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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을 막을 순 없어.
남양주의 한 공사장.
높게 펜스를 쳐놓은 곳 사이로 푸르른 게이트가 불완전한 파장을 일으키며 떨고 있었다.
게이트가 폭주하기 직전인 모습을 직접 목도한 수혁은 한숨을 내뱉었다.
“비셔스와 얽힌 걸 풀어내는데 끝이 없군. 양파 껍질까듯 계속해서 뭐가 나오네.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 이거지?”
헌터들의 권리를 추구한다는 점은 그도 동의했다.
그러나 그것이 계급화가 되어버리고 고착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헌터지원특별법의 맹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기존의 헌터들만 좋아진다는 점.
기득권들 체계로 굳혀져버린다면 후발주자의 헌터들이 끊임없이 유입이 되고 성장하는 길을 막을 것이다.
훗날 이름을 떨치는 잠재력 넘치는 자들이 올라올 사다리를 차버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비셔스가 추구하는 계급화 사상에는 헌터들이 민간인을 지배하려는 점이 문제였다.
“전생보다 비셔스의 사상이 무언가 변질된 느낌이야...”
선지자의 은혜라는 이상한 붉은 물약도 그렇고, 기존 수혁의 지식을 깨트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분명 흡혈귀의 피가 분명한데...”
미궁에서 만났던 카르슈타인 가문 소속이라는 흡혈귀였다면 분명 뭔가 알았을텐데...
[아이나블의 손가락 : 신체 +5, 반지를 부술 시에 미리 지정된 공간으로 포탈을 생성한다.(1회용)]
이 반지를 쓴다면 흡혈귀의 비술을 잘 안다는 가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라면 왠지 지금의 사태에 관한 힌트를 줄 것 같았다.
그러나 수혁은 자신이 없었다.
“노스페라투를 직접 만들 만한 능력자라는데 아직은 시기상조야.”
외신(外神)과도 맞붙었다는 노스페라투를 창조했다는 흡혈귀니 얼마나 강하겠는가.
만렙을 찍는다면 그때 싸워보는 걸로 정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경험치만 채우면 바로 가준다.
경험치는 빌런 잡는 게 최곤데 빌런이 남아나지를 않으니.
“어이-! 거기 슈퍼맨-!”
붉은 망토를 입고 있는 수혁이 고개를 돌리자 검과 도끼 등을 든 헌터로 보이는 10여명의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여기는 우리 용마 길드 소유니 뒤로 물러나라.”
“보아하니 헌터들 같은데 게이트 공략 안 합니까? 이거 곧 폭주할 텐데.”
수혁의 말에 무리들 중 리더로 보이는 도끼를 든 자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하... 씁. 보아하니 너도 헌터 같은데, 이게 다 대의를 위한 거니까 더는 깊게 알려고 하지 마라.”
“그러니까 게이트 폭주를 이대로 방관한다는 말이네. 헌.터.들.이. 너희들이 헌터협회 소속이라면 협회에서 정한 규칙을 어겼을 시 빌런으로 불린다는 걸 잘 알 텐데?”
그의 싸늘한 말에도 대다수라는 이점 때문에 용마 길드원들은 코웃음을 쳤다.
“뭐라니 저놈은.”
“행님 슬슬 작업하시죠. 위에서 계속 왜 놔두냐고 무전이 시끄러운데요.”
“행님이 뭐야 임마. 길드장님이라고 해야지.”
헌터라기보다는 조직폭력배가 더 어울리는 집단이었다.
수혁이 그들을 심미안의 눈으로 보니 대다수가 베테랑 등급에 챔피언 등급은 한 명도 없었다.
용마 길드원들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다 잡은 먹잇감 취급하느라 그는 안중에도 없었다.
혀를 찬 수혁이 몸을 돌려 게이트에 홀로 들어갔다.
“어?! 어! 저 새끼 저거 혼자 들어갔다!”
“미친 놈 맞네. 우짤까요?”
길드원들의 질문에 용마 길드의 길드장이 도끼를 빙글빙글 돌리다 어깨에 턱하며 걸쳤다.
“어쩌긴. 혼자서는 게이트 못 막아. 다들 폭주사태 시나리오 준비해. 정해진 위치에서 대기하다 우리가 영웅 되는 거야. 알겠지?”
““네!””
공사장 맞은 편 건물 옥상에서 대기하던 용마 길드 대부분이 드러누워 휴식을 취했다.
오직 막내였던 김전일만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게이트 감시 역할을 했다.
“흐아아~암.”
“입 찢어진다. 임마.”
“어?!”
눈가에 눈물이 맺힌 김전일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게이트에 변화가 생겼다!”
막내의 말에 용마 길드원들이 우르르 옥상난간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것과 달리 부르르 떨던 게이트는 빛무리와 함께 사라져버렸고 붉은 망토의 사내만 홀로 등장했다.
“이런 싯팔! 저 새끼 잡아! 안 그러면 우리가 죽어!”
이 프로젝트에 기대하는 사람이 누군지 뻔히 아는데.
용마 길드장인 최치수는 윗사람에게 맞아죽기 전에 저 원흉을 잡아 대신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저 남자가 홀로 게이트를 깼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게이트를 깨고나온 수혁을 용마 길드원들이 둘러쌌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여유 넘치는 표정과 달리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저 새끼 숨통만 끊지 말고 팔 다리는 다 잘라버려!”
길드장의 명령에 제일 먼저 도끼를 든 사내가 고함과 함께 수혁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검이 섬광을 일으키며 사내를 두 동강 내버렸다.
“?!”
“빌런헌터로써 너희를 단죄하겠다.”
스팟.
수혁의 신형이 사라지며 나타난 곳은 용마 길드원들의 중심이었다.
주변으로 빙그르 휘두른 검과 함께 붉은 실선으로 이루어진 원이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용마 길드원들의 상체가 우수수 잘려나가며 힘차게 뛰고 있던 피가 주변으로 뿜어졌다.
휘리릭 움직인 망토가 늘어나며 주변을 훑자 주변의 핏방울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히이익.”
순식간에 길드원의 절반 정도가 죽어버리자 최치수가 도끼를 내던지고는 곧바로 달아났다.
그러나 몇 발자국 떼기 전 날아온 장미모양의 단검에 허벅지가 꿰뚫리며 주저앉았다.
“아흐윽.”
뼛 속 깊이 타오르는 통증이 다리에서 몸으로 번지자 간신히 일으키던 몸이 곧바로 무너졌다.
어느새 길드원들을 전부 해치운 수혁이 가까이 다가오자 최치수가 입을 크게 벌렸다.
“내...내가 누구 밑에서 이... 일하는 지 알아?”
“누구? 국회의원 조상필?”
“어...어?”
예상하지 못한 말에 최치수가 고통마저 잊고 눈을 꿈뻑거렸다.
“남양주 말고 게이트를 폭주시키는 곳이 전부 어딘지 얘기해.”
“내... 내가 미쳤다고... 크아악!”
단검이 꽂힌 허벅지 반대편에 이번엔 장미문양의 장검이 꽂히자 최치수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말할게! 말한다고!”
쉽사리 항복한 최치수가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위치를 읊었다.
서걱.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목이 잘린 최치수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탐욕스러운 혓바닥처럼 길게 늘어난 수혁의 망토가 모든 피를 빨아들였다.
비록 등급은 낮았으나 경험치는 짭짤했다.
수혁이 슬쩍 손을 흔들자 공사장을 촬영하던 CCTV가 터져버렸다.
CCTV로 벌어진 참상을 목도한 조상필과 보좌관들이 입을 턱 벌렸다.
힘없이 떨어진 담뱃재가 자신들의 바지와 신발을 태우는 것도 잊은 채였다.
“내가 뭘 본거냐?”
“어......”
조상필의 질문에도 보좌관들은 쉽사리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들도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냥개들 풀어. 그리고 저 자식이 누군지 빨리 파악해!”
“의원님! 그 존재들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됩니다! 제일 마지막에 써먹어야 할 부품인데...”
와장창.
그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재떨이를 집어던지자 부서진 재떨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용마면 중견 길드 이상의 실력자들인데 지금 한 순간에 썰려버린 거 못 봤어? 이거 당장 처리 못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허락은 내가 맡지.”
거만한 태도를 버린 그가 조심스럽게 통화를 연결했다.
- 뭐지?
“일이 생겼다. 지금 사냥개를 풀 정도로 위급해. 이대로라면 우리의 계획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게 생겼어. 어서 빨리 경호인력들을 보내줘.”
- ... 자세히 얘기해봐.
조상필이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 허접떼기들이지만 홀로 길드를 물리쳤다면 최소한 슈페리얼, S급은 되겠군. 좋다. S급을 상대할 자들로 보내주지.
“최대한 빨리.”
- 사냥개로 시간을 벌도록. 만드는 거야 어려운 건 아니니.
뚜. 뚜. 뚜.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을 지은 조상필이 소파에 몸을 깊게 드러누웠다.
“사냥개가 준비되는 동안 다른 애들로 시간을 최대한 끌어.”
“넵.”
남양주에서 양평, 용인을 거쳐 오산까지.
수혁의 광폭적인 행보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꽁꽁 숨겨놓은 게이트들을 공략한 그가 평택에 도착하자 일련의 무리들이 그를 마중나왔다.
“잡아 쳐라!”
“죽여-!”
보라매, 영신, 야왕 등 수혁으로써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중소 길드원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은 그저 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말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것도 모를까.
한국을 좀먹는 자들.
그것이 빌런들이다.
“길드의 탈을 쓴 빌런들이 아직 많이 남았군.”
검을 휘두르려 높이 든 빌런의 목이 길게 뻗은 검에 꿰뚫렸다.
“케엑.”
이어서 횡으로 길게 그어지자 반월형 붉은 검기에 빌런들이 잘려나가며 피보라를 일으켰다.
수혁의 위력에 빌런들의 기세가 확 식어버렸다.
“미... 미친. 괴물이잖아?!”
“자... 잠깐. 이건 아니야.”
동요하는 자들이 늘어나자 각 길드장들이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돈 안 받을 거야?!! 저 자식을 죽이는 자가 100억 먹는 거다! 팔, 다리만 잘라도 50억씩 준다!”
“으아아아아-!”
공포심을 돈의 힘으로 이겨냈다.
다시 무기를 고쳐 잡은 빌런들이 알 수 없는 외침과 함께 수혁에게 뛰어들었다.
자신의 부하들을 사지에 밀어 넣은 길드장들은 수혁이 힘이 빠지기를 기대하며 자기들끼리 모여 기습 준비를 마쳤다.
“어차피 빌런들은 살아서 못 돌아간다.”
수혁이 땅을 박차며 하늘로 뛰어오르자 붉은 망토가 날개처럼 펼쳐졌다.
사람들의 고개가 들리며 시선이 하늘로 모였다.
허공에 체류한 수혁이 양 팔을 벌리자 칠흑 같은 어둠이 튀어나오며 빌런들이 서있던 모든 공간을 감쌌다.
순식간에 어둠 속에 갇힌 빌런들이 공포 섞인 울음과 비명소리를 내질렀으나 밖으로는 어떠한 소리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나마 세 길드를 이끌던 길드장들만이 현재 상황을 타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저 자식을 죽여! 그래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패닉에 빠진 길드원들이 길드장의 명령에 간신히 무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허공에 떠있는 수혁을 공격할 만한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손바닥을 편 뒤, 쭉 뻗은 수혁이 광오한 표정으로 빌런들을 쳐다보았다.
“전부 죽어라.”
손을 천천히 쥐어짜자 어둠 속에서 수백, 수천개의 암흑의 가시들이 튀어나와 빌런들을 꿰뚫었다.
“아아아악-!”
가시는 검으로도 잘리지 않을 만큼 단단했으며 그 수는 셀 수 없었다.
어둠은 어느 공간에나 있었고 수혁이 지배하는 공간 안에서 곧이어 수많은 죽음이 피어났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빌런들이 들고 있던 무기와 싸움의 흔적만 남았을 뿐 어떠한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빌런들을 흡수한 덕에 막대한 경험치를 얻은 수혁은 레벨 53을 달성했다.
그가 강해지는 만큼 노스페라투가 가졌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늘어났다.
“경험치를 위해선 빌런이 필요하지만 헌터들을 위해선 필요 없으니 계륵이네.”
레벨 업으로 모든 마력을 회복한 그가 목표를 향해 다시 날아올랐다.
평택의 저수지 근처에 있던 게이트를 공략하고 나오자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찾아오는 중이었다.
길고 긴 밤이 이렇게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하늘 저 편에서 헬리콥터 다섯 대가 굉음과 함께 날아들었다.
헬리콥터의 밑에는 컨테이너가 줄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수혁의 근처로 날아든 헬리콥터가 연결된 줄을 끊었다.
쿵. 쿵. 쿵. 쿵.
저수지 근처에 떨어진 컨테이너 다섯 대를 그대로 버린 헬리콥터가 다시 선회하며 되돌아갔다.
땅에 떨어진 충격에 파손된 컨테이너들의 입구가 열렸다.
“크르르르...”
어둠 속에서 피어난 두 쌍의 안광이 점점 늘어났다.
자신을 둘러싼 컨테이너들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아공간에 넣어놨던 검을 다시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