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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길드의 실력
어째서 김인수가 거짓정보를 퍼트렸을까.
진실 속에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그럴싸하게 만들자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들에게 왜 그런 건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달려드는 저 무당벌레들로부터 살아남는 거니까.
백호길드의 연가람이 허공으로 커다란 얼음구슬을 올려 보냈다.
두둥실 얼음구슬이 하늘 높이 치솟은 후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얼음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블러드 길드가 올 때까지 버텨!”
성난 외침과 함께 장이산이 무당벌레의 쫙 벌어진 주둥이를 양 손으로 잡았다.
무게로 짓누르려는 무당벌레와 장이산이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김이현의 검이 무당벌레의 주둥이를 관통했다.
콰직.
단단한 등껍질과 달리 주둥이가 달린 부분은 상대적으로 연약했다.
“입을 노려!”
딱딱딱딱.
집게 같은 주둥이를 마주치는 무당벌레들이 점점 동굴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스 월!”
연가람이 주문을 외치자 동굴 입구를 두꺼운 얼음덩어리로 막아버렸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무당벌레들이 주둥이로 얼음을 갉기 시작하는게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최연진이 끝이 뭉툭한 화살을 무당벌레에게 쏘았다.
주둥이를 벌린 무당벌레의 입으로 화살이 쑥 들어가더니 곧바로 폭발음이 울리며 무당벌레가 부르르 떨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착지하는 그녀의 뒤에서 갑자기 날아든 무당벌레가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콰직.
“아아악-!”
간신히 몸을 굽혀 상체가 잘리는 것은 면했지만 허벅지가 걸리며 다리가 잘려버렸다.
그녀의 비명에 앞쪽에서 무당벌레를 처리한 장이산이 다급히 양 손을 뻗었다.
“호포권-!”
으허허헝
호랑이 울음소리와 함께 날아든 마력덩어리가 무당벌레를 강타하며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 틈에 양 팔과 한 다리로 땅을 박찬 최연진이 품에서 급히 포션을 꺼내 잘린 다리에 부었다.
휘청이는 무당벌레의 주둥이로 날아오른 김이현이 검을 내리찍었다.
“다리 받아-!”
잘린 다리를 받아 제자리에 붙인 최연진의 곁으로 이연호가 다가와 회복 스킬을 마구 난사했다.
“힐. 힐. 리커버리. 포션 계속 부어!”
“끄으으윽.”
잘린 다리 부위에서 거품이 부글거리며 새살이 돋아나왔다.
포션과 함께 새 살이 돋는 고통만큼은 본인의 의지로 이겨내야했다.
고통을 감내하는 와중에도 활과 화살을 집어든 최연진이 백호 길드원의 뒤통수를 노리는 무당벌레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퍼-엉.
등에 맞은 화살이 폭발했으나 약간의 상처만 있을 뿐 무당벌레는 멀쩡했다.
그러나 그 틈에 길드원이 몸을 돌려 자신의 방패로 무당벌레를 밀어낼 수 있었다.
쩌저저적. 쿵. 쿵. 쿵.
동굴 입구를 막은 얼음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당벌레들이 벽을 뚫고 나오려고 기를 썼다.
커다란 덩치의 무당벌레들이 숲의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갑작스럽게 나타나 백호 길드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탐지 스킬을 쓰지 못해 수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헉. 헉. 젠장.”
장이산이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은 자는 없었지만 절반이 넘는 인원들이 부상당해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누워 있있었다.
치료 스킬을 쓰는 헌터는 마력이 고갈되어 가는지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퇴로는 보이지 않고 모두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빠지지직. 와르르르.
동굴 입구를 막고 있던 얼음벽마저 부서지며 성난 무당벌레들이 하수구에서 바퀴벌레 튀어나오듯 마구 쏟아졌다.
“시이발.”
장이산은 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국내 최고 길드라는 명성을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나.
“어차피 죽을 꺼라면 다 같이 죽는다! 백호오오-! 후아-!”
““후아!””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직전이었다.
휘우우우우- 콰아아-앙.
멀리서 날아든 불덩이 하나가 동굴 입구에 도달하며 붉고도 새하얀 불기둥을 내뿜었다.
고열에 맞닿은 무당벌레들의 딱딱한 껍데기가 녹아내리자 황급히 동굴 속으로 도망갔다.
지글지글 끓는 화염이 결계처럼 동굴 입구를 막아서자 무당벌레들은 더 이상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블러드 길드가 왔다!”
“기다렸다고오오-!”
백호 길드의 환호성과 함께 하늘을 수놓은 수십 개의 화살비가 무당벌레에게 쏟아졌다.
곧이어 다가온 홍영기가 전투의 함성을 질러 어그로를 끌었다.
“우와아아아-!!!”
사각. 사각. 딱딱딱.
무당벌레들이 일제히 홍영기를 바라보는 사이 그의 뒤에서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허공으로 날아든 수혁이 검을 마구 휘둘렀다.
사사사사사삭.
붉은 기운이 초승달처럼 전방으로 날아가며 무당벌레들의 몸뚱아리를 갈라버렸다.
아무리 단단한 껍데기도 수혁의 검기를 버티는 법이 없었다.
퍼-엉.
또다시 이명한의 화염구가 터지며 숲에 불길을 일으켰고 무당벌레들이 불길에 혼란스러운 틈을 타 마린느가 철퇴로 무당벌레의 머리통을 깨부셨다.
김예현이 부상 입은 백호 길드원들을 무당벌레로부터 지켜내는 사이, 홍영기가 부스터를 쓰며 자신의 망치로 무당벌레의 등껍질을 박살냈다.
“우리 동생 잘한다-!”
신이 난 장이산이 마력을 마구 끌어올리자 양 주먹에 하얀 빛이 감싸졌다.
“호포아(號砲牙)!”
장이산의 손에서 하얀 송곳 같은 기운이 무당벌레의 머리통을 관통했다.
“발키리의 춤.”
잔상을 일으키는 김이현의 검이 어지럽게 춤을 추며 무당벌레의 등껍질을 난자했다.
자신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깨달은 무당벌레들이 황급히 날개를 펼치고 사방으로 날아갔다.
부우-웅. 부우-웅.
다급한 날개짓을 하는 와중에도 박이현이 관통 화살을 쏴대며 무당벌레들을 땅으로 떨어트렸다.
떨어진 무당벌레는 마린느가 다가가 철퇴로 마무리를 지었다.
전투가 끝나자 무당벌레를 태우는 고약한 노린내가 진동했다.
“에어 릴리즈.”
이명한의 주문에 공기가 사라진 화염은 불길을 잃으며 사그라들었다.
“너무 요란하게 싸운 것 같군. 이러다가 와이번들이 공격해 올 수도 있겠어.”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반대쪽에서 한 차례 와이번들을 정리하고 왔으니까요.”
“?!”
수혁과 블러드 길드는 반대편에서 일부로 어그로를 끌어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와이번들을 사냥해 경험치를 얻었다.
그 때문에 백호 길드가 무당벌레들과 싸우는 와중에 와이번들이 도우러 오지 못했다.
자신의 먹잇감들을 빼앗기는 와이번들은 벌써 죽고 없었다.
“블러드 길드는 정말 매 순간 놀라게 하는군. 국내 최고라고 우리를 떠받들어주지만 그건 허명에 불과해. 진정한 최고는 블러드 길드 너희들이야.”
“국내 최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라면 모를까.”
“뭐? 푸하하하핫. 사내가 배포가 그 정도는 되야지. 내가 몰라봤네. 그나저나 저 자들은 누구야?”
장이산이 눈길이 블러드 길드원들 옆에 있던 자들에게 향했다.
거지꼴을 한 두 남성은 장이산과 눈이 마주치자 슬쩍 고갯짓을 하며 인사했다.
“살아남은 화이트윙 길드원들입니다. 산을 수색하던 중 발견했죠.”
“화이트윙? 김인수 이 새끼가 무슨 구라를 했었는지 얘기해줄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군요. 길드원들에게도 대강 사정을 들었습니다. 호수에서 김인수가 길드원들을 미끼로 써먹고는 도망쳤다는군요.”
안 그래도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솟은 장이산이 더욱 분개했다.
“뭐?! 이 XX놈의 새끼. 그 새끼가 그런 놈인지 몰랐네. 으으... 정말 열 받는다. 내가 괜히 구하자고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그 자도 결국 벌을 받을 겁니다. 살아나간다면 말이죠.”
“그래. 내 눈에 띄기만 해봐라. 사내 녀석도 아니니 부랄을 터트려주마.”
무서운 살기가 담긴 장이산의 말에 괜히 수혁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고개를 잘게 흔들며 찜찜함을 털어버린 그는 부상당한 사람들에게 포션을 나누어주었다.
“포션 많으니 아끼지 말고 백호 길드를 도와줘.”
“네. 길드장님.”
수혁의 명을 받은 홍영기가 부상당한 자들에게 포션을 뿌려주며 돌아다녔다.
한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최연진이 식은땀과 함께 끙끙대자 홍영기가 잠시 포션을 내려놓고 손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아이고 땀 좀 봐라. 빨리 나으세요.”
“......네에.”
최연진의 양 볼이 불그스름하게 변하자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박이현이 콧방귀를 꼈다.
“아주 지랄을 하네. 지랄을 해.”
“?! 언니 왜 갑자기 욕을 하고 그래요.”
“으휴... 빌어먹을. 멍청한 놈. 내가 화병이 나서 그런다.”
옆에서 전투식량을 준비하던 김예현의 시선이 박이현이 쳐다보고 있던 곳으로 향했다.
곧이어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 김예현이 입을 막고 쿡쿡 웃었다.
“귀여워요. 언니.”
“시끄러. 빨리 데우기나 해.”
“빨리 데워라. 동생. 언니 배고프다.”
마린느마저 김예현을 재촉하자 그녀가 전투식량의 발열끈을 잡아당겼다.
발열끈이 뽑혀 나오며 모락모락 김과 함께 열기가 식량을 데웠다.
새어나온 수증기가 그녀의 얼굴을 덮어도 입가의 미소는 지워질 생각이 없었다.
시신을 수습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돌보느라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자들이 워낙 많아 백호 길드원 중 싸울 수 있는 자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이산이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수혁에게 다가왔다.
“게이트 공략을 위해 같이 동굴로 들어가야 하지만 이대로 부상자들을 끌고 가는 게 더 위험해 보이네. 싸울 수 있는 나하고 부길드장 몇 명이서 이들을 지켜야겠어.”
“괜찮습니다. 저희끼리도 공략 가능하니까요.”
“울 동생 자신감은 세계 최고야! 내가 정말로 미안하네. 최대한 회복에 힘쓰고 뒤따라갈테니 급하게 가지 말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혹시 공략하게 된다면 즉시 사람을 보낼 테니 다 같이 탈출하시죠.”
“보스 몹 면상이라도 봐야 되는데, 부탁해.”
백호 길드가 정비를 하는 동안 블러드 길드가 먼저 동굴 속으로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동굴 입구에는 이명한의 마법에 맞아 불에 타거나 녹아내린 무당벌레들의 사체가 즐비했다.
박이현이 맵핑 스킬로 동굴을 탐지하는 사이 홍영기가 무당벌레의 등껍질을 통통 두드리며 장난을 쳤다.
이럴 때 하는 짓은 영락없는 애다.
손을 바닥에서 뗀 박이현이 수혁에게 보고했다.
“동굴 곳곳에 무당벌레로 추정되는 움직임들이 보여요. 숫자는... 셀 수가 없어요.”
“괜히 동굴에서 화염을 일으켰다가 산소라도 빠지게 되면 연기에 질식할 위험도 있습니다. 길드장님.”
“이 헌터님은 이제부터 바람 마법을 위주로 사용하시죠. 화염 마법은 제가 사용하라고 하기 전까지는 참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규모 공격은 안 될 겁니다.”
이명한의 경고에 수혁이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마나는 최대한 아끼고 이제부터 홍영기가 앞으로 나섭니다.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전방의 모든 적들을 쓸어버릴 겁니다. 경험치는 하나도 흘릴 수 없습니다. 다들 준비 됐죠?”
이명한이 손을 휘두르자 손바닥만한 불덩이 몇 개가 허공에 떠오르며 어두운 동굴 속을 밝혔다.
“갑시다.”
블러드 길드원들이 무기를 고쳐잡고 동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
“위에!”
동굴 천장에서 애벌레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떨어지며 홍영기를 덮쳤다.
“끄응!”
자신의 사각방패로 애벌레의 무게를 받아낸 홍영기가 부스터를 쓴 망치를 옆구리에 강타했다.
옆구리에 파고든 망치와 함께 체액이 튀어나오며 땅을 적셨다.
동굴 곳곳에서 무당벌레뿐 아니라 성체가 되지 못한 애벌레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블러드 길드를 공격했다.
사람보다 큰 애벌레들이 질척한 실을 뱉어내며 홍영기의 발을 묶었다.
홍영기를 뒤덮은 실타래를 수혁의 붉은 검기가 잘라냈다.
“앞으로 밀어붙여!”
“우오오오오-!”
온 몸에 부스터를 두른 홍영기가 방패를 앞세우고 애벌레들을 죄다 밀쳐냈다.
팽이 돌 듯 망치를 제자리에서 휘두르자 주변을 둘러싼 애벌레들이 죄다 곤죽이 되어버렸다.
홍영기가 파고든 빈틈 뒤로 나타난 수혁이 그림자로 체액을 빨아들이며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몸 안에서 피 끓는 신체의 변화를 느꼈다.
강화된 혈류의 흐름과 거센 심장박동이 온 몸에 새로운 활력을 공급했다.
레벨 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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