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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잘 될 수 있도록
수혁과 홍영기가 특수민긴방위대 건물 앞에 도착하자 정장 입은 남성들이 주차장 안의 검정 봉고차로 안내했다.
봉고차는 창문들마저 짙은 썬팅에 가려 내부를 전혀 볼 수 없었다.
차에 타자 눈을 가릴 안대를 건네주었다.
“국가보안시설이라 위치 노출을 피하기 위한 조치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안대로 눈을 가린 수혁과 홍영기를 탄 봉고차가 한참을 달렸다.
처음 겪는 일에 긴장한 홍영기가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것과 달리 수혁은 편안하게 의자를 젖히고는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수혁의 태연한 모습에 정장의 남성들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소곤거렸다.
“김 대리님. 진짜 보통내기는 아니네요.”
“조용히 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거야.”
둘의 잡담에 다리를 떨던 홍영기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 오줌 마려운데 도착하려면 멀었어요? 좀 빨리 가면 안 될까요? 진짜 급하거든요.”
“...”
긴 시간을 달려 산 속에 봉고차가 도착하자 안대를 던지다시피한 홍영기가 후다닥 뛰쳐나갔다.
“잠시만요~!”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그를 잡으려했지만 봉고차에 같이 타고 있던 정장의 남성들이 말렸다.
찌뿌둥한 몸을 피며 스트레칭하는 수혁과 시원하게 노상방뇨를 마친 홍영기가 모이자 정장의 남성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할 일은 잊지 않았다.
“이쪽으로 가시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흙으로 된 넓은 운동장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철봉과 각종 기구들이 존재했고 저 끝에는 녹이 슨 축구 골대도 있었다.
운동장 테두리에 몇 개의 막사가 지어져있었으며 한 곳은 이마에 별 여러 개를 단 군인들이, 다른 막사에는 정장 입은 남성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을 훑어보며 운동장으로 들어가던 수혁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처음으로 알고 있던 얼굴을 본 것이다.
군인들이 대기하는 막사 가운데에서 자신의 검을 손질하는 한 남성.
호리호리한 키에 구릿빛 피부, 날카로운 눈매는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전생에서도 익히 봐온 인물, 7인의 영웅 중에 한 사람인 김상중이었다.
홍영기 이후로 마주친 2번째 영웅이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홍영기는 어린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그를 따라다녔지만, 김상중은 그 자체로 완성된 군인이 확실했다.
김상중은 훗날 대한민국 초대 헌터협회장으로 취임하며 헌터협회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비록 그가 정부의 명령에 충실히 따른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군인신분을 나와 민간헌터의 활성화에 이바지한 업적이 매우 컸다.
헌터협회장으로써 빌런이었던 자신에게 현상금을 건 장본인이기도 했고.
“재밌네.”
그리고 수혁이 다가오는 모습을 김상중 역시 발견했다.
“저 자군요. 이수혁. 긴장감이 전혀 없네요.”
“그래. 어찌나 거만한지 자네가 한 수 보여줘. 단, 스킬 사용은 금지야. 민간인에게 전력노출을 할 수는 없어. 순수한 육체로만 싸우며 저 알파가 숨기고 있는 걸 끌어내는 것이 목표야.”
“해보겠습니다.”
정작과장과 대화를 나눈 김상중의 곁에 별이 3개가 박힌 군모를 쓰고 풍채 좋은 군인이 다가왔다.
“김상중 대원. 위에서도 자네에게 기대가 많아. 얘기 들었겠지만 스킬은 아끼고, 가능하면 저 자의 팔 다리 하나쯤은 부러트려도 되네. 최대한 기를 좀 꺾어놓자고. 크흠.”
“...민간인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민간인이라니. 무기를 함부로 들고 다니는 자가 어떻게 민간인인가? 잠재적 테러용의자지. 안 그런가? 크흠. 시키는 대로만 하게.”
“...알겠습니다. 충성.”
풍채 좋은 군인이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굳은 표정의 김상중을 정작과장이 살살 달래주었다.
“자네는 우리 한국의 희망이야. 자네에게 기대치가 너무 커서 그러는 거니 실망하지 마. 높으신 분들도 많이 왔으니 잘 보여서 점수 따면 좋지. 안 그래?”
“...일단 임무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럼~ 내가 너무 방해했지? 쉬고 있어. 김 상사 차례는 다음이니까. 우선은 알파와 같이 다니는 팀원이 먼저야.”
수혁과 홍영기의 막사는 운동장 반대편에 위치했다.
제일 먼저 홍영기가 국정원에서 나온 각성자와 겨루기로 했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성이 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운동장으로 걸어오는데 손놀림이 심상치 않았다.
검도를 오랫동안 수련한 것처럼 보였다.
수혁이 심미안으로 바라보자 레벨이 4로써 홍영기와 같았다.
“사장님. 저 할 수 있겠죠?”
“네 상대.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 사람이다. 기술적으로 덤비지 말고 힘으로,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라. 좋은 방패로 들이 받아버려.”
“넵.”
운동장에서 두 남자가 마주보고 섰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국정원 측 막사에서 응원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리. 파이팅!”
“씁. 쪽팔리게. 시끄럽다. 지면 각오하라 그래.”
막사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가운데에 선 김영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검도 경력이 얼만데 이런 시합은 처음이네.’
순박한 눈망울과 달리 험상궂은 인상과 큰 덩치에 김영수는 상대방을 가볍게 본 것을 취소했다.
게다가 홍영기가 들고 있는 방패표면이 번쩍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자신이 들고 있는 일본도가 초라해질 만큼.
둘 사이에 서있던 소령 계급의 심판이 주의사항을 일렀다.
“너무 격렬하게 하지는 마시고, 목숨을 빼앗고 그러면 안 됩니다. 다들 안전이 최우선 아시죠? 제가 격렬하다 싶으면 방패 들고 둘 사이에 끼어들 테니 즉시 멈추세요.”
“네.”
“옙.”
심판이 뒤로 물러나며 호루라기를 크게 불었다.
서로 목례 후 거리를 벌린 뒤 탐색하던 와중에 김영수가 선공을 날렸다.
검도 특유의 가벼운 발놀림으로 다가간 그는 재빠르게 검을 날렸다.
홍영기의 카이트실드에 막혔으나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사방팔방 김영수의 검격이 공간을 지배하자 홍영기는 방패로 몸만 가리고는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으악. 너무 빨라.’
몬스터와 싸울 때에는 단순하게 체격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사람을 상대하자 경험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끊임없이 두들겨 맞는 와중에 수혁이 지시한 내용이 떠올랐다.
‘방패로, 힘으로 밀어붙이기! 조금만 더... 빈틈만 보여라.’
김영수 역시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방패 너머를 공략하고 싶지만 생각보다 단단한 방어를 쉽사리 뚫지는 못했다.
방패를 두들기는 자신의 검이 오히려 낭창거리며 위험한 신호를 보냈다.
‘이러다 검이 먼저 깨지겠어.’
검의 내구도에 불안감을 느껴 잠시 검을 회수한 틈을 타 홍영기가 곧바로 방패로 밀고 들어왔다.
“이얍!”
“크윽.”
방어에 수월했던 홍영기와 달리 김영수는 어려움을 겪었다.
힘과 덩치에 자신 있는 홍영기가 질 좋은 방패를 바탕으로 밀어붙이자 검만 들고 있던 김영수는 맞붙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국 뒷걸음질만 치던 김영수의 스텝이 꼬이는 와중에 홍영기가 방패로 밀어버렸다.
“으헉.”
넘어진 김영수의 머리 옆으로 홍영기의 고블린 전사의 검이 바닥에 꽂혔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둘 사이에 심판이 끼어들었다.
“휘리리릭-! 그만! 시합 중지!”
“헉. 헉. 헉. 수고하셨습니다.”
“... 수고했습니다.”
기뻐하는 홍영기가 손을 치켜들며 막사로 복귀했다.
침울한 김영수가 복귀한 막사에서 여러 가지 욕이 큰 소리로 들려오며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보다 못한 옆 막사의 군인들이 다가가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잘했다.”
“헤헤. 그런데 저 때문에 많이 깨지는 거 같은데요. 괜히 미안하네요.”
“지금이야 이렇게 웃고 욕이나 먹으며 끝나지. 만약 이게 게이트 내부였다고 생각해봐라. 너한테 죽은 것과 다름없어. 하지만 저 사람이 좋은 무기를 들었다면 패배한 것은 너였을 거야. 왜 게이트에서 나온 아이템을 가지고 서로 죽고 죽이는지 잘 알겠지?”
“...그렇네요. 휴우... 몬스터와 싸울 때와는 너무도 달랐어요. 많이 부족한 걸 느꼈어요.”
“좀 더 경험을 쌓다보면 좋아질 거다. 그래도 그만하면 잘했어.”
“그러면... 보너스? 아얏.”
홍영기에게 꿀밤을 날려주었다.
틈만 보이면 보너스 타령이군.
저번에 카드로 실컷 사먹게 해줬더니 못된 버릇이 들어버렸다.
머리를 문지르는 홍영기를 뒤로 하고는 수혁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흑색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그와 마주본 김상중의 손에는 날이 잘든 장검이 햇빛에 번득였다.
“이수혁씨. 제 검은 티타늄합금검으로 국내에도 몇 없는 최고급 검입니다. 원하시면 같은 강도의 검이나 비슷한 급의 무기를 빌려드리겠습니다. 그런 나무몽둥이 말구요.”
예상외로 배려하는 말에 수혁이 눈을 치켜떴다.
그동안 갖고 있던 이미지로는, 전투에 들어선 다음부터 승리를 위해 자비가 없기로 손꼽았었다.
그런 전생의 이미지와 정반대의 모습에 수혁은 자신의 선입견이 아직 전생에 멈춰있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러니 김상중의 배려심에 수혁이 굳이 안 좋은 첫인상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기왕이면 이번에는 친하게 지내고 싶다.
현상금이 걸리는 것이 아닌 당당한 헌터로.
“괜찮습니다. 이건 게이트에서 얻은 거라 그쪽 무기보다 단단하거든요.”
“듣다보니 제법 유용한 정보처럼 들리는군요. 게이트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인류의 기술력보다 낫다구요?”
“직접 확인해 보시죠.”
아직까지는 다들 잘 알지 못했다.
인간이 만든 무기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무기보다 성능에 한계치가 있었다.
원리는 모르지만 특유의 마력이 담겨있기 때문에 급이 높아질수록 어떠한 합금보다 단단했다.
지금이야 고블린이나 상대하니 무리가 없지만 조만간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이만하면 좋은 정보를 줬다고 치자.
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심판이 수혁의 손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것과 같이 주의사항을 말하고는 곧바로 호루라기를 불었다.
“김상중 상사는 707 최고의 대원으로 특공무술 3단, 태권도 2단, 유도 2단, 검도 2단, 총합 9단의 유단자이며 각성자 레벨도 5로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습니다.”
정작과장이 막사 중앙에 서서 김상중 상사의 실력을 어필했다.
이번 기회에 고생만 하던 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싶었다.
그러나 막사 내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다른 군인들의 표정이 심각했다.
“최고의 대원이라며? 저기 대등하게 맞서는 저 알파는 대체 뭔가?”
“네?!”
그제서야 정작과장도 몸을 돌려 전투를 관전했다.
김상중이 휘두른 검과 수혁의 몽둥이가 부딪치며 파열음을 냈다.
귀청을 때리는 쇳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몽둥이가 흠집조차 나지 않자 김상중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까 자신이 했던 배려가 무의미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진짜 단단하군.”
“그렇죠? 게이트 내부에는 이런 아이템들이 쏟아지죠. 앞으로 이런 것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쏟아질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수혁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흘린 김상중이 검을 찔러 넣었다.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뭡니까?”
검을 옆으로 쳐내며 몽둥이를 밑에서 위로 쳐올렸다.
미세한 간격으로 얼굴 옆을 스치고 간 덕에 김상중은 한 쪽 뺨이 얼얼했다.
“그런 게이트를 국가에서만 독점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
아직은 군인물이 빠지려면 멀었나?
김상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혁도 그가 어떤 계기로 군인을 그만두고 민간헌터시장을 활성화했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다만, 그가 헌터협회장 직책을 잘 수행했었기에 대한민국에서 탑에 오를만한 각성자들이 여럿 나왔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시기를 앞당겨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 사람들을 개화시키도록 했으면 싶었다.
실력자들이 많아질수록 탑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거기에 실력 있는 빌런들이 늘어나면 수혁이 잡아먹을 먹잇감도 늘어난다.
고로 수혁의 능력도 높아진다.
모두가 윈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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