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석 삼조
수혁이 자신의 품에서 빌런헌터면허를 꺼냈다.
“빌런 도플갱어. 은행 강도, 살인, 강간, 기타 등등 죄가 너무 많아. 체포 할테니 얌전히 무기 내려놔.”
“무슨 오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빌런이 아니야. 당신이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크흣.”
성큼 다가온 수혁의 검에 류익준이 급하게 단검과 검으로 교차해 막아냈다.
한 손으로 성의 없이 휘두른 검에 그는 열 걸음이나 물러났다.
‘무슨 힘이...’
“미쳤어? 정식으로 헌터협회에 고발할 거야!”
“해봐. 게이트에서 나갈 수 있으면.”
류익준이 여왕가시벌이 죽은 곳을 힐끔 쳐다보았다.
보스몹인 여왕가시벌이 죽었으니 탈출포탈이 생겨나야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의 시선을 지켜본 수혁이 조소를 날렸다.
“이 게이트에는 이런 벌집이 몇 개나 더 있지. 앞으로도 몇 번이나 여왕가시벌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야.”
“...전부 계획된 것이었군. 그런데 길드장 혼자서 날 상대하려고? 내 레벨을 너무 무시하네?”
“이제 연기는 그만 두기로 했나보군.”
“그래. 이참에 블러드 길드는 내가 가져가마!”
호기롭게 외친 류익준이 단검을 수혁을 향해 재빠르게 던졌다.
이어서 그의 신형이 단검을 뒤따르더니 검을 높게 쳐들었다.
그리고는 품속의 단검을 다시 잡은 그는 검을 휘두르는 척 근접거리에서 단검을 던질 생각이었다.
멀리서 던지는 단검은 손쉽게 막아도 지근거리에서 날아오는 단검을 막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을 상대할 일 없는 대부분의 헌터는 그의 이런 변칙적인 공격에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죽어라!”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고 다른 손으로 단검을 던진 류익준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먼저 날아온 단검을 손으로 잡은 수혁이 이어서 그의 검으로 시선을 빼앗겼을 때 류익준의 다른 단검이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푹.
자신의 단검이 수혁의 심장에 꽂히는 모습에 앞으로 블러드 길드의 길드장으로 살아갈 기쁨에 취해있을 때였다.
“재밌는 공격이네. 역시 빌런다워.”
“?!”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수혁의 목소리에 검을 휘두르려했지만 톱날 모양의 검이 가슴을 먼저 꿰뚫는 게 빨랐다.
푹.
“큭. 어떻게...”
단검에 맞은 수혁의 몸이 검은 물로 변해 녹아내리더니 진짜 수혁이 있는 곳 발밑의 그림자로 흡수되었다.
“쿨럭. 이렇...게... 허무하...”
콰직.
수혁이 목덜미를 물고 피를 빨자 곧 그의 눈이 감겼다.
[절대적 친화력을 얻었습니다. 모든 몬스터는 선제공격하지 않습니다.]
류익준을 잡아먹고 그의 특성을 얻었다.
동시에 레벨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Lv.50 등급(슈퍼 베테랑)
- 신체 : 2,474 + ?? + (30)
- 마력 : 2,471 + ?? + (25)
- 종합전투력 : 4,945 + ?? + (55)
- 경험치 : 1,040/300,000 ]
“드디어 레벨이 50이군. 절대적 친화력? 선제공격이라... 제법 유용하겠군.”
말라비틀어진 류익준의 귀에서 푸른빛이 감도는 귀걸이와 그가 쓰던 장비를 확인했다.
[엘리네의 눈물 : 마력 회복 속도를 15% 상승시켜준다.]
[고대 암살자의 단검 : 던졌을 때 소음이 나지 않는다. 신체 +5]
[고대 암살자의 장검 : 빛을 받아도 번쩍이지 않는다. 신체 +6]
[고대 암살자의 갑옷 : 기척과 소음을 큰 폭으로 줄여준다. 신체 +8]
“고대 암살자 세트라. 별로군. 엘리네의 눈물을 가지느라 돈을 많이 썼나?”
류익준의 시체는 그림자에 녹여버렸고 게이트에서 쓸 만한 아이템이 아니라 남은 아이템은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엘리네의 눈물은 미리 홍영기에게 시켜놓은 물건과 함께 잘 써먹을 생각이었다.
역시 레벨 업은 빌런을 잡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덤으로 아이템과 특성까지 얻으니 일석이조를 넘어선 일석삼조다.
“엇? 길드장님? 류익준 헌터는요?”
가시벌들을 모두 소탕한 다른 사람들이 홀로 서있는 수혁을 발견했다.
수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더군요. 여기 이곳에 제가 건네준 돌만 남겨놓고는. 결국 여왕가시벌도 저 혼자 잡았습니다.”
“네?! 설마... 결국 당했나? 그래도 베테랑 등급인데...”
이명한을 비롯한 다른 헌터들은 게이트에서 헌터의 실종이 곧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씁쓸한 얼굴을 지었다.
그들 역시 게이트 공략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기에 동료의 죽음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오기 전 이곳에 이미 엘리트 가시벌들이 몇 마리나 죽어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을 피해 달아났을 수도 있죠.”
“아뇨. 우리가 있는 곳을 뻔히 아는데 오지 않았다는 얘기는 뭐... 뻔하죠.”
“쩝. 그래도 몇 번 같이 했던 헌터였는데 아쉽네. 탈출 포탈은 나왔습니까?”
이명한과 최욱은 류익준의 실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동료의 죽음에 무던해진 헌터들은 진정 전장의 베테랑과 같았다.
김혜연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서있었고, 박이현은 여왕가시벌이 있던 둥지에서 찾을 게 없나 이리저리 뒤지는 중이었다.
“아쉽게도 탈출 포탈은 없습니다. 제 경험상 곤충형 몬스터들이 나온 경우에는 이런 군락지를 여러 군데 토벌해야 탈출포탈이 나오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번도 똑같다고 생각됩니다.”
“이래서 곤충형은 귀찮다니까. 일단 이 부근에서 류익준 헌터를 최대한 기다려보고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명한 헌터 말에 따르죠. 다들 밖에서 휴식과 식사로 재정비를 마친 뒤 공략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들이 불타버린 군락지에서 하루를 꼬박 기다렸지만 류익준은 나타나지 않았다.
짧은 추모와 함께 야영지를 정리한 그들은 다시 게이트 공략을 이어갔다.
슈우우웅.
게이트에 들어간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블러드 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입장할 때의 6명의 인원이 5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이 의외의 결과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길드장님? 무슨 일이 있었길래...”
“자세한 건 제가 보고서를 적어서 헌터협회와 게이트 관리국에 정식으로 보내겠습니다. 헌터 한 분이 불미스러운 일로 실종되었습니다.”
“으음... 잘 알겠습니다.”
게이트에서 헌터의 사망과 실종은 워낙 흔한 일이라 그들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단지 소수정예의 블러드 길드에서, 솔저 등급의 게이트에 입장했음에도 실종자가 나왔다 길래 의외로 느꼈을 뿐이었다.
‘이번에 헌터 한 명이 자기 실력을 과장했었나 보네.’
프리헌터로써 자신의 실력을 과대포장하는 사례가 빈번했기에 모두들 그러려니하고 넘어갔다.
관리국 직원에게 보고를 마친 수혁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얘기를 꺼내기 전 최욱이 먼저 선수를 쳤다.
“크흠. 길드장님. 저는 블러드 길드와 별로 안 맞는 것 같네요.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일(?) 이후로 데면데면해진 관계가 된 최욱이 먼저 포기선언을 했다.
수혁이야 별 상관없었기에 순순히 수긍했다.
“최욱 헌터님. 언젠가 다시 만날 때에는 웃는 얼굴로 뵙길 기대합니다. 부디 올바른 길을 걸으시기를.”
“내가 내 발로 걷는데 그쪽 허락이 필요합니까? 크흠.”
퉁명스럽게 대답한 최욱이 곧바로 자리를 떴다.
빌런이 되지 말라는 수혁의 은연중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로써는 오히려 최욱이 더더욱 레벨이나 많이 올리길 바랐다.
훗날 빌런이 되면 결국 경험치로 변할 운명에 불과하니까.
그날이 오면 저자의 피는 무슨 맛일지 궁금하군.
“김혜연 헌터님과 이명한 헌터님께는 프리헌터가 아닌 블러드 길드의 정식 길드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다들 어떻습니까?”
“허허. 좋긴 한데... 일단 좀 더 생각해보면 안 됩니까?”
“...저도 생각 좀.”
너털웃음을 짓는 이명한과 드디어 목소리를 들은 김혜연까지.
수혁이 빌런을 잡으러 다닐 때에도 블러드 길드원들을 계속 키우기 위해 인재 영입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머뭇거리는 둘의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제가 너무 성급했나보군요. 다음 게이트 공략 때 연락드릴 테니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고. 저야 블러드 길드원이 되면 당연히 좋죠! 단지 여러 가지 일이 좀 있어서 그런 겁니다. 거절 한 것은 아니구요.”
“...저도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뵙죠.”
이명한과 김혜연이 사라지자 박이현이 수혁에게 바짝 붙으며 눈을 빛냈다.
“류익준은요? 빌런 맞았어요?”
“그래. 추궁하니까 본색을 드러내더구나. 날 죽이고 블러드 길드장이 되고 싶다고 했던가?”
“푸하하하. 욕심이 과했네요.”
자신의 배꼽을 붙잡고 폭소를 하던 박이현이 덥썩 수혁의 팔을 잡았다.
“?”
“보.너.스.”
“일단 이 물건들은 처리하고 네가 가져.”
류익준에게 얻은 암살자 세트를 건네자 박이현이 냉큼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이걸로 퉁은 안 되는데.”
“이번에 얻은 마석 내 몫까지 가져가라.”
“퉁! 히히히히.”
신이 난 박이현이 시시덕거리더니 금방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예정보다 빨리 미국에서 돌아온 홍영기가 수혁의 집을 찾았다.
홍영기는 실제로 수혁의 명령에 따라 미국에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지쳐보였다.
“길드장님!”
“고생했다.”
그가 제일 먼저 건넨 건 붉은 루비가 박혀있는 귀걸이 한 쌍이었다.
[엘리네의 비명 : 마력량을 5% 상승시켜준다.]
“제가 이걸 구하려고 텍사스에서 전기톱 들고 설치는 빌런녀석을 힘겹게 잡았다니깐요. 마스크까지 쓰고는 얼마나 깝죽거리던지. 전기톱 박살나니까 바로 도망가가지고 진짜...”
“푸훗. 고생 많았다. 그런데 이것 말고 다른 건?”
“여기요.”
[혼돈과 융합의 돌 : 아이템끼리 합성할 때 사용한다.(1회용.)]
무지개빛이 도는 손톱만한 마석을 수혁에게 주었다.
사전에 수혁의 지시에 따라 미국에서 아이템들을 구해온 홍영기에게 월급을 올려주기로 했다.
기쁨에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간 홍영기는 곧바로 박이현에게 전화 걸었다.
“야! 어디야! 오빠가 쏜다! 당장 나와. 고기 먹자. 길드장님은요?”
“너희끼리 먹어라. 나는 할 일이 있으니 시간 날 때 합류할게.”
“넵.”
홍영기가 떠나고 고요한 정적만 남은 집에서 수혁이 엘리네의 눈물까지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엘리네의 눈물, 엘리네의 비명 사이에 놓인 혼돈과 융합의 돌을 잡고는 수혁이 손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혼돈과 융합의 돌에서 빛이 나더니 좌우에 있던 엘리네의 눈물과 엘리네의 비명을 집어 삼켰다.
손을 떼고 지켜보는 와중에 빛이 덩어리지며 뭉치더니 무지개 빛의 여러 가지 색으로 발광하다 백색의 빛을 크게 내뿜고는 사라졌다.
탁자 위에는 어느새 검붉은 보석이 박힌 귀걸이 하나만 놓여있었다.
[엘리네의 슬픔 : 마력량 7%, 마력회복속도를 17% 상승시킨다.]
“굉장하군.”
[Lv.50 등급(슈퍼 베테랑)
- 신체 : 2,474 + ??
- 마력 : 2,471 + ?? + (198)
- 종합전투력 : 4,945 + ?? + (198)
- 경험치 : 1,040/300,000 ]
다른 아이템을 착용하지 않고 엘리네의 슬픔만 착용해도 마력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로 상승하는 템이라 마력 수치가 늘어날수록 비례해서 증가하는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었다.
이쯤 되니 도플갱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 맛에 빌런 잡지.
우우우웅.
폰에 진동이 울려서 확인해보니 헌터협회장 김상중이었다.
“협회장님?”
“얘기 들었어. 희생자가 나왔다고? 너희 길드에서 예상 밖의 일도 생겨나는 구나?”
“자세한 건 직접 가서 얘기하죠. 그렇게 나쁜 소식은 아닙니다. 그리고 부탁할 게 있습니다.”
“부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