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빌런의 무한 흡수 권능-36화 (36/63)

────────────────────────────────────

합류

수혁이 황급히 김예현에게 다가가 얼굴의 상처를 엄지로 훑었다.

“괜찮아요?!”

“...네. 저 자식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분노로 가득 찬 김예현은 수혁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는 사실도 잊은 채 등에 차고있던 방패를 꺼내들었다.

더욱 거센 검기를 내뿜은 그녀가 뱀파이어를 향해 땅을 박찼다.

김예현의 검과 뱀파이어의 손톱이 얽히며 불똥을 튀었고, 날개와 방패가 부딪치며 파공음을 만들어냈다.

수혁은 둘의 싸움을 지켜보다 엄지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짜잖아. 저 새끼가 구라를 쳐?”

미로 속에 갇혀있었더니 애가 입맛이 변했나.

아니면 노스페라투의 권능을 가진 사람만이 혈액으로 상대방의 성향을 알 수 있는 것일 수도?

애초에 뱀파이어들의 비술을 모아 탄생시킨 노스페라투다.

본인이 더 우월한 능력을 지닌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콰-앙.

큰소리와 함께 김예현이 뒤로 튕겨졌다.

들고 있던 방패 중간에 실금이 생기더니 쩌저적하며 갈라졌다.

거추장스러운 부서진 방패를 멀리 던져버린 그녀가 양손으로 검을 잡으며 호흡을 골랐다.

“후-으읍.”

그녀의 눈에 깃든 의지가 아직 살아있었다.

반대로 뱀파이어의 두 날개는 찢기듯 구멍이 숭숭 나있었으며 찌푸린 얼굴로 투덜거렸다.

“인간치고 제법 무기를 잘 다루는구나. 하마터면 내 날개가 잘릴 뻔 했어.”

“날개에 네 머리통까지 잘라주마!”

김예현이 월광검을 둥글게 휘두르자 원형의 빛이 생겨나며 원반처럼 그녀의 주위를 떠돌았다.

“절(絶)!”

빛의 속도로 쏘아진 원반이 안 그래도 너덜했던 날개를 찢어발기곤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파(破)!”

그녀의 말에 원반이 수십 조각으로 깨지더니 하나 남은 날개를 덮쳤다.

“크아-악!”

종잇장처럼 찢긴 날개에 뱀파이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김예현 또한 극심한 마력소모로 인해 검을 간신히 붙잡는 중이었다.

다만 굳건한 그녀의 의지와 단련된 육체는 검을 놓지 않았다.

숨을 고른 그녀가 검을 수직으로 세우고는 뱀파이어에게 달려갔다.

“크윽... 내 날개를. 건방진 년같으니, 내가 배만 안 고팠어도 한입꺼리에 불과할...”

“혀도 잘라주마-!”

챙. 채채채챙.

또다시 월광검과 손톱이 격렬하게 서로 맞부딪쳤다.

김예현이 쉼 없이 검을 휘둘렀으나 마력이 없는 검으로 뱀파이어의 손톱을 자를 수는 없었다.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이 드러났다.

상대방의 열세를 확인한 뱀파이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하. 너의 피를 빨고 야들야들한 배를 갈라 내장을 씹어주마.”

쐐-액.

강인한 뱀파이어의 육체에서 뻗어나온 손이 김예현의 얼굴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그토록 기다렸던 노림수였다.

그녀의 눈빛이 바뀌더니 검으로 맞부딪치는 대신 빙그르르 몸을 돌리며 검과 함께 뱀파이어를 스쳐지나갔다.

붉은 실선이 지나가자 뱀파이어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하아. 하아. 이겼다.”

“아직 뒤에!”

거친 숨을 내쉬던 그녀가 겨우 안도할 때 수혁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검을 뒤로 베려했으나 뱀파이어의 손톱이 더 빨랐다.

푸욱.

“꺄아악.”

목이 잘린 뱀파이어가 길게 뻗은 손톱으로 그녀의 팔과 옆구리를 꿰뚫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튼 그녀는 다행히 치명상을 피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쓰러진 그녀에게 수혁이 다가가 포션을 건넸다.

그녀의 상태를 보고 있던 수혁이 앞으로 나섰다.

“고생했어요. 잠시 쉬고 있어요. 제가 마무리하죠.”

“헉. 헉....죄송요. 부탁해요.”

검을 땅에 박아 넣은 김예현이 한쪽 무릎을 꿇고 휴식을 취했다.

그 틈에 잘린 목을 주워 몸에 다시 붙인 뱀파이어가 입을 열었다.

“아- 아아- 젠장. 신선한 피도 부족한데, 그래도 건방진 년은 끝났군. 내 손톱엔 독이 있으니 당분간은 편히 누워 있거라.”

그의 말처럼 피 흘리는 김예현의 표정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수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걱정마라 수컷. 그저 몸을 마비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난 살아있는 채로 피를 빠는 게 좋거든. 공포에 지린 눈동자를 보는 게 제법 흥분된단 말이야.”

“그래? 나도 오늘은 산채로 너의 눈동자를 지켜봐야겠는걸?”

“안됐지만 나는 수컷은 살려두는 취미는 없단다. 하지만 내 질문에 답해주면 특별히 목숨은 붙여주마.”

“질문?”

예상 외의 말에 수혁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김예현의 급한 상처는 포션으로 치료했고, 마비독이 목숨을 헤치지는 않으니 여유는 충분했다.

“네가 착용하고 있는 그 망토를 어디서 구했느냐? 내가 그걸 찾기 위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떠돌았는지...”

“이건 미믹에게서 얻었다.”

“...미믹? 맙소사... 그놈은 반짝이는 물건들만 먹어치운다고 생각했거늘, 내가 어리석었도다.”

뱀파이어가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자책했다.

“그 망토를 이리 내거라. 그리고 너는 한쪽 팔을 자르고 이곳을 나가거라. 그렇다면 카르슈타인 가문의 일족인 내 명예를 걸고 넌 살려주겠다.”

“나도 질문 하나만 하자.”

“질문? 내가 답을 한다면 너를 살려준다는 약속은 없어질 것이다.”

“그건 관심 없어.”

“나의 배려를 무시하다니.”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뱀파이어였으나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 정도면 뱀파이어에서 서열이 어느 정도지?”

“으음? 특이한 걸 묻는구나. 좋다. 내 위에는 가주님뿐이다.”

“역시... 뱀파이어가 웨어울프에게 진 이유가 있었구나. 너무 약하잖아?”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네 머리통에 피가 안통하나 보구나?”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토하던 뱀파이어가 크게 입을 벌리며 고함을 질렀다.

“네놈의 두개골을 갈라 스프를 끓이겠다!”

거칠게 뛰어온 뱀파이어가 수혁을 향해 손톱을 쭉 뻗었다.

그에 맞서 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예기에 손톱의 대부분이 잘려나갔다.

화들짝 놀란 뱀파이어가 급히 손을 회수해 뒤로 물러나려했지만 수혁이 놔주지 않았다.

그대로 쫓아가 검을 위에서 내리찍었다.

뱀파이어가 검을 막기 위해 자신의 양손을 교차하며 들었으나 수혁의 검이 그대로 지나가자 양팔꿈치가 전부 잘려나갔다.

“끄아아-악!”

“진짜로 너무 약하잖아. 다른 걸 묻지. 노스페라투는 어째서 외신에게 졌지?”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일그러졌던 얼굴이 양팔의 통증마저 잊어버린 듯 멍하게 입을 벌렸다.

뱀파이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간 후 손으로 입을 벌려 어금니를 보여주었다.

“너... 너는? 대체?!”

연달아 망토 끝자락을 앞으로 가져와 툭툭 쳤다.

“이건 내꺼야.”

“?! 설마... 노스페라투님!!”

뱀파이어가 알아서 생각할 수 있도록 더 이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자 다짜고짜 수혁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오오오. 저와 함께 이곳을 어서 나가시죠. 가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곳을 어떻게 나가지?”

“제가 반지를 가져왔습니다. 잘린 제 손에 보시면 붉은 보석이 박혀있을 겁니다.”

바닥에 있던 뱀파이어의 잘린 손에서 반지 하나를 발견했다.

[아이나블의 손가락 : 신체 +5, 반지를 부술 시에 미리 지정된 공간으로 포탈을 생성한다.(1회용)]

“이걸 쓰면 가주에게 갈 수 있는 건가? 가주는 혼자 있나?”

“다들 뱀파이어의 부흥을 위해 흩어진 터라 가주께서는 혼자 계십니다.”

“가주는 얼마나 강하지? 지금의 나와 비교를 한다면?”

“으음... 아직은 노스페라투님께서 상대가 안 될 겁니다. 애초에 비술로써 노스페라투님을 만들어내신 장본인이시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건 왜 기억을 못하시는 겁니까? 아! 혹시 봉인의 부작용인가?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가주님께 가신다면 힘과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안배를 마련해놓았으니 저와 함께 가면 됩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센 모양이다.

나중에 레벨 더 올리고 잡으러 가야겠다.

“내 질문에 대답을 안했어.”“질문? 아... 외신에게 어떻게 졌는지에 대해서라면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저 외신과의 싸움에 가주님과 노스페라투님이 힘을 합쳤지만 외신에게 졌다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없습니다. 노스페라투님은 봉인당하시고 가주님은 저희에게 훗날을 기약하자고 말했습니다. 저... 이제 제 팔 좀 붙여도 되겠습니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팔? 안 돼. 목이나 이리 내.”

“아! 노스페라투님의 피의 갈증을 제가 생각 못했군요. 뱀파이어의 영광을 위하여~”

순순히 자신의 목덜미를 내어주며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수혁이 그의 목을 물기 직전 입을 열었다.

“야.”

“네?”

“난 노스페라투가 아니야. 이수혁이지. 넌 속았어.”

“그게 무슨... 억!”

콰직.

원통한 눈빛으로 수혁을 바라보려했지만 곧 미라처럼 말라버렸다.

수혁은 비쩍 말라버린 뱀파이어를 바닥에 내던졌다.

[상처 재생력이 증가합니다.]

“내가 산채로 눈동자를 지켜본다고 했잖아. 제법 경험치가 쏠쏠하군.”

적지 않은 경험치와 정보를 얻은 수혁이 쓰러져있던 김예현에게 다가갔다.

상처는 포션에 의해 회복되었으나 독이 풀리지 않아 정신을 못 차리던 김예현이 꿈틀대고 있었다.

조금씩 마비가 풀리는지 몸이 움찔거리던 그녀의 입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세어나왔다.

“길...드...장..님...”

“괜찮아요?”

“모오옴... 좀... 뒤...집...어...주...세...요...오...”

엎드려있던 그녀의 몸을 뒤집어서 눕혀놓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푸...후... 아까는 숨이 막혀서... 좀 살겠네요.”

“말 잘하네요. 독이 좀 풀렸어요?”

“아으아으. 입은 좀 돌아왔어요.”

입을 크게 오므렸다 폈다하며 자신의 몸을 점검하는 그녀의 모습에 수혁이 싱긋 웃었다.

“독이 풀리면 출발하죠. 해독포션을 박이현 헌터가 가지고 있어서 좀 아쉽네요. 다음에는 나눠서 들어야겠군요.”

“죄송해요. 이번엔 방심해서 그랬는데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에요.”

“다음에? 그러면 우리 길드에 들어온다는 얘긴가요?”

“어... 그게... 까짓 거 좋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무슨 사정이 있냐면 저하고 적대적인...”

김예현이 머뭇거리며 자신의 속얘기를 꺼내려했다.

“됐어요. 다음에 듣죠.”

단칼에 그녀의 말을 끊은 수혁이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카리스마가 쩔엉.’

나중에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기로 마음먹은 그녀가 몸을 추스르며 회복에 전념했다.

김예현의 몸이 회복되자 또다시 그들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루한 시간도 잠시, 수혁의 코가 벌렁거렸다.

“좀 더 속도를 내죠. 위에서 전투가 벌어지나 봅니다.”

“넵!”

계단을 전부 오르자 익숙한 자들이 보였다.

블러드 길드원들이 붕대를 칭칭 감은 미라들과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길드원들 역시 수혁과 김예현을 발견하고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길드장님!””

“형님!”

“인사는 나중에 하자고!”

수혁과 김예현이 합류해 검을 휘두르자 미라들이 금방 쓰러졌으며 이명한의 불길에 온몸이 타들어갔다.

“길드장님. 얘기 좀 들어봐요. 길드장님 없으니까 이 바보 같은 놈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아세요?”

박이현이 그간 있었던 일을 수혁에게 일러바치고 홍영기가 수혁에게 혼이 나는 것도 잠시, 반갑게 서로를 맞이한 그들은 곧 김예현이 블러드 길드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잘 부탁해요.”

“김예현 헌터의 검은 믿을 만하지. 암.”

“잘해보자. 인간.”

“여자 헌터가 늘어나서 좋네요.”

늘어난 길드원의 수에 수혁이 뿌듯한 얼굴을 지었다.

아무나 데려온 것이 아닌 그가 직접 선별한 인원들이었다.

그렇게 블러드 길드가 더욱 탄탄해졌다.

수혁의 합류로 자신감이 붙은 블러드 길드원들은 곧바로 보스방의 문으로 다가갔다.

마침 그들이 합류한 곳이 바로 보스방 앞이었다.

“가자!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가자고.”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