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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둘이야.
박이현이 가리키는 곳마다 마석이 나왔다.
땅 속이나 썩은 나무의 밑동에서 빛나는 작은 돌을 주워 담았다.
주워 담은 마석은 최욱이 들고 온 배낭에 차곡차곡 쌓였다.
류익준은 군말 없이 수혁의 지시에 따르는 최욱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나본데... 박이현이 나섰나?’
레벨이 낮은 수혁대신 박이현이 나서서 서열정리를 한 번 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현재 멤버에서 박이현이 제일 강하다고 착각한 그가 속으로 아쉬워했다.
‘재밌는 구경을 못 봤네. 그렇게 안 봤는데 확실히 강한가 보군. 블러드 길드라... 매력적인데?’
뒤에서 박이현과 김예현의 뒤태를 보며 류익준이 침을 삼켰다.
잡생각도 잠시 그들은 다른 몬스터와 조우했다.
“장군 가시벌이다. 다른 가시벌들도 우글우글하군.”
일반 가시벌보다 2배는 더 큰 벌인 장군 가시벌 주변으로 가시벌들이 우글우글했다.
거대한 벌집통이 군락을 이루며 잔뜩 얽혀있었다.
얼핏 봐도 개체수가 수백단위를 훌쩍 넘어가자 블러드 길드를 제외한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보통 게이트에 입장하는 헌터의 최소 단위가 열 명 이상인 만큼 6명에 불과한 현재 인원으로 저 많은 적들을 상대할 생각에 다들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레벨이 자신들보다 낮은 몬스터라 다행이었다.
대체 블러드 길드는 소수의 인원으로 저런 것들을 어떻게 상대하는 거지?
“이번에는 이명한 헌터님이 먼저 나서줘야겠군요.”
“크흠. 제가 힘을 많이 써야 다들 편하겠죠?”
“최욱 헌터 전방에서 탱커로, 저와 김예현 헌터가 좌우에서 보조합니다. 박이현은 장군 녀석들 저격해. 마지막으로 류익준 헌터는 벌집으로 들어가서 여왕 가시벌의 위치를 파악해 주세요. 가능하겠습니까?”
가시벌을 완전소탕하기 위해서는 보스몹인 여왕가시벌을 꼭 잡아야했다.
여왕가시벌은 계속해서 가시벌을 생산할테고 잡지 못한다면 게이트 내부는 늘어난 가시벌 소굴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게이트 초반에 보스몹이 있는 가시벌군락을 발견한 것이 다행이었다.
“혼란을 틈타 조용히 잠입해보죠. 저 혼자서도 가시벌 정도야 잡을 수 있죠.”
“여왕가시벌을 호위하는 엘리트 가시벌들이 있을 겁니다. 홀로 전부 잡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제가 도우러 가겠습니다. 이걸 챙겨가세요. 망고바나나, 아니 류익준 헌터.”
“?”
수혁이 사전에 자신의 핏방울을 살짝 묻힌 돌멩이 하나를 건넸다.
아무리 봐도 별 효능이 없어보였지만 길드장이 지시하자 류익준은 별다른 의심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시작하죠.”
수혁의 말과 함께 이명한이 양손을 모아 주문을 영창했다.
주변의 공기를 끌어 모아 둥글게 압축하더니 그 주변을 강한 화염으로 감쌌다.
“듀얼 속성?”
“하하하. 길드장님 제가 한 실력 한다니까요. 왜 제가 광역마법에 자신 있는지 보여드리죠.”
예상 밖의 실력에 수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10대 길드에서도 서로 스카웃 요청을 했을 텐데 어째서 그가 이렇게 프리로 뛰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아직 빌런이 되기 전인 그의 마법은 볼수록 탐이 났다.
나중에 이명한의 사연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
공중에 늘어나는 화염구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이명한의 손짓과 함께 전방으로 쏟아졌다.
“전부 타버려라!”
불의 비가 평화롭던 가시벌 군락 위로 스콜처럼 쏟아졌다.
군락과 부딪친 불덩이는 내부의 압축 공기가 터져나가며 더욱 커다란 화염의 충격파를 나타냈다.
콰과과과광.
“우리가 할 게 따로 없어 보이는데?”
“아직 안 끝났습니다. 다들 전투 준비.”
반쯤은 불에 탄 벌집들 사이에서 화가 잔뜩 난 가시벌들이 마구 뛰쳐나왔다.
성난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원인을 찾던 가시벌들은 곧 자신들에게 마법을 날린 이명한을 향해 돌진했다.
“전 여왕벌 찾으러 이만.”
류익준이 옆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잠시 보던 수혁은 곧 가시벌들에게 집중했다.
이명한에게 집중된 가시벌들의 어그로를 끌기위해 최욱이 먼저 자신의 장기를 드러냈다.
망치로 자신의 방패를 두드리자 몬스터들을 자극하는 음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명한을 향한 가시벌들이 방향을 바꾸어 최욱에게 향했다.
“덤벼라!”
슈슈슈슉.
최욱의 뒤편에 서있던 박이현이 자신의 화살을 날렸다.
분열된 화살이 일반 가시벌들 사이에 섞여있던 덩치 큰 장군 가시벌들을 관통하더니 다른 가시벌까지 꼬치처럼 꿰뚫고 지나갔다.
“자잘한 녀석들은 내가 처리하겠어!”
최욱이 힘껏 위로 든 망치로 땅을 내려치자 강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솟아오른 흙더미가 가시벌들을 덮쳤다.
“하하하하하. 맛이 어떠냐!”
저돌적으로 가시벌들을 향해 달려간 최욱이 망치를 크게 한 바퀴 휘둘렀다.
그의 망치에 맞아 부서진 가시벌들이 후두둑 땅으로 떨어졌다.
수혁에게 당해 자존심이 상하며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는 모양새였다.
지켜보던 김혜연이 수혁보다 먼저 최욱에게 붙었다.
수혁은 그녀의 실력을 보기 위해 일부로 천천히 움직였다.
검에서 솟아오른 푸른 검광이 반짝이며 허공에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절삭력이 높아진 검이 가시벌들을 조각냈으며 가시벌들의 반격은 그녀의 적절한 방패술에 무력화되었다.
베어내고, 찌르고, 막고, 가장 기초적인 공방술이지만 그녀의 군더더기 없는 효율적인 움직임은 하나의 교본으로 써먹을 정도였다.
흠잡을 곳 없는 공수 밸런스에 수혁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훗날 빌런으로 타락할 운명인 자들이 실력이 뛰어나다.
다들 탐이 나네.
“으하하하하! 이 버러지들 같으니-! 내 망치에 곤죽이 되버려라!”
최욱 빼고.
부-웅. 부우-웅.
불에 탄 벌집 내부에는 가시벌들의 날개짓 소리와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더듬이가 부러진 가시벌로 변신한 류익준은 벌집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멀쩡한 가시벌들이 그를 발견했지만 부러진 더듬이를 본 후로는 무시하는 덕에 움직이는데 수월했다.
간혹 장군 가시벌이 나타나 그를 벌집 밖으로 나가서 싸우라는 듯한 움직임으로 밀어냈지만 부러진 더듬이를 들이대며 연기하는 탓에 포기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분명 말은 못하지만 말을 할 수 있다면 욕이 쏟아졌을 것이다.
예전에 자신을 다그쳤던 연극 단장처럼.
‘이 맛에 연기하지.’
몬스터들까지도 속아 넘어가는 진짜 연기.
무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상황이었다. 생사가 오고가는 스릴감 있는 현장.
아무래도 그는 무언가 흉내 내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벌집 밖에서는 이명한 헌터가 또 마법을 썼는지 큰 폭발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저렇게 개고생하는 헌터들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편한가.
블러드 길드장이 어떻게 본인을 잘 파악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덕분에 자신의 특기를 잔뜩 발휘하고 있었다.
‘블러드 길드가 괜히 소수정예가 아니야. 작전을 짜는 길드장도 그렇고 박이현의 실력도 그렇고 홍영기가 안 나가는 이유가 있어.’
그는 문득 자신이 블러드 길드에 속해서 게이트 공략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보았다.
게이트를 깨고 돈을 받고, 한 번씩 회식도 하는 그런 평범한 삶.
처음엔 좋을지 몰라도 금방 질려버릴 무던한 삶.
자신은 결코 빌런짓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또 되새겼다.
‘길드장으로 변신해서 박이현을 한 번 꼬셔봐? 박이현도 미모가 상당하던데...’
과거 아이돌 출신이라 그런지 웃을 때나 정색할 때나 언제나 빛이 났다.
얼마 전 상대하던 김미진과는 결이 다른 외모.
‘혹시 홍영기랑 사귀고 있는 거 아니겠지? 길드에 가입해서 누구랑 만나는지 확인을 좀 해봐야겠네.’
벌써 블러드 길드원이 된 양 상상하던 그의 앞에 유난히 집게가 날카로운 가시벌이 길을 막았다.
찰칵. 찰칵.
집게발로 위협하는 가시벌은 분명 엘리트 가시벌이 분명했다.
부러진 더듬이를 들이대며 무시하고 지나가려하자 오히려 집게발에 잘릴 뻔했다.
하지만 엘리트 가시벌들이 나온다는 얘기는 이 뒤편에 여왕가시벌이 있다는 말.
자신은 현재 변신으로 인해 아무런 장비도 없는 상태다.
레벨이 있는 만큼 맨몸이라도 흉기에 가까운 육체이지만 굳이 장비 없이 독까지 발려있는 벌에 쏘이고 싶지는 않았다.
숨겨둔 장비를 찾고 헌터들을 데려와 여왕벌을 잡아야겠다.
“후아. 계속 기어 다녔더니 좀이 쑤시네.”
벌집 주변에서 숨겨놓은 장비를 찾은 류익준이 기지개를 폈다.
갑옷을 착용하고 검을 들자 자신감이 폭발했다.
“벌 자식들 전부 조져주마.”
“무사했군요.”
류익준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미소를 싱긋 지은 수혁이 나타났다.
기척도 없던 움직임에 순간 긴장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장님? 다른 분들은?”
“벌집 밖으로 튀어나온 가시벌들을 거의 잡아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여왕벌은 찾으셨습니까?”
“마침 잘 오셨네요. 아까 저기 왼쪽에 있는 제일 큰 벌통에 엘리트 가시벌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 진행하지 못하고 왔지만 위치는 기억합니다.”
“잘 됐군요. 앞장서시죠.”
“...단 둘이서요?”
“다들 곧 뒤따라 올 겁니다.”
수혁의 말을 들은 류익준이 별다른 의심 없이 곧장 길을 안내했다.
벌집 내부 공간은 장군 가시벌들도 돌아다니는 만큼 두 사람이 통로를 지나가기에 충분했다.
이따금 길을 막는 가시벌들은 류익준이 손을 쓰기도 전에 수혁의 검에 토막이 났다.
“이야. 길드장님. 검 휘두르는 것도 제대로 못 봤어요. 엄청 빠르시네요.”
“후훗. 경험치가 좀 필요해서 먼저 잡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솔저 등급 몬스터야 뭐 거기서 거기죠. 여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엘리트 가시벌들이 나올 겁니다.”
그의 말마따라 그들의 앞에 집게로 위협하는 엘리트 가시벌들이 통로에 등장했다.
통로의 밑바닥부터 옆, 위까지 달라붙은 엘리트 가시벌들이 집게를 휘두르며 다가왔다.
붉은 기운이 일렁이는 수혁의 검이 손쉽게 집게채로 엘리트 가시벌들을 토막 내는 것과 달리 류익준은 집게를 한손 검으로 막곤 다른 손으로 단검을 꺼내 가시벌을 찔렀다.
‘돈 많은 길드라더니 아이템빨이 장난 아니네.’
숭덩숭덩 가시벌들이 잘리는 모습을 본 류익준이 수혁이 들고 있는 검을 보고 군침을 흘렸다.
제법 딱딱한 집게까지 손쉽게 잘라내자 더욱 더 탐이 났다.
‘쓰벌. 다 훔쳐버리고 싶네.’
못된 욕망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가운데 통로를 가득 매운 엘리트 가시벌들은 어느새 죽음을 전부 맞이했다.
쉬-익. 쉬-익. 딱. 딱. 딱. 딱.
엘리트 가시벌들이 전부 죽자 자신의 공간에서 집게를 내세우며 위협하는 여왕가시벌만 남았다.
장군 가시벌만한 크기의 여왕벌은 크고 날카로운 집게로 침입자들을 물리치려 애썼다.
까-앙.
여왕가시벌의 집게가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류익준을 향해 쏘아지자 검과 단검을 모두 교차해 집게를 막아냈다.
“지금!”
어느새 날아오른 수혁의 검이 여왕가시벌을 스치더니 뒤에 살포시 착지했다.
집게를 뻗은 상태로 목이 떨어진 여왕가시벌이 그대로 무너졌다.
수혁이 튀어나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류익준은 갑자기 여왕가시벌이 죽어버리자 어리둥절했다.
“어?! 이렇게 손쉽게... 길드장님 실력이 장난 아니네요? 블러드 길드가 괜히 소수정예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군요. 빈자리 있으면 정말 저도 들어가고 싶네요. 하하하.”
“빈자리는 있죠. 하지만 빌런은 안 받습니다.”
뚝.
속으로 뜨끔한 류익준의 웃음이 끊기더니 경직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망고 바나나, 아니, 빌런 도플갱어. 너 맞지?”
어느새 그들이 들어온 입구로 이동한 수혁이 퇴로를 막아섰다.
“길드장님. 이런 농담은 재미없는데.”
정색하는 류익준을 아랑곳하지 않던 수혁이 자신의 검에 묻어있던 가시벌의 피를 혀로 핥았다.
가시벌 특유의 톡 쏘는 단향이 수혁의 코를 찔렀다.
그리고 류익준에게서 풍겨오는 특유의 향까지.
“너 맞아. 망고 바나나.”
“미친놈인가. 아까부터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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