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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랑 뭐가 달라?
절그럭. 절그럭.
풀 플레이트 메일을 비롯해 중무장한 헌터들 스무 명 정도가 대형 버스에서 하차했다.
그들이 다가오자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아으, 게이트 깬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출동이네.”
“시끄러. 지역 입찰 받았으니 최대한 뽕을 뽑아야 한다고. 언제 다른 길드가 나서서 가져갈지 몰라.”
“끄응. 길드장님 욕심 하고는.”
“그런 건 회식자리에서 얘기를 함 해보던지.”
“네가 해라.”
잦은 출동에 피로감을 나타내는 길드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비룡 길드의 길드장, 김세헌이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에게 인사했다.
굳은살이 잔뜩인 두툼한 손을 내밀자 게이트 관리국 직원이 멋쩍게 악수했다.
“다들 고생 많습니다. 비룡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아... 예. 그런데 어쩌죠. 이미 길드에서 공략을 들어갔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여기는 저희 비룡 길드 관할지역 아닙니까!”“그건 아는데 블러드 길드에서 이미 들어갔습니다.”
“블러드 길드? 홍영기? 와...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을 봤나. 소문으로는 들었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김세헌이 화가 나서 방방 뛰었다.
비룡 길드원들은 속으로 휴식할 수 있음에 감사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상철아! 이게 말이 되냐?!”
“음... 세헌형님. 길드원들이 다들 피로가 쌓였는데 이참에 휴식을...... 하는 게 말이 안 되죠. 엄연히 우리 관할지역인데.”
부길드장인 이상철이 김세헌에 의견을 내다 점점 험악해지는 표정에 말을 바꿨다.
“그렇지? 이거는 정식으로 협회에다가 따질 거야.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불만이 많은 곳이 많은데. 와... 진짜 함 칠까?”
“네? 치다뇨?”
“블러드 길드 그 새끼들하고 함 붙어보자 이거야. 거기 끽해봐야 3명인데 우리가 20명이고 꿀릴 거 있어?”
“홍영기가 레벨이 70댄데 괜찮겠어요?”
“야이... 다구리에 장사 없어. 절반이 홍영기 붙들고 나머지가 박이현만 신경 쓰면 돼.”
“...길드장은요?”
김세헌이 헛웃음을 뱉으며 조소를 날렸다.
“참~나. 렙도 낮은 애는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정 그러면 네가 걔만 맡음 되겠지. 안 그래? 너무 열 받아서 안 되겠다. 못 참겠어.”
***
“성은 오랜만이군.”
게이트를 통과한 수혁의 발이 딱딱한 판석을 디뎠다.
게이트에 진입했을 때에 대부분은 필드형식인데 오랜만에 중세시대의 고성과 같은 지형이 등장했다.
수혁이 전생에 권능을 얻은 곳도 이런 고성지형이었다.
특이한 점은 이번 생에는 수혁이 권능을 얻었던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은 점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까 찾아가봤지만 게이트가 생겨나지 않아서 아무런 소득을 얻질 못했다.
그 이후로 약간이나마 아쉬운 마음을 내내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네.”
박이현에게 받아온 나침반이 한 방향을 나타냈다.
같이 가자는 그의 말에 할 일이 있다고 거절한 박이현의 존재가 아쉬웠다.
그녀가 가진 스킬이 굉장히 유용해서 효율적으로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슈퍼 베테랑 등급의 게이트도 못 들어간지 오래 전인데, 이참에 나오길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해자에 둘러싸인 고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나뉘어져있으며 성벽 안쪽에는 민가처럼 보이는 회반죽을 쌓아 올린 집들이, 내성 안쪽으로는 높게 쌓아올린 첨탑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수혁이 열려있던 성문을 통과하자 민가에서 튀어나온 주민들, 사람처럼 보이는 존재들이 그를 둘러쌌다.
수혁을 발견한 성의 주민들이 으르렁거리더니 주둥이가 튀어나오며 갈기털과 손톱 등이 자라났다.
“대낮에 웨어울프라.”
해가 중천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변신한 웨어울프들이 침을 흘리며 수혁에게 다가왔다.
“으르르... 먹이다...”
“인간... 살점... 피.”
“피? 피는 나도 좋아하는데?”
“크와아앙-!”
코를 들이대며 먹이의 냄새를 맡는 웨어울프가 수혁의 앞까지 다가왔다.
도플갱어를 잡고 얻은 특성 덕분인지 먼저 손톱을 세우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선빵은 내꺼.
서걱.
피가 튀며 얼굴이 잘려나간 웨어울프를 시작으로 피냄새를 맡고 웨어울프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컹!”
“크와악!”
웨어울프들의 주둥이가 덥썩 문 것은 따뜻한 살점대신 장미 문양의 폼멜이 달린 싸늘한 톱날검이었다.
가죽이 질기다고 소문난 웨어울프들 중 누구도 수혁의 검격을 버티지 못했다.
검이 지나가는 곳마다 웨어울프들의 잘린 몸뚱아리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아우우우-”
“아우우-”
무력하게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자 위기의식을 느낀 웨어울프들이 일제히 하울링을 날렸다.
아우우--
내성에서 그에 화답하는 하울링소리가 들리더니 내성의 출입구가 열렸다.
척. 척. 척. 척.
2열로 대열을 맞춘 병사들 수십 명이 내성에서 나왔다.
붉게 번들거리는 가죽 갑옷 외에 따로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다.
그들 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유일하게 투구를 쓴 자가 피바다가 된 웨어울프들을 보고 힘차게 울부짖었다.
“아우우우-!”
“아우우우-!!!”
우드드득.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웨어울프로 변신했다.
기존의 웨어울프보다 덩치가 머리 하나씩은 더 컸으며 착용하고 있던 갑옷 역시 변화된 몸에 맞춰 늘어났다.
맨몸의 웨어울프들은 병사들의 등장에 꼬리를 말곤 성의 구석으로 다들 도망쳤다.
우르르르.
이번에는 갑옷을 입은 웨어울프들이 수혁을 둘러쌌다.
톱날검에 묻은 웨어울프의 피를 혀로 핥던 수혁이 눈을 빛냈다.
“너희들도 피 좋아하니?”
“크와앙!”
투구를 쓴 웨어울프가 짖자 웨어울프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네 발로 풀쩍 뛰어오른 웨어울프가 손톱을 앞세웠다.
가가가각.
톱날검과 손톱이 부딪친 것도 잠시, 손톱과 함께 웨어울프가 갑옷째로 잘려나갔다.
곧이어 수혁이 검을 뒤로 찌름과 머리에 꽂힌 검을 붙잡고는 껑충 웨어울프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수혁이 있던 자리로 날카로운 웨어울프의 손톱들이 스쳐갔다.
빈 곳을 바라보던 웨어울프들이 고개를 돌리자 머리 위에 있던 수혁이 검을 휘둘렀다.
우수수 떨어진 웨어울프들의 머리통이 일제히 땅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떨어진 웨어울프의 몸통을 밟아 나가며 수혁이 공중에서 검을 쉴 새 없이 휘둘렀다.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처럼 웨어울프의 머리통이 허공을 비산했다.
“캬우우-!”
자신의 투구를 믿고 머리통을 들이댄 웨어울프 지휘관마저 수혁의 검에 두개골이 쪼개졌다.그제서야 급의 차이를 느낀 웨어울프들이 당황하며 꼬리를 땅으로 말았다.
그다음부터는 수혁의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성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있는 웨어울프를 검으로 찌르거나 목이 마를 땐 붙잡아 피를 빨았다.
[예민한 후각을 얻었습니다]
[예민한 후각이 강화됩니다]
“후각 특성이라니, 얘들은 개야 늑대야?”
혈향에만 특화되어있던 수혁의 후각이 모든 냄새에 예민한 감각 특성을 얻었다.
잠시 후, 겁 먹은 웨어울프의 똥오줌 등 온갖 냄새가 코를 통해 들어오자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숨을 들이쉬었다.
“후-아. 후-아. 적응하는데 좀 걸리겠네. 스-읍.”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강해진 후각에 적응하는 사이 내성에서 긴급한 종소리가 울렸다.
댕. 댕. 댕. 댕.
아무리 봐도 침입자인 수혁 때문에 생기는 소리였다.
내성 밖으로 나간 병사 웨어울프가 전멸하는 모습을 보자 위기의식을 느낀 모양이었다.
다라라라락.
수혁이 후각 특성에 적응을 마치는 사이 내성의 격자무늬의 철제 출입문이 소음과 함께 닫혔다.
내성 진입을 어떤 방식으로 할까 고민하는 사이 내성 성벽 위에 올라간 병사들이 일제히 활을 겨눴다.
“진짜로?”
“쏴라-!”
슈슈슈슈슉.
쏟아지는 화살을 검으로 쳐내며 수혁이 성벽의 출입문에 다가갔다.
“부어라!”
“저주받은 일족이 성벽에 붙지 못하게 막아!”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흠칫한 수혁이 빠르게 뒤로 물러난 사이 뜨거운 쇳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김이 솔솔 올라오는 쇳물은 아무리 수혁이 강해도 맨몸으로 부딪히기엔 위험해 보였다.
갑작스러운 공성전 모드에 당황한 수혁이 내성을 돌파하는 대신 성의 주민들이 살고있던 민가로 물러났다.
수혁이 멀어지자 성벽 위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병사들이었다.
“저주받은 일족을 물리쳤다-!”
“와아아아-!”
기뻐하는 병사들을 보자 황당한 수혁이 양 손을 허리에 짚고는 삐딱하게 성문을 노려보았다.
“누가 보면 내가 악당 같잖아?”
철통같은 내성이 그의 접근을 막는 탓에 이참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공간에서 꺼낸 육포와 음료수를 꺼내 먹는 질겅질겅 씹으며 내성에 들어갈 방법을 궁리했다.
“밤을 노리는 게 낫겟어.”
환하던 해가 저물어가는 걸 본 수혁이 밤의 어둠을 틈타 잠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둠이 몰려온 밤은 수혁에게 무대를 깔아주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하늘을 붉게 수놓던 태양이 스르륵 물러났다.
태양을 대신해서 빛을 내뿜는 달은 곳곳에 생긴 구름에 막혀 힘을 잃었다.
그러나 성벽 위의 웨어울프 병사들은 철통같은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불을 밝혀라.”
기름을 먹은 화살을 성문 바깥에 지속적으로 쏘아댔다.
수혁이 접근할만한 통로마다 불을 밝히는 병사들이었다.
자신들이 코가 좋고 밤눈이 밝다고는 하나 어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했다.
상대방은 자신들의 피를 탐하는 저주받은 일족이다.
어둠은 저주받은 일족의 무대였다.
“성 곳곳에 어두운 곳을 남기지 마라.”
조그만 그림자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화롯대를 촘촘히 일정 간격으로 세웠다.
그럼에도 불안함을 느끼던 지휘관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낮에 성급한 판단으로 허무하게 병사들을 잃은 것이 큰 실수였다.
“궁수들은 화살을 잡은 손을 놓지 마라. 저주받은 일족이 보이면 곧바로 사격한다.”
“네!”
하나같이 성벽 밖을 바라보며 불이 밝혀진 공간을 노려보았다.
“어디냐...”
두 눈을 부릅뜬 병사들이 활을 겨누곤 활활 타들어가는 불꽃 주위만 바라보고 있었다.
펄-럭. 펄-럭. 펄-럭. 펄-럭.
전방에 시선을 고정시킨 병사들의 귀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에 쫑긋거렸다.
“경계 똑바로 안 할래!”
지휘관의 외침에 병사들이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고정시켰다.
퍼-얼럭. 퍼-얼럭.
달빛을 가렸던 구름이 걷히자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는 커다란 박쥐가 보였다.
박쥐의 두 다리에 매달린 수혁의 모습에 지휘관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위... 위다-!!! 전원 전투 준비!”
지휘관의 외침과 함께 병사들이 활을 내려놓고 다급히 변신을 시작했다.
그러나 박쥐에서 떨어진 수혁이 검을 내지르는 것이 훨씬 빨랐다.
“크우워어- 켁.”
변신 도중에 위에서부터 내리친 검격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스치자 지휘관 웨어울프는 반쪽으로 몸이 쪼개졌다.
연달아 아직 변신을 마치지 못한 웨어울프들마저 수혁의 검에 토막이 나기 시작했다.
“깨-갱.”
화롯대의 불이 성벽 위의 소란에 맞춰 춤을 추었다.
당황한 웨어울프들의 비명과 지휘관을 잃어 사기가 추락한 신음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화롯대에 비친 웨어울프 그림자들을 향해 길쭉이 그림자가 늘어진 수혁의 검이 다가갔다.
검에 맞아 쓰러지는 웨어울프 그림자들이 바닥의 그림자와 합쳐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성벽 위의 소란이 잦아들었고 춤을 추던 화롯대의 불길이 얌전해지며 공연을 마쳤다.
뚝. 뚝. 뚝. 뚝.
성벽에서 흘러내린 피가 땅으로 떨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믈스믈 다가온 그림자에 모든 피가 스며들었다.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수혁은 여유롭게 성벽 밑을 내려갔다.
내성 공터에 도달한 그는 나침반을 따라 높은 첨탑이 솟아있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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