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빌런의 무한 흡수 권능-53화 (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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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비셔스

“하는 짓이 여전히 추잡하네.”

‘설마... 알아차렸다고?’

목소리가 끊기더니 수혁의 기척이 사라졌다.

황급히 다시 일어선 료마가 맞이한 건 사방에서 달려드는 박쥐떼였다.

사람보다도 더 큰 박쥐들이 어둠을 몰고 와 가로등 불빛을 뒤덮었다.

“으아아악!”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팔과 다리, 등허리, 목까지 온갖 곳을 할퀴고 물어뜯었다.

수혁이 이렇게 료마를 괴롭히는 이유는 전생의 일 때문이었다.

***

“네가 사람을 먹이로 삼는다지? 우리 밑으로 들어와라. 저급한 인간들을 같이 다스리자.”

한국을 떠나 잠시 일본으로 도피한 수혁에게 비셔스로 들어오라고 료마가 찾아왔다.

단칼에 거절하자 료마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순순히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는 척하면서 수혁이 몸을 돌리자 등 뒤에서 기습을 날렸다.

사전에 호신강기 특성을 얻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었다.

곧바로 치졸하고 비열한 료마와 저열한 전투 끝에 녀석을 죽일 수 있었다.

료마의 패턴은 그 때 질리도록 당해봤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열 받는다.

너 오늘 잘 걸렸다.

온 몸이 걸레짝이 된 료마가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항...복한 자...를... 공격 하...다니...”

료마는 절대 사용하기 싫었지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팔뚝을 들었다.

갈기갈기 찢겨 너덜한 그의 옷소매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손가락만한 약병 하나가 나왔다.

얼핏 보기에 피처럼 보이는 그 액체를 들고 무얼 하는지 수혁은 지켜보았다.

그로서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위급할 때 마셔라. 선지자께서 내리신 은혜로운 약속이다.”

“영광입니다.”

비셔스 아시아 지부장이 건네는 약병을 료마가 조심스럽게 손에 감싸고 품에 집어넣었다.

겉으로는 감복한 척 했지만 속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이 약병이 일시적으로 강한 육체를 선사하지만 목숨이 줄어든다고 알고있었다.

그랬던 그 약병을 지금 입으로 간신히 털어넣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으니까.

아그작. 꿀꺽. 퉤.

약병을 입에 넣고 터프하게 유리 째로 씹어버렸다.

액체는 목을 타고 흘러갔고 유리조각들은 입 밖으로 뱉어냈다.

깨진 유리로 인해 입이 걸레짝이 되었지만 료마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른 약병에서 나온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내부를 휘감고 있었으니까.

박쥐로 인해 할퀴어진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새 살이 돋아나며 유리조각들을 밀어냈다.

쿵. 쿵. 쿵. 쿵.

전과 다른 심장의 활력을 느낀 료마가 비릿한 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전보다 펌핑된 근육으로 인해 안 그래도 넝마 같던 옷들이 죄다 찢어지며 바람에 날렸다.

알몸이 된 료마는 상처 하나 없는 몸을 드러냈다.

피를 잔뜩 쏟아 창백해진 얼굴의 그는 묘한 갈증에 시달렸다.

“쓰읍. 결국 이 수단을 써버렸군. 너 때문에 피를 흘려서 그런가 목이 너무 타는구나. 너의 생살을 찢고 심장을 잘라 뜨거운 피를 마셔야겠다!”

이번에는 료마가 가로등 조명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앞길을 거대한 박쥐들이 막아섰으나 맨 손으로 낚아챈 료마가 그대로 찢어버렸다.

아까와는 다른 료마의 힘에 수혁의 눈이 커졌다.

“하하하하하. 어딜 도망가느냐!”

료마가 양 손을 쭉 뻗어 자신을 찢어발기려는 걸 본 수혁은 검을 내려놓았다.

“건방진 녀석!”

쭉 뻗은 양 손을 각각 손바닥으로 쳐냈으나 묵직함에 손바닥이 저릿했다.

예상보다도 훨씬 큰 힘에 수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감히 나와 박투술을 하자고? 쿠레코가류의 체술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마.”

“여전히 입만 나불대는군.”

“이익...”

느슨하게 손을 쥔 료마의 손이 쭉 뻗어지며 수혁의 얼굴로 향했다.

수혁이 고개를 젖히자 직선으로 가던 손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그대로 가슴을 강타했다.

가슴으로 날아오는 손을 위로 쳐낸 수혁이 료마의 비어있는 가슴을 향해 번개처럼 주먹을 날렸다.

“컥.”

가슴이 움푹 들어가는 와중에도 뒤로 몸이 붕 뜬 료마가 밑에서 위로 발을 차올리며 반격을 날렸다.

발길질을 피하느라 후속타가 늦어진 사이 어느새 반격의 자세를 잡은 료마가 가슴을 더듬었다.

뿌드득. 뿌직.

“신기할 정도의 재생력이군. 이것이 선지자의 은혜인가.”

“이봐. 무슨 약물을 마셨길래 그런 힘이 생겼지?”

“궁금한가? 선지자께서 내리신 이 힘을 너도 느낄 수 있겠지?”

“선지자?”

전생과 다른 단어에 수혁의 고개가 갸웃했다.

비셔스에 선지자라는 빌런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저렇게 힘을 내려주는 약물 역시 처음 봤다.

잠깐이지만 과거 게이트에서 만났던 뱀파이어와 싸울 때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선지자는 뭐지?”

“선지자란 우리 비셔스의 방향을 인도해주시는 고귀한 분이시지. 그나저나 내가 왜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는지 알겠나?”

“날 죽일 자신이 있어서?”

“똑똑하군. 고통 받기 싫으면 알아서 목숨을 끊어라. 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마.”

“쯧. 또 주둥이로만 살인하네. 아까처럼 바닥에 개같이 엎드려보지 그래? 내가 생각이 바뀌어서 널 살려줄 수도 있잖아?”

수혁의 얘기를 듣자 얼굴이 구겨진 료마가 훌쩍 뛰어 주먹을 날렸다.

료마는 손목이 수혁의 얼굴 바로 앞에서 잡히자 손가락을 폈다.

쭉 뻗은 손가락에서 검은 손톱이 길어지며 얼굴을 찔러왔다.

“음?!”

손목을 위로 올리고 허리를 뒤로 젖힌 수혁이 발을 날려 료마의 턱을 강타했다.

콰드득.

턱이 짜부러지며 이빨이 부러진 료마가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엔 양손을 마구 휘저었다.

길게 자란 손톱이 흉흉하게 허공을 가르며 수혁을 위협했다.

몸을 스치는 손톱을 흘린 수혁이 한 걸음에 몸통 안쪽으로 파고들며 어깨로 료마를 밀쳐냈다.

“커흑.”

비틀거리는 료마를 향해 수혁의 펀치 난타가 시작됐다.

퍼버버버벅.

피하지도 못하고 주먹을 죄다 얻어맞은 료마의 함몰된 상체를 뒤로 밀쳐낸 수혁이 몸을 돌리며 그대로 뒤돌려찼다.

한 번 더 턱을 맞은 료마의 입에서 이빨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이제는 선지자에 대해 말할 기분이 좀 들어?”

“크르르르르.”

바닥에 누운 료마가 다시금 일어났다.

그러나 전과 다른 이지를 상실한 눈빛만 보였다.

다 빠져버린 이빨 대신 짐승 같이 들쭉날쭉한 이빨이 자라났다.

팔과 다리는 기형적으로 꺾이며, 함몰된 코와 삐죽하게 길어지는 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침을 조금씩 질질 흘렸다.

“커럽티드로 변했다고?”

커럽티드는 뱀파이어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뱀파이어로 변하지 못하는 대신, 이지를 상실하고 피만 탐하는 존재였다.

사실상 뱀파이어보다 하위 존재로 중요한 것은 지능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멀쩡했던 인간을 커럽티드로 타락시킨 붉은 약물은 대체 뭘까?

선지자에 대해 캐묻고 싶었는데 이래서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땅에 있던 검을 다시 주워들었다.

“쿠웨에에엑-!”

질척한 침을 내뱉은 료마가 팔을 피고 늘어난 등가죽을 선보이며 허공을 날아올랐다.

이제는 손톱 뿐 아니라 발톱마저도 날카로워진 료마가 공중을 활강하더니 수혁을 향해 모든 발톱을 모았다.

새가 지상의 동물을 사냥하듯 수직으로 떨어졌다.

수혁은 피하는 것 대신 검을 밑으로 내려 잡았다.

서걱.

사타구니에서 머리까지 이어진 검격에 료마가 두 조각으로 나뉘며 바닥에 떨어졌다.

료마의 내장조각과 뇌수가 땅을 적셨다.

끈적한 피는 점성이 강한지 바닥에 흐르는 대신 질척한 덩어리로 남아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검붉은 피를 수혁이 검지로 찍어 맛보았다.

“퉷. 오염되었군.”

신선한 피가 아닌 악의가 담긴 썩은 피였다.

입에서 느껴지는 독한 향과 맛에 수혁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러졌다.

“사람을 타락시키는 오염된 피라...”

비셔스에 전생과 다른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선데이를 시켜 좀 더 비셔스에 대해 파헤쳐보기로 한 수혁이 료마의 시체를 바다 멀리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저 멀리 날아간 시체가 바다 속으로 풍덩 빠지더니 곧 가라앉았다.

수혁이 자리를 떠나고 료마의 시체가 남긴 몇 덩어리의 핏방울을 먹기 위해 야생의 들쥐 몇 마리가 다가왔다.

정신없이 핏방울을 핥던 들쥐들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피를 토하며 죽어버렸다.

료마의 일, 비셔스의 변화, 달라진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며 걸었다.

해안도로 옆에 철썩이며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수혁의 복잡한 머릿속을 씻겨주었다.

“하던 대로 해 나가는 거지. 비셔스가 내 앞길을 막는다면 부셔버리면 돼. 그 뿐이지. 그렇지?”

해안도로의 끝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선데이가 수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마스터.”

어둠에 어울리는 검정 세단에 수혁이 올라탔다.

료마에게서 얻은 것은 없었지만 베로니카의 소지품을 챙겨온 수혁을 선데이에게 넘겨주었다.

“폰에 연결된 고리를 찾아보고 위조된 여권은 누가 만들었는지도 파헤쳐봐. 특히 비셔스에 선지자라는 인물도 자세히 알아보고.”

“네. 마스터.”

“그리고... 립스틱은... 필요 없으려나?”

뚜껑을 열고 베로니카가 쓰던 립스틱을 살펴보던 수혁은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립스틱을 돌려보던 중 립스틱 끝이 툭 튀어나오며 떨어졌다.

“엇?”

떨어진 립스틱 조각 끝에 조그마한 칩이 붙어있었다.

선데이와 수혁의 눈이 마주쳤다.

“료마는 죽을 때까지 쓸모가 없네. 베로니카를 살려둘 걸 그랬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혁이 차에서 내렸다.

“정보가 파악되는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선데이를 향해 손을 대강 흔든 수혁이 호텔로 복귀했다.

여전히 불이 꺼져있는 호텔 방안에는 홍영기와 이명한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뜨끈한 바닥에 눕고 눈을 감자 곧바로 수마가 덮쳐왔다.

***

꿀 같은 휴식을 취한 블러드 길드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길드원들에게 추가적으로 휴가를 준 수혁은 사무실에서 다음 스케쥴을 궁리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것은 대양그룹의 정지원이었다.

싱글벙글 연신 웃는 그의 뒤로 대양그룹 직원들이 양 손 가득 박스를 짊어지고 왔다.

“블러드 길드장님! 하하하하.”

“얼굴이 좋아보이는군요.”

“덕분에 꼴 보기 싫은 녀석들이 잘려나갔거든요. 길드장님 말을 잘 새겨들은 덕분이죠.”

정지원을 시샘하며 공사를 추진하라고 압박하던 자들이 회장에게 찍혀 죄다 한직으로 물러났다.

폐허가 되어버린 서면은 이제 대양그룹이 계획한 대로 헌터옥션의 거리로써 발돋움하게 되었다.

“길드장님이 부탁하셨던 물건들입니다. 더불어 작은 성의도 좀 넣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진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서로 윈윈의 거래가 되었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부탁하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헌터옥션에서는 블러드 길드를 최우선으로 대우하겠습니다.”

자신의 명함을 건넨 정지원이 부하직원들과 함께 자리를 떠나갔다.

예전에 받았던 명함을 꺼내 비교하자 직함이 어느새 바뀌어있었다.

“대양그룹 전무 정지원.”

백호 길드에 이어 좋은 인맥이 또 생겨났다.

[타락한 기사 실리안의 가시갑옷 : 신체 +35, 적에게 공격당할 시 데미지의 5%를 반사한다.]

사무실에 갑옷을 꺼내놓고 정지원에게 받은 박스에서 아이템들을 꺼냈다.

[돌거북이의 등껍질 : 파도와 바위의 충격으로 다져진 등껍질은 강도를 측정하기 쉽지 않다.]

[뿔고슴도치의 가죽 : 날카로운 가시가 듬성듬성 박힌 가죽, 가시가 부러져도 다시 자라난다.]

[혼돈과 융합의 돌 : 아이템끼리 합성할 때 사용한다.(1회용.)]

“드디어 재료가 다 모였군.”

예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갑옷을 완성할 기회가 왔다.

마력을 집중하자 혼돈과 융합의 돌에서 흘러나온 빛이 갑옷과 나머지 아이템들을 감쌌다.

빛의 세기가 밝아지며 액체처럼 아이템들을 녹이더니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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