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빌런의 무한 흡수 권능-22화 (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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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길드

파지지지직.

작은 빛무리들이 허공에 모여들더니 공간을 쥐어짰다.

알 수 없는 힘에 주물러진 공간에 균열과 함께 파란 빛이 도는 게이트가 생겨났다.

한강변에서 일광욕과 함께 여유를 즐기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침착하게 전화를 걸었다.

게이트가 생겨난 지 벌써 몇 년이 흐르자 이제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가는 일은 없어졌다.

“게이트 관리국이죠? 여기 마포대교 밑에 여의나루역 근방 공원인데요...”

신고를 받고 찾아온 세미정장차림의 남성 두 명이 게이트에 다가왔다.

그들이 들고 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 새하얗게 생긴 구슬이었다.

구슬을 게이트에 가져다대자 새파랗게 변하며 빛을 내뿜었다.

“베테랑 등급의 게이트 확인 완료.”

“나 참. 게이트 색만 보고도 알 수 있는데 왜 이렇게 해야 되는 거야? 파란 색이면 베테랑, 노란 색이면 솔져, 자주색이면 챔피언 몰라?”

“... 그걸 왜 나한테 따져? 규정대로 하잖아. 이러다가 혹시 모르지, 슈페리얼 등급인 검은색으로 확 바뀌면 네가 책임 질 거야?”

“아직 검은색 게이트는 전 세계에 생겨난 적도 없어. 내가 볼 때에는 다들 겁만 많은 게 분명해. 우릴 통제하려고 저 위에서 지어낸 게 맞아.”

“또 소설 쓰고 있네. 오튜브 좀 그만 봐라. 네가 그렇게 잘 알면 관리국 본사에 들어가지 그래?”

“곧 들어갈 거라니까? 우리 아버지가 국회에 높은 자리에 있어! 너 나한테 잘 보여야 한자리 끌어준다?”

“그 얘기는 벌써 1년째다.”

서로 투닥거리면서도 하던 일은 멈추지 않던 관리국 직원들이 절차에 따라 게이트 공략에 나설 헌터들을 물색하려했다.

“여기 지역 담당 길드가 어디지? 산마루 길드였나?”

“그럴걸? 그런데 오늘 오전에 다른 게이트 공략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뭐?! 베테랑 등급이라 2진을 쓸 수는 없는데... 그럼 그 다음 순위는?”

“한울 길드도 지금 부상자가 많다고 들었어.”

“이런... 그러면 옥션에 올려야겠네.”

게이트를 공략하면서 나온 아이템과 마석들이 실생활과 연관되며 큰돈이 되었다.

늘어나는 수요만큼 각성자들은 점점 게이트 공략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각성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여 하나의 단체를 이루었고 곧 길드화로 이어졌다.

정부에 일정 금액을 내고 그 지역에 생긴 게이트를 독점하는 길드가 있는 반면에 지금처럼 길드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남는 게이트를 공략하는 자유길드 역시 생겨났다.

남아있는 게이트는 게이트 관리국에서 경매식으로 입찰을 붙여 수수료를 받고는 길드에 넘기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사진 찍고 올릴 준비...”

“잠시만요!”

그들을 부르는 소리에 관리국 직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가온 3명의 인영에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다 그 중 낯익은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경계심을 풀었다.

우람한 팔과 가슴근육을 그대로 드러내며 치명적인 부위만 살짝 강철부분으로 감춘, 마치 현세의 바바리안이 있다면 딱 어울리는 헌터, 홍영기였다.

그의 험악한 인상과 몸만큼이나 제일 유명한 것은 국내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헌터라는 칭호였다.

실실 미소를 흘리며 부드러운 인상을 주려했으나 관리국 직원들이 움찔하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홍영기 헌터님이 여기를 어떻게?”

“마침 이 근처에서 밥 먹다가 게이트가 생겼길래 와봤습니다. 하하하.”

“그러셨군요! 지역 담당길드가 바빠서 안 그래도 옥션에 올릴 예정입니다. 그에 따라서...”

“잠깐. 우리 블러드 길드는 게이트 경매권에서 예외 적용되는 거 혹시 모르는 건 아니겠죠?”

“네?”

중간에 끼어든 말소리에 관리국 직원이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홍영기의 옆에 서있던 존재감 없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몸의 유연한 움직임을 위해 관절 부위에는 강철대신 가죽을 덧대었고 은빛의 얇은 흉갑만 입은 상태였다.

그의 옆에서 호리호리한 몸매의 젊은 여성이 몸에 활을 걸고는 껌을 씹으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이수혁 블러드 길드장님이군요. 어... 그러니까...”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모습에 다른 관리국 직원이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처음 겪는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났나 보네요. 제가 알고 있으니 이번 게이트 공략은 블러드 길드에 맡기겠습니다. 절차에 따라 게이트 공략 후 일정 부분 관리국에 수수료를 내야하는 건 아시죠?”

“그건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마시죠. 그럼 이만.”

수혁과 홍영기, 젊은 여성이 게이트로 들어가자 관리국 직원들이 씁쓸한 얼굴을 지었다.

“대체 게이트 선택권인가 뭔가는 어떻게 얻은 거야? 절차도 무시하고. 길드장의 건방진 얼굴 봤어? 와... 레벨도 낮은 게 홍영기가 옆에 있다고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됐어. 어차피 베테랑 등급이라 아무 길드나 들어올 수는 없었어. 소수정예로 제일가는 길드니까 이제 그만 신경 끄자고.”

“와... 나도 홍영기 같은 부길드장 한 명 있으면 길드 하나 차릴 텐데.”

“꿈 깨시지.”

베테랑 등급의 게이트라 최소한 60레벨의 헌터들이 공략에 참여해야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60레벨을 넘은 인원들이 손꼽는 가운데 수혁이 만든 블러드 길드의 홍영기가 근육질의 몸만큼이나 가장 높은 75레벨로써 유명세를 떨쳤다.

그와 달리 길드장인 수혁의 레벨이 한참이나 못 미친다는 것도 유명세에 한몫했다.

홍영기의 버스에 올라탄 길드라는 소문이 많이 돌았으나 게이트 공략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그 역시 홍영기빨이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진실을 아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수혁이 레벨과 상관없이 얼마나 강한지를.

게이트에 들어서자 홍영기가 미소 짓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신중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 헌터가 껌을 땅에 퉤 뱉었다.

“아니 오빠는 대체 언제까지 몸을 까고 다니는 거야? 관심종자야?”

“야. 이현아. 내가 사준 고기 그렇게 먹어놓고는 왜 또 디스야? 너... 내가 너보다 인기 많아서 질투하는구나? 그... 걸그룹이 좀 잘 안됐지? 푸하하하.”

홍영기가 박이현의 역린을 건드리자 그녀가 펄쩍 뛰었다.

“뭐래?! 우리 애들 조금만 더 했으면 대박 났거든? 최 사장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그리고 여자들은 그런 징그러운 근육은 사양이거든? 요즘 대세는 있는 듯 없는 듯 옷빨 잘사는 마른 근육이 인기거든요.”

“그런 근육은 쓸모없어! 나처럼 두꺼워야 힘 좀 쓰지! 안 그래요 사장님?”

홍영기가 자랑스럽게 팔뚝을 굽히며 힘을 주었다.

힘껏 부푼 근육 주변을 핏줄들이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프로레슬링하기 딱 좋은 몸이네.

수혁이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사장님이 아니고 길드장님이라 몇 번 말하니.”

“헤헤... 길드장님.”

홍영기는 갈수록 뇌에 근육만 차는지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만들었다.

대신 근육으로 가득 찬 강력한 몸뚱아리는 그 어떤 헌터보다도 믿을 만 했다.

무엇보다 언제나 수혁에게 믿음을 주는 좋은 동료였다.

반면 박이현은?

걸그룹이 망하고 데려온 그녀는 지난 생에서 검증된 실력자였던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특유의 재빠른 발놀림으로 일가견이 있던 그녀에게 게이트에서 나온 활을 쥐어주자 날개가 돋은 듯 더욱 날아다녔다.

전생에는 민첩함과 현란한 단검술로 명성이 높았다면, 이제는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에서 활로 적을 죽이고 가까이에서는 단검술로 근접전까지 가능한 올라운더가 되었다.

처음 그녀에게 활을 쥐어줬을 때에 손가락 아프다고 온갖 투정을 부리더니 이제는 적응되었는지 더 좋은 활을 찾아다녔다.

게다가 그녀가 마음먹고 도망 갈 때면 수혁도 쫓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할 정도였다.

단지 한 번씩 게이트에서 나온 물품을 자기 주머니로 빼돌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게 아니고서는 귀엽게 눈감아주었다.

그녀가 그렇게 돈을 밝히는 존재인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홍영기는 아직 그녀가 그렇게 빼돌린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와~ 그래도 역시 길드장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운이 좋아. 마침 딱 밥 먹고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게이트가 생겨나네. 그렇죠?”

순진무구한 얼굴로 홍영기가 수혁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수혁이 의도한 바였다라고 얘기한다면 믿어줄까?

지금 나타난 게이트에서 꼭 얻어야 할 아이템이 있었다.

전생에 이곳을 공략했던 길드에서 숨겨졌던 히든 보스를 잡고 아이템을 얻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만하고 이제 준비하자.”

“네.”

“넵.”

수혁의 말에 홍영기와 박이현이 연습된 대형으로 위치했다.

제일 앞에 박이현, 수혁이 중간, 홍영기가 제일 뒤였다.

이제는 수혁만큼이나 기감을 넓게 펼치고 각종 트랩이나 숨겨진 길을 찾는데 능숙해진 박이현을 앞세우고, 홍영기는 후방에서 덮쳐오는 불상사에 대비, 수혁은 상황에 따라 앞과 뒤를 지원해주는 방식이었다.

박이현이 과거 수혁이 사용하던 나침판을 꺼낸 뒤 먼저 앞서갔다.

그녀의 뒤를 수혁과 홍영기가 뒤따랐다.

톱날처럼 잘게 쪼개진 붉은 검신에 손잡이 끝 폼멜 부분에는 장미가 새겨진 검을 수혁이 들었다.

[붉은 장미덩쿨의 검 : 출혈을 일으켜 높은 확률로 상태이상(빈사)를 일으킨다. 신체 +17]

지난 번 게이트를 깨고 얻은 검으로 회복력이 높은 몬스터들에게 출혈을 지속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홍영기는 자신의 몸통만큼 두꺼운 망치와 화려한 용이 그려진 금빛의 방패를 양 손에 나눠들었다.

혼자서 일당백이 가능한 야만용사의 재림이었다.

성장한 홍영기의 모습에 수혁이 뿌듯함을 느꼈다.

그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죽고 없을 녀석이 이제는 자신의 곁을 든든히 지키는 존재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한참을 걸어가던 일행은 앞장서던 박이현이 손을 들며 멈추고는 바닥을 가리켰다.

무성한 잡초와 질척한 땅에 사람 몸통만한 길이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름대로 추측을 시작했다.

“발의 크기가 트롤보다 더 큰데... 발가락이 더 짧고 뭉툭한데요? 특이하네. 변종인가? 리자드맨으로 보기에는 더 두꺼운 것 같고...”

“오우거다.”

“네?! 얘기만 들었지 처음 상대해 보는데...”

“역시 길드장님은 모르는 게 없어! 봤냐? 이현아. 더 공부해라.”

“너나 잘해.”

퍽.

“아야. 이 무식한 근육덩어리.”

“흐흐.”

성질이 난 박이현이 홍영기의 종아리를 걷어찼지만 돌같이 단단한 몸 때문에 아픈 자신의 발을 부여잡았다.

“단일 개체로는 제법 강한 편이지만 오우거는 무리를 이루는 몬스터가 아니라 잡기 수월할 거다. 가죽이 질기고 강한 편이니 이현이는 오우거의 눈을 위주로 노리고, 영기 너는 관절 부분을 위주로 타격해.”

““네.””

“이제부턴 수신호로 한다.”

입을 닫고 무기를 고쳐 잡은 세 사람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오우거의 발자국과 나침판이 가리키는 방향이 일치하는 중이라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가던 와중에 박이현이 주먹을 쥔 손을 들었다.

이어서 다른 손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더니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약속된 신호를 알려줬다.

‘전방 500m 지점 오우거 1마리.’

수혁이 손짓하자 박이현이 옆에 있던 나무 위로 훌쩍 뛰어 올라 자리를 잡았다.

뒤에 있던 홍영기가 방패를 앞세우고는 수혁보다 앞으로 나섰다.

그런 홍영기에게 수혁이 귓속말을 속삭였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신중하게 접근하자.”

“옙.”

절벽 밑의 커다란 동굴 앞에서 오우거가 주저앉아 자신의 사냥감인 붉은사슴의 살가죽을 뜯어 먹고 있었다.

오우거의 주위로 알 수 없는 동물들의 뼈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조용히 다가가는 와중에 홍영기의 발이 땅에 박혀있던 뼈 하나를 실수로 밟았다.

빠드득.

“크르르?”

먹고 있던 사슴을 뱉고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오우거의 눈으로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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