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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 vs 블러드
두두두두두두.
월드컵 경기장 위에 대한민국 국영방송사인 KBC의 헬리콥터가 공중을 떠다녔다.
경기장 주변에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대한민국 최초의 길드전을 촬영하기 위해 각종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경기장의 기자들을 막고자 협회에서 준비한 직원들이 사전에 경기장 주변을 모두 둘러 통제했다.
조그만 틈을 찾아 기자들이 침입을 시도했지만 전원 각성자인 협회직원들을 뚫을 수는 없었다.
실랑이가 반복되는 경기장 바깥과 달리 내부의 비룡길드 대기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긴장감과 초조함, 흥분감 등 복잡한 마음이 가득한 길드원들이 처음 겪는 일에 수심이 가득했다.
비록 비공개이긴 하지만 이렇게 언론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상철이 형. 우리 이길 수 있지?”
“야이... 우리가 20명이야. 지금 6명한테 못 이기면 쪽팔려서 얼굴 들고 다닐 수 있겠어? 다들 정신 안 차려!”
“그런데 홍영기가 그렇게 세다던데...”
“다구리에 장사 없는 거 몰라? 우리는 연습한 대로만 하면 돼! 다들 어깨 펴! 우리 비룡길드가 10대 길드로 들어갈 절호의 기회라고!”
길드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비룡길드의 부길드장인 이상철이 길드원들을 부지런히 독려했다.
“얌마-! 블러드 길드는 회복포션까지 준비해서 죽을 각오까지 하는데 그런 약한 소리 할 거야? 여기에 걸린 돈이 얼만 줄 알아? 100억이야 100억! 너희들 돈방석에 앉기 싫어? 쪽팔리게 하지 말자. 얘들아. 알았어?”
길드원들의 얘기를 듣다가 결국 화가 폭발한 길드장 김세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매서운 눈길에 마주칠까 길드원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블러드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
수혁은 며칠 뒤 깨야할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찾고자 폰을 뒤지는 중이였고, 홍영기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중이었다.
“끝나고 고기 먹자. 회식해야지.”
“고기밖에 모르네. 이 바보자식.”
“이현이 너는 저번부터 날 무시하더라!”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마린느는 수혁의 곁에 조신하게 앉았다.
김예현은 얌전히 자신의 검을 헝겊으로 닦는 행동에만 집중했다.
오직 이명한만이 긴장감 없는 이 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땀을 삐질삐질 흘려댔다.
사전에 즉각적으로 마법을 발사하기 위해 주문을 메모라이즈하려 했으나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하.하. 다들 긴장이 안 되나요. 나만 그런가.”
“? 인간. 땀은 그만 흘리고 좀 누워라.”
“아이고. 절 걱정해주는 건 마린느뿐입니다.”
“걱정이라니. 방해가 될까봐 그런 거다. 인간. 걸리적거리지 마라.”
“...”
잃었던 집중력을 되찾은 이명한이 자리에 앉아 주문을 작게 외우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대기실로 찾아온 협회 직원의 안내에 따라 길드원들이 월드컵경기장 중앙으로 이동했다.
반대쪽에서는 비룡길드가 천천히 열을 맞추고는 입장했다.
경기장 중앙에는 협회장인 김상중과 검은 캡모자를 쓰고 껌을 불량하게 씹고 있는 젊은 남성이 그들을 맞이했다.
“박철진?”
“결계술사?”
박철진은 자신의 스킬인 결계화로 유명한 빌런헌터였다.
특히 그의 결계는 상대방의 공격을 받으면 더욱 더 단단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명성이 높았다.
정확한 사정은 몰랐지만 그는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 빌런들을 마구 잡아가뒀다.
“오늘 이 경기장이 부셔질 수도 있으니 박철진 헌터님께서 임시경기장을 만들어 줄 겁니다. 박 헌터님? 최대한 튼튼한 녀석으로 부탁합니다.”
“쓰읍... 나도 이렇게 해보는 건 처음인데 최대한 힘씁니다. 결계가 생기면 밖에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프라이버시 존중하니까. 오케이?”
사전에 건네받은 마력강화 아이템을 3개나 손에 쥔 박철진이 곧 자신의 스킬을 발동했다.
액수로만 따져도 억은 가볍게 넘어가는 아이템을 깨트리며 스킬을 쓰자 월드컵 경기장 내부에 거대한 마력의 돔이 생겨났다.
푸르스름하게 일렁거리는 마력의 결계 내부에 갇힌 비룡 길드와 블러드 길드를 두고 김상중과 박철진이 밖으로 이동했다.
“내가 나가면 시작하세요.”
김상중의 몸이 결계 밖을 통과했다.
경기장 끝과 끝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 길드가 무기를 손에 쥐었다.
눈치만 보는 와중에 김세헌이 크게 웃음소리를 내며 기선제압을 하려했다.
“하하하하. 이제는 도망가고 싶어도 못 가요. 수혁씨.”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이야~ 우리 이수혁 길드장 말뽄새 보소. 무서워서 방광이 오들오들 떨리네. 얘들아! 쳐라!”
“와아아아-!”
비룡길드원들이 자신의 무기를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사전에 지시한 대로 홍영기를 상대할 김세헌과 9명의 비룡길드원들이 방패와 검을 앞세웠다.
“홍영기 맡는 동안 전부 해치워!”
후방에 있던 궁수와 마법사가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 박이현이 날린 화살이 그들의 팔에 꽂혔다.
“으아악!”
“젠장. 박이현부터 좀 잡아!”
혼자인 박이현을 상대로 세 명의 궁수가 합심해서 활을 쏘아댔다.
그녀의 분열화살을 피해 궁수들이 발을 이리저리 놀리며 그녀와 활 대결을 펼쳤다.
두 명의 마법사가 그녀를 노리려고 각각 얼음창과 불덩이를 쏘았을 때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오는 마법을 맞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이명한이 쉬지 않고 주문을 외치자 허공에 생긴 불덩이 여러 개가 비룡 길드의 마법사들에게 날아갔다.
“이수혁은 진혁아 네가 맡아라! 나는 다른 곳을 도와야겠어.”
“넵.”
이상철은 자신이 원래 맡기로 한 블러드 길드의 길드장인 수혁을 다른 길드원에게 맡기고는 이명한을 먼저 노리기로 했다.
그의 앞을 김예현과 마린느가 가로막았다.
“내가 김예현을 맡을 테니 나머지는 너희들이 잡고 나한테 합류해!”
“네!”
자신을 따르는 길드원에게 명령한 후, 풀쩍 뛰어 날아오른 이상철이 자신의 애병인 언월도를 김예현에게 있는 힘껏 휘둘렀다.
날카로운 기세를 피해 뒤로 물러난 김예현에게 이상철이 바짝 붙었다.
채채채채챙.
처음의 기세와 달리 이상철의 호흡이 점점 흐트러졌다.
‘제길. 빈틈이 없잖아.’
안정적인 김예현의 검술에 언월도를 몬스터를 상대하듯 힘으로 휘두르는 이상철의 발이 꼬이며 휘청거렸다.
그녀는 그의 도를 직접 맞부딪치는 대신 슬쩍 옆으로 힘을 흘리며 균형을 깨트렸다.
사람을 상대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상철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다른 길드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왜 이렇게 안 와.’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에게 다가온 것은 길드원들이 아닌 피가 묻은 모닝스타를 든 마린느였다.
“빨리 끝내라. 인간.”
“아. 네.”
마린느의 말에 김예현의 발놀림이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이상철을 지나쳤다.
“어?!”
이상철이 착용한 갑옷의 연결부위 중 빈틈이 보이는 어깨와 무릎 등에서 피가 솟구쳤다.
팔, 다리에 힘이 빠지며 땅으로 쓰러진 그가 고개를 돌리자 이미 피를 흘린 채 땅에 누운 길드원들이 보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신의 얼굴 가까이 다가온 마린느의 발이 멈추었다.
이윽고 그녀가 모닝스타를 내려쳤다.
퍽.
“죽이면 안 돼요!”
“걱정 마. 살짝 쳤다.”
혹시 그녀가 죽일까봐 김예현이 급히 소리 지르자 마린느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녀들이 적을 쓰러트린 후 고개를 돌리고는 갸웃거리다 홍영기를 돕기로 정하고는 발을 옮겼다.
그녀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직도 적을 상대하고 있는 수혁이 있었다.
“헉. 헉. 헉. 헉.”
“좀 더 때려봐.”
“이런 미친...”
이상철의 명령에 따라 수혁을 상대하기로 한 진혁은 당혹감에 빠져있었다.
자신의 검이 분명 수혁의 몸에 맞췄지만 갑옷을 부실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검을 잡은 손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거기에 더 열 받는 것은 수혁이 계속해서 자신을 도발한다는 점이었다.
“지쳤나? 더 못하겠어?”
“지랄!”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지만 수혁의 갑옷과 부딪치며 묘한 공명음이 일어나며 검을 잡은 손이 떨렸다.
결국 떨리는 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놓치자 땅으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진혁의 무릎도 꺾였다.
“헉... 헉... 시바.”
“흠... 아직은 효율이 생각보다 안 좋군. 좀 더 강화해야겠어.”
“뭐... 뭔 소리... 하는... 거야...”
돌기가 솟은 자신의 갑옷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수혁이 지쳐서 무릎을 꿇은 진혁의 앞에 섰다.
진혁이 고개를 올리자 자신을 바라보는 무심한 눈길이 보였다.
“시발... 너 50레벨... 아니지?”
“맞는데.”
“아니잖아-!”
퍽.
“시끄럽게 소리 지르긴. 확 피를 빨아 버릴라.”
이번에 새로 얻은 갑옷의 성능을 시험해봤지만 아직은 썩 맘에 드는 성능을 보여주지 못했다.
너무 강한 일격은 갑옷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에 공격을 흘리며 맞아주었더니 더더욱 그러했다.
“강화가 필요해. 강화가.”
강화에 필요한 건 아이템이었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건 공략 아니면 돈이었다.
“돈이 더 필요해졌어. 돈. 돈. 돈.”
혼자 중얼거리던 수혁이 아직 전투 중인 길드원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없이도 무난하게 버티는 홍영기와 혼자서도 더 많은 숫자의 궁수를 압도하는 박이현, 이명한의 압도적인 화력에 김예현과 마린느의 실력까지.
예상보다 더욱 강한 블러드 길드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내 새끼들. 좋다.”
콰-앙. 콰과광.
김세헌은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폭발음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비룡 길드의 마법사들이 이명한이 날린 마법에 당해 모두들 땅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거기에 그를 지원할 궁수들마저 온 몸에 고슴도치처럼 활이 꽂히고는 숨만 헐떡이는 중이었다.
예술처럼 심장을 제외한 모든 부위에 화살이 박혀있었다.
“시이발...”
부-웅.
악다운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지만 방심할 시간이 없었다.
부스터를 쓴 홍영기가 자신의 망치를 마구 휘두르는 중이었으니까.
“하하하하하. 간지럽다. 간지러워!”
어린애들 취급하듯 웃음을 잃지 않은 홍영기의 모습에 상대하는 비룡길드원들의 사기가 크게 꺾이고 있었다.
그들의 검과 망치가 홍영기의 갑옷을 뚫지 못했고, 길드장인 김세헌의 대검마저 홍영기의 방패를 자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홍영기에게 덤벼들기 위해 마력을 있는 힘껏 모으고 있는 김세헌이 흠칫하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콰-앙.
그가 서있던 자리에 모닝스타 하나가 박히며 땅이 움푹 파였다.
“시파- 뭐야?!”
“감이 좋군. 인간.”
금발의 여자가 모닝스타를 어깨에 다시 걸쳤다.
김세헌이 그녀를 바라보자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에 소름이 끼쳤다.
“우리 길드원들은?”
“땅에 누웠다. 너도 누울 차례다. 인간.”
그녀의 말에 김세헌이 멀리 바라보자 진작에 쓰러진 길드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욕이 저절로 세어 나오기도 전에 마린느의 공격이 먼저 들어왔다.
“이크.”
“얌전히 머리에 맞고 누워라-! 인간!”
“미친년이네!”
그가 기겁하며 마린느의 공격을 피하는 사이 다른 길드원들은 뒤에서 달려든 김예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팔 다리를 찌르는 그녀의 검에 당한 비룡길드원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조금 더 운신이 자유로워진 홍영기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망치를 휘둘렀다.
“하하하하! 나이스 어시스트-!”
“으아아아-!”
그의 망치에 얻어맞은 비룡 길드원 하나가 저 멀리 공중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다 착지하기 위해 균형을 잡기도 전에 날아온 화살에 다리가 꿰뚫린 길드원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자신의 길드원들이 쓰러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던 김세헌은 얼마 안 지나서 혼자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젠장-!”
“너의 골통을 내놓아라-! 인간!”
위협적인 마린느의 모닝스타를 피해 도망가던 김세헌은 자신의 앞에 서 있던 수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단체전이긴해도 결국 우두머리는 저 수혁이다.
머리를 잡는다면 역전을 못할 것도 없다.
마침 자신을 노리던 마린느가 멈추자 그대로 수혁에게 대검을 찔렀다.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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