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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빌런의 무한 흡수 권능-29화 (2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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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서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눈 밑의 시꺼먼 다크서클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열정 자체는 여전한 김상중이었다.

“많이 피곤해보이네요.”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정치꾼들도 그렇고, 기업인들도 그렇고. 흐흐흐. 난 그저 헌터들을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애만 쓸 뿐인데 연락이 너무 많이 와. 평소엔 폰도 비행기모드로 해놓는다니까.”

“협회장님덕에 헌터들이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처럼 정부의 통제를 받는 곳은 수만 많지 죄다 쭉정이들이니까요.”

“입만 산 녀석들이야. 그것보다 할 말이 있다고?”

명색이 협회장 사무실인데 기본적인 사무용 책상과 의자 말고는 다른 사치품은 하나도 없었다.

언제나 청렴하고 공익을 생각하는 한결같은 그이기에 수혁은 그가 맘에 들었다.

“도플갱어를 잡았습니다.”

김지민과 허기욱이 살던 아파트에서 도플갱어의 흔적을 쫓은 점, cctv로 도플갱어가 착용한 아이템을 확인하고 게이트에서 확답을 받은 것까지, 모든 것을 얘기하자 김상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또 신세를 졌어.”

“녀석을 산채로 잡으려했지만 반항이 심하더군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됐어. 그런 놈들은 살아봤자 공기만 더러워질 뿐이야. 난 오히려 수혁 네가 공을 또 숨기는 게 아쉬워. 넌 그런 대접을 받을 게 아닌데...”

“전 괜찮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좀 더 깨끗해진 것으로 만족해요. 이로써 다른 헌터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겠죠. 세상에 해를 끼치는 빌런은 꼭! 저에게 맡겨주세요.”

‘이렇게나 겸손하다니.’

김상중은 수혁의 말에 감동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그는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진정한 히어로였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세상에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 다크 히어로.

블러드 길드가 알짜 게이트를 골라잡는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김상중은 오히려 더 못해준 것을 미안해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혁의 편을 들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제가 부탁한 것 좀 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 여기 있어. 헌터 개인의 신상이지만 수혁 네가 나쁜 곳에 사용할 사람은 아니니까. 신규 길드원들을 받을 생각인가 보지? 하긴. 레벨이 높아질수록 소수의 인원만으로 게이트를 깬다는 게 쉽지 않지. 잘 생각했어.”

김상중이 서류봉투 하나를 건넸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무한한 믿음이 눈에 담겨있었다.

그간 해온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수혁은 전생에서 같이 탑에 올랐던 박이현은 길드원으로 끌어드리는데 성공했다.

또 다른 강자였던 검성(劍城) 최지헌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현재 다른 길드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비록 전과 달리 빌런을 잡는데 소극적이긴 하지만.

전생에선 빨리 사라져버려 꽃을 피우지 못했던 홍영기는 어느새 그의 오른팔로 실력을 뽐내고 있다.

김예현이나 이명한처럼 잠재력 있는 헌터들을 잘 키우면 홍영기처럼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빌런을 잡아 족치고 헌터들을 성장시키고.

계속 이렇게 하다보면 탑에서 허무하게 죽을 인원들이 줄어들 테니까.

이번에는 탑의 정상까지 홀로 오르는 일이 없겠지.

꼭 그래야 한다.

“깔깔깔깔. 더 머거 머거!”

“크어-!”

홍영기가 소맥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얼굴이 잔뜩 시뻘건 박이현이 박수치며 더욱 그를 부추겼다.

수혁이 머리를 긁적이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자 저녁 6시 반이었다.

분명 점심 때부터 고기 먹으러 간다고 하더니 아직까지도 먹고 있었다.

“어?! 귈드좡니임~?”

“행님. 행님. 어서 안자요!”

“다들 잔뜩 취했네.”

수혁이 앉자마자 홍영기가 물잔에 소주를 잔뜩 부었다.

“늦었으니 먹고 시작해야지?!”

“마셔라! 마셔라!”

흐리멍텅한 동태눈이 된 두 남녀가 수혁을 압박했다.

피식.

고작 이정도 술로? 날 뭐로 보고.

꿀꺽. 꿀꺽.

“푸후-.”

“와아아-! 귈드장님 믓쪄 믓쪄! 한 잔 더!”

“역시 우리 행님이지!”

콸콸콸콸콸콸.

이럴 거면 그냥 소주병을 입에 넣지 그래.

“그만!”

머리에 혹이 생긴 두 남녀의 흐릿했던 눈이 또렷해졌다.

이제야 얘기를 할 정신으로 보인다.

“이현이는 같이 겪어봤겠지만 프리헌터로 고용했던 두 헌터를 정식 길드원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저는 좋아요. 김예현 헌터하고도 호흡이 잘 맞고, 이명한 헌터의 마법이 굉장히 유용했어요. 그 정도 실력자가 아직도 프리로 뛰고 있다는 게 의문이지만.”

“그래? 저야 길드장님이나 이현이가 좋다고 하면 상관없죠.”

“그런데 저번에 정식 길드원이 되라는 말에 은연중으로 거절했던 거 아니었나요?”

“뭐?! 우리 길드를?! 우리 길드가 어때서!”

술이 올라오는지 얼굴이 다시 시뻘게진 홍영기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발진한 그를 자리에 다시 앉힌 수혁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일단 둘 모두 사정이 있어 보여. 내가 개별적으로 설득해 볼 거다. 곧 게이트에서 합을 맞춰볼 수 있으니 잘해보자.”

수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홍영기가 탁자의 호출벨을 눌렀다.

“넵! 사장님~ 냉면 추가요! 술도! 헤헤... 후식은 먹어야죠.”

“블러드 길드라... 진지해 보이기는 하던데.”

이명한은 이미 숱하게 들어본 영입제의였지만 이번에 유독 마음이 설렜다.

10대 길드와는 결이 다른 소수정예로 유명한 블러드 길드였으니.

특히 소문과 달리 낮은 레벨에도 길드장이 얼마나 터프하던지, 최욱을 때릴 때 보니 살벌한 게...

곰곰이 곱씹던 그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창백한 얼굴로 병실에 누워 호흡기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게이트가 생겨난 이후로 생긴 원인불명의 병을 얻은 그의 와이프였다.

온 몸의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증상으로 최초의 환자인 마르코의 이름을 따 마르코 병이라고 불렸다.

헌터처럼 마력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만이 병의 진행속도를 막을 수 있었다.

다만 아무리 마력을 불어넣어도 완치는 되지 못했기에 증상완화로 생명만 간신히 유지시키는 중이었다.

그나마 이명한, 본인이 마법계열의 헌터라 마력량에 자신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헌터를 고용하는 비용이 엄청나니 매일같이 찾아와 본인이 직접 마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조차도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맞이했다.

매일 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속해있던 길드에서도 탈퇴하고 한 번씩 프리로만 뛸 뿐이었다.

“아... 엘릭서만 찾을 수 있다면...”

엘릭서로 병을 없앴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퍼지며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애초에 희귀한 아이템인 엘릭서는 이젠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게이트에서 어쩌다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아이템을 사기위해 다들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다.

-대기번호 1823번.

헌터협회에서 만든 아이템전문거래기관, 일명 헌터옥션에서 엘릭서를 사기 위해 대기를 걸고 받은 대기번호였다.

1년에 1번 번호가 줄어들 정도로 너무 느리게 대기번호가 빠졌다.

웃돈을 주면 대기번호를 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소문에 브로커한테 접근하다 함정수사에 빠져 하마터면 빌런헌터에게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절실한 사항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이번에 블러드 길드에서 다른 곳보다 마석 값을 후하게 쳐줘서 병원 입원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내일 다시 올게 여보.”

이명한이 와이프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가 나가자 병실에는 정적만이 남았지만 병실에 누운 와이프의 눈가에서 미약한 액체가 뺨으로 흘러내렸다.

병원문을 나서는 그는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인 한 사람을 발견했다.

“이수혁 길드장님?”

“아~! 이명한 헌터님. 여기서 뵙는군요.”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어디 다치셨습니까?”

“저희 길드원들이 부상으로 이곳에 입원했을 때 치료가 깔끔하게 잘 돼서 종종 들리고 있습니다. 헌터님이야말로 어디 다치셨습니까?”

수혁의 질문에 이명한이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나 한 잔 하시겠습니까.”

“저야 좋죠.”

간호사들에게 작별인사를 날리자 다들 아쉽다고 수혁을 붙들었다.

“길드장님. 꼭 다시 와요.”

“바쁜 건 아는데 다음엔 밥 한 끼 꼭 해욧!”

병원 근처의 커피숍에 앉아 이명한이 짓궂은 표정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길드장님 여자들한테 인기가 정말 많더군요. 부럽습니다. 저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부럽기는요. 마음 맞는 한 여자를 만나는 게 제 소원입니다.”

“하하하하. 젊을 때 연애 많이 하십쇼.”

진짠데. 모솔인 거 티 안나나.

전생에선 운동에만 전념하다 빌런이 된 뒤에는 계속 쫓겨다니느라 연애는 꿈도 못꿨다.

현재는 끊임없이 게이트를 공략하고, 빌런 잡고, 길드를 성장시키느라 여자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

일반 여자들은 성 페로몬 특성 때문에 자신에게 들러붙을 뿐 진정한 애정이 아니었다.

갑자기 서글퍼지네.

속을 달래려 수혁이 시원한 커피를 입에 넣는 동시에 이명한 역시 속마음을 얘기하고자 커피로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적셨다.

“사실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아내가 있습니다. 보잘 것 없던 시절부터 저만 바라봐주었죠. 참 운 좋게도 각성을 한 뒤에는 제가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전에는 누구보다 잘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행운에는 대가가 있나 봐요. 제 아내가 병에 걸렸거든요.”

“병이라면... 혹시 마르코병?”

“네. 엘릭서만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그 병이요. 그걸 구하기 전까지는 매일 병원에 나와 마력으로 병의 악화를 막아야 합니다. 그게 제가 길드장님의 가입요구에 머뭇거린 이유입니다.”

“흐음...”

수혁은 전생에 이명한이 동료 살해로 빌런이 되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왠지 무엇 때문이었을지 가늠이 갔다.

엘릭서라...

그것만 있으면 듀얼속성의 마법계열헌터를 길드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수혁의 머릿속에 엘릭서가 나왔던 게이트들 몇 개가 떠올랐다.

“만약 제가 엘릭서를 구해드리면 어쩌겠습니까?”

말을 들은 이명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제가 평생을 길드장님께 바치겠습니다. 보수도 필요 없습니다. 혹시 가능하신 겁니까?”

그냥 길드도 아닌 블러드 길드의 길드장이 한 얘기다.

돈 많다고 소문난.

혹시나 하는 희망에 이명한이 간절한 눈길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당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제가 최대한 힘 좀 써보겠습니다.”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곧 게이트에서 뵙겠습니다.”

아이템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면 참으로 땡큐다.

그것도 실력이 검증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엘릭서... 엘릭서가 이쯤이었나?”

이명한을 비롯한 길드원들과 게이트 공략에 나서기로 한 것은 5일 뒤였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보던 수혁이 엘릭서가 나왔던 게이트가 마침 내일 열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런으로 전국을 도망 다니며 안 가본 곳이 없었고, 남들이 게이트에 들어가 레벨 업을 하고 아이템을 얻는 모습만 지켜봤던 한이 있어서 그런가.

인터넷으로 어디 게이트에서 무슨 아이템이 나왔다는 기사를 매일같이 들여다 본 덕이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지.”

다음 날, 수혁이 도착한 곳은 인천의 주안이었다.

그가 도착하자 파란색의 게이트 하나가 이미 열려있었다.

곧바로 들어가는 대신 잠시 앞에서 기다리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이 다가왔다.

“비룡 길드십니까? 빨리 오셨네요.”

“블러드 길드입니다. 이 게이트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네?! 여기 관할은 비룡 길드인데, 곧 비룡 길드에서 나올 겁니다.”

“이 게이트는 블러드 길드에서 공략 할 테니 관리국 본사에 전화 해 보세요.”

말을 마친 수혁이 게이트로 들어가자 닭 쫓던 개들처럼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이 머리를 긁적였다.

“큰일났네. 비룡 길드한테 뭐라고 얘기하지?”

“블러드 길드가 마구잡이로 게이트 공략한다던데... 그런데 방금 혼자 들어 간 거야?”

“서... 설마. 다른 길드원들이 들어가 있었겠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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