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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길드
잔뜩 말라붙은 피딱지와 흉측한 피부,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며 썩은 악취를 풍기는 커럽티드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컨테이너 안에만 네다섯마리가 뭉쳐있었다.
총 다섯 개의 컨테이너니 그 수 만해도 스무마리가 넘었다.
이지를 상실하는 대신 강화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커럽티드는 최소한 챔피언 등급과도 맞먹는 존재들이었다.
이 정도의 수라면 웬만한 중견길드도 손쉽게 먹어치울 수준이었다.
“도가 지나치군.”
선지자의 은혜라는 허울로 이렇게나 많은 자들을 커럽티드로 만든 비셔스에 증오가 생겨났다.
훗날 이 타락한 존재들을 처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헌터들이 피를 흘려야 했을까.
차라리 이 기회에 이놈들을 전부 죽이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거기에 조상필을 비롯한 비셔스가 앞으로도 이런 짓을 자행할 거라는 점이 매우 거슬렸다.
이건 한국을 떠나 전 세계적으로도 큰 손해였다.
탑에서 싸울 헌터들이 더 무럭무럭 커야하는데, 비셔스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존재가 되어버릴 경우도 생길 수 있었다.
“비셔스는 빨리 없애야겠군.”
미국에서 비셔스와 정보전을 치루고 있는 선데이와 먼데이가 생각났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한다고 했으니 그때가 된다면 직접 나서야지.
이제는 앞에 집중해볼까.
커럽티드는 예상과 달리 적극적으로 컨테이너 밖으로 나오는 걸 주저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지고 동이 터오르자 세상이 점점 밝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본능적으로 어둠을 원하는 존재들이니 이해한다.
그러나 신선한 피와 살점을 먹고 싶은 욕망을 언제까지 억누를 수 있을까.
여기 이렇게 내가 떡 하니 서있는데.
“어서 와라. 멍멍아. 안 오면 내가 간다.”
“크르르르르. 캬오오오-.”
결국 본능을 못 이긴 커럽티드들이 컨테이너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이 어렵지 한 마리가 먼저 나오자 나머지들도 우르르 따라나왔다.
신선한 먹이를 놓치기 싫은 그들만의 경쟁이었다.
붉은 검기가 일렁이는 수혁의 검이 경쟁에서 제일 빨랐던 커럽티드를 두 동강냈다.
달려오는 모습 그대로 잘린 몸뚱아리에서 뇌수와 내장, 핏덩어리들이 쏟아졌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빨리 죽는 법이지.”
그 다음 입을 쩍 벌리며 뒤에서부터 악취를 풍기는 커럽티드를 옆으로 흘림과 동시에 검이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질척한 육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다른 커럽티드들의 흉성을 더욱 자극했다.
“캬오오-!”
“냄새난다 이것들아.”
이번엔 수혁의 신형이 쭈-욱 늘어지며 괴성을 지른 커럽티드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콰직.
검이 두개골을 뚫고 수직으로 떨어지자 커럽티드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 다음부터는 허공을 떠도는 수혁의 원맨쇼가 이어졌다.
곳곳에 나타나는 수혁의 움직임을 커럽티드들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고 목이 잘리거나 머리가 꿰뚫린 피에 굼주린 야수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럽티드들은 전부 쓰러졌고, 푸르른 저수지 표면에 탁한 피가 점점 번졌다.
휘리릭.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아공간에 다시 집어넣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현재의 참상을 보고 놀랄 사람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해가 떠오를수록 커럽티드의 시체들이 타들어가며 재로 변하는 점이었다.
해가 전부 떠오르자 전투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는 평온한 저수지로 뒤바뀌어있었다.
떠오르는 해를 정면으로 받아들이자 치솟던 체력과 마력이 줄어드는 걸 느꼈지만 수혁은 반대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난 인간이다. 전생과 다른...”
피와 어둠을 찾아다녔던 전생의 기억을 뒤로한 수혁의 시선이 헬리콥터가 날아오던 방향으로 향했다.
또 다른 커럽티드들이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
PMC.
일명 민간 군사 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
각성한 자들이 웬만한 군인들보다 더 강해지자 기존 사설군인들은 더욱 치열해진 현실을 자각했다.
빌런들도 늘어나고 헌터로 이루어진 군사기업, 경호업체 등도 늘어나며 예전처럼 총포화약법으로 제약되던 시대에 변화가 생겨났다.
기존의 화약무기에 관한 효용성에 관해 논쟁이 많았지만 각성자건 민간인이건 총에 맞으면 죽는 건 똑같았다.
대신 각성자들이 스킬을 발휘하면 기존의 화약무기로 그들을 죽이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각성자들을 끌어들이고 자본이 들어간 민간군사기업이 길드화되면서 게이트 공략뿐 아니라 적게는 지역방어, 크게는 군사대용으로도 활약상이 늘어났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이제 군인의 숫자보다 헌터의 질과 양이 어느정도인지가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러시아의 아그너 길드, 북한의 백두산 길드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군사기업이라고 한다면 한국에는 태백 길드가 제일 규모가 거대했다.
각성 초창기부터 활동해온 군인들이 만든 곳으로 퇴역군인들을 연줄을 통해 계속해서 끌어들여 우수한 군의 인력들이 모여있었다.
한국 10대 길드의 최고로 백호 길드를 뽑는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게이트 공략에만 집중된 사안이었다.
태백 길드는 10대 길드의 하위권으로 불렸지만 그들이 가진 각종 군자산을 합친다면 실질적으로 국내에서는 맞상대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헌터의 질이 백호가 우수하다면 태백은 질뿐만 아니라 양적인 면이 압도적이었다.
헌터협회나 게이트 관리국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태백 길드는 실질적인 국가의 무력으로 통했다.
“헬기와 전투기가 있는 헌터 길드라...”
서평택에 위치한 야산에서 태백 길드의 군사훈련장을 내려다보았다.
비행장에는 총을 든 헌터에, 헬기, 격납고 안에는 전투기까지.
항공자산을 어떻게 허락받고 반입했는지도 의문투성이였고, 방대한 부지에 철저한 경계태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혁과 얽힌 다음이니 더욱 분위기가 삼엄했다.
“저기 있는 자들은 전부 공범이라 이거지?”
비행장 구석에는 수혁이 마주했던 컨테이너 몇 개가 아직 남아있었다.
게이트 폭주보다 커럽티드가 더 사안이 심각했기에 지방의 게이트 폭주부분은 헌터협회장인 김상중에게 연락했다.
- 뭐라고?! 이런 씨발놈들이... 내가 처리하지. 게이트 관리국에 크게 항의하겠어.
“그쪽에서도 알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항의는 필요하겠어요.”
- 협회에서 책임지고 네가 말한 곳 전부 해결해놓을게.
씩씩거리는 김상중이 게이트 관리국에 찾아가 난리를 피울 상상을 하자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당황한 이창의 얼굴도 보고 싶네.
아공간에서 꺼낸 비상식량으로 배를 채운 수혁이 몸을 일으켰다.
“경계 똑바로 해라-!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태백 길드의 4팀 팀장인 고백호의 외침에 대원들이 전부 고개를 돌리며 수근댔다.
짧은 머리에 깐깐한 인상은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저 새끼 또 시작이네.”
“군에 있을 때에도 꼴통이었다는데 대체 여기는 누가 꽂아준 거야?”
“소령 못 달고 내려왔다던데 빌어먹을 인맥.”
“내가 레벨 더 높은데...”
군사훈련장의 주간경계를 맡은 4팀은 오늘따라 유난떠는 고백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에 누가 쳐들어온다고...”
“쉿. 일로 온다.”
다들 군생활을 전역하고 온 터라 태백 길드에 적응은 빨랐지만 군에서의 계급을 그대로 반영해 직책을 짜는 터라 불만들이 많았다.
도열해있던 대원들을 훑어본 고백호가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야밤에 수행했던 작전으로 인해 적이 쳐들어 올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경계태세를 삼엄하게 유지해. 부팀장들. 알았어?”
“넵!”
“경계 위치로. 교대해주도록.”
그의 지시에 운동장에 사열해있던 4팀이 야간 경계근무를 마친 3팀과 교대해주러 자리를 떠나갔다.
4팀의 인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고백호는 무언가 맘에 안 드는지 미간을 좁혔다.
“군기가 빠져가지고. 쯧쯧.”
군사훈련장 울타리 곳곳에 경계근무를 위한 초소가 만들어져있었다.
퇴근을 간절히 바라던 3팀의 인원들은 교대하러 온 4팀의 모습을 보자 환하게 웃었다.
“퇴근이다 퇴근~”
“별 일 없었고?”
“어제 밤에 저 지저분한 것들 싣고 헬기가 뜨더니 금방 돌아오더라.”
“그래?”
그들의 시선이 훈련장 한 쪽에 있는 컨테이너들로 향했다.
그리고는 못 볼 걸 본 듯 고개를 저어댔다.
“난 저것만 보면 악몽을 꾼다니까. 얼마나 지저분하게 생겼는지.”
“그래도 낮에는 조용히 있잖아. 밤에는 좀 날뛰어도. 우리 소장은 무슨 수단이 있는지 가까이만 가면 저것들이 조용해지더라.”
“비밀무기인지 생체병기인지 나~ 원. 저걸로 게이트 공략도 할 수 있다는데 통제가 되겠어? 저것들한테 등을 맡기라고? 난 못하겠는데.”
“나도다. 일단 우린 퇴근한다~ 고생해~”
“수고했어~”
3팀의 인원들이 떠나고 초소에 남은 4팀의 두 사람은 곧바로 품 속에 숨겨온 건빵을 꺼내들었다.
오도독.
“이건 꼭 여기서 먹어야 맛있더라.”
“오늘은 시간 뭘로 떼우나...”
쩝쩝거리며 전방을 지켜보던 그들의 눈에 무언가 포착되었다.
붉은 망토를 두른 한 남성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느긋하고 여유로우며 한가로운 분위기에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거수잔데. 어쩌지?”
“저렇게 천천히 오는 적 봤냐. 또 호기심 많은 기자나 헌터겠지. 저번에도 여기 구경하고 싶다고 졸라대던 사람 봤잖아.”
“하긴... 여기 말고 입구는 반대편이라고 얘기해줘야지.”
“괜히 무전하면 시끄러워지니까 생략하고 쫓아내자고.”
천천히 걷던 수혁의 발걸음이 군사훈련장 울타리의 철조망 앞에서 멈추었다.
그런 그를 향해 초소 위의 태백 길드원들이 뛰어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 아저씨-! 뒤로 물러나세요! 여기는 군사지역입니다!”
수혁이 고개를 위로 돌려 그들을 바라보자 뒤로 물러나라는 듯 더욱 손을 휘저었다.
“함부로 오면 안 돼요-! 입구는 맞은편에 있으니 용무가 있으면 그쪽으로 가세요!”
허리춤에는 검을 차고, 등에는 총을 맨 태백 길드원들은 수혁을 향해 무기조차 겨누지 않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 용무는 저기에 있어.”
수혁이 손가락질하며 가리킨 곳은 구석의 컨테이너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당황한 것은 태백 길드원들이었다.
“뭐야. 상급지에서 나왔나? 경계 똑바로 안했다고 혼나는 거 아니야?”
“저것들 담당하는 부선가? 근데 말이 왜 이렇게 짧아?”
“일단 무전을 해야겠네.”
초소로 돌아가 안에 있던 무전기를 꺼내 버튼을 누르기 직전이었다.
“그건 누르지 말고.”
흠칫.
뒤에서 느껴지는 음성에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뻗던 두 사람은 맥없이 쓰러졌다.
어느새 신형을 옮긴 수혁이 초소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수혁의 도착을 무전으로 알리지 않은 탓에 군사훈련장에는 그가 온 사실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구석진 곳에 위치한 컨테이너 근처를 감시하는 초소는 이곳 하나뿐이었고 CCTV는 외곽지만 비출 뿐 컨테이너를 찍는 건 한 대도 없었다.
컨테이너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의도가 그대로 보였다.
“숨기는 건가. 꺼리는 건가.”
느긋하게 컨테이너로 향한 수혁은 환한 태양에 얌전히 잠을 자고 있는 커럽티드들을 발견했다.
서걱.
수혁의 검에 컨테이너의 입구가 잘려나갔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커럽티드들이 조금씩 깨어났으나 수혁의 칼질 몇 번에 모두들 조각이 났다.
그렇게 3대의 컨테이너를 전부 처리한 수혁이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태백 길드원들이 모여 총을 겨누고 있었다.
“너 누구야! 어떻게 들어왔어!”
경계가 뚫린 책임에 화가 잔뜩 난 고백호가 곧바로 손을 들었다.
거기에 컨테이너의 존재들까지 전부 죽어버리자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문책을 떠나 더 이상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할 정도였다.
“죽여!”
고백호가 손을 내리자 태백 길드원들이 겨누고 있던 총을 난사했다.
드르르르륵.
뿜어져 나온 총구의 화염과 매캐한 화약의 냄새가 공중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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