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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으로
따다다당. 티딕. 티딕.
“부소대장님. 총알이 다 떨어졌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고블린들이 낡은 갑옷을 걸치며 잘 죽지 않자 총알을 소모하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곳곳에서 병사들의 총알이 떨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쏟아져오던 고블린 웨이브는 곧 군인들의 승리로 끝났다.
강원도 원주 외곽지를 방어하던 군인들은 오지 않는 보급에 사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 부소대장인 임 하사가 구석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소대장을 찾아갔다.
“소대장님. 지금 총알이 없어서 난립니다. 총알을 안주고 어떻게 싸우라는 겁니까?”
임 하사의 불만에 짙은 담배연기를 내뿜은 소대장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시발... 상부의 명령이야. 더 이상 보급은 없어.”
“네?! 그게 무슨...”
“앞으로 총 대신 대검으로 싸우란다.”“...미친 거 아닙니까?”
황당한 얼굴의 임 하사에게 소대장이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현재 도심지에 나타난 몬스터들을 근접무기로 직접 죽이자 각성이란 것을 한다는군. 각성을 하면 힘도 세지고 무슨 스킬도 생긴대 게임처럼. 경찰들이나 민간인들 중에 각성자가 나타났대.”
“그걸 지금 우리 목숨 걸고 하라는 얘기입니까?”
“그래... 시파. 전원 각성을 목표로 하란다. 우리뿐 아니라 현재 특수부대는 전원 총기 반납하고 직접 칼 들고 돌아다닌데. 일 년 뒤면 전역이었는데 거지같네.”
“하... 저도 하나 주십시오.”
소대장이 건네주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도 붙이기 전 경보음이 울렸다.
“퉷. 쉴 틈을 안주네.”
한참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다시 장구류를 차고 나왔다.
탄창 없는 빈 벨트만 차고나온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쏟아지는 불안한 눈빛을 그대로 무시한 소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자신마저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전원 착검-!!!”
“이 검을 써라.”
“헤헤. 감사합니다. 사장님.”
녹이 슨 고블린 전사의 검은 홍영기의 힘을 계속해서 버티지 못했다.
수혁에게 검을 쓰는 법을 배운 그는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몬스터를 잡는데 더 이상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며칠간 지켜보던 수혁은 곧 게이트에도 홍영기를 데리고 들어갔다.
정신을 잃지 않아도 야수처럼 적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몬스터들이 자신의 원수라도 되는 양 온 힘을 다했지만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다만, 한 번씩 적들에게 둘러싸여 광폭화가 진행되어도 이상하게 수혁이 몽둥이를 들고 있으면 눈치를 보며 덤벼들지 않았다.
몇 번 맞다보니 학습이 된 것처럼.
이제 고블린들을 사냥하고 피를 흡수해도 능력치의 상승이 멈춰버리자 게이트의 일반 몬스터는 홍영기에게 넘기고 보스몬스터만 수혁이 잡았다.
그의 무지막지한 경험치 양은 채워질 기미가 안보였다.
“이제 부산으로 가실 건가요?”
“그래. 섬에서 성장이 더뎌서 안 되겠다. 육지로 들어가야지.”
“드디어 가는구나!”
게이트를 부수자 그 다음 상위 몬스터들이 나오지 않았다.
지나오는 섬들을 공략하던 그들은 곧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의 요트 선착장에는 배가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수혁이 도착해 배를 정박하는 사이 몇몇 정장 입은 남성들이 초조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사장님? 실례지만 이 요트 저에게 파시겠습니까?”
“제 요트를요? 왜죠?”
“그... 현재 도심 곳곳에 몬스터들이 나타나 혼란한 상황이라 잠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있으려 합니다. 제가 모시는 회장님께서 후한 값에 사주실 겁니다.”
“흠...”
초반 게이트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로 인한 혼란기는 각성자들이 쏟아진 후 변화가 시작되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대신 곳곳에 무작위로 게이트들이 생겨날 뿐.
그 뒤에는 생겨난 게이트들을 각성자들의 바뀐 명칭, 일명 헌터들이 가서 공략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생에서도 여러 가지 이론들이 많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 하나 있었다.
인류의 각성자 비율이 어느 이상 되는 순간부터 게이트가 폭주하는 걸 멈춘다는 이론.
탑이 나타나는 것 역시 고렙 각성자들이 어느 정도 일정 숫자가 충족되자 나타났다는 말도 있었다.
지금은 각성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시기이고 조만간 질 좋은 씨앗을 솎아낼 시기가 다가올 예정이었다.
이 사실은 수혁만 알고 있으니 저 돈만 많은 초조한 부자들은 당장 바다에 나가고 싶을 것이었다.
“100억.”
“네?”
“100억에 깔끔하게 넘기겠습니다.”
“자... 잠시만 통화해보고 오겠습니다.”
정장의 남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는 사이 홍영기가 놀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100억이라니...”
“왜?”
“상상도 못갈 금액이라서요.”
“자기 목숨이 귀중한 걸 알면 100억도 싼 편이지.”
통화가 끝나길 기다리는 사이 이번엔 두툼한 금목걸이를 한 중년의 사내가 멀리서부터 뛰어왔다.
“헉. 헉. 이봐요.”
“...?”
“요트 나한테 팔래요?”
“미안하지만 선약이 있어서.”
턱짓으로 통화중인 남성을 가리키자 금목걸이의 사내는 침을 꿀떡 삼켰다.
“얼마에 팔았죠?”
“아직 판 건 아닙니다. 100억에 가격 제시를 했을 뿐.”
“그래요? 그러면 내가 105억! 5억 더 얹어줄 테니 나한테 팔아요.”
“잠시만요. 지금 우리가 협상하고 있는데 당신 뭡니까?”
“협상? 협상을 당신만 할 수 있나? 아직 도장 찍은 것도 아닌데?”
수혁을 앞에 두고는 두 사내가 언쟁을 벌이더니 이내 경쟁처럼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110억!”
“나는 113억!”
“이 사람이? 나는 120억!”
“... 잠시만요. 통화 좀. 네. 네. 회장님. 알겠습니다. 130억!”
“140억!”
액수가 점점 올라가면서 홍영기의 벌린 입도 같이 커져갔다.
수혁만이 팔짱을 끼곤 흥미롭게 듣고 있다 말을 꺼냈다.
“이래선 끝이 없겠군요. 제일 높은 액수를 제시하는 분께 팔겠습니다.”
“180억!”
금목걸이 사내가 의기양양한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마치 자신의 승리가 다가온 것처럼.
정장의 사내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더니 스피커폰으로 바꾸었다.
스피커폰에서 중후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50억. 200억은 현찰로 주고 부산의 50억원어치의 건물까지 같이 넘기겠네.
“뭐... 뭣?!”
더 이상 금목걸이 사내는 가격을 제시하지 못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정장의 사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은 거래군요.”
“감사합니다. 계좌로 곧바로 현금을 보내겠습니다. 담당 변호사가 곧바로 관련 문서까지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금목걸이 사내는 참담한 표정을 짓다 얼굴이 붉어지더니 버럭 성질을 부렸다.
“야 임마!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 장난질을 부려?”
수혁은 참지 않았다.
곧바로 금목걸이 사내의 멱살을 잡더니 한 팔로 바다에 던져버렸다.
“으아아-!!! 어푸. 어푸. 사람 살려!”
그 모습을 지켜본 정장 입은 사내가 눈치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날렸다.
“혹시 각성자십니까?”
“음? 각성에 대해 잘 압니까?”
“네. 요즘 곳곳에서 게임처럼 몬스터들을 잡으며 힘이 세졌다고 하더군요. 각성자들이 도심에서 활약하는 터에 그나마 진정이 좀 되고 있습니다.”
“부산 도시에 몬스터들이 많이 나옵니까?”
“네... 예전에는 맨 몸의 고블린들이 나오더니 이제는 막 사람처럼 갑옷을 입고 무기를 휘두르고 다닙니다. 경찰이나 군인이 총을 쏴도 잘 죽지도 않더군요. 그 조그만 녀석들을 잡는데 무슨 대포나 미사일을 쏠 수도 없고... 건물주들이 건물 부셔진다고 지금 난리도 아닙니다.”
“각성자가 필요한 시점이군요.”
“네... 혹시 그래서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신 겁니까?”
수혁은 옅은 미소만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뿔테 안경을 쓴 변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요트에 다가왔다.
“세금이나 명의이전 문제는 전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곳에 싸인만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건물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상업지구 제일 최중심지에 있는 곳으로 쇼핑하고 영화관까지 전부 입점한 건물입니다. 예전에는 300억으로도 못 사던 건물이었는데 아시다시피 시세가 좀 많이 떨어져서...”“좋습니다. 싸인하죠.”
현재는 몬스터들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느라 경제나 인프라가 마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게이트 사태가 진정되면 떨어진 시세는 금방 복구되고 경제는 예전처럼 정상 가동 될 예정이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계약과 함께 수혁은 요트의 키를 정장의 사내에게 넘겨주었다.
“이래보여도 몇 달 안 된 새 거입니다. 잘 쓰시길.”
“네. 사장님.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수혁은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는 아직도 얼이 빠져있는 홍영기의 손을 잡고 선착장을 빠져나왔다.
“정신 차려.”
“... 아버지가 저한테 공부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버는 직장 가지라고 맨날 그러셨거든요. 형사 일은 힘들고 돈 안 된다고... 뭔가 기분이 이상해요.”
“네가 왜 이상해? 이거 내 돈이야.”
“... 저 월급 주신다고 했잖아요. 월급 올려주는 거 아니에요?”
“너 계약서를 똑바로 안 봤구나?”
자리를 뜨는 수혁의 뒤로 홍영기가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졌다.
계약서를 꺼내 읽던 그는 창백해진 얼굴을 지었다.
“사... 사장님?! 자... 잠시만요! 사장님? 사장... 야... 이 새끼야!”
머리에는 혹이, 한쪽 눈에는 시퍼렇게 멍이 든 홍영기가 라면 면발을 빨아들였다.
“후루룹. 저... 사장님. 돈도 많은데 꼭 라면 먹어야 되요?”
“라면이 제일 맛있지 않냐?”
“맛은 있는데 제일은 아닌데...”
“월급 받으면 네 돈 주고 사먹어.”
“그 월급이 레벨을 올려야 늘어나는 거잖아요!”
“돈 더 받고 싶으면 레벨을 올려. 참 쉽지?”
콧김을 내뿜은 홍영기가 라면그릇을 통째로 들고 들이키더니 분식집 종업원을 불렀다.
“한 그릇 더요! 김밥도!”
라면을 3그릇이나 더 먹은 홍영기가 배를 두드리며 이쑤시개로 입을 쑤셨다.
아직 한창인 나이에 각성까지 해더니 왕성한 식욕을 보였다.
이 식대는 물론 나중에 청구할 것이다.
“꺄아아악-!!!”
“몬스터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다니는 사람들을 본 그들은 곧바로 몬스터가 나왔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낡은 갑옷과 녹슨 검, 도끼 등을 가진 고블린들이 땅에 쓰러진 사람을 마구 찍어댔다.
“이 개자식들이!”
분개한 홍영기가 수혁에게 건네받은 검을 곧바로 휘둘렀다.
이어서 수혁 역시 몽둥이로 고블린들의 머리통을 깨부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들은 즐비한 시체가 되었고 수혁은 바닥에 떨어진 피들을 빨아들였다.
이제 남은 건 길 한복판에 나타난 게이트뿐이었다.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발을 뗐을 때였다.
“저기요! 잠시만요!”
“?”
고개를 돌리자 십여 명의 사람들이 각자 날이 선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를 잡고 얻은 조악한 무기가 아닌 사람이 만든 장검, 손도끼와 경찰용 진압방패 등을 들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서 부리부리한 눈매의 남성이 말을 걸었다.
“이 몬스터들 직접 죽이신 겁니까?”
“그렇다면?”
“... 이곳은 저희 특수민간방위대 직할구역입니다. 실례지만 소속이 어디시죠?”
저들이 보여주는 눈빛은 수혁이 매우 잘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자신들의 경험치를 빼앗겨서 욕심이 나는 눈빛.
수혁은 그들을 무시한 채 홍영기와 함께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저... 저기 안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
“뭐가 나올 줄 알고?”
“김일호 부대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모두들 부리부리한 눈매의 김일호를 쳐다보았다.
겁은 나고 욕심은 그득하고,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 소재를 분명 자신에게 덮어씌울 생각이 분명했다.
그러나 김일호 역시 눈앞의 경험치를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바뀐 세상의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중이었으니까.
“우리도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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