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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을 찾아라
[죽음의 기사 실리안의 가시갑옷 : 신체 +65, 적에게 공격당할 시 데미지의 15%를 반사한다. 갑옷이 부서져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복구된다.]
검붉었던 갑옷이 완전히 검게 변했고, 갑옷 주변의 투박했던 돌기가 좀 더 굵고 길어졌다.
표면이 번들거리며 광택이 자르르 흘렀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혁이 갑옷을 입고는 노스페라투의 망토까지 걸치자 지옥에서 올라온 흑기사가 따로 없었다.
사무실의 거울로 스스로의 자태를 구경하던 수혁은 얼굴부분이 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괜찮은 투구가 없네.”
시야를 가리지 않으며 착용한 듯 안한 듯 목에 부담을 주지 않는 최고의 투구.
신체적으로 우월한 육체지만 가벼울수록 좋은 거니까.
그 동안은 수혁의 능력으로 투구 없이도 잘 싸워왔지만 레벨이 높아지고 빌런이나 몬스터들이 강해질수록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니.
당장 전생과 달리 비셔스나 빌런의 역사가 많이 바뀌었다.
조금이라도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
머릿속에 비숍의 황금투구나 근위기사단의 엘크투구 등이 떠올랐지만 옵션이 맘에 들지 않았다.
“방어력에 현재 내게 필요한 옵션이라... 신체적인 부분은 이미 충분하고...”
한참을 궁리하던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템이 스쳐갔다.
“다크엘프.”
어둠의 엘프들이 착용하는 투구라면 현재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거라 생각했다.
달력을 쳐다보던 그는 게이트가 생길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점도 깨달았다.
***
- 화끈하게 한 번 모여야지. 동생?
백호 길드원들이 회복하자마자 장이산에게 연락이 왔다.
수혁이 백호 길드와의 회식을 전달하자 길드원들 모두가 ‘예~!’를 외치며 손을 들었다.
게이트에서 같이 싸운 전우애가 있으니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회식 장소로 달려갔다.
아닌가, 그냥 술이 먹고 싶은 건가?
“마셔라! 마셔라!”
“한 잔 더-!”
홍영기와 백호 길드원들간의 주량 대결도 펼쳐지고 김이현과 박이현, 두 여자는 뭐가 재밌는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꺄르르 웃었다.
마린느는 정신없이 고기를 흡입했고, 이명한과 김예현도 백호 길드원들과 술을 나누며 분위기가 화목했다.
그 와중에 술이 거하게 취한 장이산이 술잔을 탁자에 강하게 턱하니 내려놓았다.
붉은 얼굴이 고기불판의 열기에 익어 더욱 빨개진 상태였다.
탁자에서 들리는 큰 소음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우리 백호는 신성하고 조만간 길드전을 추진할 예정이야.”
장이산의 말에도 수혁은 예상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부산 슈페리얼 게이트 공략 이후, 기자들이 계속해서 언론 플레이로 백호와 신성간의 갈등을 부추겨왔다.
백호가 국내 최고라는 명성을 얻어가자 예전부터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았던 신성은 계속해서 딴지를 걸어왔다.
그들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곳이 부산이었고, 약간의 말다툼이 기폭제가 되었다.
“현재 협회에서 길드전을 할 수 있는 시합장을 건설 중이긴 한데, 아직은 좀 멀었을 겁니다. 의도적으로 천천히 짓는 것도 있구요.”
“그 얘기는 들었어. 협회에서는 길드전을 싫어한다지? 하지만 우리도 그렇고 신성도 마찬가지로 공사를 단축시키도록 압박 중이야. 그 녀석들은 우리를 깔아뭉갤 수 있다고 믿고 있더라고.”
“신성도요?”
수혁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자 장이산이 어깨를 으쓱였다.
“참 나~ 청룡이 무너지니 자기들도 욕심이 나는 거지. 단순히 길드간의 갈등이 아닌 후원하는 업체 간의 알력도 있고. 우리도 신성을 깔아뭉개는데 모든 지원을 받기로 약속했거든.”
백호 길드는 국내 대기업 중 하나인 HD 그룹에서, 신성은 NS 그룹에서 각각 후원받고 있었다.
두 기업 모두 국내의 건설, 화학, 제철 등, 겹치는 부분이 많아 서로 점유율 싸움을 계속해서 이어오는 중이었다.
상대방의 기업이 무너진다면 국내에서 독점형태로 들어갈 수 있으니 견제가 심화되는 건 당연했다.
“어찌되었건 시합장이 건설되면 그곳에서의 첫 길드전은 우리와 신성이 될 거야.”
“저희 블러드는 백호를 형제처럼 생각합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내가 더 이상은 예전처럼 국내 최고라고 막 떠들지는 못해. 블러드 길드의 실력을 아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신성이 넘볼 곳은 아니지.”
호랑이의 자부심이 가득한 장이산이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감 넘치는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응원하겠습니다.”
“당연히 우리가 이기지-!”
흥이 오른 장이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술잔을 위로 쳐들었다.
“블러드 길드, 백호 길드의 화합을 위하여-! 후아-!”
““후아-!””
단결력 하나는 끝내주는 백호였다.
2차, 3차, 4차까지.
헌터들의 위대한 체력은 밤이 지고 해가 뜨고도 술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애가 그애가 이거 너라나라?”
“아이아이 으에 아이어거.”
해장국집에서도 탁자 위에 초록 소주병이 가득했다.
혀가 잔뜩 꼬부라져 고주망태의 길드원들을 쳐다보던 수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회식 자리를 빠져나온 그의 곁에 금발의 여성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숙취해소제를 발견한 수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고맙군. 선데이. 여기 왔다는 얘기는 정보를 얻었다는 얘기겠지?”
“네. 마스터. 차로 모시겠습니다.”
선데이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강변 굴다리 밑이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선데이가 서류봉투를 넘겨주었다.
“베로니카의 폰에서는 별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여권을 위조해준 자는 저희가 잡아다 누구에게 또 여권을 넘겼는지, 누가 주문했는지 등을 추궁하고 있습니다.”
“좋아. 그 다음은?”
“마지막으로 베로니카의 립스틱에 들어있던 칩을 분석한 결과 나온 흔적들을 서류에 뽑아왔습니다.”
그녀의 말에 서류를 훑어보던 수혁이 미간이 좁혀졌다.
“NS 그룹? 신성을 후원하는 기업이네?”
“네. 특정 인물이 나와있지는 않고 그들과 암호를 주고받을 뿐 직접적인 접촉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접촉 방식이 변해 찾기가 어렵습니다.”
“즉, NS 그룹 내에 비셔스와 내통하는 자가 있고 그 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단지 연락하는 방식만 나와 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베로니카가 죽으며 써 먹기 힘들겠다 이 얘기군.”
“맞습니다. 비셔스에서 흘러나온 몇 가지 아이템들이 후원 형식으로 신성 길드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는 마스터께서 말씀하셨던 붉은 약물도 들어있는 걸로 보입니다. 비셔스의 물건을 후원 받은 헌터가 내통하는 자와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선데이의 말을 들은 수혁이 옆 창문을 톡톡 두드리며 고심했다.
헌터라면 비셔스의 사상은 매력적으로 느껴질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신성과 NS 그룹의 누군가가 비셔스와 연결고리가 있다.
“그 약물은 헌터를 강하게 만들어주지만 커럽티드가 될 확률이 더 높아. 그런 약물을 마구 쓸 수는 없을 거야. 지금까지 그런 사단이 없는 걸 보니 먹고 커럽티드가 된 자는 없나 보군.”
“만약 그 약물을 마시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을 확률은 없습니까?”
“......멀쩡하다면 그 자는 흡혈귀가 되겠지?”
나처럼.
그러니 흡혈귀의 패턴을 제일 잘 아는 건 바로 나다.
“약물을 지금까지 안 먹었다면 찾기 어렵겠지만, 만약... 그 자가 약물을 먹은 상태라면 결코 전처럼 행동할 수 없을 거야.”
“그렇다면...?”
아직은 감을 못 잡는 선데이에게 수혁이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최근 신성길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들을 추려봐. 전보다 급격히 강해졌다라던지 레벨이 빠르게 올랐다는지 하는 자들. 그리고 수도권에서 실종 신고가 급격히 생긴 지역도 파악해. 한 번 흡혈귀로 변한 자가 결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헌터를 먼저 찾고, NS 그룹의 내통하는 자를 찾아 비셔스의 조직을 국내에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약물을 준다는 선지자의 정체까지.
탑이 나타났을 때 제대로 싸울만한 헌터들을 지켜내야 한다.
헌터들을 타락시키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빌런 조직을 수혁은 최대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
“으아앗! 나 죽는다!”
“하아아압-!”
동료의 다급한 외침에 한승훈이 한걸음에 뛰어 자신의 도를 휘둘렀다.
티-잉.
오크 전사의 검이 한승훈의 도에 실린 힘을 견디지 못해 위로 튕겨졌다.
그 틈에 날아간 빛살 같은 도격에 오크 전사의 머리통이 목과 분리됐다.
“어서 일어나-! 아직 안 끝났어!”
“으...응. 고마워.”
동료를 일으켜 세운 한승훈이 또다시 몸을 돌리며 도를 현란하게 휘둘렀다.
도가 지나간 곳에 오크 전사의 피분수가 치솟았다.
한승훈의 활약을 느낀 신성길드 제 3팀의 리더 이창현이 입을 모아 동료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 다들 힘을 내!”
마침내 오크 전사들을 모두 물리친 신성 길드원들이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도움받은 길드원이 창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승훈에게 다가갔다.
“승훈아!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그래.”
모두들 한승훈에게 다가와 그의 활약을 칭찬했다.
동료들이 치켜세워 줌에도 그의 표정은 무언가 불편한 듯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리더인 이창현이 오크들의 녹색 피가 덕지덕지 붙은 채로 다가왔다.
“솔직히 처음엔 좀 원망했다. 난 네가 낙하산이라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었어. 넌 신성 길드의 에이스가 될 거야. 내가 널 잘못 봤다.”
동료들의 말에도 무표정을 유지하던 한승훈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를 언제나 무시하던 리더가 처음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형이 잘 이끌어준 덕이죠.”
“나도 어디 가서 내세울 수 있는 레벨은 아니지만 그래도 팀장이니까, 너의 활약만큼은 위에다 최대한 어필할게.”
“고마워요.”
세상에는 노비스, 솔저, 베테랑, 챔피언까지 여러 등급의 게이트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중이었다.
등급이 높아진 헌터들은 자신의 등급에 맞는 게이트를 깨야했고, 하위 등급의 게이트를 깨는 헌터들은 따로 있었다.
그런 하위 등급의 헌터들은 루키로 불렸다.
최소한 어디 가서 헌터로 인정받으려면 베테랑 등급은 되어야했다.
각 길드에서도 주력으로 삼는 헌터들 밑에 루키들을 키워 주력으로 끌어올리는 유스시스템이 존재했다.
신성길드에서 그런 루키들이 모여 있는 곳이 제3팀이었다.
솔저 등급의 노란색 게이트가 허물어지더니 신성 길드 3팀이 지친 얼굴로 나타났다.
게이트 관리국 직원에게 보고를 마친 이창현이 한승훈에게 다가왔다.
“이제부터 누가 널 낙하산이라고 하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가만 안 놔둔다. 다들 안 그래?”
“그럼~ 승훈이는 조금만 더 하면 2팀 가겠다.”
“하하하...”
다른 길드원들이 이창현의 말에 호응해주었다.
한승훈은 그저 멋쩍게 웃어주었다.
레벨이 낮고 실력 없는 루키들은 신성길드에서 밀어주는 3팀에 들어올 수 없었으나 NS 그룹의 한진원 이사가 자신의 아들을 꽂아주었다.
처음에는 자부심 강한 모두가 반발심이 강해 그를 무시했고, 실제로 한승훈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룹의 후원을 무시할 수 없기에 억지로 그를 데리고 다녔으나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이제는 리더인 이창현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선보였다.
동료들과 헤어진 한승훈은 타오르는 갈증을 참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물을 마셔도 잠깐 진정될 뿐 갈증은 없어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그는 뜨거워지는 몸을 진정시키려 욕조에 냉수를 담아 몸을 담가보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악. 하악.”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아버지가 건네준 약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강력해진 신체 능력을 얻었지만 부작용으로 인해 피 냄새를 맡으면 달콤한 향기에 침이 꿀꺽 삼켜졌다.
다른 일반 음식들은 이제 너무 맛이 역하고 맛이 없어져버렸다.
한 번씩 피 흘리는 동료를 볼 땐 확 깨물어 마구 핥고 싶었다.
입을 억지로 다물며 게이트에서는 참아냈지만 지금 이곳에는 그를 말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밤이 찾아왔고 갈증을 이겨내지 못한 한승훈은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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