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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셔스의 연결고리
건물의 옥상을 밟듯이 날아다니던 수혁이 도착한 곳은 송파의 고층 아파트 주변이었다.
실종자들이 발생한 곳과 제일 거리가 먼 한승훈이 사는 지역이었다.
“일부러 먼 곳에서 사람을 납치했을 수도 있어. 만약 이 놈이라면 생각보다 용의주도하겠군.”
이제 막 20대 초반의 앳된 외모의 한승훈의 얼굴을 떠올린 수혁이 어둠과 동화되며 길거리에서 사라졌다.
이미 시각은 밤이 깊게 진행된 새벽이었고 한승훈은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50평은 넘는 아파트에는 오직 한승훈 혼자 살고 있었다.
집을 뒤적거려봤으나 넓은 집 안에 다른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사진도 없네.”
휑한 집구석을 전부 둘러본 수혁이 마지막으로 한승훈의 방 안에 들어갔다.
실컷 자고 있는 한승훈을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의 콧속으로 눅눅하면서도 텁텁한 냄새가 들어왔다.
냄새가 나는 옷장을 열자 흙투성이의 검은 트레이닝복과 야삽이 보였다.
수상한 물품을 지켜보던 수혁이 조용히 옷장 문을 닫았다.
수혁이 사라지고 꿈결에 잠시 정신이 든 한승훈이 어두운 방안을 둘러보고는 다시 누웠다.
“누가 왔던 느낌인데. 꿈인가?”
신성길드로 출근해 훈련하고 집에 와서 씻고 자는 챗바퀴같은 도돌이표 일상이 반복되었다.
“내일 오후에 솔저 등급의 게이트에 진입할테니 오전 8시까지 모이도록. 오늘은 다들 푹 쉬어.”
3팀의 리더인 이창현의 공지를 듣고 길드원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게이트에 들어가면 먹는 것이 제한되니 누군가는 실컷 맛있는 걸 먹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이나 연인과 시간을 보내겠지.
‘나는 뭘 해야 할까.’
한승훈은 게이트에서 갈증이 도지는 걸 막을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옷장에서 검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밤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슬슬 목이 마렵긴하네. 갈증날 때가 되긴 했군.”
오늘은 누구를 잡아올까.
첫 사냥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설레는 마음만 가득했다.
마스크를 쓰고 지하철 한구석에 몸을 기댔다.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기 위해 집에서 먼 곳으로 가본다.
“이번엔 신촌 가볼까나.”
술에 잔뜩 취한 젊은이들이 좀비처럼 배회하고 흔적을 지울 야산도 근처에 있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먹잇감을 물색하던 그의 눈에 한 남성이 들어왔다.
꿀꺽.
입안에 침이 너무 고이는지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술에 취한 남성의 뒤에 접근한 한승훈이 입을 벌리자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CCTV의 사각지대, 가로등의 조명이 사라지고, 남성이 노상방뇨를 위해 스스로 구석진 곳을 찾아갔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지자 한승훈이 그대로 덮쳤다.
아니, 덮치려 했다.
누군가 자신의 뒷목을 잡기 전까지는.
“어어?!”
“애새끼가 간덩이가 부었군.”
벌겋게 충혈된 두 눈을 가진 한승훈은 이미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
“더러운 피로 인해 순혈의 존재가 되지 못했구나. 보아하니 조만간 커럽티드가 되겠어.”
기형적으로 꺾인 손이 수혁의 손을 공격했다.
손에서 바짝 자라난 날카로운 손톱에 찔릴까 뒷목을 놔주었다.
사실 무서워서 피한다기 보다는 더러워서 피하는 느낌이었다.
한승훈은 뒷목을 놓아주자 재빨리 몸을 돌리며 짐승처럼 네 발로 땅을 기었다.
“크르르르...”
“하아... 집 나간 이성을 찾아와야겠네.”
아공간에서 그의 애병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캬오오오!”
광견병 걸린 개처럼 수혁을 물기위해 한승훈이 펄쩍 뛰었다.
빠악.
수혁의 몽둥이와 교차한 한승훈이 바닥에 매가리 없이 쓰러졌다.
“컥... 목... 목이 너무 말라...”
목 안이 타오르는 갈증에 눈을 뜬 한승훈은 자신이 야산 한 구석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뺨에 느껴지는 차가운 흙의 감촉이 정신을 일깨웠다.
바닥의 흙더미를 손에 움켜쥔 그는 일어나자마자 뒤로 집어던졌다.
“거기 아니다.”
“헉! 당신 누구야?!”
“너. 붉은 약물, 누구에게 얻었지?”
수혁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던 그는 얼굴 표정을 황급히 고쳤다.
“무...무슨 소리야? 나 신성길드원이야. 감당할 수 있겠어?”
“넌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모르나보군.”
툭.
수혁이 그의 앞에 조그마한 손거울을 던졌다.
“뭐야?”
“네 스스로를 봐라. 그리고 생각해. 대답을 빨리 해준다면 편하게 보내주지.”
“날 기만하는 걸로 모자라 협박까지 하는 거야?”
“...”
팔짱을 낀 수혁에게 자신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시선을 수혁에게 고정한 한승훈이 천천히 거울을 집어 들었다.
붉은 두 눈에 들창코, 삐죽한 귀에 사람으로 볼 수 없는 처음보는 생명체의 얼굴이었다.
거울을 본 그가 화들짝 놀라 거울을 떨어트렸다.
“뭐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마신 약물 때문이다. 보통은 커럽티드가 될 텐데, 너는 제법 버텻구나. 이제는 말할 생각이 드나?”
“거짓말!”
땅을 박찬 한승훈이 수혁을 피해 달아났다.
정확히 얘기하면 혼란한 마음에 현실도피를 해버린 것이었다.
“쯧. 좋게 말을 하면 듣지를 않는군.”
수혁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점점 몸에 활력이 넘쳐났다.
야산을 뛰어다니는 그의 앙상하고도 창백한 팔뚝이 달빛에 비쳐졌다.
무엇보다 갈증이 너무나 심했다.
당장 보이는 누구든지 피를 빨지 않는다면 이대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신들린 듯이 야산을 타고 넘어가던 그는 저 멀리 도심의 황홀한 불빛에 정신이 팔렸다.
“저기만 가면 먹을 수 있어...”
어느새 수혁의 존재마저도 잊었다.
본능에만 충실해진 그는 오직 앞으로만 뛰어갔다.
저 멀리 오아시스를 향해서.
“크륵. 크륵.”
묘한 울음소리를 내는 그의 앞길을 수혁이 막아섰다.
“캬오오-!”
“쯧. 벌써 이성이 날아갔나?”
길어진 손톱을 횡으로 휘두르자 수혁의 몽둥이가 느긋한 움직임으로 막아냈다.
콰드득.
그러나 몽둥이에 담긴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손에서 팔꿈치까지 유압프레스에 눌린 것처럼 납작해진 한승훈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캬아악.”
“일단 도망 못 가게 다리부터.”
퍽. 퍽.
몽둥이가 두 무릎을 강타하자 다리가 꺾인 한승훈이 풀쩍 주저앉았다.
이어지는 몽둥이 찜질.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며 최대한 살살 때렸다.
퍽. 퍽. 퍽. 퍽. 퍽. 퍽.l
“정신 차려라 정신.”
퍼억.
정수리의 정중앙을 강타하는 일격에 흐릿했던 동공에 초점이 잡혔다.
먹혓나?
“아... 아버지가... 난... 아버지를... 믿었는...”
“아버지?”
“아버지... 죄... 죄송...”
주르르륵.
한승훈의 입에서 폭포처럼 피가 흘러내렸다.
눈물이 아름아름 맺히고 선명했던 초점은 곧 흐릿해지다 눈을 감았다.
절망과 배신감에 빠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수혁은 마지막으로 한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선데이. NS 그룹의 한진원 이사를 중점적으로 감시해. 베로니카가 죽었으니 분명 비셔스에서 다시 찾아올 거야. 그때 덮친다.”
- 네. 마스터.
통화를 마치고 수혁의 마력을 담은 손짓 몇 번에 땅에 구덩이가 생겨났다.
한승훈을 묻어준 그는 조금씩 드러나는 비셔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수혁이 떠나고 주인 없는 봉분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애가 사라지다니?”
- 오늘 게이트 공략하는 날인데 출근을 안했답니다. 거기에 폰도 꺼져있고, 집으로도 찾아가봤는데 인기척도 없답니다.
“내가 가보지.”
NS 그룹에 일생을 다 바친 한진원은 신성 길드에서 들려온 소식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빌어먹을 놈. 또 사고를 치다 못해 도망을 가?”
태어나자마자 와이프는 사망했고, 갓난아기였던 아이를 원망했었다.
고통을 잊고자 일에만 전념한 것은 분명 그의 잘못이 맞았다.
방치된 자식이 엇나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억지로 헌터를 만들었다.
누구나 줄을 서서 가고 싶어 하는 신성길드의 루키에 넣어줬건만 적응을 또 못하고 천덕꾸러기 신세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고민을 들은 오랜 사업 파트너가 강해진다는 약물을 선물해 주었다.
“헌터가 이걸 마시면 능력이 강화된답니다. 호호호.”
속는 셈 치고 자식에게 넘겨주었더니 현재는 루키들 중에 에이스가 되었다고 했다.
이정도면 자식 농사를 남들만큼은 한 줄 알았는데...
띠리리릭.
싸늘하지만 넓고도 고급진 아파트에 오랜만에 들어왔다.
이렇게 좋은 집을 사준 것도 나중에 결혼할 것을 대비해서 미리 증여한 것이었다.
자신의 아픈 손가락이기에 돈이면 돈, 원하는 것도 전부 사줬고, 못해준 것이 없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문제지.
“도망을 가?”
휑한 집구석을 돌아보던 한진원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또 며칠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겠지. 에휴.”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한승훈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님? 결제하셔야 합니다.”
“응? 그래. 그랬지. 이리 줘봐.”
비서가 가져온 서류를 대충 훑어본 한진원이 곧장 서명했다.
사실 서류에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수심이 깊은 그의 모습을 눈치 챈 비서가 입을 열었다.
“곧 자녀분께서 돌아올 겁니다.”
“그래... 언제나 자식이 속 썩이는 건 아빠의 공통된 사항 아니겠나. 허허허.”
“네. 그리고 이것도...”
서류 가장 뒷부분에 있던 작은 명함 하나만 남겨놓고 비서가 사무실을 나갔다.
명함을 본 한진원의 눈매가 좁아졌다.
“비셔스... 하필 이런 때...”
이들의 사상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인맥도 뭣도 없던 그의 능력과 저들이 원하는 것이 맞아떨어지며 서로 시너지 효과를 냈을 뿐.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시그널을 주다니.
이런 방식은 처음이었다.
그는 명함에 적힌 번호로 직접 연락했다.
널따란 사무실은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로니카는 어디가고 넌 누구지?”
- 그녀는 잠시 새로운 일정이 생겨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비에트랑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 비에트랑. 왜 연락한 거지?”
- 얘기는 직접 만나서 하는 것이 좋겠군요.
“직접 만나는 것은 우리의 계약 위반일 텐데?”
- 우리는 당신의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불러. 만약 불쾌한 장난이라면 용납할 수 없어.”
- 후후후. 올 때 메로나.
뚝.
불쾌한 통화였다.
베로니카와는 제법 말이 통했는데 새로운 비에트랑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종잡을 수 없는 탓에 한진원이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댔다.
“젠장.”
- 마스터. 한진원 이사가 비셔스와 접촉했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설치해놓은 도청장치를 통해 직접적인 만남을 가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 움직일 때가 되었군.”
자신의 검을 기름으로 닦으며 손질하던 수혁이 헝겊을 내려놓았다.
-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온 비셔스의 요원은 비에트랑입니다.
“비에트랑...”
어디서 들어봤던 것 같은데...
- 남아공의 학살자라는 명칭을 가진 자로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입니다. 아마 베로니카의 죽음을 조사하는 겸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기억났다. 내가 처리하지.”
- 네. 마스터.
비에트랑.
비셔스의 사상에 물들기 전부터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소문에는 KKK단원이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각성을 한 뒤에 미국에서 헌터 생활을 제법 했었다.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고향인 남아공으로 돌아간 뒤, 정부에 불만을 품은 헌터들을 규합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에서 흘러나온 피로 도시가 붉게 물들었다는 악명 높은 자였다.
본신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성격이 괴팍한 관계로 비셔스에서도 직책을 맡기 보단 해결사의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빌런 대청소 때 죽었었나?”
탑이 생겨난 최후까지 남아있을 만큼 끈질기기도 하고, 불리하면 도망도 잘 가는 자였다.
국제적으로 쫓기는 신세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아남았다는 얘기는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었으니 말이다.
비셔스가 이번에는 한국에 제대로 힘을 써보려는 의도가 보였다.
“물론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날카롭게 잘 갈린 검이 부르르 떨리며 새로운 먹잇감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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