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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이란
“자... 잠시만요. 새... 생각할 시간 좀...”
수혁이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 바라보자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라면을 먹는 동안 홍영기는 쪼그린 두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생각 끝났냐?”
“재촉 좀 하지 마세요!”
“큭큭큭. 기운이 좀 나나보네?”
소리를 지른 홍영기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 겁쟁이에요... 부모님 복수를 할 용기도 없고, 스스로 죽을 자신도 없어요...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몇 년 뒤에는 영웅의 칭호를 가질만큼 잠재력이 풍부한 녀석이다.
이번 기회에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심미안을 사용했다.
[홍영기-Lv 2.(노비스)]
“레벨이 벌써 2?”
“네?! 그걸 어떻게... 그게 대체 뭔지 아세요?”
능력치가 얼마나 올랐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성장세는 빠르다.
육지에서 군인들의 보호를 받는 자들이라면 벌써 이렇게 레벨 업을 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신체하고 마력 능력치가 몇이야?”
“음... 신체가 15에 마력은 7이요.”
“벌써?!”
종합전투력이 22로 현재 25인 본인과 몇 차이가 나지 않는다.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신체능력치가 최대로 증가하는 수준이다.
거기에 광폭화라는 능력도 갖추고 있고... 구미가 당긴다.
마침 자질구레한 빨래 같은 잡일도 계속하기 귀찮았다.
“나하고 계약서 하나 쓰자.”
***
수혁이 몰고 온 스쿠터 뒤에 탄 홍영기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 사장님?”
“왜?”
“이쪽은 배를 타는 방향이 아닌데요.”
“지금 배 타러 가는 거 아니다.”
“그럼...”
“게이트를 깨러 간다.”
“네?!”
게이트란 무엇인지 설명을 들은 홍영기가 수혁의 등을 잡고 있던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게이트 안 깨면 이 섬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섬이 된다. 계속해서 몬스터는 쏟아져 나올 거니까.”
“그걸 왜 저희가...”
“저희가라니? 내가 깬다. 너는 자리나 지키고 있어.”
“혼자서요?!”
부다다다다.
대답 대신 스쿠터의 스로틀을 힘껏 돌렸다.
달리는 스쿠터에서 뛰어내릴 자신이 없는 홍영기가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게이트는 가리도의 서쪽 끝 갈대밭이 즐비한 지역에 존재했다.
접근하는 사이 공격하는 고블린들은 수혁의 몽둥이찜질에 모두 죽었다.
그림자 속으로 녹아드는 고블린 사체의 모습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으나 스킬이라고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역시 광폭화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혁에게 스킬과 특성의 차이점을 듣자 명확한 특성이었다.
비록 마음대로 조절도 안 되긴 하지만.
“진짜로 혼자 들어가세요?”
“너도 들어갈 거야? 확실히 선택해. 들어가는 순간 무조건 싸워야 된다. 게이트 내부에서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한다면 난 널 버릴 거야.”
“......여기서 기다릴게요.”
“스쿠터 키 내가 가지고 있다.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고블린이던 사람이던 이곳에 접근하는 사람은 전부 적이다. 알았어?”
“사람도요?”
“그래. 우리 말고는 아무도 믿지 마. 배고프면 이거 먹고 있어.”
갑자기 수혁의 손에서 발열도시락과 생수 한 병이 나타났다.
물건을 받자마자 곧바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락과 물을 끌어안은 홍영기가 코를 훌쩍이더니 자리에 앉았다.
***
박병록은 전남에서 유명한 대양동파의 두목이었다.
마약, 성매매, 도박, 살인 등 다양한 범죄에 발을 걸치다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급히 배를 타고 도망쳤다.
자신을 아는 자도 없고 경찰도 없지만 슈퍼도 있을 만큼 아주 약간의 인프라가 존재하는 곳, 가리도로 도망쳤다.
낚시꾼으로 위장한 뒤, 섬의 곳곳에서 텐트를 치고는 매일같이 소주만 들이부었다.
부하놈이 대신 학교에 들어가는 것으로 처리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간간히 소식을 전해주던 부두목의 연락이 갑자기 끊길 무렵 그의 텐트로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자신의 애병(愛兵)인 사시미 칼을 양손에 쥔 그는 생전 처음 보는 괴물들과 밤새 싸웠다.
누군갈 칼로 찌르고 죽이는 것은 자신의 특기였다.
참 재밌게도 이 괴물들을 죽이자 레벨이란 것이 오르며 육체에 힘이 샘솟는 걸 느꼈다.
“이런 거라면 자신 있지.”
그 뒤로 섬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괴물들을 족족 죽였다.
숫자에 너무 많이 밀릴 때에는 도망도 다니고 적당한 숫자라면 싸워 죽이고, 마치 더 강한 힘을 가지라는 하늘의 뜻이었다.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니 가리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이 난리였다.
이런 혼란이라면 굳이 이 섬에서 썩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당장 항구로 돌아가 배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배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모여 있자 고블린떼가 들이닥쳤다.
너무 많은 숫자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나갔고, 그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빌어먹을. 이 섬에서 썩게 생겼네.”
고블린떼에게 쫓겨다니며 온 섬을 돌았다.
그 와중에 도로에 스쿠터를 탄 자들을 발견했다.
항구 방향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가는 모습에 묘한 직감이 든 그는 스쿠터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스쿠터가 멈춰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서 게이트가 열려있는 갈대밭 근처에 큰 덩치의 남성이 혼자 있는 것을 보았다.
“어이. 자네는 어디 식구인가?”
“네?”
“힘 좀 꽤나 쓰겄는디 누구 밑에 있어?”
“어... 이사장님이요.”
“어허... 이사장? 부산인가, 여수? 목포는 내가 모를 리가 없는디, 같이 온 친구는?”
“...그건 왜 물으세요?”
“쓰읍. 어린놈이 어른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어디서 말대꾸야? 말뽄새봐라.”
홍영기는 뜬금없이 다가온 남성이 시비를 걸자 당황했다.
험악한 인상에 도망가고 싶었으나 수혁이 지시한 게 있어 겨우 참는 중이었다.
위축된 홍영기의 모습에 기세가 올라간 박병록은 욕심을 더 부렸다.
“거기 손에 들고 있는 것 좀 줘봐.”
“네?! 이건 제 껀데요.”“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박병록은 홍영기의 손에 들린 식량이 너무나 탐났다.
사라진 동료가 돌아오기 전 후딱 처리하고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성큼 다가간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허리춤에 있던 사시미칼을 꺼내 홍영기의 배를 찔렀다.
“커헉.”
“네가 자초한거다.”
배에서 울컥하며 붉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홍영기는 화끈하면서 뜨거운 고통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박병록은 그 틈에 손에 쥔 전투식량과 생수를 챙기고 달아나려 할 때였다.
“크르르르...”
“?”
***
몽둥이에 맞은 고블린 족장의 머리통이 터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Lv.1 등급(슈퍼 노비스)
- 신체 : 62 + ??
- 마력 : 61 + ?? + (1)
- 종합전투력 : 123 + ?? + (1)
- 경험치 : 1/10000 ]
마침내 레벨업을 달성했다.
그와 함께 능력치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육체에서 갑자기 끓어오른 힘과 마력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소요했다.
그만큼 전생의 노비스 등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혁의 얼굴엔 복잡미묘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요구 경험치가 배로 늘었다.’
레벨 1부터 요구하는 경험치가 노비스 등급 10레벨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대신 레벨업을 할 시 얻게 되는 능력치는 엄청났다.
‘아니지... 이렇게 레벨업을 한다면 만렙을 찍었을 때 능력치가 상상이 안 되는 걸? 전생의 내 전성기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인상이 펴지고 생각을 멈춘 그가 탈출 포탈을 통과한 후 맞이한 광경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만 좀 죽어라!“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박병록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짐승처럼 변한 홍영기의 급습에도 능숙하게 몸을 구르며 피한 그는 사시미칼을 연달아 휘둘렀다.
그의 칼질에 피륙의 상처들이 늘어나는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자 오그라들었다.
”크와아악!“
오히려 화만 돋구는 듯 홍영기가 더욱 날뛰었다.
찌르고 베어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투에 박병록은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게이트가 없어지며 나타난 수혁을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얌마! 네 친구 좀 말려봐라!“
”내가 왜?“
”뭐?!“
싸늘한 수혁의 반응에 박병록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조금씩 수혁이 있는 쪽으로 몸을 움직이더니 어느새 그는 수혁의 앞까지 다가갔다.
홍영기가 으르렁대며 달려들자 몸을 휙 굴러 옆으로 피했다.
멈추지 않는 돌진은 그대로 수혁에게 이어졌다.
박병록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지어졌다.
”네 친구 똥은 네 놈이 치워라.“
”크와아악!“
피식 웃은 수혁의 손에는 어느새 몽둥이 하나가 들려있었다.
퍽.
몽둥이에 뒤통수를 맞은 홍영기가 풀썩 갈대밭에 쓰러졌다.
그간의 치열했던 사투가 무색하게 허무한 방법으로 끝이 났다.
”뭐... 뭐야. 저렇게 쉽게...? 오... 오지 마!“
”지랄.“
퍽.
***
”으으윽...“
저번엔 모래밭이더니 이번에는 입 안에서 갈대가 잔뜩 씹혔다.
그러다 배가 찔린 기억이 나자 다급히 만져봤다.
”내 배! 멀쩡하네?“
”그만 어리광피우고 일어나.“
“네?”
수혁의 목소리가 들리자 홍영기는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박병록을 발견했다.
“저! 저 사람이 내 배를...! 찔렀는데...?!”
수혁은 아직 어설픈 홍영기의 태도에 옅은 한숨이 나왔다.
“하아... 영기야. 내가 아까 뭐라고 했지? 우리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전부 적이라고 했잖아.”
“그... 그치만...”
“확실히 기억해둬. 게이트는 보물이야. 그리고 우리는 이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이 보물을 탐내는 적이라고. 특히 저렇게 욕심을 부리고 남을 쉽게 해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
“...?”
“빌런. 우리의 적은 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뿐만 아니라 바로 저런 빌런들도 포함이야. 명심해. 오래 살고 싶다면.”
“네...”
빌런의 삶은 수혁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삶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전생에서는 자신을 잡으러 온 헌터들을 잡아먹고 컸다면, 이번 삶은 빌런들을 잡아 성장할 것이다.
빌런을 상대하는 법은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그리고 그 노하우를 아직은 어린 홍영기에게 잘 전수해 볼 생각이었다.
“자. 저런 빌런을 다루는 법은 딱 하나야. 잘 봐.”
기절한 박병록의 목을 옆으로 젖힌 뒤 목덜미를 깨물었다.
“쯥. 쯥.”
박병록의 몸이 미라처럼 바짝 말라갔다.
아주 달다.
[미약한 고통 내성을 얻었습니다.]
고통 내성이라니.
생각보다 괜찮은 특성을 가진 빌런이었다.
격렬한 전투에 육체의 상처는 곧 근육의 경직으로 이어지며 아주 미묘한 빈틈을 만들어낸다.
그 미묘한 빈틈을 채워줄 좋은 특성이었다.
만족스러운 수혁의 얼굴과 달리 홍영기는 입이 떡 벌어지며 다물어 들 기미가 안보였다.
“잘 봤지? 이런 빌런은 어떻게 다룬다고?”
이번 기회에 좋은 교육이 될 것이다.
빌런은 모두 잡아 죽여야 한다.
세상에 해악만 끼치는 존재니까.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홍영기는 입을 다물고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올리며 힘을 잔뜩 주었다.
오늘로서 여리고 어설펐던 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빌런은... 전부 잡아먹는다!”
아무래도 그의 가르침을 잘 습득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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