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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페리얼(S급) 게이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김예현이 수혁을 바라보자 그의 시선은 온통 TV에 향해있었다.
“청룡 길드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뭐...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가고 정의로운 길드로 다시 태어나겠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최지헌이 남아있잖아.”
전생에서도 김예현에게 살해당한 최용수 대신 청룡길드를 이끈 것은 최지헌이었다.
최지헌은 청룡길드를 명실상부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길드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실력과 인성이 모두 뒷받침된 헌터로 수혁과 함께 탑에 오를 정도였으니.
지금 상황도 최용수가 물러난다면 최지헌이 청룡길드를 맡아 다시 성장할 게 분명했다.
그는 위기가 닥쳐와도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의 사내였다.
수혁과는 비록 충돌이 잦았지만 그건 서로의 성향차이에 불과했었다.
수혁의 말을 들은 김예현이 공감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최지헌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박이현이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청룡 길드가 꽉 잡고 있던 강남지역에 다른 길드들이 전부 달려들 텐데 해체하지 않을까요? 최지헌이 검을 좀 쓴다고는 알려져있는데 리더로서는 영... 차라리 다른 길드에 스카웃되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최지헌은 책임감이 강해서 다른 길드로 들어가겠나 싶긴 한데, 확실한 건 지켜보면 알겠지.”
그의 예상과 달리 한 번 무너진 청룡길드는 회복하지 못해 해체했고 최지헌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갑옷을 강화시키기 위한 아이템을 찾던 수혁의 사무실에 정장의 남성이 찾아왔다.
“길드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당신은... 요트를 사갔던?”
정지원이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건넸다.
“기억하시는군요. 정지원입니다.”
그야 물론이지.
그 덕에 초반 현금 확보가 원활했고, 그때 인수한 상가건물의 시세가 몇 배는 올랐으니 잊을 리 만무했다.
그 뒤로 수혁에게 상가건물을 다시 사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팔지 않았다.
몇 번 연락을 무시했더니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저희 대양그룹에서는 헌터옥션사업에 그룹의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수혁 길드장님께서 보유하신 상가를 시작으로 그 지역 전체를 헌터옥션 전문거리로 활성화시킬 생각입니다.”
“건물을 매각해달라 이 얘긴가요?”
“네. 그때에 비해서 시세가 오른 가격만큼 전부 저희 그룹에서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이미 그 주변 상권의 부지매입은 대부분 이뤄졌고, 길드장님 건물만 남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부산시에서도 적극적인 행정으로 지원해 줄 예정입니다. 저희 회장님께서도 최대한 섭섭하지 않게 대우를 꼭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양그룹은 제조, 가전, 의료와 유통 등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기업이었다.
특히 게이트 사태 이후, 헌터협회와 연계된 헌터옥션사업을 추진한 곳도 대양그룹이었다.
헌터들이 가져온 아이템을 옥션에서 사고팔수있게 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킨 공이 컸다.
날짜를 확인하던 수혁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시간을 끌었다.
“안 그래도 그 건물을 허물생각이었는데...”
“허물다뇨? 어떤 사업을 생각하고 계셨던 겁니까?”
예상치 못한 말에 대양그룹에서 나온 정지원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그건 아니지만 차라리 잘 됐군요. 그 주변 전체를 허물고 새로 싹 지을 거란 말이네요.”
“아~ 네. 그렇죠. 좀 더 헌터옥션과 관련된 전문적인 업체를 육성하고 디자인적으로는 외부 관광객을 유입해서...”
“매각하겠습니다. 매각가는 600억에 현물을 좀 받죠. 제가 원하는 아이템들을 구해다준다면 말이죠.”
자신의 탁자에서 준비해놨던 서류를 정지원에게 건넸다.
수혁이 적어놓은 아이템 리스트를 확인하던 정지원이 난감한 듯 볼을 긁적였다.
“혼돈과 융합의 돌, 돌거북이의 등껍질, 뿔고슴도치의 가죽, 광전사의 부츠 등등 이 모든 아이템을 전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돈을 떠나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서요.”
“그래서 얘기하는 겁니다. 구하기 쉬운 거였다면 제가 언급할 필요는 없었겠죠. 원한다면 매각가도 500억으로 깎아드리죠.”
수혁이 모든 일에 만능은 아니었다.
돈이 있다고 전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힘이 세다고 모두를 찍어 누를 수도 없었다.
모든 일에는 절차라는 질서가 필요했고 이것이 곧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이었다.
이걸 무시하는 존재가 바로 빌런인데 수혁은 이제 빌런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전문적으로 아이템을 취급하는 헌터옥션에서 직접 구해준다면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아낀 시간으로 좀 더 경험치를 쌓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철거공사를 진행할 거라면 한 달 뒤부터 시작하길 추천드립니다.”
“...네?”
영문을 모르는 정지원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며 되돌아갔다.
얼마 후 대양그룹에 건물을 매각한 수혁은 헌터옥션에서 아이템이 입고되는 즉시 수령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헌터옥션특성화거리 사업을 담당한 정지원은 수혁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철거를 시작하라는 그룹의 압박을 두루뭉술하게 넘겨가다 한 달이 지난시점부터 공사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조성거리에 작업자들이 펜스를 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발견했다.
“어?! 게이트다.”
“아나... 이제 막 공사하려는데 게이트라니. 젠장.”
“게이트 색깔을 좀 봐!”
작업자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검은색 게이트가 생겨났다.
“검은색?!”
“저거 소문으로만 듣던 슈페리얼 등급 아냐?”
“뭐? 빨리 협회에 연락해!”
대한민국에 최초로 슈페리얼 등급의 게이트가 부산에 생겨나자 언론이 들썩거렸다.
부산에서 손꼽히는 길드인 화이트윙 길드를 비롯한 3개 길드가 연합하기로 결정되며 게이트 공략에 불을 지폈다.
화이트윙 길드의 길드장인 김인수는 70레벨로 자신의 상징과 같은 백금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기자회견에 나왔다.
“저희 화이트윙, 블랙몽키, 청향 3개 길드가 연합하여 최초의 슈페리얼 게이트 공략하겠습니다.”
3개 길드의 연합 5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이 뭉쳐 게이트 앞에 모였다.
슈페리얼 등급이라면 레벨 80이상의 헌터들이 들어가야하는 곳이었지만 이대로 방치한다면 게이트 폭주사태로 몬스터가 밖으로 튀어나올 가능성이 컸다.
70레벨의 김인수를 시작으로 60레벨대의 길드원들이 결의를 다졌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최초의 슈페리얼 게이트 공략이라는 명예와 게이트에서 나올 고급 아이템들에 관한 욕심까지.
부산의 길드원들의 열정을 기자들이 마구 찍어 방송으로 내보냈다.
모두들 희망어린 눈으로 보는 와중에 게이트로 길드원들이 들어갔다.
“게이트 공략 예정시간은?”
“과거 데이터를 보았을 때 최초의 솔져, 베테랑, 챔피언 등급이 각각 3일, 4일, 7일이 걸렸었습니다. 이번에는 더 높은 등급이니 최소한 7일은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면 철거공사를 일주일 뒤부터 시작할까요?”
사무실에서 담당자들의 눈길을 받는 정지원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말한 건 블러드 길드의 길드장이었는데, 뭔가 알고 있는 걸까? 철거... 철거를 뒤로 미루라고 했다... 어째서? 어차피 건물을 철거할 생각이 있었다... 철거할 생각? 왜지? 입점업체들도 이미 다 내보냈고... 건물을 무너트릴 이유가 있어서? 아니면 어차피 무너질 거여서? 어차피 무너져? 무너진다고? 왜 무너지지? 게이트... 게이트가 폭주해서?!’
자신의 의자를 양손으로 턱 치며 일어나자 담당자들이 화들짝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직감을 믿어온 정지원은 확신을 가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철거 공사는 당분간 중지합시다. 대신 공사에 바로 들어갈 자재를 미리 들여오세요.”
“네?! 철거도 없이요?”
“하지만... 본사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공사를 미룬다고 위에서 압박이 장난 아닐텐데요. 본부장님이 걱정되서 하는 말입니다.”
“오히려 철거비를 아낄 수 있으니 됐어요.”
“???”
담당자들이 서로 힐끔거리며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직장인,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라면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으니 곧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전화기가 꺼져있어......
“쓰읍... 게이트 공략중인가.”
정지원은 블러드 길드장인 이수혁과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블러드 길드는 언제나처럼 열정적으로 게이트 공략에 매달리는 중이었다.
자신의 직감으로 지금의 자리에 도달한 정지원은 이번에도 자신의 직감이 맞기를 기도했다.
***
부산의 연합길드가 게이트에 들어간지 2주가 흘렀다.
슬슬 시간이 흐를수록 지켜보던 시민들의 불안감이 조금씩 커져갔다.
- 정 본부장. 시일이 얼마나 급한지 몰라? 지금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야.
“저도 잘 알죠. 그러니까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직 게이트가 없어지지 않았다구요. 이러다가 몬스터라도 튀어나와 사상자라도 생기면 거기서 책임 질 수 있습니까?”
- 게이트를 애초에 왜 공략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요즘 들어서 못 깬 적이 있어? 무려 3개 길드가 연합해서 들어갔다고! 그 전에 새로운 등급의 게이트가 나왔어도 2개 길드 이상 연합한 적도 없었어! 당연히 못 깰 이유가 뭐야?
“저는 확실하지 않으면 실행 못합니다.”
- ...... 지금 회장님 인내심이 곧 떨어질 거야. 잘 생각해.
뚜. 뚜. 뚜.
“빌어먹을 하이에나 놈들. 내가 망하기만 빌고 있으면서 생각해주는 척 하기는.”
정지원 역시 철거공사를 왜 미루냐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해온 그를 질시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았다.
거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직감에 관한 확신이 줄어들고 있었다.
“공사 준비는 다 끝났고 밀기만 하면 되는데...”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던 그때였다.
때려부술 듯이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담당자 한 명이 다급히 소리쳤다.
“본부장님! 게이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
검은 빛이 일렁이는 게이트의 둘레를 작은 돌기들이 삐죽거리며 튀어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게이트관리국 직원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저게 공략되었을 때 생겼던 변화하고는 좀 다른 거 같은데?”
“일단 뒤로 기자들을 물려보자.”
“다들 물러서세요-! 위험하니까 물러나세요!”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이 기자들을 통제하려했지만 그들은 게이트의 변화광경을 찍느라 말을 무시했다.
“조금만 찍고 갈게요!”
“위험하니까 뒤로 가라구요!”
실랑이가 벌어지던 와중에 둥그런 게이트의 중간이 벌어지며 울창한 나무와 무성한 풀이 가득한 지형이 보였다.
신기로운 광경에 모두의 눈이 홀린 와중에 방송국 사람들이 생중계를 위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오히려 게이트관리국 직원들이 다급히 경고를 날렸다.
“게이트 폭주다-! 다들 도망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게이트에서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찢어진 동공에 파충류와 같은 오돌토돌한 녹색 피부, 거대한 도마뱀처럼 생긴 짐승은 포효하더니 등의 날개를 펼쳤다.
쿠오오오오-
“요...용인가?!”
포효를 마친 짐승이 입을 벌리자 초록빛 브레스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전부 녹여버렸다.
실시간으로 방송중계를 하던 기자가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으며 방송이 끝나버렸다.
부산 시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시민들이 대피하며 헌터들을 비상소집하느라 난리가 났다.
대피소로 가는 도중에 철거예정인 건물들이 브레스에 녹아내리는 광경을 보던 정지원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 기업의 피해는?”
“어... 딱히 없습니다.”
“좋아. 사태가 수습되면 곧장 공사를 진행한다.”
정지원은 앞으로 블러드 길드장의 말을 무조건 듣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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