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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음모
100억이 걸려있는 길드전이었다.
아무리 게이트를 공략하고 헌터로써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번다고 하나 목숨을 걸고 하는 직업이었다.
졌을 때의 손해도 막심하지만 이겼을 때에 얻을 수익은 100억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기에 김세헌은 모든 길드원들이 쓰러졌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의지를 담아 그의 대검 끝부분이 수혁의 갑옷에 닿았다.
아니, 닿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먹물처럼 흘러내린 수혁의 신형을 지나친 대검이 목표물을 잃고 허공을 찢었다.
반격을 대비한 그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대검을 크게 횡으로 휘둘렀으나 수혁은 저 멀리에서 그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언제 수혁이 저곳으로 이동했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오직 수혁만 바라본 그는 좁아진 시야로 인해 자신의 다리로 날아오는 화살도 발견하지 못했다.
푹. 푹. 푹.
“크윽.”
연달아 다리에 꽂히는 화살에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이를 꽉 깨물고는 대검을 위로 쳐들었다.
비룡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터프한 그는 다리에서 올라오는 통증도 무시했다.
모든 마력을 모아 오직 마지막 한 방을 노렸다.
그의 사나운 기세에 수혁이 굳었는지 가만히 있자 더더욱 놓칠 수 없었다.
‘한 대만! 한 대만 맞아라!’
마침내 높게 쳐들은 대검이 수혁의 머리로 떨어지기 직전 누군가 앞으로 끼어들었다.
콰-앙.
“빌어먹을. 네놈이 또!”
“내가 뭐? 어차피 네 실력으로는 길드장님 못 건드려.”
“건방진 새끼. 이수혁 길드장은 좋겠네~ 이런 충실한 부하도 있고~”
김세헌의 대검을 막은 건 홍영기의 방패였다.
어느새 수혁의 앞에 끼어들은 그의 방패는 지금껏 길드전을 하면서 한 번도 뚫지 못한 난공불락의 철옹성과 같았다.
마지막 일격이 홍영기에게 막히자 질투심이 폭발한 김세헌이 막말을 쏘아붙였으나 수혁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이어서 날아온 작은 불덩이가 김세헌의 어깨를 강타하자 다리에 화살이 박혀있던 그는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쾅.
“크헉.”
볼썽사납게 쓰러진 그의 주위로 블러드 길드원들이 모여들었다.
자신을 포위한 상황에 김세헌의 뻣뻣한 고개가 마침내 떨구어졌다.
수혁이 다가가자 길드원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비룡 길드장님?”
“...?”
한쪽 무릎을 꿇어 김세헌과 눈높이를 맞춘 수혁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100억입니다.”
수혁의 말을 들은 김세헌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헌터협회장께 길드전이 끝났다고 얘기할테니 비룡길드원들에게 회복포션 제공해.”
““네!””
“이수혁 길드장-!”
결계의 출입구로 향하려는 수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두 눈을 부릅뜬 김세헌이 할 말이 있는지 입가가 우물쭈물거렸다.
말을 하라는 듯 수혁의 양 눈썹이 위로 올라가자 김세헌이 입을 벌렸다.
“저기... 그...”
“?”
“......할부 됩니까?”
[충격적인 결과!]
[수많은 도박사들이 눈물로 앞을 가림!]
[모두의 예상을 깬 블러드 길드의 약진!]
[국내 최강! 최고레벨 홍영기의 존재감!]
.
.
.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오는 길드원들의 모습이 기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멀쩡한 블러드 길드와 달리 절뚝거리며 온통 붕대를 감은 비룡길드원들의 모습에 기자들의 셔터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비공개 내용의 길드전이었으나 승패가 너무나 명확한 모습에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
결과를 대충 예상한 김상중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과 달리 결계술사였던 박철진은 매우 흥미로운 눈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고맙다. 다들 목숨에 지장은 없다고 들었다.”
“다들 국내의 소중한 헌터들이니까요. 한 가지 좀 요청하고 싶은 건 당분간 길드전 요청은 좀 막아주시겠어요?”
그간 블러드 길드에 쌓였던 길드들의 불만은 실력발휘로 증명했으니 이제는 내실을 다시 키울 시간이었다.
수혁의 말을 들은 김상중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길드전은 1년에 1회로 규정을 명문화할 생각이다. 최대한 까다로운 요청사항으로 쉽게 치루지 못하도록 말이지. 안 그러면 일일이 박철진 헌터님이 이렇게 나서야할텐데 얼마나 힘들겠니.”
“저야 덕분에 좋은 구경하는데요. 뭐~ 길드전이 너무 많다면 저도 귀찮긴 하겠네요. 아예 전용 경기장을 만드는 게 아닌 이상은 말이죠.”
“그래서 아예 전용 경기장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 동안은 길드전은 치루지 못하겠죠. 후후후. 몇 년이 걸리려나~”
“협회장님 마음대로 하시구요. 저는 빌런이나 잡으러 갑니다~”
수혁을 계속 위아래로 훑어보던 박철진이 자리를 떴다.
왠지 초연한 그의 뒷모습에 수혁 역시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았다.
“박 헌터님도 열심히 살고 있지.”
“누구보다 빌런 잡는데 앞장 서시더군요. 열정은 국내 최고인 것 같아요.”
“게이트에서 여러 가지 일도 겪고 가족들도 그렇고... 안타까운 사람이지. 그나저나 이제 좀 쉬어야겠지?”
“쉬어야죠. 비룡길드에서 선금으로 받은 50억으로 길드원들과 아이템을 보강하고, 3일 뒤에 게이트 깨러 가야하니까.”
수혁의 말에 김상중이 혀를 내둘렀다.
“너의 열정은 세계 최고인 것 같다.”
그의 말에 수혁은 입가의 옅은 미소만 비춰주었다.
***
청룡 길드의 최용수는 TV에서 흘러나오는 길드전에 관한 보도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소수정예인 블러드길드에서 단연코 에이스로 뽑는 다면 그것은 바로 최고레벨의 홍영기 헌터일 것입니다. 소문에는 그가 혼자서 10명을 격파했다는 말과 함께......]
우우-웅. 우우-웅.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폰에 걸려온 전화를 받은 최용수의 표정이 찡그려졌으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화였다.
“그래.”
- 이번에 포섭한 중국의 룽하이와 러시아의 올레스키 패밀리가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각각 챔피언 등급의 빌런입니다. 선수금 50을 주었고 마무리가 확실하게 되면 나머지 50을 주기로 했습니다.
“확실하다면 말이지. 뒤처리는 확실히 해.”
- ...쓸모가 다한 사냥개들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는 충분할 겁니다.
“이번에는 실망을 시키지 말도록. 나도 인내심이 바닥나니까.”
- 네.
전화를 끊은 최용수는 다시 TV보도에 집중했다.
이제는 그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
“마셔라! 마셔라!”
“와아아아-!”
성공적인 길드전으로 인해 블러드 길드의 모두가 고깃집에서 만찬을 즐겼다.
맥주잔에 소주를 잔뜩 부어 입으로 때려 넣는 홍영기의 개인기에 새로 합류한 길드원인 김예현과 이명한이 박수를 쳤다.
“나도, 나도, 나도 줘라. 인간. 인간. 나도, 나도.”
고장 난 로봇처럼 자기 말만 반복하는 마린느가 붉어진 얼굴로 술잔을 내밀었다.
그녀의 잔에 홍영기가 술을 따르자마자 입으로 곧장 들어갔다.
“더?”
“더! 더! 더!”
“와아- 마린느 완전 한국 사람이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달까.
마린느가 자신의 주량을 뽐내며 홍영기와 술대결 양상으로 갈 시점에 수혁이 잠시 밖으로 나왔다.
그가 식당 주변의 벤치에 앉아있자 가슴팍에 I LOVE KOREA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금발의 미녀가 옆에 슬쩍 앉았다.
그녀가 자신의 가방에서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수혁에게 건넸다.
수혁이 봉투의 내부를 살펴보자 서류와 사진 몇 개가 들어있었다.
“이건 뭐지? 선데이.”
그녀는 수혁이 권속으로 삼은 미정보국의 요원이었던 선데이였다.
그녀 역시 수혁의 물밑 도움으로 아시아 지부장으로 임명이 된 상태였다.
그녀와 함께 권속이 된 먼데이는 미 본토의 중요한 위치에서 수혁이 필요한 정보를 물어다주고 있었다.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던 빌런이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온갖 흉터가 얼굴에 새겨진 러시아인과 뱀처럼 찢어진 눈매에 입술이 얄팍한 중국인이 사진 속에 선명하게 담겨있었다.
그녀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빌런에 관해 수혁에게 항상 보고했다.
그리고 그런 빌런들은 수혁의 먹잇감이 되어주었다.
서류를 살펴보던 수혁은 익숙한 글자가 보이자 손가락으로 짚어 선데이에게 보여주었다.
“청룡 길드?”
“네. 그들의 입국을 위해 가짜신분을 만들어 준 것은 청룡 길드입니다.”
“청룡 길드가 도대체 왜?”
“그건 죄송합니다. 의뢰를 받고 온 건 확실한데 누구를 노리는 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10대 길드 중 최강으로 뽑히는 청룡 길드라도 미국의 정보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수혁으로써는 청룡 길드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선데이에게 답을 구했으나 그녀 역시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청룡 길드... 청룡 길드에는 검성(劍城)이 있는데...?”
전생에서 누구보다 악을 미워하고 정의를 외쳤던 검성(劍城) 최지헌.
비록 지금은 그 칭호를 얻지 못했으나 청룡 길드에서 손꼽히는 에이스 중 하나였다.
그가 속한 길드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억은 전생에서도 찾지 못했다.
어떤 사연으로 인해 이런 짓을 꾸미는지 궁금증이 돋은 동시에 수혁으로써는 빌런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잘했다. 선데이.”
“네. 마스터.”
흔한 외국인 관광객 같던 선데이가 돌아가자 수혁은 여전히 시끄러운 고깃집을 들여다보았다.
흥이 달아오른 길드원들을 보아하니 술자리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 헌터들이 무사히 탑을 통과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것 역시 수혁이 해야 할 일이었다.
빌런을 처단하고 헌터들의 성장을 도모한다.
안 그래도 요새 한국에 먹잇감이 부족했는데 마침 해외에서 찾아와주었으니 그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고기와 술을 잔뜩 먹어 배가 찼음에도 입맛이 돋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혀를 할짝인 수혁이 사진 속의 인물을 들여다보며 기억을 확실히 새겼다.
좋은 경험치원이야.
가게로 들어간 수혁이 아무렇지 않게 술잔을 들고 길드원들과 부딪쳤다.
“길드장님. 건배!”
“건배!”
부우우웅. 끼익.
야심한 밤. 온통 흑색으로 칠해진 승합차가 인기척이 드문 시골의 집에 멈추었다.
새하얀 벽의 2층 집 주변을 감싼 담장에는 cctv와 함께 양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승합차의 문이 열리자 찌뿌둥한 듯 팔을 쭉 피고 몸통을 돌리는 러시아인 4명이 지루한 듯 연달아 하품을 했다.
집에서 나온 양복 입은 한 사내가 그들을 맞이하며 손에 있던 담배를 건넸다.
각진 짧은 머리에 코가 붉은 사내가 담배를 받아 뒤에 있던 사내에게 넘겼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스파시바~”
“됐어. 나 한국말 할 줄 알아. 어학당 출신이야.”
“하.하.하. 대단하시군요. 한 대씩 피고 집으로 들어오시죠. 올레스키씨.”
“담배는 됐고, 보드카와 여자를 데려와. 내 동생들 많이 힘들어 해.”
양복 입은 사내가 자신있다는 듯 씨익 웃었다.
“모든 게 준비되어 있으니 들어가시죠.”
“호오~ 좋아. 한국 내 2의 고향이야. 알지?”
올레스키가 미소 짓자 자잘한 얼굴의 흉터가 더욱 일그러졌다.
올레스키 패밀리와 양복 입은 사내가 집으로 들어가자 거실에는 이미 한 뱀눈의 사내가 상의를 벗고는 소파에 누워있었다.
상체에 그려진 온갖 문신들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저건 누구?”
“아~ 미리 말씀 못 드렸지만 같이 일할 파트너입니다.”
“우리 패밀리에 저런 녀석은 필요 없어. 일에 지장만 줄 뿐이야.”
올레스키가 불만어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리자 누워있던 룽하이가 일어났다.
“어디서 굴러먹다온 개뼉다귀 같은 놈들이지?”
“하.하.하. 다들 진정하시고, 아직 의뢰내용도 모르는데 이럴 필요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직접 해결하는 사람에게 전부 몰아주는 건 어때? 쫄리면 여기서 썩 꺼지라고.”
룽하이가 손가락질하자 팔에 새겨진 용문신이 꿈틀거렸다.
“우리도 상관없지. 그런데 저 놈이 지금 없어지면 나머지는 우리가 먹는 거 아닌가?”
올레스키가 질 수 없다는 듯 맞받아치자 그의 동생들이 뒤에서 일제히 무기를 꺼내들었다.
질 수 없다는 듯이 룽하이가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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