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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검객
방문을 부순 낯선 이의 침입에도 두 남녀의 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베로니카의 밑에 깔린 김인수는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며 울부짖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끄어헉.”
베로니카는 김인수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중요한 순간이라 함부로 몸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남의 마력을 빼앗아오는 대신 무방비 상태에 놓이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마력흡수를 그만하고 마력의 역류를 막기 위해 내부의 마력을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을 벌고자 멀쩡한 입으로 침입자를 구슬려보기로 했다.
찡긋.
고개만 살짝 돌린 베로니카가 수혁을 향해 윙크했다.
땀에 젖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헉. 헉. 헉. 노크 없어? 매너가 꽝이네. 하고 싶으면 말로 해야지.”
“으으으... 으헉!”
밑에 깔린 김인수는 온 몸의 핏줄이 올라온 채로 급격한 신음을 토해냈다.
추욱 늘어진 그의 양물에서 벗어난 베로니카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다.
“이 자식 조루네. 우리 잘생긴 오빠는 좀 오래 가려나? 한국은 오빠라고 하는 걸 좋아한다는데 어때?”
“저 녀석 보다는.”
자신감 넘치는 말에 베로니카가 호호 웃더니 자신의 백을 뒤적거렸다.
홀딱 벗은 몸으로 곧장 립스틱을 꺼내 바른 그녀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번들거리는 붉은 입술이 그녀의 미소를 더욱 치명적으로 만들었다.
“내가 지금 뭐 했는지 알아?”
“?”
“동료를 한 명 불렀어. 내 몸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지?”
싸늘해진 그녀의 표정에도 빛나는 미모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도 수혁은 오히려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잘 됐군. 안 그래도 네 동료 어떻게 불러올까 고민했는데.”
“...뭐?”
수혁의 말을 들은 베로니카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그녀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 순간 수혁의 신형이 사라졌다.
재빠르게 고개를 숙인 그녀는 널부러진 김인수의 다리를 잡고 끌어 자신의 앞을 막았다.
정신 못 차리는 김인수의 목 바로 앞에서 수혁의 검이 멈추었다.
인질이 먹힌다는 사실에 베로니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에어 붐!”
베로니카의 손에서 공기 덩어리가 날아갔다.
수혁이 고개를 젖히며 피하자마자 베로니카의 연이은 주문이 들려왔다.
“슬로우! 악마의 손길!”
무형의 기운이 수혁의 온 몸을 압박하더니 바닥에 마법진이 생겨나며 비쩍 마른 대나무 같은 손아귀들이 그의 온 몸을 붙잡았다.
검으로 손아귀들을 잘라내려 했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악마의 손길에 붙들린 수혁을 본 그녀가 마지막 주문을 외쳤다.
“사신의 낫!”
수혁의 뒤편에 검은 망토를 두른 해골이 나타나 손에 든 낫을 휘둘렀다.
서걱.
낫이 지나가자 수혁의 목이 잘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웃을 수 없었다.
수혁의 잘린 목에 피 대신 검은 기운만 서려있기 때문이었다.
땅에 떨어진 목이 먹물처럼 검게 녹아내렸다.
“더 보여줄 게 남았나?”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베로니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쳐다봤다.
“난 뒤에서 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아앗!”
그녀를 뒤에서 껴안은 수혁이 곧장 어금니를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자신의 피가 빨리는 베로니카는 묘한 신음성을 토해냈다.
“이런... 기분이었네...”
[강화된 마법 저항력을 얻었습니다.]
탱탱했던 피부 대신 미라처럼 쭈글쭈글해진 베로니카의 몸을 옆으로 던져버린 수혁이 바닥에 누워있는 김인수에게 다가갔다.
마력이 빨리며 엉망이 되어버린 내부를 치료하려면 엘릭서가 몇 개나 필요할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사실 눈은 제대로 뜰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완전 폐인으로 변했고 헌터로서의 생명은 끝이 났다.
“흠... 스카웃 하려던 게 아니었나?”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해봤으나 무엇이 베로니카의 마음을 바꿔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비셔스에서도 김인수에 관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수혁은 이어서 방 안에 있던 베로니카의 백을 뒤엎었다.
여권과 스마트폰, 립스틱, 지갑 등이 나오자 닥치는 대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 외에 호텔 방에 쓸 만한 아이템이나 비셔스에 관한 정보가 있나 뒤적거려봤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삐-용. 삐-용.
호텔에서의 소란에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는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를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난 뒤, 방 안에 경찰들이 들어와 총을 겨눴다.
“꼼짝 마!”
“빌런헌터입니다.”
“...네?”
수혁이 가지고 있는 빌런헌터면허를 보여주며 미라가 된 베로니카를 지목했다.
“빌런을 잡았고, 여기 김인수 헌터가 당했으니 구급차를 불러주세요. 협회에는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네? 아...네. 죄송한데 신원확인을 좀...”
“블러드 길드의 이수혁입니다.”
경찰이 수혁의 이름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옆에 있던 경찰도 얼굴을 알아보고는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마치 톱스타라도 본 것처럼 눈이 반짝였다.
“아?! 이번에 부산 게이트 공략한 길드 맞죠? 큰일 하셨는데 또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시네요. 마무리는 저희가 할 테니 어서 쉬러 가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이번 게이트 공략으로 인해 부산에서 블러드 길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가 생겨났다.
경찰들의 환대를 받으며 호텔을 벗어나는 수혁을 비쩍 마른 사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료마는 자신의 검을 꺼내서 덮칠까 하다 주변의 이목을 우려해 조용한 곳에서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다.
호텔 앞 해수욕장을 거닐던 수혁이 해안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번화가와 멀어질수록 조명이 약해지더니 가로등의 희미한 빛만 그를 비추었다.
그의 뒤에는 멀찍이서 천천히 따라붙는 료마가 있었다.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가던 료마는 수혁이 스스로 무덤을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제 발로 죽을 길을 향하는 구나. 기왕이면 싸우는 맛이 있어야 할 텐데.’
어느덧 수혁은 인접했던 주거지역도 벗어나 인적이 드문 해안공원에 도달했다.
료마가 품 안에서 목검을 꺼내며 타이밍을 재었다.
가로등 밑을 거닐던 수혁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자 료마의 움직임도 그에 맞춰 속도를 올렸다.
마침내 주변의 인기척이 없는 공격하기 좋은 시간이 다가오자 료마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는지 수혁은 무방비로 걷기만 할 뿐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조그마한 공간에서 빛이 비추지 못하는 곳으로 수혁의 몸이 조금씩 진입했다.
즉시 료마가 목검에 마력을 담아 쇄도함과 동시에 수혁은 가로등 불빛을 지나 완전히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탁. 탁.
두 걸음만에 간격을 좁힌 료마의 목검이 수혁의 등 뒤를 찔렀다.
“죽어라!”
후-웅.
수혁을 찢어발기려던 목검이 목표물을 잃고 허공에 묵직한 파공음만 남겼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사라진 수혁의 신형에 당황한 료마가 가로등 밑에서 두리번거렸다.
목표를 잃어버린 그의 귓가로 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라면 비셔스에 관해 좀 알겠지? 료마?”
“...칙쇼!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와라-!”
“등 뒤에서 기습이나 해놓고 비겁을 외쳐? 자칭 무사, 료마?”
스스로 무사라고 칭하는 료마는 항상 남을 기습하기 좋아하는 악질적인 녀석이었다.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는 걸 잘 알았기에 수혁이 잔뜩 비웃음을 날렸다.
그의 실체를 아는 수혁의 말에 료마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잘 쓰지도 못하는 목검 들고 뭐해? 그거 네 진짜 무기 아니잖아. 안 그래? 닌자. 료마.”
“...알아선 안 될 걸 알고 있군. 그게 네 숨통을 끊을 것이다!”
“후후후.”
어둠 속에서 수혁의 신형이 나타나 환한 이를 보이자 료마가 들고 있던 목검을 그대로 찔렀다.
찌름과 동시에 손잡이의 버튼을 누르자 검끝에서 누런 독연(毒煙)이 내뿜어졌다.
목검을 손쉽게 맨손으로 잡아낸 수혁이 독연을 피하지 못하자, 뒤로 물러난 료마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큭큭큭. 어리석은 자식. 검은뿔나방에서 채취한 독이다. 네 놈은 이제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토하다 죽어버릴 거다!”
툭. 툭. 후우-
몸에 끼얹은 독연을 손으로 털고 입으로 불어냈다.
시간이 지나도 멀쩡한 모습에 료마의 목구멍이 꼴깍하고 넘어갔다.
“뭐... 뭐냐. 네 녀석.”
“내가 독은 내성이 좀 있어서. 보여줄 건 끝인가?”
“칙쇼!”
등 뒤에서 접혀있던 사슬낫을 펴든 료마가 사슬낫을 수혁에게 던지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시간차를 두며 표창을 던졌다.
사슬낫을 고개 젖혀 피한 수혁이 날아든 표창을 잡아 몸을 휘리릭 돌리며 그대로 료마에게 다시 던졌다.
뒤로 날아간 사슬낫을 다시 회수하려던 료마는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표창을 피하지 못했다.
푹.
“큭.”
허벅지에 박힌 표창의 고통을 참아낸 료마가 사슬낫을 다시 당기자 날카로운 낫이 수혁의 뒤통수를 찍으려 했다.
다시 고개 숙여 사슬낫을 피한 수혁에게 이번엔 사슬낫의 반대부분인 추를 날렸다.
맨손으로 추를 옆으로 쳐내자 또다시 사슬낫이 날아들었다.
쉴 새 없이 손을 놀려 사슬낫과 추의 폭풍 같은 연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변칙적인 공격에 당황할 법 하지만 수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 허벅지 통증이 심해지는 료마는 점점 초조해졌다.
표창에는 독이 발려있어 어서 빨리 해독제를 먹어야하는데 틈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혁과 자신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정정당당 승부다-! 피하지 마라! 폭렬겸(爆裂鎌)!”
과다한 마력을 사슬낫과 추에 담아 수혁을 향해 던지자 펑하고 터지며 마력이 담긴 사슬 조각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날아드는 사슬 조각들에 수혁의 손이 어둠을 쥐어뜯어 앞으로 던지자 검은 장막이 날아드는 사슬 조각들을 집어삼켰다.
계속해서 날아가던 장막이 형상을 갖추더니 거대한 박쥐로 변했다.
스킬을 쓴 료마가 황급히 표창을 빼내고 해독제를 집어삼키다 날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가까이 접근한 박쥐의 손톱이 얼굴을 할퀴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피했으나 왼쪽 눈가에 쓰디쓴 상처를 남겼다.
“크아악.”
이번엔 클로를 꺼내 손에 착용한 료마가 박쥐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기괴한 날개짓으로 클로를 피한 박쥐가 어둠으로 사라졌다.
료마가 서있는 가로등 조명 밑을 제외하고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어느새 수혁의 신형도 보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 박쥐의 날개소리만 주변을 맴돌았다.
펄럭. 펄럭. 펄럭. 펄럭.
피 흘리는 눈을 부여잡은 료마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점점 공포심이 커져갔다.
자신이 수혁의 상대가 전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비장의 방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그만... 내가 졌다.”
가로등 조명 아래 피투성이의 료마가 얼굴까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일명, 도게자.
그가 가진 비기는 항복하는 척하며 다가온 수혁에게 클로를 발사하는 것.
승리를 위해서라면 더한 짓도 할 수 있던 료마는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가 헌터라면 분명 패배를 인정한 빌런을 마구 죽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뚜벅. 뚜벅.
자신의 앞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료마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잔뜩 엎드려있기에 그의 미소를 수혁이 볼 리는 만무했다.
천천히 자신의 양손을 앞으로 향한 료마가 수혁이 좀 더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인내하는 자가 승리한다.’
마른 침을 삼키며 모든 마력을 클로에 집중한 료마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다다랐다.
‘한 발짝만 더...’
딱 한 뼘.
클로의 위력이 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을 딱 한 뼘 남겨두고 발걸음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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