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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셔스의 음모
“너 같은 존재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넌 대체 누구냐?!”
“당연히 몰라야지.”
자신의 존재를 모르니 불나방처럼 모르고 달려드는 것 아닌가.
수혁만 보고 도망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귀찮은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빌런들은 앞으로도 계속 몰라야했다.
자신을 쫓아오는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비에트랑은 곡도를 얼굴가까이에 붙인 뒤 수평으로 들었다.
도주를 포기하고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쉽게 죽어주지는 않겠다!”
비에트랑이 수혁에게 곡도를 찌르는 척하다 도를 회전시키며 횡으로 베어냈다.
수혁의 톱날검이 곡도에 부딪치기 직전 블링크로 뒤로 이동한 그가 연속으로 곡도를 휘둘렀다.
챙.챙.챙.
“FUCK!”
수혁이 곧장 몸을 돌리며 검으로 곡도의 경로를 모두 차단했다.
이제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비에트랑은 자신의 남은 마력을 곡도로 끌어 모아 현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동,서,남,북, 머리 위까지 전 방위에서 비에트랑의 신형이 어지럽게 나타나며 사라졌다.
어찌나 빠른지 동시다발적으로 살기를 품은 곡도가 숨통을 끊기 위한 하나의 목적에 충실하게 움직였다.
채채채채챙.
그러나 수혁은 당황하지 않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검을 펼쳐내며 곡도를 막아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곡도가 번쩍하더니 수혁의 목으로 향했다.
덥썩.
아라크네의 장갑을 낀 수혁이 손으로 곡도를 잡아버리자 곡도를 놔버린 비에트랑이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날아드는 주먹을 몸을 180도 회전하며 흘린 수혁이 검 대신 팔꿈치로 비에트랑의 얼굴을 강타했다.
퍽.
“끄윽.”
코를 부여잡은 비에트랑이 블링크를 쓰며 머나먼 뒤편으로 이동했다.
“쿨럭.”
찌그러진 코와 귀가 날아간 부분에서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괴물같은 자를 이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비에트랑의 눈빛을 읽은 수혁이 검을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자. 이제 대화를 시작하지.”
수혁이 몽둥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를 보는 비에트랑의 눈이 공포에 물들었다.
미친놈이었다.
“너를 권속으로 만든다면 일이 쉽게 끝나겠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빌런, 이 더러운 놈들에게 내 피를 나눠줄 수는 없지. 입을 열 때까지 때려주마. 챔피언 등급이라 체력도 좋으니 한 달이던 두 달이던 끊임없을 거야. 넌 영원히 벗어나지 못해.”
온 몸이 구타당한 비에트랑은 기절하고 싶었지만 계곡물을 가져와 얼굴에 뿌리는 바람에 기절조차 하지 못했다.
“...뭘... 원하는 거지?”
“이제 대화할 생각이 좀 드나?”
“원하는 걸 얘기할 테니 고통을 끝내줘.”
“거짓 없는 진실을 얘기한다면 너의 말에 따라주마.”
바닥에 널부러진 비에트랑이 흙투성이가 된 얼굴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붉은 망토의 끝자락이 수혁 주변에서 나풀거렸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데 혼자 움직이던 망토는 비에트랑의 시선을 느꼈는지 추욱 늘어지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물어봐.”
“비셔스와 연관된 한국의 인원들은 누가 있지?”
“나도 모두 다 알지는 못한다. 그저 지령에 따라 움직일뿐. 내가 알기로 NS그룹의 한진원과 여당 국회의원이 연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자포자기한 듯 체념한 비에트랑은 수혁이 원하는 정보를 술술 불었다.
국회의원의 이름을 듣고, 비셔스의 비밀암호, 접근 방식, 꾸미는 일 등을 들은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런데 그거 아나? 내가 왜 순순히 불었는지?”
“?”
비에트랑 한 쪽의 붉은 눈이 점점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더니 그의 몸 전체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각성자들이여 일어나라! 너도 같이 죽자아-!”
뻐-엉.
온 몸이 터지는 폭발과 함께 비에트랑의 몸이 산산조각났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수혁의 망토가 저절로 움직이며 앞을 막아섰다.
비산하는 핏물이 망토에 흡수되며 충격을 흡수했다.
망토가 스스로 움직이자 뭐하는지 지켜보던 수혁은 흥미가 돋았다.
[향상된 공간지각능력을 얻었습니다.]
“응?? 망토가 피를 흡수하는데 특성까지 가져온다고?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망토를 풀러 앞으로 들자 망토 스스로 배배 꼬으며 꽈배기 같은 형상을 보였다.
“넌 정체가 뭐냐?”
말이 없는 망토는 스스로 펄럭거리며 수혁에게 붙었다가 떨어지고 좌,우로 마구 움직이다 제풀에 지쳐 멈추었다.
“?”
도저히 모르겠다.
망토에 입이 달린 것도 아니고.
그러나 특성을 흡수하는 권능을 공유하는 것으로 봐서는 수혁에게 해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또 다른 기능이 있니?”
펄럭. 펄럭.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알아서 활동해. 방해하지 않을테니.”
추우욱.
시무룩해진 망토가 스스로 움직이더니 수혁의 뒤에 붙었다.
삐진 건 아니지?
망토의 새로운 기능도 발견했고 비셔스의 한국소탕을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했다.
그전에 비에트랑의 부하들이 있던 야영지도 뒤적거려봤으나 괜찮은 아이템은 찾을 수 없었다.
기본적인 물약 같은 건 수혁이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더 질이 좋았다.
왜 이 자식들은 기본무기만 들고 오는 거야. 돈이 없나?
텐트 안의 짐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자 usb와 미국에서 사용했던 신분증이 튀어나왔다.
“미국인 제너럴 쿠퍼라. usb는 선데이에게 넘겨줘야겠군.”
남아공의 헛된 혁명가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외딴 한국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수혁에게 경험치를 주었으니 완전 헛된 죽음은 아닐 것이다.
***
선데이에게 usb를 넘겨주자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했다.
“마스터께서 주신 정보엔 비셔스에 가담한 미 정보국 및 정치권의 상원, 하원 인원들의 명단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내용을 먼데이에게 전달해주었는데...”
“그런데?”
난감한 듯 선데이가 말을 흐렸다.
이렇게나 자신감 없어하는 그녀는 처음 보았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거물들이 섞여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도 본국으로 돌아가 그를 서포트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한국의 비셔스는 내가 처리하지. 미국에서 최대한 비셔스를 없애고, 만약 힘들다면 날 불러. 내가 다 쓸어주지.”
“네. 마스터.”
그간 길드에 신경 쓰지 못했던 수혁이 길드원들을 훈련장으로 모두 불러 모았다.
“포메이션 B는 연습 충분히 했지?”
“당연하죠!”
자신감 넘치는 길드원들을 보던 그가 검을 꺼내들었다.
“다들 무기 들어.”
“네?”
어리둥절한 박이현이 반문하자 수혁이 말을 이었다.
“얼마나 훈련됐는지 한 번 싸워보자.”
“누가 누구랑요?”
“너희들과 나 혼자.”
“에이~ 길드장님. 우리 전부는 좀...”
말도 안 된다는 듯 박이현이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말에 이명한이 동조하는 듯 헛기침을 날렸다.
그러나 그 둘 말고 홍영기, 마린느, 김예현은 결코 수혁을 비웃지 않았다.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박이현과 이명한이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였다.
“진짜로?”
“허허... 다들 진심이니 저도 힘 좀 쓰겠습니다. 최근 마법을 쓰는데 재미를 붙여서 말이죠. 길드장님. 조심하세요.”
이명한까지 진지하게 붙어보기로 마음을 먹자 남은 건 박이현 혼자였다.
“참고로 돈 내기다. 내가 이기면 다들 월급 절반씩 반납이야.”
“길드장님. 내 화살 맞아도 난 책임 안 져요.”
박이현이 정색하며 활을 바로 겨눴다.
돈 얘기를 하니 확실하네.
“좋아. 시작하지.”
망연자실한 박이현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마... 말도 안 돼... 내 월급... 신상 옷 사야 되는데...”
훈련장 바닥에 누운 길드원들 모두가 숨을 헐떡였다.
“마법은 맞아야 마법이다... 맞추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자신의 마법이 모두 빗나간 이명한의 어깨를 툭툭 쳐준 수혁이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아직 부족해 다들. 좀 더 연습하도록. 조만간 다시 와서 점검할 거야.”
수혁이 떠나가고 벌떡 일어난 홍영기가 주먹으로 땅을 세게 내려쳤다.
쾅.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순 없어! 다음에는 길드장님 콧대를 한 번 눌러주자고!”
“옳소! 옳소!”
“...높은 코는 굳이 건들일 필요가 있나...”
열렬하게 호응하는 이명한과 달리 김예현은 무언가 맘에 안 드는 듯 했으나 수혁을 이겨보자는 홍영기의 말에는 적극 찬성했다.
***
“헌터는 초월적인 존재이고 우리 인간들을 괴물로부터 지켜주는 영웅들입니다! 그런 영웅들이 낮은 대우를 받는다면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중국이나 미국으로 떠나갈 것입니다! 여러분! 저 조상필에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헌터 길드를 유치시켜 여러분의 보금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법을 만들겠습니다아-! 헌터지원특별법 제정에 여러분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와아아아-! 조상필! 조상필! 사!랑!해!요! 조!상!필!”
번화가 곳곳에서 국회의원 조상필이 연설하는 동영상을 큰 화면으로 틀어놓고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는 중이었다.
“총각~ 이리 와서 싸인 해. 헌터들이 우리 집 가까이에 있어야 집값도 유지되는 거야.”
길을 걷는 수혁을 뽀글머리의 중년의 여성이 멈춰 세웠다.
“헌터지원특별법이 자세히 뭐죠?”
“으응? 그니까... 그것이... 헌터들이 특별하니까 우리나라에서 더 큰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지~ 그것도 몰라? 일단 여기 서명해.”
펜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 여성이 다시 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그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눈앞에서 사라진 수혁을 두리번거리며 찾던 여성은 곧 다른 먹잇감을 발견하고는 입을 크게 벌렸다.
“총가악-! 이리 와-!”
국회의원 조상필.
여당의 국회의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그가 갑자기 언론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헌터지원특별법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헌터지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법으로 헌터들을 국내에 붙들어놓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헌터와 민간인을 계급화시켜 차별하는 법이었다.
“헌터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인류를 지키는 구원자다.”
그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났고,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되어갔다.
그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법이 의석수가 많은 야당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자 좀 더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려 애를 썼다.
기다란 가죽소파가 마주보는 가운데 가장 상석에 놓인 소파에 앉은 조상필이 거만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놀아? 노냐고오. 법을 통과시키려고 애쓰는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이야? 특히 NS에서 나오던 후원금이 지금 뚝 끊겼는데 어찌 된 거야?”
- 그것 역시 우리가 알아보는 중이니 현재 일에 집중해.
“일에만 집중을 하게끔 지원을 빵빵하게 하란 말이야. 당장 내년이면 선거야. 아직은 내가 대표를 하기에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다고. 어떻게든 올해 안에 이 법을 통과시켜야 돼. 나도 치적을 좀 쌓아야 할 거 아냐.”
- 최근 우리 조직을 노리는 세력이 준동하는 것 같다. 당분간은 몸을 좀 사려. 경호할 인력들을 보내주겠다.
“쯧. 빨리 보내. 이만 끊는다.”
거칠게 폰을 끊은 조상필이 소파에 앉은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거드름을 피웠다.
“아놔~ 이것들은 아직도 꾸물대고 말이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성과를 내는만큼 뭔갈 줘야할 거 아니야. 안 그래?”
“맞습니다. 의원님.”
“그래야 내가 너희들 배에 기름칠이라도 하게끔 해주는데 말이야. 쯧.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그의 질문에 보좌관 중 하나가 들고 있던 태블릿에서 실시간 동영상 하나를 틀었다.
“이곳 남양주의 공사현장에 생긴 게이트를 감춘 지 한 달 정도 지났으니 이제 곧 폭주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남양주에서 내 지지율이 얼마지?”
“아직 5프로도 안 됩니다.”
“흐음...”
담배를 꼬나문 조상필이 태블릿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게 터지고 사람들이 좀 다쳐야 헌터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겠지. 이곳뿐이야?”
“현재 지지율이 낮은 지역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10여개가 넘습니다.”
보좌관의 말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조상필이 담배를 후 불었다.
“내가 이렇게 우리 당을 위해서 열 일 하는지 다들 알까 모르겠다. 허허허허”
“하하하하.”
모두들 웃는 와중에 태블릿을 지켜보던 조상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놈은 뭐야? 뭔데 혼자 들어가?”
“네?”
“저기 저 놈 말이야.”
보좌관들이 태블릿을 보자 검을 들고 붉은 망토를 걸친 사내가 홀로 공사현장의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어... 통제를 해놨는데...”
“빨리 가서 저 새끼 잡아와! 다 된 밥에 재 뿌릴 일 있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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