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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바나나
“저희 블러드 길드의 주축인 홍영기 헌터가 잠시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 빈자리를 잠시 메꿔줄 헌터 한 분을 찾는 와중에 이렇게 지원에 열정적으로 참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러드 길드가 미국하고도 커넥션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온 헌터들이 속으로 놀랐다.
미국에도 수많은 헌터들이 있지만 국내 최고 레벨인 홍영기 헌터가 미국을 왕래하며 게이트 공략에도 참가할 뿐 아니라 비공식적인 대결도 치룬다는 말도 있었다.
그의 빈자리를 메꿀 정도의 실력자를 섭외한다는 말에 아이템 보상이 왜 그렇게 좋은 건지 다들 수긍했다.
“현재는 4명인데 어떻게 뽑으실 겁니까?”
“안 그래도 합을 안 맞춰본 상태에서 바로 베테랑 등급의 게이트를 들어갈 수는 없으니 솔저 등급의 게이트에서 다 같이 공략을 해볼 예정입니다. 혹시나 탈락하셔도 게이트의 마석분배는 똑같이 할 것이며 저희 길드차원에서 추가적인 급여도 더 드릴 예정입니다.”
자신의 질문에 수혁의 답변을 만족한 최욱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과 별개로 이명한이 손을 들었다.
“저 같은 경우는 마법 위주의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홍영기 헌터를 대신할 거라면 저는 불필요한 자원 아닙니까?”
“아무래도 비슷한 능력은 제가 더 낫긴 하죠. 크흠.”
슬쩍 자신을 어필하는 최욱을 이명한이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게이트의 내부 상황에 따라 때로는 홍영기 헌터보다 광역마법계열의 이명한 헌터님이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저희라고 무조건 홍영기 헌터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마법계열 헌터의 영입도 고려중입니다.”
“그렇죠? 마법사가 제법 쓸모가 많죠. 레벨도 적당하고. 흠흠. 블러드 길드에 마법계열의 헌터가 없어서 혹시나 했습니다. 제가 파괴력으로는 소문이 좀 나있습니다. 하하하하.”
수혁의 답변을 들은 이명한이 기세가 오르자 반대로 최욱이 그를 실눈으로 바라보았다.
둘에게 호의적인 수혁의 행동에 차분히 앉아있는 김예현과 달리 류익준은 내세울 게 뭐 없나 싶어서 입이 바짝 말랐다.
프리헌터로써 자신을 어필하는 방법 또한 실력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류익준이 손을 번쩍 들었다.
“류익준 헌터님?”
“어... 그... 제가 탱커나 마법사처럼 화력은 안 되어도 정찰이나 잠입적인 부분에서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류익준의 말을 들은 수혁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자신의 말을 경청하자 신이 난 류익준이 계속 떠들어댔다.
“제가 가진 스킬이 몬스터들을 좀 방심시킬 수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검술뿐 아니라 단검술도 능숙합니다. 게다가...”
“길드장님. 여기까지 하고 그 다음 일정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죠. 일정을 알아야 저희도 준비해야 되니까요.”
류익준에게 집중하는 수혁의 태도를 보다 못한 최욱이 말을 꺼내자 이명한도 그를 거들었다.
경쟁자가 빛을 받는 상황을 견딜 수 없는 두 사람의 협공에 류익준의 입이 다물어졌다.
‘저 새끼들이?’
“알겠습니다. 제가 잡아놓은 솔저 등급의 게이트에서 내일 다 같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만나는 시간과 장소는 연락처로 따로 드리겠습니다. 장비 잘 챙기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헌터들이 사무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수혁이 바라보고 있자 박이현이 곁에 다가왔다.
“저들 중에 도플갱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용의자는 있지.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도와줘서 고맙다.”
“고맙기는요. 제 일당 확실하게 챙겨주는 거 알죠? 보너스까지!”
“당연하지.”
박이현이 곧 다가올 보너스에 기뻐하며 환하게 웃었다.
수혁은 경험치가 오를 생각에 혀를 할짝거리며 군침을 흘렸다.
경기도 과천, 경마장을 옆에 낀 야산에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과 미리 얘기를 나누던 수혁은 헌터들이 도착하자 고개를 돌렸다.
풀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최욱이 대형 직사각형 방패인 타워 실드와 망치를, 가죽 갑옷에 두터운 로브를 뒤집어 쓴 이명한이 붉은 구슬이 달린 지팡이를 매만졌다.
마찬가지로 급소 부위에 부분적으로 강철을 덧댄 가죽 갑옷에 검과 둥근 방패를 든 김예현과 허리춤과 다리 일부에 단검 몇 개를 소지하고 어둑한 옷으로 무장을 가린 류익준이었다.
활을 매만지던 박이현이 웃음기를 뺀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게이트 관리국에 헌터면허 보여주시고 신고 마치시면 여기로 모여주세요.”
모든 준비를 마친 헌터들이 모여들자 수혁이 포지션을 정해주었다.
“게이트에 들어가니 존칭은 생략하겠습니다. 선두에 박이현 헌터, 그 뒤를 김예현 헌터, 중간에 저와 이명한 헌터, 류익준 헌터, 제일 후미에 최욱 헌터가 자리 잡겠습니다. 선두에 이상이 생기면 김예현 헌터가 앞으로 나서주시고 저와 이명한 헌터는 상황을 봐서 앞뒤로 지원하겠습니다. 류익준 헌터는 김예현 헌터에게 어그로가 너무 끌린다면 대열을 빠져나가 어그로를 분산시킨 다음 시간을 끄시면 됩니다. 이명한 헌터는 화염 마법의 위력에 저희가 휩쓸릴 수도 있으니 제가 말하기 전까지 마법은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보통은 제가 선빵 치고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길드장님 말에 따르죠.”
자신감 넘치는 이명한은 수혁의 말에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리 블러드 길드장이 레벨이 낮다고 해도 명목상 길드장인만큼 그의 명령에 대놓고 거스를 사람이 당장은 없었다.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모두들 노란 빛이 감도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울창한 밀림에 도착한 그들은 수혁의 손에 생겨난 검에 작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야... 아공간, 말로만 들었는데...”
“길드장님. 어디서 얻은 거에요?”
“...부럽다.”
“다들 조용히 합니다. 이제부터 게이트 내부에서 잡담은 금지합니다.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고 박이현 헌터는 길을 이끌도록.”
“네. 길드장님.”
정색하는 수혁과 군말 없이 따르는 박이현의 모습에 다른 헌터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들 솔저 등급의 게이트에 들어와서 한층 풀어진 마음에 수혁이 허를 찔렀다.
조용한 김예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류익준은 블러드 길드가 괜히 소수정예가 아니라는 생각에 빠졌다.
다만 최욱은 수혁이 자신들의 기강을 잡으려고 억지로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불만을 품었다.
“길드장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뭐죠?”
“홍영기 헌터가 있을 때에도 길드장님이 이렇게 주도적으로 합니까?”
후미에서 투구로 얼굴이 가려진 최욱이 물었으나 목소리에 담긴 불만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의 질문에 수혁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야 물론입니다. 불만 있습니까? 제 명령에 따르기 싫어요?”
“...”
갑작스러운 수혁과 최욱의 기싸움에 분위기가 싸늘해질 때 최욱이 양 손을 들며 항복표시를 보였다.
“하하. 뭐 그런 건 아니고, 보통은 선두에서 저 같은 탱커들이 설 경우가 많은데 후미라서 좀 어색하네요. 제가 이 중에 레벨도 제일 높은 것 같은데 좀 더 잘 써먹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건 제가 판단합니다. 상황 봐서 더 좋다고 판단되면 최욱 헌터의 포지션을 변경하죠.”
“알겠습니다. 허허. 길드장님하고 나하고 말이 좀 통한다니깐.”
일단락 된 분위기 속, 수혁에게 반기를 든 최욱을 노려보던 박이현이 허리춤의 단검을 만지작거리다 손을 뗐다.
여전히 김예현은 무표정한 얼굴만 보였지만 류익준은 흥미진진한 상황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이야. 이런 분위기 오랜만이네. 개꿀잼인데?’
중간에 끼어있던 이명한은 안절부절하다 상황이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이동합니다.”
수혁의 말에 박이현이 나침판을 꺼내 길을 앞장섰다.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박이현의 발이 멈췄다.
오른손을 들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며 적을 감지했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전투 준비. 김예현 헌터는 선두로.”
수혁의 짤막한 말과 함께 모두들 무기를 고쳐잡았다.
다만 후미에 있던 최욱만이 홀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솔저 등급의 몬스터는 자신의 방어구를 뚫지 못한다는 자신감이었다.
울창한 풀숲을 헤치고 만난 몬스터는 가시벌이었다.
덩치도 개보다 큰 벌이 침을 계속 쏘아대는 몬스터로 침에는 독까지 발려있는 놈이었다.
가시벌 한 마리가 나무에 붙어서 다리를 비비적대고 있었다.
“아씨. 곤충형이잖아? 귀찮게시리.”
뒤에서 최욱이 투덜거렸지만 모두들 속으로 동의했다.
곤충형 몬스터들은 수가 많아 상대하다보면 자잘한 상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명한 헌터는 마법은 아직 쓰지 마시고, 류익준 헌터가 가시벌의 어그로를 끌어서 한쪽으로 몰면 그때 마법으로 처리합니다. 가능하죠?”
“몰이 사냥을 하자는 말이네요? 가능은 한데... 마법을 먼저 쓰고 정석대로 해도 될 텐데 굳이 그렇게 하죠?”
“실력과 특기들 좀 보려구요. 자신 없는 건 아니겠죠?”
수혁의 도발 아닌 도발에 욱한 류익준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제가 앞에서 크게 돌아 적들을 한쪽 방향으로 몰테니 제 뒤로 큰 거 한방 날려주세요.”
“류익준 헌터님. 제가 제대로 날릴테니 걱정 말고 몬스터들 몰아오세요. 저는 그럼 주문 좀.”
“나머지분들은 마법을 맞고도 살아있는 잔당을 처리하죠.”
류익준이 발목을 살살 돌리고는 총총 제자리에서 뛰더니 빠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자신의 단검 하나를 꺼내더니 소리를 지르며 어그로를 끌었다.
“여기다-! 여기! 이 잡것들아!”
그의 목소리를 들은 수십 마리의 가시벌들이 나무에서 떨어져날며 뒤를 쫓았다.
몬스터들이 죄다 사라지자 최욱이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했다.
“우리 길드장님이 겁이 많으시네. 그냥 날 앞에 세워도 저 벌들은 내 갑옷도 못 뚫을텐데.”
“일일이 손으로 저 많은 녀석들을 잡겠다는 말입니까? 이명한 헌터의 마법 한 방이면 끝날 텐데, 마법 버틸 수 있어요?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하고.”
“에헤이. 우리 길드장님 왜케 틱틱 쏘실까. 이명한 헌터님 마법 좋은 건 나도 알지~ 근데 계속 뒤에 있으니 손이 근질근질 거려~”
계속 수혁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다.
수혁이 도플갱어 용의자인 류익준말고 다른 헌터들을 데려온 이유가 있었다.
전생에서의 기억 때문이었다.
최욱은 실력만큼이나 워낙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이 길드, 저 길드를 전전하다 결국 빌런조직인 비셔스의 일원이 되었었다.
이명한과 김예현 역시 훗날 헌터들을 살해한 혐의로 빌런헌터들에게 쫓기다 죽음에 이른다.
아직 짓지도 않은 죄를 가지고 수혁은 이들을 빌런이라 단정 짓고 먼저 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참에 이들을 겪어보고 이해해보려는 그였다.
전생에서 허무하게 죽었던 홍영기가 자신의 오른팔이 된 것처럼 이들에게도 다른 삶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인내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게이트 내부의 위계질서는 역시 말로 해서는 안 된다.
“최욱 헌터는 저에게 불만이 많군요?”
“아니지이~ 길드장님이 좀 너무한 거 같아서 그러지. 내가 홍영기 헌터였어도 이렇게 대했을까?”
“역시 말로 해서는 안되겠군.”
수혁이 검을 내려놓자 최욱이 기다렸다는 듯 망치와 방패를 내려놓았다.
“어어?!”
주문을 멈춘 이명한이 박이현을 바라보앗으나 그녀는 결과가 예상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면을 주시하던 김예현도 눈을 힐끗거리며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나 간다아-! 준비해에-!”
류익준의 뒤로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오더니 맹렬하게 쫓아오던 가시벌들이 죄다 통구이가 되었다.
몸 여기저기 나무에 긁혀 핏방울이 맺힌 류익준이 몰이사냥에 성공하자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헉. 헉. 아직도 등이 뜨겁네. 이명한 헌터님 나이스~ 그런데 최욱 헌터님은 왜 무릎꿇고 있어요? 어? 갑옷이 찌그러졌는데?”
“...”
“훌쩍.”
“?”
어디선가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은 류익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들었겠지?’
모두들 입을 열지 않는 와중에 코를 벌렁거리던 수혁이 미소를 감추곤 류익준을 바라보았다.
몸 여기저기 옅은 상처에서 새어나온 혈향이 코를 찔렀다.
“찾았다. 망고 바나나, 잠시만 쉬고 이동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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