, 마지막 녀석은 하늘로 날아올라 수혁의 머리를 향해 손톱을 들이밀었다.
약속된 연계기에 수혁이 뒤로 물러나며 검을 좌에서 우로 횡베기를 하자 손톱들이 수수깡처럼 잘려나갔다.
우지직.
이어서 다른 손으로 주먹을 위로 뻗자 주먹과 맞부딪친 손톱이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손목까지 아스라졌다.
“캬아악-!”
주먹이 부러지고 손톱이 잘렸음에도 부하들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며 수혁을 물기 위해 억지로 몸을 들이밀었다.
검을 휘두르기 어려운 초근접 상황에서 피식 웃은 수혁이 검을 위로 집어던지고는 두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퍼버버벅.
레프트, 라이트, 더킹하며 어퍼컷까지.
주먹에 두들겨 맞은 부하들의 광대뼈와 턱이 함몰되며 부서진 이빨이 사방으로 튀었다.
뒤로 물러난 수혁이 몸을 회전하며 돌려차자 발차기 한 방에 부하들의 목이 전부 꺾이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적들을 쓰러트린 후 손을 위로 뻗어 떨어지는 검을 다시 잡았다.
자신의 부하들이 쓰러지자 눈이 동그래진 레이먼이 곧바로 양손을 위로 크게 들었다.
그의 손에서 끓어오른 어두운 기운이 부하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목이 꺾여 죽었던 부하들이 좀비처럼 다시 일어났다.
덜렁거리는 머리통이 어깨까지 내려와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연출했다.
흥미로운 광경에 수혁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흑마법?”
“네 놈도 내 인형으로 만들어주마! 자라나라 나의 종자들아-!”
양 팔을 크게 벌리자 레이먼의 주위에 더욱 짙은 어두운 기운이 뭉쳐들었다.
손을 앞으로 모으자 어두운 기운들이 좀비들을 자극시키더니 그들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우드득. 지지직.
스테로이드라도 잔뜩 맞은 것처럼 근육이 부풀어 오르더니 덩치가 2배는 더 커져버렸다.
덜렁거리던 목도 제자리에 붙더니 입이 길게 찢어지며 가시 같은 자잘한 이빨들이 입 안에 여러겹 생겨났다.
“호오.”
마법이 일어나는 광경을 재미있게 지켜보는 수혁에게 레이먼이 부아가 치솟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쿠워어어어-
레이먼의 손짓에 비대해진 좀비들이 머리통보다도 큰 주먹을 휘둘렀다.
수혁이 뒤로 물러나 주먹을 피하는 사이 레이먼이 또 다른 주문을 연달아 중얼거렸다.
“피와 살점의 신이시여. 당신의 뜻을 살피고 맹목적인 충성을 외치는 자들을 위하여 힘을 내려주소서. 적의 두 눈을 멀게 하고 공포를 심게 해주소서!”
레이먼의 등 뒤에서 시작된 어둠이 먹물처럼 허공에 번지더니 곧 그들이 위치한 공간을 크게 감쌌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흑마법을 사용하는 레이먼을 비롯한 좀비들이 더욱 큰 힘을 받았다.
좀비들의 눈이 붉어지며 더욱 흉폭한 울음소리를 내뱉었고 레이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인간이여. 빛이 사라진 태초의 어둠을 목도하고 절망하거라. 너의 공포심이 우리의 기쁨일지어다.”
그가 쓴 마법은 수혁이 빌런들을 잡을 때 사용했던 노스페라투의 권능과 닮아있었다.
단지 그때보다 범위가 좁고 어둠의 공간 안에서 육체적인 능력 향상에 도움을 받을 뿐 훨씬 질이 낮은 수준이었다.
공간을 지배할 수 있던 수혁과 달리 버프만 좀 받고 기고만장한 꼴이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만만한 그들을 지켜본 수혁은 활력이 넘치는 걸 느꼈다.
어둠은 그들에게만 힘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활성화된 능력치 향상은 수혁이 월등할 테니 오히려 저들의 손해였다.
몸을 점검해본 수혁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핫.”
“감히...”
레이먼의 손짓에 좀비들이 더욱 빨라진 몸으로 주먹을 마구 휘저었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오히려 좀비들의 움직임이 굼떠보였다.
톱날모양의 검이 번뜩이자 강화된 좀비들이 삽시간에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아니?!”
레이먼은 황당했다.
어둠의 버프를 받은 그의 좀비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비셔스의 몇몇 조직원들이 죽었다는 얘기들을 들었지만 그는 항상 코웃음을 쳤다.
그런 자들이 잔뜩 몰려있어도 자신 역시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쳐들어온 적이 실력이 좋아도 어둠 속으로 끌어들인다면 결코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수혁은 그저 그런 적이 아니었다.
비셔스의 수장과도 맞먹을만한 무력에 혼자서 다수와 맞서 싸울만한 대범함까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한국의 속담이 떠올랐지만 정작 하룻강아지는 자신이었다.
거기에 더해 더욱 까무러칠 일이 벌어졌다.
수혁이 크게 손짓하자 그들을 감싸고 있던 어둠의 장막이 더욱 짙고 넓어지며 지옥의 무저갱 안으로 소환된 느낌이 들었다.
등골에 소름이 돋으며 눈앞에 있는 자의 본질을 그제야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럴수가-!”
“어둠은 너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혁의 얼굴에 깊고도 싸늘한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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