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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면 찾는다.
“사장님이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줄 몰랐어요. 레벨만 듣고 판단하다니 실력도 모르면서... 참 나. 사람 급하다고 할 땐 언제고...”
홍영기가 김철진 대령의 태도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혁이 오히려 피식 미소를 지었다.
“내 레벨만 듣고 게이트를 우습게 보니 잘됐다. 실적에 눈이 먼 군인이 무슨 짓을 할지는 뻔하지. 조금만 기다려봐. 애걸복걸 하게 될 테니. 우선은 가볼 곳이 있어.”
수혁이 간 곳은 부산의 중심지이자 번화가인 서면이었다.
이곳에 요트를 팔고 대신 받은 건물이 위치했다.
막상 서면에 도착한 뒤, 홍영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번화가라더니 사람은 없고 죄다 군인 아니면 경찰뿐이네요.”
간간이 개인적으로 호신용 무기를 든 사람들이 지나가긴 했다.
현재 활기를 잃어버린 번화가가 간신히 인공호흡기만 부착한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 혼란이 해결될 걸 알지만 그때까지 수혁이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서면역 부근의 한 카페에 들어가자 사전에 보기로 했던 중년의 건물 관리인이 고개 숙이며 그를 맞이했다.
“김필두입니다. 편하게 대해주시죠. 저를 계속해서 관리인으로 승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악수로 인사한 뒤 건물의 전반적인 얘기를 나눌수록 어려운 현재 상황이 드러났다.
“지금 입점한 업체들 모두 도산 직전입니다. 온 도시가 쏟아지는 그 괴물들로 경제가 마비상태에 가깝습니다. 그 중 제일 문제인 건... 그 게이트가 건물 입구에 떡하니 있다는 거죠. 손님은 들어오지도 못해요. 군인들이 막고 있으니.”
“흠... 잘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해결하죠. 입점해있는 상가사장님들한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전달해주세요.”
“네? 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되길 물 떠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내 건물인데.”
관리인과 함께 자신의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얘기에서 들은 대로 군인들이 진을 치고는 게이트에서 나오는 고블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총이 아닌 검과 방패로 무장한 점이었다.
심미안을 통해 군인들을 살펴보자 레벨 1, 2등 각성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수혁이 다가서자 날카롭게 경계하던 군인들이 길을 막아섰다.
“정지. 여기는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입니다. 다른 곳으로 돌아가세요.”
“야이 정 상병. 눈을 어디다 뜨고 다녀? 저기 방패랑 검 안보여? 우리도 퇴근해야지~”
하사 계급장을 한 군인이 정 상병의 방탄모를 한 대 툭 치더니 실실 웃었다.
“특민방 대원들이십니까? 지원이 좀 늦었네요. 따라오시죠. 중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 보였지만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홍영기가 수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사장님.”
“쉿.”
군인의 안내에 따라 간 막사 내부에서는 대위 계급장을 한 군인이 믹스커피를 타먹고 있었다.
“충성! 중대장님. 특민방에서 왔습니다.”
“후루룩. 그래? 다들 고생이 많습니다. 이리 앉으시죠. 그런데 두 분뿐입니까? 하긴, 이번에 내려진 명령에 다들 바쁘긴 하겠네요. 저희는 게이트 진입 준비가 끝났는데 바로 들어갈까요?”
아무래도 수혁이 게이트를 깼다는 소식에 게이트를 공략하라는 전체적인 명령이 하달된 것 같았다.
“몇 명이 들어갑니까?”
“저 포함 부대원은 열 명입니다. 제일 레벨이 높은 자들이죠. 여러분까지 합치면 총 열 둘이 되겠군요. 이제 다들 고블린 사냥에는 이골이 났습니다. 레벨이란게 좀 오르니 별거 아니더군요. 듣자하니 게이트에서는 고블린들만 나온다던데, 저 빌어먹을 게이트를 깨부수고 퇴근 좀 해야죠. 김 하사. 이분들께 전투식량하고 랜턴, 무기 좀 드려.”
“무기는 괜찮습니다.”
그 말에 중대장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홍영기가 들고 있던 은색의 카이트실드로 향했다.
“역시 사제가 좋긴 좋죠. 이 분은 필요 없는데 본인은...?”
어느새 수혁의 손에 짙은 흑갈색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몽둥이에 중대장의 가느다란 눈이 크게 떠졌다.
“우와... 이게 그 스킬인가 그건가요? 얘기만 들어봤는데 신기하네요. 부럽기도 하고, 우리 대원도 스킬 생긴 녀석이 하나 있는데 제법 쓸 만합니다. 손에서 불덩이가 나오더라구요. 하하하. 말이 길었네요. 저희 대원들이 준비를 마치는 동안 잠시 커피 한 잔 드시고 계시죠.”
믹스커피를 타며 쉬는 동안 막사 앞에 게이트에 들어갈 대원들이 전부 모였다.
무거운 군장을 짊어진 군인들이 총 대신 검과 방패를 들고 오와 열을 맞추었다.
군장의 크기로만 따지면 게이트에서 일주일은 너끈히 버틸 수 있어보였다.
그들의 앞에 선 중대장은 막사 내부에서의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비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얼마나 걸릴지, 위험한 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다. 절대적으로 방심하지 말고! 똘똘 뭉친다면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며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방탄모를 꽉 묶은 중대장과 대원들 모두 비장한 각오를 통한 열의에 휩싸이고 있었다.
고작 고블린 게이트란 걸 아는 수혁은 과한 걱정에 쌓인 군인들을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오히려 홍영기가 군인들을 비웃다 정색하는 수혁에게 한소리 들었다.
“네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네. 저 사람들을 비웃지 마라. 명령 하나로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사명감이 있는 자들이다.”
“네...”
풀 죽은 홍영기의 등을 손바닥으로 툭 쳐준 수혁이 막사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 인사도 할 겸. 저 사람들한테 네 방패 자랑도 좀 하고.”
빛나는 은빛 카이트실드를 본 군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찰용 진압방패를 들고 있던 군인들이 자신들의 방패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어느새 콧대가 높아진 홍영기가 금세 미소를 되찾고 시시덕거렸다.
그 모습에 수혁이 피식 웃었다.
“들어갑시다. 대열 지켜. 방패병들 먼저!”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군인들이 오와 열을 맞추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지긋지긋한 괴물들과의 전투에 이골이 난 군인들과 자신의 건물을 위한 수혁이 각자의 생각에 빠진 뒤 게이트로 들어갔다.
같은 시각, 김철진 대령이 실시간으로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보고를 받았다.
“특민방 2, 3, 4, 5부대 국가중요시설 주변 게이트 진입했습니다. 53사단에서 지원받은 8개의 병력들 역시 도심지 주요 시설들 주변 게이트 진입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김철진 대령의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참모진 중 하나인 이명현 소령이 우려스러운 눈매를 감추지 못했다.
“대령님. 상부에서 허락하지 않았는데 괜찮겠습니까?”
“이 소령.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몰라? 그 동안은 정보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때론 과감하게 나가야 하는 법이야. 레벨 1짜리도 깨는 데 우리 대원들이나 열심히 레벨 올린 군인들이 못 깰 이유가 뭐야? 그리고 그때와 달리 식량에 각종 보급품까지 최대한 챙겨 갔으니 너무 걱정 마.”
“작전의 성공률은 시뮬레이션 결과 절반 이하로...”
“야 임마! 그 놈의 시뮬레이션은 대체 무슨 기준이야? 7명이 들어갔을 때보다 2배는 더 많은 인원들, 평균 레벨도 높아! 그깟 고블린 몇 놈 몰려온다고 당할 수준이 아니라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실적 보고서나 미리 작성해 놔. VIP께 직통으로 갈 수 있도록.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별 한 번 달아보자. 너도 나도.”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무장을 한 다섯의 인원이 다급한 표정으로 수혁의 건물 입구에 다가왔다.
어김없이 경계하던 정 상병이 그들을 막아섰다.
“정지! 이곳은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입니다.”
“우리는 특수민간방위대 대원들입니다. 지원요청에 조금 늦었네요.”
“? 이미 지원병력들은 도착해서 게이트에 진입했습니다.”
“???”
영문을 모르는 특수민간방위대 대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게이트의 빛이 일렁이며 움찔거렸다.
주변에서 대기하던 군인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검을 겨누곤 침을 꿀꺽 삼켰다.
일렁이던 빛이 밝아지더니 게이트에서 수혁을 비롯한 군인들이 나타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군인들 모두가 수혁을 감싸며 고맙다는 말을 연달아 날렸다.
특히나 중대장은 그의 손을 붙잡으며 연신 흔들어댔다.
“희생자도 없고 작전시간도 단축되고, 덕분에 무사히 작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나침판 아이템이 정말 좋더군요. 탐이 납니다. 하하하하. 상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얼마 만에 집에 갈 수 있는지! 다음에 또 뵙죠.”
“별 말씀을.”
수혁과 중대장이 마무리 인사를 하는 사이 병장 계급장을 한 사내가 홍영기에게 쭈뼛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고블린한테 목이 뜯길 뻔 했는데 덕분에 살았어요.”
“저야말로 팀워크를 잘 배웠습니다. 보다시피 저희 팀플이 영...”
슬쩍 수혁을 바라보던 홍영기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눈을 돌렸다.
그 모습에 수혁이 혀를 찼다.
“쯧. 우리는 가자.”
“앗! 넵!”
군인들의 환대한 작별인사를 받으며 수혁이 자리를 떴다.
게이트를 공략했다는 소식은 상황실에서 작전이 시작된 직후부터 줄담배를 피우던 김철진 대령에게 보고되었다.
“들었지? 이 소령. 내가 된다고 했잖아. 진입한지 3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벌써 공략했다고! 이제 다른 게이트 소식만 기다리면 되겠어~ 푸하하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김철진 대령이 환하게 웃자 다른 참모진들이 같이 따라 웃었다.
“저는 대령님의 작전이 먹혀들어갈 걸 알았습니다.”
“시뮬레이션이라는게 결국 콤퓨터 아닙니까. 사람 일을 어찌 콤퓨터가 계산 한답니까? 하하하하. 그 놈의 콤퓨터는 무슨.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면 군말 없이 따라야지. 안 그래? 이 소령.”
“...”
사사건건 이명현 소령을 트집 잡던 참모부장 최인식 중령이 대놓고 면박을 주었다.
‘작전이라고 해봐야 더 많은 인원과 식량 등을 챙긴 게 전부면서 얼마나 대단한 걸 했다고.’
속으로 투덜대는 이명현 소령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
줄곧 자신에게 쓴소리를 내뱉던 이명현 소령이 아무런 말을 못하자 김철진 대령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냈다.
“크흠. 최 중령. 이 소령은 자기 소임을 다 한 거니 너무 뭐라 하지 말게. 이제 다른 소식들도 기다려 보자구.”
“역시 대령님은 배포가 크십니다. 허허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뒤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속보입니다. 부산 시내의 군인들이 게이트에 진입한 뒤 8일째 돌아오지 않아 사망으로 추정한다는 소식이 마구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리한 진입이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한 김모 대령이 참모들의 의견마저 묵살한 채 게이트의 진입 명령을 내린 것은 일주일 전 오전 10시 경...]
[게이트를 깬 생존자 1명만 홀로 귀환했다는 소식이 현재 전해지는 와중에...]
[게이트를 최초로 공략했다는 인원들과 다른 인원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났길래 이런 대참사가 벌어진 것일까요? 저희 취재팀이...]
해운대의 고급호텔에 묵고 있던 수혁과 홍영기가 뉴스에서 쏟아지는 비난뉴스를 지켜보고 있었다.
실오라기에 가운만 걸친 수혁의 탄탄한 몸을 부럽다는 듯 쳐다보던 홍영기가 곧장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완전 큰일 났네요. 저 사람들이 없으면 이제 시민들을 누가 지키나요.”
“누구긴 누구겠어.”
“누군데요?”
우우웅. 우우웅.
진동으로 바꿔놓은 수혁의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스마트폰을 든 수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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