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빌런의 무한 흡수 권능-42화 (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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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결말

자신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김예현과 최근 가장 뜨거운 존재인 블러드 길드의 길드장까지.

왜 저 두 사람이 자신의 수련장으로 찾아왔는지, 청룡 길드의 지원팀장이 다짜고짜 쓰러진 건지.

최지헌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며 답을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정황상 저 두 사람이 박세진을 공격한 것이 확실해보였으니 일단은 청룡길드원으로써 이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었다.

“예현이.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너는 거기서 비켜.”

“블러드 길드장님. 이렇게 다짜고짜 남의 길드원을 공격해도 됩니까?!”

함부로 대하기 껄끄러운 김예현 대신 수혁에게 따지고 들었다.

“정당방위입니다.”

“정당방위라뇨?! 어떤 정당방위길래 이렇게 지독한 독으로 공격합니까!”

“여기 김예현 헌터에 관한 살인청부 및 살인교사, 증거은닉, 협박 등등 죄야 넘쳐나지. 그러니 너야말로 비켜서.”

“뭐...뭐? 내가 당신 말을 믿을 이유가 뭐가 있지? 예현아. 이자의 말이 사실이야?”

“그래. 그러니 비켜.”

성질 급한 김예현이 먼저 검을 꺼내들자 최지헌도 질 수 없다는 듯 검을 꺼내들었다.

김예현이 자신의 친구였다면 박세진은 친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청룡 길드에서 내부적으로 감사를 진행할테니 일단은 물러서시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라고?”

“야! 나 못 믿어?”

“못 믿어! 이 기회에 이 악연을 전부 끝내자!”

오랜 시간 청룡길드에게 고통받아온 김예현의 울분이 마침내 폭발했다.

그녀의 월광검이 빛을 내뿜자 그대로 박세진에게 휘둘렀다.

콰-앙.

그녀의 검기를 막아낸 건 최지헌이었다.

“네가 이렇게 나오면 안 봐준다?”

“네가 나를 봐준다고? 어렸을 때 대련 때마다 이긴 건 나였거든?”

“그땐 초등학교 시절이고!”

“퍽이나.”

김예현이 검과 함께 쇄도해 자신의 앞을 막아선 최지헌을 향해 횡으로 휘둘렀다.

최지헌의 검도 빛을 내뿜으며 그녀의 검을 쳐냈다.

막힌 검이 위로 치솟음과 동시에 수직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검의 옆면을 번개 같은 속도와 함께 맨손바닥으로 최지헌이 떨쳐냈다.

기예와 같은 움직임에 놀란 김예현의 눈이 커졌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니까.”

“치잇.”

부아가 치밀은 김예현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월광검에서 검기가 길게 치솟았다.

치솟은 검기가 머리로 향하자 그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야! 날 죽일 셈이야?”

“죽어버려-! 이 등신 같은 놈아!”

“야이...”

최지헌과 김예현의 검에 탄력이 붙더니 공방이 더욱 치열해졌다.

검기와 검기가 부딪히며 튀어오른 불똥이 사방으로 퍼졌다.

두 눈을 감을 새도 없이 두 사람의 검이 쉬지 않고 엉켰다.

수혁은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며 천천히 박세진에게 다가갔다.

최지헌은 그런 수혁을 말리고 싶었지만 김예현의 사나운 모습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죽일 듯이 달려드는 김예현과 달리 최지헌은 그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블러드 길드장! 멈춰!”

“학교 폭력 캠페인처럼 멈추라고 하면 내가 멈추겠니.”

한껏 최지헌을 비웃은 수혁이 쓰러져있던 박세진의 옆에 도착했다.

독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박세진을 발로 툭툭 건드리자 실눈이 옅게 떠졌다.

“으...윽...”

“일어나. 김예현을 죽이려는 이유가 뭐야?”

“쿨럭... 난... 몰라...”

“대답을 하지 않으면 곧 죽을 거야.”

“감히... 청룡을... 건들고... 무사할...거라... 생각하는...거냐...”

“시간이 흐른다. 째깍째깍. 독기가 이제 심장을 전부 중독시킨 다음 흘러 뇌수를 헤집을 거야.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포션으로도 절대로 멀쩡하지 못해. 살아도 백치가 되겠지. 백치가 된 너를 청룡에서 계속 돌봐줄까? 아니면 버릴까? 네가 생각하는 청룡 길드는 어때? 너와 김예현 헌터가 다른 점은 뭐지?”

“끄으으윽...”

수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세진은 가슴에 북을 두드리는 듯한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청룡 길드장인 최용수의 냉혹한 표정이 떠올랐다.

과연 본인이 죽어도 자신의 가족들을 잘 돌봐줄까?

최용수가 그런 정이 있는 인물이었다면 결코 청룡길드가 국내 1위 길드라는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 거다.

그간 자신이 쌓았던 업보가 전부 떠올랐다.

자신은 고작 최용수의 장기말에 불과했던 걸까?

지금껏 살면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삶이 과연 정답이었나.

‘내가 지금껏 해온 게 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간다고?’

억울함과 원망, 질시,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박세진의 머리를 헤집었다.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 와중에 혼자 배부르고 따스한 곳에 있는 최용수가 갑자기 미워졌다.

‘이렇게 죽기 싫어!’

“그... 그만... 터... 털어놓...을...테니... 살ㄹ..려줘...”

“그래야지.”

무릎을 굽힌 수혁의 입이 누워있는 박세진과 가까워졌다.

그 광경을 힐끗 발견한 최지헌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뭐 하는... 짓이야! 물러서라고!”

“아직 여유를 부린다 이거지?!”

최지헌을 꺾지 못해 안달이 난 김예현은 그 와중에도 수혁을 살피는 여유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결국 모든 마력을 월광검에 담은 그녀였다.

“파破!”

빛나는 검기조각들이 유리처럼 반짝이며 최지헌의 사방을 점령했다.

자신의 주변이 검기조각에 둘러싸여 빠져나갈 곳이 없어진 최지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길.”

마력을 담은 검을 땅에 내리꽂자 둥근 원형의 보호막이 그의 주변을 둘렀다.

검기조각들이 보호막을 장대비처럼 마구 두들겨 흠집을 냈으나 끝내 뚫지는 못했다.

수혁이 무슨 꿍꿍이인지, 마음까지 급한 와중에 이대로 질질 끌어서는 상황을 뒤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굳게 마음먹은 최지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제 안 봐준다.”

그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자 푸른 검기가 눈부시게 커졌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도 오히려 김예현의 마음속에는 투지가 치솟았다.

지지 않고 마력을 더 끌어 모은 그녀의 월광검 역시 일렁이는 검기가 주변의 공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그만해라. 지헌아.”

“세진이 형?! 괜찮아?”

“그래. 그리고 김예현씨 죄송합니다.”

독을 제거하고 몸을 추스린 박세진이 김예현의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제가 빌런들을 시켜 살인의뢰를 했습니다. 그것 외에도 예현씨가 가는 곳마다 훼방을 계속 놓은 것도 청룡길드입니다. 그간 해 온 모든 일들에 대해 사죄하겠습니다. 지금 제 목숨을 이렇게 내놓고 싶지만 제가 했던 모든 죄악을 모두 되돌려보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

검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던 그녀가 원망스러운 눈초리를 보이다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예전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청룡 길드는 그녀의 아버지와 최용수가 주축으로 날개를 피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언제나처럼 게이트 공략에 열을 올렸고, 열정 넘치는 청룡 길드원들은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점이었다면 게이트가 없어지자 나타난 것은 의식을 잃은 그녀의 아버지와 상대적으로 멀쩡한 최용수뿐이었다는 점. 나머지 길드원들은 살아오지 못했다.

거기에 그녀의 아버지가 병실에 누워있었지만 최용수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게이트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그녀도 몰랐다.

일 년이나 의식을 찾지 못했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눈을 뜬 날, 한마디 말만 그녀에게 남겼다.

“...그래선 안 됐어. 용수야... 천벌을 받을 거다...”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최용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최지헌이 다가와 그녀를 위로했을 때에도 딱히 악감정은 없었다.

그녀는 망해가는 길드를 다시 되살리려는 최용수가 바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청룡 길드가 대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새롭게 태어난 후부터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마치 과거의 잔재를 털어버리려는 듯, 그녀의 모습조차도 보기 싫다는 움직임처럼.

그렇게 괴롭힘이 점점 커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숨을 쉬는 것조차도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박세진이 예전부터 최용수의 충실한 수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순순히 자신을 괴롭혀왔다는 점을 인정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막상 이런 일이 닥쳐오니 그녀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굳어졌다.

도저히 혼란스러운 심경을 어찌할 바 모르던 그녀의 눈이 수혁과 마주쳤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든든하면서도 굳건하고 따뜻했다.

자신의 길드장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저 독했던 박세진의 마음이 이렇게 쉽게 돌아섰을까.

지난 세월동안 결코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이 길드장을 거치니 하루도 안 되어서 해결되었다.

수혁이 앞으로도 어떠한 마법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 그녀의 눈길에서 박세진이 천천히 사라져갔다.

마침내 자신의 눈에 오롯이 수혁만 남게 되자 그녀의 월광검이 검집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지헌이 씁쓸한 얼굴로 검을 집어넣었다.

최지헌은 어째서 김예현이 자신을 피하는지, 청룡 길드가 무슨 짓을 해 온 건지 전혀 몰랐던 자신을 자책했다.

거기에 그녀의 반짝이는 눈망울이 수혁에게 꽂혀있는 모습까지 그의 마음을 후벼팠다.

“예현아... 어... 음...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든 바로잡겠어. 우리... 친구 맞지?”

“... 너 하는 거 봐서.”

“...그래.”

수혁과 김예현이 자리를 뜰 때까지 박세진은 무릎 꿇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어색한 공기만 감도는 가운데 박세진이 천천히 일어났다.

“형... 왜 그랬던 거에요.”

“모든 것은 청룡길드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청룡 길드에 내 자리는 없었던 것 같구나. 전부 최용수를 위한 거였지. 난 이제 길드장과 원수사이가 될 예정이다. 넌 날 말릴 생각이냐?”

“...내가 무슨 염치로 형을 말려요.”

“내가 이대로 이곳을 나간다면 청룡 길드는 해체와도 다름없다. 난 그간 해왔던 비리를 폭로할 예정이거든. 검을 뽑을 거라면 지금 뽑아라.”

“......”

최지헌은 오히려 자신의 검을 멀리 던졌다.

그 모습에 박세진이 피식 웃으며 떠나갔다.

“너는 그 마음 잃지 마라.”

모두가 사라지고 전투의 흔적만 남은 수련장에 최지헌이 홀로 서있었다.

한숨을 연거푸 내쉰 그가 바닥에 있던 검을 뽑아 검신에 새겨진 각인을 바라보았다.

[의기충천(意氣衝天)]

청룡길드에 가입한 그에게 길드장이자 삼촌인 최용수가 준 선물이었다.

씁쓸하게 검을 꺼낸 최지헌은 곧 땅에 검을 박고는 사라졌다.

***

[청룡 길드 내부자의 폭로로 인해 헌터협회와 검찰이 합심하여 수사에 나섰습니다.]

[청룡 길드 길드장인 최용수와 내부직원간의 고소로 내홍이 이어지며......]

[국내 10대 길드의 위상이 흔들리는 와중에 소수정예로 손꼽히는 블러드 길드를 10대 길드로 넣어야 한다는 인터넷 상의 의견이......]

박이현의 집 거실에 마린느와 김예현, 수혁이 모여 있었다.

청룡 길드에서 생긴 일로 인해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한 김예현이 잠시 집을 구하는 동안 박이현의 집에 얹혀살기로 했다.

볼이 잔뜩 부푼 박이현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보자 그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딴청 피웠다.

불만서린 박이현에게 다가간 김예현이 눈웃음을 쳤다.

“죄송해요. 언니.”

“어... 언니?”

“네. 언니. 월세도 낼게요. 크게.”

박이현의 시선이 마린느를 향하다가 다시 김예현에게 돌아왔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계산을 마친 그녀가 실실 웃었다.

“흠흠. 내 집처럼 편하게 있어. 참고로 우리 집의 왕언니는 여기 마린느 언니야. 잘 알겠지?”

“네? 네!”

“네가 막내야. 막내.”

“막...네?”

“막내동생. 고기 좋아하나? 잘 굽나?”

수혁의 옆에 붙어있던 마린느가 눈을 빛내며 김예현에게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새로운 고기담당이 들어왔네. 박이현은 잘 못 굽는다.”

“어머? 이 언니가...”

박이현이 눈을 흘겼지만 마린느는 그녀의 시선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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